2022-09-15
‘검수원복’은 비정상화의 정상화… 반부패 사정 수사 본궤도 올라
OECD도 ‘검수완박’ 폐해에 “심각한 우려”… 국가 차원의 범죄 대응역량 강화가 수사권 조정보다 시급
대통령령 개정으로 형사사법시스템 정상화 첫발… 뇌물·직권남용·범죄수익·마약범죄 등 수사 활성화
법무부가 ‘검사의 수사 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개정을 통해 ‘검수완박’을 뒤엎고 ‘검수원복’으로 가는 첫발을 뗐다. 비정상화의 정상화다. 더불어민주당이 “시행령 쿠데타”라고 반발하지만 여권은 더 이상 국민 피해를 외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국제사회는 검수완박이 불러올 한국의 부패범죄 대응역량 약화에 ‘심각한 우려(serious concern)’를 표했다.
수사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국가적 차원의 범죄 대응역량 강화다. 검찰 수사가 정상화의 길을 걸으면서 부패 사범과 권력형 비리에 대한 검찰의 사정수사가 본궤도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 범죄 대응능력 약화
지난해 1월 검사의 수사 개시 범위 제한으로 인한 수사 공백은 심각한 수준이다. 2018년 553건이던 검찰의 부패범죄 직접수사는 2021년 208건으로 격감했고, 송치사건을 포함한 전체 부패범죄 사건도 2018년 2528건에서 2021년 1519건으로 대폭 줄었다. 뇌물사건 구속자는 2017년 220명이었으나 2022년에는 17명에 불과했다. 검사 인지 건수는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향정·대마) 사건이 2020년 880건에서 2021년 236건으로 644건이나 감소했고, 무고죄는 2018년 1145건을 인지했으나 2021년에는 220건에 그쳤다.
횡령·배임 사건 수사 가운데 시민단체로부터 채용 비리 혐의와 관련돼 고발장이 접수된 이스타항공 사건의 경우, 종전 시행령에서는 업무방해죄에 대한 검사의 수사 개시가 불가능해 경찰에 이송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 경찰에 이송된 이 사건은 검찰 고발장 제출 후 1년 2개월이 지난 6월 무혐의 불송치 결정으로 종결됐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 등의 부동산 투기 의혹 사건도 종전 시행령에서는 부패방지법 위반, 공공주택특별법 위반, 부동산실명제법 위반, 농지법 위반 등이 수사 개시 대상 범죄에 해당하지 않아 검사가 수사할 수 없었는데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모두 수사대상에 포함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뇌물방지작업반은 지난 7월 20일 검수완박법에 따른 한국의 부패범죄 대응역량 약화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권고했다. 법무부는 이러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시행령 개정에서 고려했다고 밝혔다.
◇ 비정상화의 정상화
이번 시행령은 종전 검수완박법 시행 과정에서 나타난 국가적 차원의 범죄 대응역량 약화, 수사기관 간 불필요한 사건 이송에 따른 절차 지연 및 이로 인한 국민 피해 등 실무상 문제점을 보완하는 데 중점을 뒀다. 부패·경제범죄의 정의 규정을 새로 마련하고, 각각의 중요범죄 유형에 부합하는 개별 처벌조항을 범죄 성격에 따라 재분류해 특정했다.
종전 시행령은 부패·경제범죄에 대한 개념 정의 없이 극히 일부 범죄로 범위를 제한해 복잡다기한 부패·경제범죄를 포괄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특히 공직자가 범한 부패범죄의 성격을 지닐 뿐 아니라 ‘유엔 반부패협약’에도 명확히 부패범죄로 규정된 직권남용이 부패범죄에 포함됐다. 또 단순 소지·투약 등을 제외한 마약류 유통 범죄가 불법적인 경제적 이익 취득 목적의 경제범죄로 규정됐다.
검찰청법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범죄’로 규정해 중요범죄의 범위에 관한 구체화 권한을 명시적으로 위임함에 따라 무고·위증죄 등 ‘사법질서 저해 범죄’,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등 ‘개별 법률에서 국가기관으로 해금 검사에게 고발하도록 하거나 수사를 의뢰하도록 규정한 범죄’가 검사 직접 수사대상에 포함됐다.
