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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 만한 물가가 있는 관포교회에서 드리는 새벽이슬 같은 이야기 (호세아서 강해 34)
사랑하시는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것은
설교 : 조용안 목사
날짜 : 2023. 8. 27.
본문 : 호세아 6:6, 미가 6:6-8
호세아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미가 6:6-8/ 6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7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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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조용안 드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게 구분되어집니다. 하나님은 제사가 아닌 인애를 원하시며 번제가 아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원하십니다. 불행하게도 당시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이 과연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몰랐습니다. 그들은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인애를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 관심도 없었습니다. 종말 이 시대에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첫째, 우리의 인애를 원하심
본문 6절에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애’는 히브리어로 ‘헤세드’입니다. 하나님을 향해서는 경건과 충성을, 사람에 대해서는 친절과 자비를 나타냅니다. 구약시대부터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하나님께 제사만 드리면 다 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시 51:16).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드리는 형식적인 번제나 예배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경건 생활과 거룩한 충성을 진심으로 받고자 하십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눅 19:41). 예수님은 주후 70년에 있을 예루살렘과 성전 파괴의 심판을 내다보며 눈물 흘리셨습니다. 평화해야 할 예루살렘이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에 심판이 임합니다. 호세아 6장 6절은 예수님께서도 인용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 9:13). 성경은 일관되게 율법적 종교적 행위에서 벗어나라고 하십니다. ‘인애’의 사전적 의미는 “어진 마음으로 사랑함”입니다. ‘긍휼’의 사전적 의미는 “불쌍히 여겨 돌보아 줌”입니다. 너무나 분명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할 삶의 자세와 태도는 되도록 종교적 행위를 버리고 어진 마음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불쌍히 여겨 돌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셨던 일이 바로 유대인들이 종교적 결정체처럼 여겼던 안식일과 종교적 행위를 거부하시고 인애와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그런데 북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따라 종교적 행위로써 제사를 충분히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종교적 행위로서의 제사나 번제가 아닌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종교적 행위를 앞세우는 일이 그때나 예수님 시대나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도 여전히 똑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심
본문 6절에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앎’, ‘아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야다’의 삶입니다.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날마다 경험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배나 기도나 찬송이나 일체의 종교적인 의식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살아가길 원합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면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되면 견딜 수 없게 됩니다.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습니다. 순종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습니다. “그들이 양 떼와 소 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으러 갈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은 이미 그들에게서 떠나셨음이라”(호 5:6). 소 떼와 양 떼를 많이 몰고 와서 제사를 드리기만 하면 그들에게 복을 내리실 것이라고 착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제사를 기뻐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배와 생활을 분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못살게 되어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먹고 사는 일에 전력을 다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못합니다. 예배를 드려야지요, 구역예배가 있지요, 성경읽기 갓개큐티, 말씀 댓글 일기쓰기 어떻게 이 세상을 살겠습니까? 우리는 어차피 이 세상에서 실패하게 되어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의 말씀을 붙들고 승리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이 우리 삶에 개입하시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삶에 오셔야 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내 삶에 개입하도록 초점을 맞추는 것이 인애를 베푸는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향해 이기적이지 않고 희생적일 때, 책임지는 사랑을 베풀 때, 내가 내 욕심을 향해 달려가지 않고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며 그들에게 마음을 열 때 하나님이 내 삶에 개입하십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셋째,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원하심
본문 미가 6장 6-8절에 “6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7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많은 생각을 합니다. 6-7절은 “6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7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는 그들의 일방적인 열심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영적 무지를 드러냅니다. 실패의 원인이 하나님의 마음을 잘못 읽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도 잘못 해석했습니다. 제물을 가져오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줄 알고 많은 제물의 종류와 가치에만 집중했습니다. 심지어 죄를 용서받기 위해 자기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어리석음을 범했습니다. 하나님이 구하시는 것은 정의와 인자와 겸손입니다.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입니다. 제사가 형식이라면 인애는 본질입니다. 번제가 형식이라면 하나님을 아는 것은 그 형식에 담긴 내용의 근본이며 뿌리입니다. 마음 없는 형식적 제사를 우리 주님은 원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네 마음을 달라고 합니다.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눅 18:11-13). 바리새인은 큰소리로 금식을 했으며 11조를 했으며 구제를 하고 기도를 유창하게 하면서 자신의 의를 나열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당연한 것이지 조금도 내세울 것이 못 됩니다. 반면에 세리는 울면서 자신의 죄를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이러한 눈물이었고 고백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세리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세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십니다. 미가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창 12:4). 아브라함은 말씀을 따라 갔습니다. 그러나 롯은 아브라함을 따라갔습니다. 비참한 삶을 살았던 롯의 길이 아니라 말씀의 인도함을 받은 아브라함의 길을 걷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특별했지만 아브라함은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평범한 성도의 순종을 통해 특별한 일,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십니다.
