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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불가지론(Strong Agnosticism): 인간의 지능적·신체적 한계 때문에 우리는 영원히 신의 존재를 알 수 없으며, 인간에게 신을 아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단정하는 입장입니다.
약한 불가지론(Weak Agnosticism): 현재로서는 신에 대해 알 수 있는 증거가 없어서 판단을 보류하지만, 미래에 더 많은 지식이나 증거가 나타나면 알게 될 수도 있다는 다소 유보적인 입장입니다.
이 불가지론이 신앙과 맺는 관계를 보면 두 갈래의 태도가 나타납니다.
첫째는 "신의 존재를 이성적으로 알거나 증명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믿음을 선택한다"라고 하는 태도입니다. 이는 이성적 한계를 고백하면서도 믿음의 도약을 이루는 방식으로, 불가지론적 고백 위에 신앙을 더한 것입니다.
둘째는 "신의 존재 여부를 알 수 없으니, 확실히 검증되지 않은 신을 나는 믿지 않겠다"라고 하는 태도입니다. 불가지론적 회의주의 위에 불신을 결부한 방식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불가지론(Agnosticism)과 지난 시간에 배운 영지주의(Gnosticism)는 글자 하나 차이입니다. 영지주의는 특별한 신비적 지식(그노시스)을 가져야만 신을 온전히 알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영적 교만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앞에 부정어 '아(a-)'를 붙인 불가지론은 신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얻는 것 자체가 인간에게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불가지론적 회의주의는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으나, '불가지론'이라는 구체적인 명칭을 만들어 체계적으로 전개한 인물들은 19세기와 20세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불가지론자 네 사람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여러분이 잘 아시는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입니다. 다윈은 본래 매우 종교적인 환경에서 자랐으며, 젊은 시절 성공회(영국교회)의 성직자가 되기 위해 신학을 공부하기도 했던 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생물학을 연구하고 종의 기원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점차 성경의 창조 역사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습니다. 단세포 생물에서 다세포 생물로, 물고기에서 양서류로, 원숭이를 거쳐 인간으로 점차 진화했다는 자신의 '진화론(Evolution)'을 확립하면서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강하게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진화론과 창조론은 결코 공존할 수 없습니다. 다윈은 자신의 종교적 성향에 대해 말을 아끼는 편이었으나, 1879년 한 서한에 다음과 같은 분명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나는 신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부정하는 의미의 무신론자가 된 적은 한 번도 없다. 내 생각에 나의 정신 상태를 표현하는 데는 '불가지론자(Agnostic)'라는 단어가 가장 알맞은 묘사일 것 같다."
둘째는 영국 성공회의 성직자 지망생이자 생물학자, 인류학자였던 토마스 헨리 헉슬리(Thomas Henry Huxley, 1825~1895)입니다. 그는 다윈의 진화론을 널리 선전하고 옹호하여 '다윈의 불독(Darwin's Bulldog)'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열렬한 진화론 추종자였습니다. 이 헉슬리가 1869년에 역사상 처음으로 '불가지론(Agnosticism)'이라는 용어를 고안하여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일찍이 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인간의 영혼 불멸을 부인하지도 긍정하지도 않는다. 나는 그것을 믿을 만한 충분한 근거를 찾지 못했으나, 동시에 그것이 거짓임을 증명할 반증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지적으로 성숙하면서 스스로에게 자신이 무신론자인지, 유신론자인지, 범신론자인지, 기독교인인지를 끊임없이 자문했으나 배우고 생각하면 할 수록 답을 내리기 어려웠다고 고백했습니다. 결국 그는 자유 사상가로서 "나는 신과 영원에 대해 모른다"라는 불가지론적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셋째는 20세기 영국의 위대한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입니다. 그는 1927년에 발표한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Why I Am Not a Christian)》라는 유명한 강연록을 통해, 성도들이 두 발로 꿋꿋이 서서 두려움 없는 지성으로 세계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라고 도전했습니다. 영적인 눈을 감은 채 육안으로만 세상을 보니 영의 세계가 보이지 않는다는 취지였습니다. 그는 1947년에 쓴 소책자 《나는 무신론자인가 불가지론자인가》에서 다음과 같이 매우 정교한 논리를 폈습니다.
