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고양이다: 호두 동생 완두
이 달 들어 우리 집에는 가족이 하나 더 늘었다. 이번에는 고양이다. 지난 9월 6일(토), 추석 이틀 전날 또 선린이가 고양이를 한 마리를 안고 들어온 것이다. 얼마 전 동네 길고양이가 우리 아파트 창고 근처에서 새끼를 여러 마리 낳았다는 소식은 나도 들었다. 선린이가 전하는 말로는 다른 새끼들은 어미를 잘 따라 다니는데 유독 한 마리만 버림받은 듯 비실거린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 놈이 무녀리인 모양이다. 그러다 보니 동네 꼬마들이 그 고양이만 만지고 안고 놀이터 미끄럼틀을 태우고 하는데, 선린이가 보기에 그러다가는 고양이가 애들 손에 시달려 죽을 것만 같아서 할 수 없이 데려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우리 가족의 반응은 호두 때와는 사뭇 달랐다. 나부터도 저녁에 퇴근하여 처음 이 사실을 알자마자 고양이를 당장 있던 곳에 다시 데려다 놓으라고 말했다. 아내는 한 술 더 떠서 고양이는 무섭다며 경기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사실 그 고양이는 예쁜 구석이라곤 전혀 없다. 털은 검은색과 갈색이 섞였는데 그저 지저분하게만 보일 뿐이다. 게다가 꼬리는 이상하게 내 새끼손가락 길이 정도밖에 안 되는데, 아마 무슨 장애인 듯 했다. 얼굴은 또 어떤가. 코를 중심으로 얼굴의 오른 쪽 반은 갈색이고 왼쪽 반은 검은색인데 그 또한 예쁜 쪽 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내가 반대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호두 때문이었다. 이미 우리 집에는 개가 한 마리 살고 있는데 또 어떻게 고양이를 키운단 말인가. 개와 고양이는 사이가 좋지 않다는데 호두가 고양이를 해코지라도 하면 어쩌겠는가. 게다가 내일모레면 추석이다. 우리 가족은 곧 차례를 지내러 서울로 가야한다. 호두까지 어쩔 수 없이 내 차에 태워서 함께 상경해야 할 처지인데, 이 불청객 고양이는 또 어쩌란 말인가. 이래저래 도저히 키울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고3 큰딸 선형이였다. 학교에서 돌아온 선형이가 그만 고양이에게 빠져 버린 것이다. 나와 아내가 고양이를 당장 제자리로 돌려보내라고 하자 선형이는 하루만 제 옆에서 재우고 다음 날 내보내겠다는 거다. 그렇게 말하는데 야박하게 굴 수가 없어서 그러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것이 실수였다. 선형이는 그 다음날도 고양이를 내보내지 않았으며 결국은 서울 올라갈 때도 저는 고양이와 함께 마산에 남겠다고 선언하였다. 결국 명절날 아침부터 엄마와 딸 간에 대판 싸움이 벌어졌으며 출발 시간은 자꾸 늦어졌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겠나. 결국은 내 차에 우리 가족 모두와 개 한 마리에 고양이 한 마리까지 함께 타고 서울로 올라가야했다. 이제 상황은 내 애초 뜻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서울을 오가는 사이 또 며칠이 흘렀으며 그 동안 아이들과 고양이 간에는 뗄 수 없는 정이 들고 말았다. 이제는 나도 어쩔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가족이 하나 더 늘었으며, 그 고양이의 이름은 호두의 ‘두’ 돌림자를 써서 완두가 되었고, 호두에게는 갑자기 고양이 여동생이 하나 생겼다.
그런데 문제는 아내의 고양이 공포증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고양이가 가까이 오면 신문지를 휘두르며 ‘꺄악꺄악’ 소리를 질러댔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국은 아내가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지난 주 금요일(19일) 내가 오후 4시쯤 퇴근하여 집에 들어가니 고양이가 안 보이는 것이다. 아내에게 고양이를 어쨌냐고 물으니 경비 아저씨가 잘 키워준다고 하여 고양이 사료 한 포대를 사주면서 맡겨버렸다는 거다. 나는 아내에게 당장 함께 내려가서 과연 고양이가 잘 지내고 있는지 확인하자고 하였다. 내려가 보니 경비 아저씨는 아파트 주민 한 명과 한담을 나누고 있었는데 ‘우리 고양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니 당황한 기색으로 ‘조금 전까지 내 옆에 있었는데’ 하면서 얼버무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와 아내와 경비 아저씨는 모두 고양이를 찾아 나섰는데 그 놈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거다. 나는 갈수록 점점 더 화가 나고 아내와 경비 아저씨는 점점 더 당황해 하는 중에 어디선가 동네 초등생 여자 아이가 우리 고양이를 안고 나타났다. 일단 안심이 되는 상황이 되자, 나는 그 아이가 고양이를 어떻게 다루는지 먼발치에서 지켜보기로 했다. 아내도 내 옆에서 안도의 한숨을 쉬며 함께 보고 있었고, 경비 아저씨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런데 이게 또 문제였다. 그 여자 아이가 고양이를 제멋대로 굴려대는 거다. 수시로 안았다 내려놓았다 하는 것은 물론 다른 친구들에게 자랑질을 하면서 한 번씩 안아보게도 해주는 것까지는 좋은데 나중에는 선린이 말대로 미끄럼틀 위로 올라가서는 고양이를 밑으로 내려 보내는 것이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그 아이에게로 다가가서 조금 성난 목소리로 ‘그거 우리 고양이니까 당장 내놔’ 하고는 고양이를 받아서 바로 집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그날 저녁 내내 완두는 아이들 손에 너무 시달려선지 계속 잠만 잤다. 저녁 늦게 들어온 선형이는 낮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 채 고양이를 보고는 예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는 속으로 ‘이것 봐. 만약 고양이가 없어졌다면 선형이가 얼마나 속상해 했겠어’ 하며,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다.
