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사는 지금, 2022년 7월까지 정착하며 살아가고 있다.
처음엔 도망으로 넘어온 제주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이곳으로 넘어온 나는
모든 상황을 극복하고, 오히려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어쩌면 이 도망이 운명인 거겠지.
나와 맞는 주파수를 가진 제주.
나는 현재 이곳에서 미래를 그리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젖 먹는 송아지가 눈에 띄는 물영아리 오름
장마가 제주도 전체를 덮친다. 하늘은 늘 흐리고, 구름은 언제라도 비를 내리려 한다. 나는 그런 제주가 꽤나 밉다. 언제나 나를 실내로, 아니 그보다 더 깊숙한 집으로 묶어두니까. 하지만, 제주는 기적이 있다. 그 말이 맞겠다. 섬이라는 특성 때문인지, 분명 흐렸던 하늘이, 어느새 푸르게 바뀐다. 오늘도 그랬다. 월요일만 하더라도, 분명 제주는 '토요일은 비가 옵니다'라고 말했는데, 그 말이 보란 듯이 틀렸다며 맑은 하늘을 선물했다. 넓은 창 뒤로 보이는 푸른 하늘. 나는 그 모습에 당장 나갈 채비를 마치고 '물영아리 오름'으로 여정을 떠나기로 했다.
물영아리 오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 산 188
남원읍 수망리에서 북쪽으로 6km쯤 올라가면 수영악( 속칭 물영아리)이란 높이가 500m 가량 되는 오름이 있다. 정상에는 너른 분화구가 있고, 또 분화구 안에는 늘 물이 고여 연못을 이룬다. 이 오름 동편에 놓인 오름은 물이 없다는 뜻으로 <여믄영아리>라 하는데, 제주의 오름을 보면 참 직관적인 제주어로 지은 곳이 많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다시 물영아리 오름을 좀 더 깊게 이야기해보면, 물영아리 이름은 영아리는 신령스러운 이란 뜻과 앞에 물이 고였단 뜻에 물이 붙었다. 말 그대로 습지를 유지하고 있는 오름이란 뜻이다.
물이 고여 습지가 된 오름은 수망리 중잣성 생태 탐방로와도 연계되어 있다. 잣성은 제주도의 전통적인 목축 문화 유물로 목초지에 쌓아 올린 경계용 돌담을 뜻하는데, 산지 축산을 했던 옛 모습과 물영아리 오름이 크게 연관되어 있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물론 그 또한 물이 고여있는 것부터 시작이 된다. 그 모습은 여전히 존재한다. 물영아리를 오르기 전에 놓인 넓은 목초지는 여전히 과거에 머무르며 소를 풀어 키운다 산지 축산을 하며 목가적 풍경을 이루는 곳. 그게 바로 이 오름인 것이다.
오름 탐방은 소 떼가 유유히 노니는 목장 둘레를 따라 반 바퀴를 돌고 나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 둘레 길 끝에는 능선 길과 습지로 가는 계단길이 존재하는데, 계단길은 어느 정도의 각오가 필요하다. 끊임없이 펼쳐지는 계단은 여름날엔 천국의 계단을 떠오르게 했고, 언제 끝나냐 한숨을 다섯 번 정도 쉬어야 겨우 위에 보이는 세 갈래길의 표시판이 나온다. 하지만 이 표지판을 만나면, 그때부턴 안심해도 된다. 습지로 가는 길은 내리막이고, 3분도 걸리지 않아 도착할 수 있으니까.
길을 따라 도착한 오름 정상은 특별하다. 분화구엔 퇴적된 '습지 퇴적층'으로 다양한 동식물이 살고있괴 멸종 위기종들이 서식하고 있기도 하다. 그로 인해 보존 가치가 매우 높은 물영아리 오름. 2006년 이곳은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세계적인 습지 보호 단체에서 지정한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보호 구역이 된 것이다.
지금 위에 보이는 사진이 물영아리 오름 정상에서 만날 수 있는 습지이다. 생물 지리학적 특징이 있거나 희귀 동식물의 서식지로서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될 때 '람사르 협약'에 의해 지정되는데, 그 조건을 충족한 곳인 셈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린지 얼마 안 돼서 일까? 이곳 습지엔 마른 땅 사이사이 물이 고여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그 안엔 맹꽁이부터 시작해 제주 도롱뇽, 물방개 등이 서식하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자연의 보고였고, 람사르 습지로 지정될만한 곳임에 틀임이 없었다.
물영아리 오름의 전설
처음 수망리에 민가가 살기 시작한 때, 들에 놓아먹이면서 기르던 소를 잃어버린 젊은이가 소를 찾아 헤매다 이 오름 정상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젊은이는 그 산 정상에서 배를 굶주렸고, 목이 말라 기진해 풀썩 쓰러졌다. 그때 꿈에 백발의 노인 한 명이 나타났다. 그는 '소를 잃어버렸다고 상심하지 말아라. 내가 그 소 값으로 산꼭대기에 큰 못을 만들어 놓을 테니,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소들이 목마르지 않게 되니라. 만약 네가 돌아가 부지런히 소를 치면 결코 궁색하게 살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 말에 젊은이는 정신을 번쩍 차렸고, 눈을 떠보니, 하늘이 갑자기 어둑해졌고, 천둥 번개가 그치지 않고 치며, 비는 삽시간에 어마어마한 양으로 쏟아졌다.
젊은이는 놀라 허둥대는데 이상하게 자기 옷은 하나도 젖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꿈에 본 노인의 말이 생각났다. 그때였다. 하늘이 두 조각으로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불이 번쩍 눈을 스쳐갔고, 젊은이는 쓰러져 혼절해 다음 날 아침에 정신을 차리게 됐다 언제 번개 치고 비가 내렸었냐는 듯 하늘은 맑았다. 그리고 그가 쓰러졌던 산꼭대기가 너르게 패어져 있는데, 거기에 물이 가득 차서 출렁거리고 있었다. 아무리 가물어도 그 오름 꼭대기엔 마르지 않는 물이 고이게 됐고, 소들이 목장에 물이 말라 없으면, 이곳에서 목을 축이게 됐다.
이 전설은 물영아리와 중잣성의 축산을 하는 것에서 비롯되었고, 물영아리 오름이 축산을 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 인식 시켰다.
초록빛의 풀잎과 푸른 하늘, 녹음 진 나무가 아름답게 빛나던 물영아리 오름. 이곳은 람사르 습지라는 가치와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었다. ,소들이 뛰어놀며, 들판을 사랑스럽게 꾸미는 오름. 만약 비가 오는 날 제주를 여행한다면, 이곳을 계획하자. 또, 비가 온 다음 날이라면 꼭 넣어보자. 결코 후회 없는 선택지가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