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박사 윤현수씨 美서 연구비 연속따내(2004/10/06)
국내에서 학위를 받은 ‘토종’ 생명공학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이 두 번 연속으로 미국 국립보건원(NIH)으로부터 연구비를 따냈다.
윤현수(46) 박사가 소장으로 있는 서울 미즈메디병원 의과학연구소는 지난달 20일 미국 국립보건원(NIH)으로부터 3년간 83만 달러(약 9억 5400만원)의 인간배아 줄기세포 연구비를 지원해주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미즈메디병원(이사장 노성일)은 불임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여성 전문병원으로 서울 강남구 대치동과 강서구 내발산동 두 곳에 병원을 갖고 있다.
황우석 서울대 교수의 체세포 복제 인간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참여했었던 미즈메디 연구소는 지난 2002년에도 미국 국립보건원으로부터 연구비를 따내 2년간 51만여 달러를 지원받았다.
NIH가 다른 나라 연구팀의 기술 개발을 위해 조건없이 연구비를 지원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 이는 인간 배아 줄기세포 분야의 국내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임을 인정한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 4일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 연구소에서 만난 윤 박사는 예상 외로 담담한 표정이었다.
연구비를 지원받는데 대한 기쁨보다는 앞으로 연구를 진행해나가는데 대한 책임감이 더 크다고 했다. “NIH의 지원을 받는 연구는 미국 정부의 정책과제 성격을 띱니다.
이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우리 나라의 전체 연구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어요.
국내 연구를 선도해야한다는 부담감과 생명윤리 논쟁에 휩싸이지 않기 위해 연구를 투명하게 진행해야한다는 책임감으로 어깨가 무겁습니다.”
윤 박사는 한양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동물 발생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난 1994년 미즈메디 병원 의과학 연구소와 인연을 맺은 후부터는 줄곧 불임 치료 연구를 해 왔다.
그는 체외 수정된 시험관 아기의 배아에서 세포 일부를 떼내 유전자 이상 여부를 판단하는 기술을 국내에서 처음 개발했으며, 지난 1996년에는 세계 두번째로 정자가 아닌 원형 정세포를 이용해 수정란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지난 1997년에는 국내 처음으로 정자를 난자의 세포질 내에 직접 주입해 임신을 시키기도 했다.
▲ 윤현수(사진 가운데 아래) 소장과 연구팀./ 곽아람기자
윤 박사가 인간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시작한 것은 지난 1997년. 그는 “시험관 아기 시술을 집중적으로 해오다 보니 자연스레 인간 배아 줄기세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인간 배아 줄기세포는 수정란으로부터 배양하는 거라 수정란 연구가 밑바탕이 돼야 해요.
1990년대 중반이 되자 불임연구도 사양길에 접어들고, 뭔가 새로운 연구분야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당시 생명공학계에 새롭게 떠오르는 연구주제가 인간 배아줄기세포 연구라 ‘마침 이거다!’ 하고 연구에 뛰어들었죠.”
그가 이끄는 연구팀은 지난 1998년 유산된 태아 조직을 이용해 배아 생식세포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한데 이어, 2000년에는 마침내 수정란을 이용한 인간 배아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
미국 위스콘신대의 톰슨 교수팀이 세계 최초로 인간 배아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한지 2년만이었다.
그에게 “연구가 성공하기까지 가장 힘들었던 점은 뭐냐”고 물었다.
그는 “배양 기술 자체를 독자적으로 개발해야만 했던 점, 연구비가 많이 들었던 점 등이 힘들었다”며 “실험이 끝난 후에도 최종적으로 ‘이것이 줄기세포가 맞다’고 확인하기까지 6개월이 걸리는데 결과를 기다리면서 조마조마했었다”고 말했다.
인간의 수정란을 연구에 이용하는데 대한 부담감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연구를 위해 수정란을 만든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지만 불임 치료가 끝난 후 남은 수정란을 폐기하는 것보다는 정자·난자 제공자의 동의를 얻어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인간 배아줄기세포는 인체를 구성하는 모든 종류의 기능성 세포로 분화가 가능하며 무한대로 증식할 수 있어 난치병 치료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연구가 일반화되면 파킨슨씨 병, 알츠하이머, 척추손상, 당뇨, 심장병 등 세포가 죽어서 생길 수 있는 모든 퇴행성 질환을 치료하는데 이용될 수 있습니다.”
충북 진천 출신인 그는 “어린 시절 시골에서 동·식물을 비롯한 자연과 더불어 자랐던 것이 생명공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하기까지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했다.
해외 유학 경험이 없는 순수 국내파 박사지만 “유학을 가지 않아도 국내에서도 집중적으로 연구하면 최고의 생명공학 기술을 개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NIH에 등록된 인간배아 줄기세포는 세계 15개 기관의 78종, 그러나 이중 연구이용 가능성이 검증된 것은 7개 기관 21종에 불과하며 아시아에서는 미즈메디 병원이 서울대 의대와 공동 등록한 ‘Miz_hES1’이 유일하다. 연구성과가 국제적인 인정을 받고 있지만 그는 “아직은 보람을 느낄 시기가 아니다”고 했다. “수많은 연구자들이 피땀 흘려 창출해낸 결과가 정말 인간을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실용화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연구결과 덕에 불치병으로 고생하던 사람이 치료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비로소 보람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