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소(림보)
예전에(1997년까지) 사용하던 사도신경에서는 “저승에 가시어” 대신에 “고성소에 내리시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신자들이 “고성소가 무엇인지”, “왜 번역을 바꾸었는지” 궁금해 하시므로 참고적인 설명을 하겠습니다. 고성소는 림보를 번역한 말입니다. 림보는 두 종류로 나누어집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구약 시대의 의인들이 기다리던 곳(=성조들의 림보, 앞에서 설명한 저승과 같은 개념)과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은 어린이들이 머무르는 곳(어린이들의 림보)입니다. 구원을 기다리던 구약의 의인들은 예수님께서 저승에 가심으로써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세례를 받지 못한 채 죽은 어린이들의 구원 문제입니다. 교회는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요한 #3:5)고 믿습니다. 이 말씀대로라면 세례를 받지 않고 죽은 어린이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고, 더 나아가 지옥에 가야 합니다. 연옥도 못갑니다. 연옥 영혼들도 결국에는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낙태된 태아들이나 이성을 사용하지 못하는 유아들은 자기 스스로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세례받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들이 지옥에 간다는 것은 하느님의 공정하심과 자비하심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신학자들은 이런 어린이들이 천국에는 들어갈 수 없지만, 그렇다고 지옥에 가지도 않고, 림보라고 하는 특별한 곳(천국, 연옥, 지옥과 구별되는 제4의 상태)에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림보에서 이 어린 영혼들은 행복한 상태를 누릴 수 있지만, 이 행복은 천국의 행복에는 미치지 못하는 불완전한 행복입니다. 아무튼 세례받지 않고 죽은 어린이는 천국에 못가는 것이므로 부모들은 낙태를 해서는 안되고 유아세례를 서둘러야 한다는 실천적 결론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림보(고성소)에 관한 내용은 교회의 공식적인 교리가 아니라, 일부 신학자들의 생각입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에서는 림보에 관한 언급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한국 교회는 “고성소에 내리시고”라는 표현이 잘못된 번역이라고 결론을 내렸고, 그래서 “저승에 가시어”로 개정하게 된 것입니다.
참고로, 2007년 교황청 국제신학위원회에서는 “세례 받지 않고 죽은 유아의 구원에 대한 희망”이라는 문헌을 발표했는데, 여기서 세례 받지 않고 죽은 어린이들도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희망”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구원을 “세례를 받았느냐 안받았느냐”보다 “하느님의 무한하신 자비”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