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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사랑과 영생
요3:11-16
몇 년 전 중국의 관영 CCTV에 방영되어 큰 감동을 준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 천위룽(55세)이라는 여인이 아들 예하이빈(33세)에게 간을 이식해준 이야기입니다.
아들은 13세 되던 해부터 선천성 간질환을 앓고 있었습니다.
간경화가 급속히 진행되어 간이식 만이 살길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예하이빈의 어머니인 천위룽이 자신의 간을 주기로 하고 날짜까지 받았는데 그만 어머니가 지방간을 심하게 앓고 있어 이식이 불가능하다고 하여 수술이 취소되었습니다.
그날부터 그 어머니는 자신의 간을 건강하게 회복하여 아들에게 이식시켜 주기 위해 매일 새벽 5시부터 10km씩을 걸었습니다.
끼니마다 반공기도 안되는 현미밥과 함께 야채만을 먹는 식이 요법을 진행했습니다.
그녀는 “내가 한 걸음 더 걷고 한 술을 덜 먹으면 아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에 한순간도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고 말했습니다.
7개월 뒤에 어머니 천위룽은 재검사를 받았습니다.
몸무게가 8kg 빠진 것은 물론 거짓말처럼 지방간이 사라졌습니다. 의사들은 기적이라고 했습니다.
그 어머니의 모성애는 대단했습니다. 이식수술이 진행될 때 국영 CCTV에서 중계차까지 동원하여 시시각각 중계를 했습니다. 병원도 1억 8백만원이라는 수술비 전액을 면제해 주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생명을 건 식이요법과 운동을 통해서 결국은 그 아들을 살렸습니다.
어머니는 사랑하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건강한 간을 주기 위해 열심히 운동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죄로 멸망당할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주님께서 잡히시기 직전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다 된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 곧 제자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주님은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이 단순한 사실을 믿음 가운데서 확실하게 받아 들여야 합니다.
생물학자 배스티언(S. L. Bastian)은 작은 나뭇가지나 덤불속에 집을 짓고 사는 어떤 거미류를 관찰하면서 매우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이 거미는 나뭇가지나 덤불에 걸쳐 있는 울타리 속에 새끼들을 부화하는데, 만일 그 곳에 조금이라도 위험한 일이 발생해서 새끼들이 놀라게 되면 어느 순간 어미 거미가 쏜살같이 달려와서 새끼들을 보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어미 거미가 어떻게 새끼들의 동요를 그렇게 금방 알아채는지 궁금해진 배스티언이 보다 주의를 기울여 살펴 본 결과, 이 거미가 아주 독특한 방법으로 새끼들의 잠재적 위험에 대비해서 경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즉 각 새끼 거미에게는 가는 비단줄 같은 것이 붙어 있고 이것이 어미의 몸에 연결되어 있는데, 새끼들이 적들의 위협을 받아 몸을 심하게 움직이면 그들의 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므로 어미가 즉시로 새끼들을 보호하러 달려올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호세아서 11장 4절에서 하나님은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어미 거미가 가느다란 실로 새끼들을 자기 곁에 두듯이 우리를 주님께로 인도합니다.
우리도 끊어질 수 없는 영원한 줄로써 주님과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견디기 어려운 위험과 곤란에 처해 있을 때 주님과 우리 사이에는 ‘사랑의 줄'이 있으므로 즉각적으로 주님의 관심을 받게 됩니다.
그리하여 주님은 우리의 모든 환난에 친히 동참하시고, 우리가 우리의 문제를 미처 알아채기도 전에 서둘러 도움을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께 영원히 매인 바 되었다는 사실은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위안을 우리에게 줍니다.
오늘은 택한 백성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을 묵상하는 시간을 갖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주님은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예수께서는 공생애 마지막에 당신의 지상 생활이 막바지에 이른 줄을 아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3년이나 동행하면서 제자훈련을 받았음에도 그 위급한 때를 모르고 있었고 어떤 제자는 스승인 예수를 팔아먹을 마음을 먹기도 했습니다.
이것을 잘 알고 있는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했습니다.
요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여기서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말은 ‘마지막 순간까지,’ ‘목적을 이룰 때까지,’ ‘결말을 볼 때까지,’ 사랑하셨다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말씀은 주님의 사랑이 이 세상에서만 사랑으로 우리를 대하는 것만이 아닌 죽음 이후 저 세상까지 이어진다는 말씀입니다.
고전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그러므로 예수의 사랑은 영적으로나 질적으로 완전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를 강권하시는 사랑입니다.
고후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주님의 사랑은 영원히 끊을 수 없는 사랑입니다.
롬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이런 사랑을 가진 예수는 당신의 최후의 순간이 다가왔는데도 당신의 사랑하는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고 그들에게 봉사하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사랑을 배신하면 원수가 됩니다. 그런데 주님의 사랑은 일순간이 아닙니다. 영원합니다.
주님은 자신을 배신하여 팔아먹을 가룟 유다를 정확히 꿰뚫어 보시면서도 끝까지 사랑했습니다.
마지막 떠나면서까지 그 영혼을 사랑했습니다.
지금도 우리 주님은 우리를 그렇게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많은 죄를 짓고 하나님께 실망을 끼쳐 드린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이미 심판을 받았어야 옳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이렇게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많은 죄를 지었어도 주님은 우리를 끝까지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죄인된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배반하면 안 됩니다.
가룟 유다는 주님의 끝없는 사랑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배신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가룟 유다를 보시고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것이 좋을 뻔 했다고 하십니다.
