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고향에 있는 마을회관을 찾았다. 할머니들과 같이 정담을 나누다가 지난 날 길쌈 하던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결혼을 할 때 어머니는 삼베이불을 두 개를 주면서 한 개는 ‘니 올케 몰래 준다’ 고 하던 말이 생각이 났다. 그 이야기를 할까 말까 망설였다. 질녀도 같은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잠시 망설이다가 사실 데로 말을 했다. 그러자 질녀가 ‘엄마도 삼베이불 한 개는 할머니 모르게 준다’ 면서 하나 더 주더라고 했다. 결혼 35년 만에 처음 말한다고 해서 회관의 방안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두 분은 오래 전에 우리들 곁을 떠나갔는데 이제야 비밀이 들어났다. 서로의 노력으로 만든 이불을 각자의 딸에게 더 챙긴 것이었다. 어머니들의 진정한 마음과 끈끈한 자식사랑을 느끼게 했다. 동네 할머니들이 저승에 일러주러 가라고 해서 한바탕 웃었다.
길쌈을 할 때는 고부가 같이 일을 했다. 나는 어머니가 나에게만 더 준줄 알았지 큰 올케가 어머니 모르게 질녀에게 줬다는 것은 전혀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 깜짝 놀랐다. 더군다나 질녀는 나보다 십 여 년이나 늦게 결혼을 했다. 그때까지 잘 보관 했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챙긴 이불을 주지 않았다면 힘들게 짠 삼베를 판돈은 받아써서 간곳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서로 흔적을 남겼으니 잘 한 일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질녀는 여름이 되면 할머니와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삼베이불을 침대에 깔고 덮는다고 말했다.
한 번은 작은 올케가 올케의 친정에서는 길쌈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결혼을 할 때 삼베이불을 가져오지 못해서 어머니께 하나 달라고 하니 줄 생각을 하지 않더라고 했다. 몇 번이나 말을 하니 제일 질이 나쁜 것을 하나 주더라고 하면서 섭섭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것은 아마 이불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이 힘들어서 그랬는지 모른다. 시집가는 딸은 두 개나 주면서 아들이 덮을 이불인데 하나 챙겨 주지 않은 것은 오랫동안 기억에 지워지지 않는다고 했다.
삼베이불을 만들기까지는 많은 손길이 간다. 봄이 되면 논에 삼씨를 뿌려서 사람 키만큼 자라면 삼대를 베어와 쪄서 삼 껍질을 벗겨 가늘게 짼다. 삼을 길게 잇고 양잿물에 담구어서 하얗게 바랜 후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쳐서 베틀에서 베를 짜면 드디어 완성이 된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장롱 서랍에 깊이 넣어둔 삼베이불을 꺼냈다. 흘러가는 시간의 두께 만큼 누르스름하게 빛바랜 이불은 사십 여 년 동안 어두컴컴한 곳에서 깊은 잠에 빠졌다가 이제야 밝은 세상으로 나다.
내가 결혼할 때 어머니가 해준 물건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혼수품이다. 40여년의 세월을 건너 어머니의 숨결이 그려지듯 그때의 그 얼굴이 그대로 겹쳐졌다. 어머니의 삶의 흔적이며 또한 아련한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니 삼베이불은 용도가 다양하다. 내가 자랄 때 우리 집은 동향이었다. 더운 여름에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따가운 햇볕은 방안 깊숙이 파고들었다. 아침에 식구들이 모여서 마루에서 식사를 하려고 하면 햇살 때문에 불편했다. 모두 땀을 뻘뻘 흘리면 생각다 못한 어머니는 높은 곳에 못을 쳐서 삼베이불을 걸어서 햇빛 가리개로 사용을 했다. 그러면 우리는 편안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밤에는 마당에 있는 평상에서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와 함께 하늘 저 멀리서 반짝이는 별과 희미한 은하수를 쳐다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모기들이 앵앵거리며 살갗을 파고들었다. 그때 삼베이불을 턱 아래까지 덮으면 모기는 가까이 오지 못했다.
삼베이불은 가을에 참깨나 들깨를 수확 할 때나 씻어서 말릴 때도 사용을 했다. 요즈음이야 비닐이나 부직포 같은 것을 사용을 한다. 그러나 그때에는 말릴 도구가 마땅하지 않아서 거기에 말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해마다 여름에는 빨래하기 편하다는 이유로 화학섬유나 면으로 된 이불만 덮었다. 삼베로 만든 이불은 손질하기 귀찮아서 꺼내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보통이불은 세탁기에 넣어서 돌려서 말리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삼베이불은 삶아 씻어서 밀가루 풀을 끓여 잘 스며들도록 주물러야 한다. 햇볕에 널어서 꾸덕꾸덕하게 마르면 양쪽으로 잡아 당겨 곱게 접어서 발로 꾹꾹 밟거나 다듬잇돌에 방망이로 두들겨서 다시 말려야 된다. 그렇게 하면 삼베이불의 구겨진 주름들은 곱게 펴진다. 그만큼 번거롭고 손질하기 힘이 든다.
몸에 닿으면 달라붙지도 않고 통풍도 잘 되고 시원하다. 까실까실하고 촉감도 참 좋다. 올해같이 찌는 듯한 더위에는 삼베이불의 기능에 감탄했다. 진작 꺼내서 덮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오늘따라 이 세상과 멀어져 간 그분들이 더 생각이 난다. 어머니와 올케가 한 올 한 올을 엮어서 어렵게 길쌈을 하던 모습을 떠 올리면서 삼베 이불을 덮는다. 두 분의 체취가 스며있고 정성이 가득담긴 시원한 이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