또 검찰청법이 ‘직접 관련성’ 있는 범죄의 수사를 제한 없이 허용하고 있음에도 종전 시행령이 그 개념을 지나치게 좁고 복잡하게 규정하고 있었다는 지적에 따라 ‘직접 관련성’ 규정을 삭제했다. 법률의 근거 없이 ‘중요범죄’ 중 특정 신분, 특정 금액 범죄만 수사를 개시할 수 있도록 했던 시행규칙도 수사 실무에 부합하지 않고 국가적 범죄 대응역량 약화를 초래한다는 문제점을 반영해 폐지했다.
◇ 검수원복과 司正
여전히 미흡한 제도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부패 사범과 권력형 비리에 대한 검찰의 사정수사는 활성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뇌물, 알선수재 등은 물론 정치자금법상 정치자금 부정수수·직권남용·직무유기 등 공무원의 직무 관련 범죄, 부패방지법·청탁금지법 등 공무원의 청렴의무 관련 범죄, 범죄수익은닉법 등 범죄수익·자금세탁 범죄, 국가기관이 검사에게 고발·수사 의뢰하도록 한 범죄가 모두 검사의 직접수사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대장동 개발 비리, 쌍방울 그룹 변호사비 대납 의혹, 성남FC 후원금 의혹, 월성1호기 탈원전,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 등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주요 사건들은 개정 시행령에 따라 한층 수사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총리실 주관으로 전체 226개 기초자치단체 중 12곳에 대해 표본 조사한 결과 1847억 원의 비리가 밝혀진 태양광 사업도 검찰의 전면 수사가 불가피해졌다. 전수 조사 결과에 따라 하반기 사정 정국의 향배를 좌우하는 핵심 이슈가 될 수도 있다.
급증하는 마약범죄 대응 역량도 재구축될 것으로 보인다. 관세청의 마약 압수 규모는 2017년 69.1㎏에서 2021년 1272.5㎏으로 18.4배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마약사범 기소 인원도 2017년 719명에서 2021년 4998명으로 6.9배로 늘었다. 특히 10대와 20대 마약사범의 증가는 우려스럽다. 10대의 경우 2018년 104명에서 2021년 309명으로 3배 가까이 늘었고, 20대 마약사범은 2018년 1392명에서 2021년 3507명으로 증가 추세가 위험 수위다.
◇ 정상화의 과제
형사소송법 제196조는 ‘검사는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범인, 범죄사실과 증거를 수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수사할 수 있다’는 재량행위가 아니라 ‘수사해야 한다’는 의무규정인 것이다.
검수원복은 지난 1년 8개월간 왜곡됐던 검찰과 형사사법시스템 정상화의 첫걸음이다. 앞으로 대통령실의 범죄 컨트롤 타워 기능을 강화해 국가적 차원의 부패·경제·조직범죄 등 중요범죄에 대한 대응 역량을 제고시켜야 한다. 검경과 정부 각 부처가 유기적인 역할 분담과 협력체제를 구축해 범죄 예방과 수사, 범죄수익 환수 등 형사정책을 정교하게 수립하고 집행해야 할 과제도 안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조속히 검수완박법 위헌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려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않으면 안 된다.
김종민 / 변호사, 전 광주지검 순천지청장
문화일보
■ 용어 설명
‘심각한 우려’란 경제협력개발기구 뇌물방지작업반의 성명에 나오는 표현. 기구는 “(검수완박 법안 시행으로) 검찰의 국제뇌물범죄 수사·기소 역량에 심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
‘유엔 반부패협약’은 유엔이 2003년 10월 채택한 부패 방지를 위한 국제협약. 협약 이행을 위해 국회 비준을 마친 국가는 2010년 기준으로 한국을 포함해 미·영 등 모두 150여 개국에 이름.
■ 세줄 요약
범죄 대응 능력 약화 : 법무부가 대통령령 개정을 통해 ‘검수원복’의 절차를 밟음. 그간 검수완박 법안과 검사의 수사 개시 범위 제한에 따른 수사 공백 및 국민 피해가 컸음. OECD가 이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할 정도.
비정상화의 정상화 : 범죄에 따른 국민 피해를 막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 따라서 검경 수사권 조정보다 더 시급한 과제는 국가적 차원의 범죄 대응 역량 강화임. 그런 의미에서 검수원복은 ‘비정상화의 정상화’를 위한 첫발.
검수원복과 司正 : 뇌물·직권남용·직무유기·범죄수익·자금세탁 등이 검찰 직접수사 대상이 되면서 향후 반부패 사정수사가 활성화할 것. 앞으로 사정 컨트롤 타워 기능을 강화하고 중요범죄 대응 역량을 제고시켜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