내가 걱정했던 호두와 완두의 사이는 지금은 그리 우려할 정도는 아니다. 둘의 만남 초기에는 10kg인 개 호두가 300g에 불과한 고양이 완두를 장난감처럼 입에 물고 다녀 완두 털이 완전히 개 침으로 범벅이 되는 등 가족 모두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호두가 결코 완두를 꽉 무는 것이 아니었다. 나름 조심스럽게 요령껏 물어 절대로 다치게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호두 입에 물려 다닐 때는 ‘냐옹냐옹’ 죽는 소리를 치던 완두가 언제부턴가는 호두 뒤를 살살 따라다니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제가 먼저 호두에게 놀자고 호두 발을 물고 늘어지기도 하고 발로 호두 얼굴을 때리기도 한다. 또 오늘 보니 호두가 소파에서 잠을 자는데 완두가 호두 귀를 물고 얼굴을 할퀴고 해서 호두가 벌떡 일어나 다른 자리로 도망가더란 것이다. 그러자 완두는 또 쫓아가 계속 호두 잠을 방해한다. 호두 표정을 보아하니 어쩌지는 못하고 귀찮아 죽을 지경인 듯했다. 이러다가는 조만간 호두는 수면 부족으로 눈 밑에 다크 써클이 생기겠다. 그러고 보면 호두가 정말 양반이다. 호두와 완두의 먹이는 다른 그릇에 따로 주는데 요즘은 완두가 양 쪽 그릇을 오가며 제가 먹고 싶은 것을 먼저 다 챙겨 먹는다. 호두는 완두가 그렇게 먹이 욕심을 부리는 중에는 저만치 떨어져 그저 지켜보고만 있다가, 완두가 먹을 만큼 먹고 물러나면 그제야 먹이 그릇으로 가 완두가 먹고 남은 것을 먹는다. 참으로 성품 고운 우리 호두이다.
오늘은 일요일이어서 선형이가 학교에 가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호두 산보시키러 나가는 길에 저도 완두를 데리고 따라왔다. 내가 고양이 산보시키는 것이 가능할까 했더니 제가 인터넷에서 봤는데 다른 나라에서는 고양이도 산보를 시킨다는 거다. 그래서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처음 호두와 완두를 함께 사람이 전혀 없는 한적한 잔디밭으로 데려가 풀어놓았더니 정말 선형이 말대로 고양이도 우리를 제법 잘 따라다닌다. 그 모습이 참으로 귀엽다. 호두는 호두대로 완두가 옆에 있는 것이 좋은지 한결 더 힘차게 고양이 곁으로 뛰어갔다가 다시 나에게 뛰어왔다 한다. 그렇게 휴일 오후를 호두와 완두와 즐겁게 보냈다.
오늘 밤에도 내가 자려고 누우면 어느 새 호두는 또 내 가슴에 올라와 내 엄지손가락을 엄마 젖꼭지 빨듯이 빨 것이고, 완두는 내 엄지발가락을 고 작은 입과 이빨로 장난치듯 물어뜯을 것이다. 솔직하게 말해 그때 나는 참 행복하다. 사실 나는 처음에는 호두와의 의리 때문에 완두에게는 정을 덜 주려고 했는데 갈수록 나도 모르게 완두가 점점 더 좋아진다. 내 뜻과 상관없이 자꾸만 정이 가는 것을 어쩌겠나. 지금 완두는 우리 집에 온 이후 쑥쑥 자라 키도 많이 크고 몸무게도 두 배 이상이 되었다.
호두, 완두! 우리 다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자! 그런데 완두야, 부탁이 하나 있는데 호두 오빠가 잠잘 때는 제발 방해 좀 하지마라.
(2014. 9.28.)
(경남대 김원중)
첫댓글 소식이 뜸한 사이에 새 식구를 맞이하셨네요~ 개와 고양이가 잘 지내는 집들이 많을 것을 보면 개와 고양이 사이가 나쁘다는 말은 옛말인 것 같아요. 그리고 선형이 말대로 산책묘가 될 수 있는 성품의 고양이들이 있다고 해요. 이제 교수님의 산책길이 더 아름다운 모습일 것 같습니다.
하하하하 교수님!! 덕분에 한 참 웃고 갑니다. 따뜻함이 물씬 느껴집니다요~~ ㅎㅎㅎ
아...이 때 교수님 아파트 앞에 길고양이가 새끼 낳아서 데리고 다니던데 그 녀석들 중 하난가봐요
길냥이네요.ㅎ
저희집에도 두마리중 요녀석이 8년차 큰아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