'묵상(하가)'은 깊이 생각하다, 으르렁거리다는 뜻입니다. 맹수가 먹이를 앞에 두고 으르렁거리듯이 말씀 앞에서의 내 모습이기 원합니다. 댓글은 사귐입니다. 댓글은 영의 생각입니다. 댓글은 믿음 생활의 동력입니다. 말씀댓글에 참여하시면 말씀의 풍성함이 더하여집니다. |
@ 아멘.
@ 주일 말씀을 듣고 큐티 나눔을 하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로다(신명기 33:29).~♡♡
@ 우리의 인애를 원하심.
종교적 행위를 앞세우는 일이 호세아 선지자 때나 예수님 시대나
오늘 종말 이 시대에도 똑같음을 보면서 인애와 긍휼의 삶을 살겠습니다.
@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심.
예배와 삶을 분리하지 않고 여호와를 목자로 삼았던 다윗처럼
종교적인 의식보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원하심.
자기 의만 내세우는 바리새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리의 눈물과 신앙고백으로,
롯처럼 사람을 보고 따름이 아니라 아브라함처럼 철저하게 말씀의 인도함을 받겠습니다.
@ 하나님이여 이 죄인이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낮은 자세로 관포교회를 섬기는 자 되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 사랑하시는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변함없으신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는 삶 살기 원합니다.
형식적인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자의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며 내 마음만 내 상황만 알아달라고 조르고 투정부리는
일방적인 내 모습을 내려놓고 부모 된 주님의 마음을 알아가는 자녀 되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 세상보다 한걸음 늦으매 조급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으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루하루가 되기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착각 속에 살고 있는 나는 정신을 차리고 나의 삶에 하나님이 전부이고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말씀을 따라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인애를 원하고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시는 하나님 앞에 돌덩이 같은 내 마음을 찢으며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며 말씀을 따라가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 되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가 되도록 꼭 붙들어 주세요.
감사합니다.
@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살아가는 제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 순종하고 헌신하는 주님의 자녀 되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 말씀을 따라 하나님과 늘 동행하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 아브라함은 말씀을 따라 살았듯이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 교회에 올 때 그냥 오는 것이 아닌 주님을 보러 오는 의미를 담고, 행복한 미소를 띠며
이 미소를 그대로 집에서까지 지을 수 있는 제가 되길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세리의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게 하소서.
인애와 긍휼의 마음을 저에게 더하여 주시고 한 주간도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양일뿐입니다.
@ 양인 나는 하나님 앞에 따라 다니며 주님과 동행하길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하나님을 경험하고 세상으로 나아가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로우심과 자비하심을 알려줄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길 원합니다.
@ 주일 오전 나에게 주신 말씀의 키워드(key word)는 ‘말씀 알아가기, 하나님의 인도함 받기’입니다.
아멘.
@ 주일 오전 나에게 주신 말씀의 키워드(key word)는 ‘성령님의 임재를 경험하기’입니다. 아멘.
@ 주일 오전 나에게 주신 말씀의 키워드(key word)는 ‘하나님이 내 삶에 개입하도록 초점 맞추기’입니다.
@ 주일 오전 나에게 주신 말씀의 키워드(key word)는 ‘말씀을 따른 아브라함, 사람을 따른 롯’입니다.
@ 주일 오전 나에게 주신 말씀의 키워드(key word)는 ‘사랑하시는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것은’입니다.
@ 주일 오전 나에게 주신 말씀의 키워드(key word)는 ‘우리의 인애를 원하심’입니다.
@ 주일 오전 나에게 주신 말씀의 키워드(key word)는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심’입니다.
@ 주일 오전 나에게 주신 말씀의 키워드(key word)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원하심’입니다.
@ Hi, good evening, dear pastor.
Holy and blessing Lord's day.
God continually bless you,
your family and ministry.
Have a happy & blessing Lord's day.
@ 하나님, 저에게 인애에 마음을 주시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성도되기를 소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예배와 생활이 일치되는 삶 살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