"철학적인 청중 앞에서 엄밀하게 말하자면, 나는 나 자신을 '불가지론자'라고 불러야 한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길거리의 일반 대중에게 명확한 인상을 주기 위해 말해야 한다면, 나는 나를 '무신론자'라고 소개하겠다. 고대 헬라 신화에 나오는 올림포스의 신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완벽히 증명할 길은 없으나 우리는 그것을 믿지 않듯이, 기독교의 신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교묘한 이성적 말장난으로 하나님의 부존재를 신화의 영역과 동일시하여 불신을 정당화하려 한 태도입니다.
넷째는 19세기 미국의 정치가이자 변호사, 당대 최고의 웅변가였던 로버트 잉거솔(Robert G. Ingersoll, 1833~1899)입니다. 그는 워낙 불가지론을 널리 강연하고 다녀서 '위대한 불가지론자(The Great Agnostic)'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는 《나는 왜 불가지론자인가》라는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외쳤습니다.
"모든 삼라만상이 복종하는 초자연적인 지성과 지배 의지, 보좌에 앉아 있는 신이 정말로 존재하는가?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며, 굳이 부정하지도 않지만 결코 믿지도 않는다. 내가 믿는 유일한 것은 파괴되지 않는 자연의 무한한 순환 연쇄이다. 기도에 응답하는 초자연적인 힘은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의 예배나 고백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권세도 존재하지 않는다. 신이 존재하는가? 나는 모른다. 인간은 불멸하는가? 나는 모른다."
이처럼 잉거솔은 기도의 권능과 신의 역사를 철저히 부정하며 철저한 자연주의적 불가지론에 침잠했던 인물입니다.
이렇듯 유명한 지성인들의 불가지론적 논조는 대단히 지적이고 합리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인간의 고백과 불가지론적 태도에 대해 어떻게 선언하고 있을까요?
첫째, 성경은 하나님을 알 만한 증거를 온 창조 세계와 만물 가운데 충분히 보여 주셨다고 증언합니다. 로마서 1장 19절과 20절 말씀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인간의 육체를 스스로 살펴보아도, 빛을 정밀하게 굴절시켜 뇌로 인지하는 눈의 정교한 구조나 온몸에 피를 돌리는 순환 계통은 지성적인 창조주(Intelligent Creator)의 계획 없이는 결코 우연이나 진화로 설명될 수 없습니다. 광활한 천계와 대자연 속에 깃든 조화와 질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을 알면서도 영화롭게도 하지 않고 감사하지도 않아 미련한 마음에 스스로 어두워진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따라서 "알 수 없다"라는 불가지론적 핑계는 하나님 앞에서 통하지 않습니다.
둘째, 성경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를 완벽하게 계시해 보여 주셨음을 선언합니다. 요한복음 14장 9절에서 빌립이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요청했을 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우리는 역사 속에 인간으로 오셔서 사랑과 자비를 온 삶으로 나타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를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온전히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장 1절과 2절 말씀처럼,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해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셨던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온전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의 수백 가지 메시아 예언이 예수님의 생애 속에서 오차 없이 성취된 역사를 신뢰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이르게 됩니다.