막14:21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우리는 절대로 주님의 사랑을 져 버리면 안 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끝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그 사랑을 먼저 실천하여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사랑을 보고 주님의 사랑을 알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우리의 이웃에게, 그 사랑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리고 외로워하는 이웃에게 사랑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불신자를 구원하기 원하면서 다른 믿는 이들과 사랑으로 화합하지 못한채 사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주님의 사랑으로 한 몸이 되어 살아갈 때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 안에 있는 그 사랑을 보고 그리스도를 찾을 것입니다.
2. 주님은 가장 낮은 자로 내려오셨습니다.
유대는 풍습상 손님이 오면 신을 벗고 들어갔습니다.
건조한 지대이기 때문에 항상 손님의 발에 먼지가 많이 묻어 그 먼지를 씻어 버리기 위해 주인은 물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그 집에서 가장 낮은 하인이 손님의 발을 씻겨 주었습니다.
예수 일행이 어느 가정에 초청받아 가셨는데 아무도 예수와 그 일행의 발을 씻어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 때는 제자들이라도 일어나 예수님의 발을 씻어 주어야 했을 텐데 제자들마저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수건으로 발을 닦아 주었습니다.
거기에서 제일 낮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스승되신 예수께서 하셨으니 사람들은 예수의 그 겸손한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예수께서는 대접을 받지 아니하시고 대접하는 자리로 내려 오셨습니다.
종의 형체를 입고 죄인을 섬겼습니다.
하나님과 똑같은 분인 예수께서 이렇게 제자들의 발을 씻긴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겸손하게 섬기는 자에게 있음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언제나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저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비천한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자신은 훌륭하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만물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자신을 낮춰 겸손하게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빌립 네리는 16세기의 아주 훌륭하고도 지혜로웠던 그리스도인이었는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교황은 로마 부근 수도원에 있던 어느 수련 수녀가 갈수록 명성을 얻게 되자 네리를 시켜 그 이유를 조사하도록 했습니다.
그녀는 성녀로서 평판이 나 있었습니다.
네리는 노새를 타고 한겨울 진흙과 수렁 속 길을 달려 수도원에 다다랐습니다.
그는 사람을 시켜 그 수련 수녀를 오도록 하였습니다.
그녀가 방에 들어왔을 때, 그는 그녀에게 오랜 여행 때문에 진흙범벅이 된 그의 신발을 벗기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화가 나서 뒤로 물러나서는 그런 천한 일을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토록 명성을 얻고 있는 자신이 그런 일을 요구받다니, 그녀는 생각만 해도 화가 났습니다.
네리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수도원을 떠나 로마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교황에게 말했습니다.
“이젠 놀라실 것 없습니다. 거기는 성녀가 없어요. 왜냐하면 겸손이 없기 때문입니다.”
겸손은 그리스도를 닮는 것입니다. 겸손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께 온전히 전적으로 의탁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셨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겸손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얻어집니다.
예수께서는 몸소 그러한 겸손을 행동으로 보이셨습니다. 성도는 바로 이렇게 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안내위원, 주방봉사위원, 주일학교교사의 자리로 내려가는 것이 주님을 닮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잡히시던 날 밤은 예수께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이었기 때문에 세상일은 이제 끝났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에 도리어 노예들이 하는 일의 자리까지 자신을 내려 놓으셨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서야 할 자리입니다.
가장 신앙적인 것이 바로 남을 돕고 섬기는 봉사의 자리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있어야 할 자리는 남을 돕고 섬기는 자리입니다.
낮아져서 다른 사람들이 도통 하려 하지 않는 일에 발 벗고 나서야 합니다.
이 자리가 주님이 원하는 자리입니다.
이런 자리에 서는 사람만이 세상을 이길 수 있고 온갖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3. 주님은 우리에게 영생의 복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것은 독생자를 믿어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영생이란 말은 영원히 사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오직 하나님에게만 적용되는 말입니다.
창21:33 …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성경에서 사람에게 영생이란 단어를 사용하면 천국이나 하나님의 선물과 연관되어 사용됩니다.
영생이란 천국에 들어가 단순히 영원히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생이란 천국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풍성한 삶을 누리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천국에서는 누구나 다 똑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는 것에 차별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충성하는 자들에게 상이 많다고 하시고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상이 없다고 하십니다.
세례요한에게는 여자가 낳은 자중에 가장 큰 자이지만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천국은 모두가 똑같이 사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더 많이 받는 자도 있고 작게 받는 자도 있고 못받는 자도 있는 곳입니다.
천국에서는 큰 자도 있고 작은 자도 있습니다.
천국에서는 받은 것보다 더 받는 자도 있고 받은 것도 빼앗기는 자도 있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영생이란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우리를 위해 예비된 최고의 삶을 말합니다.
마25: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기 위해서 독생자를 보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 않는 죄인들은 이 영생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오직 의인들만이 영생에 들어가게 됩니다.
마25:46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염소와 같은 마음으로 사는 자는 영생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는 영생을 소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영생을 얻어야 창세전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하늘에 속한 모든 복을 받게 됩니다.
엡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은 영생을 통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 영생은 주님을 믿으면 오게 되어있습니다.
요6:4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그런데 믿는다는 말은 말씀을 마음으로 믿고 몸으로 순종하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요3: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믿음이란 입술로 고백하는 것 정도가 아니라 그렇게 살겠다고 결단하고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영생을 취하라고 하십니다.
딤전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영생의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을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우리를 사랑하시되 자신의 목숨까지 내 줄 정도로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가장 겸손한 모습으로 세상을 섬겨 우리의 본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생에 들어가기 위해 주님의 이런 사랑과 겸손의 주님을 본 받아 주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