물론 무한하신 하나님의 깊은 경륜과 생각을 유한한 인간의 이성이 전부 다 헤아릴 수는 없습니다. 이사야 55장 8절과 9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고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보다 높습니다. 땅 위를 기어가는 개미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의 고도화된 지성과 직업, 생각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듯이,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을 완벽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지성에는 뚜렷한 한계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앎은 유한한 머리로 무한하신 신의 본질을 정량적으로 증명해 내는 영지주의적 학식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과 영생을 위해 참된 앎에 도달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합니다. 요한복음 17장 3절 말씀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또한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잃어버릴 때 멸망의 길로 치달았음을 고발하며 눈물로 호소하였습니다. 호세아 4장 6절과 6장 3절의 말씀입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여기서 '알자'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야다(Yada)'입니다. 이는 단순한 이론적 습득을 넘어 인격적인 교제와 체험을 통해 알게 되는 실제적인 앎을 뜻합니다. 마치 부부가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아는 것처럼,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성품과 사랑을 경험해 가며 깨닫는 관계적 앎입니다.
"신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으니 생각하기를 포기하겠다"라며 불가지론의 뒤로 숨는 것은 영적인 태만이자 핑계일 뿐입니다. 지성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만물 속에 깃든 하나님의 흔적을 추적해야 하며,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계시를 맛보며 영적으로 깨어나야 합니다.
성경은 불가지론의 안개 속에 갇혀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힘써 여호와를 알자"라고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우주의 장엄한 순환과 작은 생명체들의 정교함을 보며 지적인 창조주의 손길을 인정하고, 독생자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신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신뢰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참된 야다의 지식에 동참하여 영원한 생명의 기쁨을 누리는 우리 모든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며, 오늘 190번째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다른 중요한 어휘로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한 주일 동안 안녕히 계십시오. 감사합니다.
핵심 요약 정리
불가지론(Agnosticism)의 개념과 어원
개념: 신의 존재와 초자연적인 사후 세계 등은 인간의 이성이나 감각적 한계 때문에 확실하게 알거나 증명할 수 없다는 철학적 태도입니다. 유신론과 무신론 사이에서 판단을 유보합니다.
어원: 그리스어 부정어 '아(a-, 없음)'와 지식을 뜻하는 '그노시스(Gnosis, 앎)'가 결합하여 '알 수 없음(Agnosticism)'을 의미합니다.
역사적 대표 인물
찰스 다윈: 진화론을 확립하면서 신앙에 회의를 품었으며, 자신을 무신론자라기보다는 신의 존재 유무를 모른다는 입장의 '불가지론자'로 규정했습니다.
토마스 헨리 헉슬리: 1869년에 '불가지론(Agnosticism)'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만들어 냈으며, 사후 세계나 영혼의 불멸 여부에 대해 알 근거도 없고 반증할 길도 없다며 판단을 보류했습니다.
버트런드 러셀: 지식인층 앞에서는 엄밀하게 신의 부존재를 수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기에 '불가지론자'로 자처했으나, 일반 대중 앞에서는 신화적 존재들처럼 기독교의 신 또한 실제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실질적 '무신론자'로 행동했습니다.
로버트 잉거솔: '위대한 불가지론자'로 불리며, 기도의 힘이나 초자연적 신의 간섭을 일체 부인하고 삼라만상은 오직 파괴되지 않는 자연의 순환에 불과하다고 가르쳤습니다.
성경의 선언과 변증
대자연의 증거: 온 우주의 장엄한 순환과 생명체의 정교한 구조 등 만물 속에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능력과 신성이 분명히 투영되어 계시되어 있으므로, 인간은 하나님을 모른다고 핑계할 수 없습니다(롬 1:19-20).
그리스도를 통한 계시: 역사 속에 인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말씀, 그리고 구약 예언의 성취를 통해 참 하나님 아버지가 누구이신지 온전히 계시되었습니다(요 14:9, 히 1:1-2).
참된 성경적 지식: 야다(Yada)
성경은 지적 유희나 신비주의가 아닌, 인격적 동행과 체험적 사랑을 통해 구주를 인식하는 '야다'의 지식(체험적 앎)을 촉구합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이 인격적인 지식만이 우리를 구원과 영원한 생명(영생)으로 인도합니다(요 17:3, 호 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