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주시 남성동과 본성동에 있는 진주성은 임진왜란 3대첩(진주대첩, 한산도대첩, 행주대첩) 중의 하나인 진주대첩과 의기 논개를 떠올리게 됩니다. 진주성이 호국충절의 성지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진주대첩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 때문입니다. 1592년 10월 왜군 3만여명이 침공해 올 때 진주 목사 김시민은 3,800여 명의 군사와 성민의 힘을 합쳐 크게 무찔러 이기니 곧 청사에 우뚝한 쾌거입니다. 진주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적장을 껴안고 남강에 몸을 던진 의기 논개입니다. 논개는 왜의 재침으로 성이 무너지자 촉석루 아래 의암으로 적장을 유인해 강물에 몸을 던져 충절을 다했습니다.
↑ 진주성의 실질적인 정문인 공북문
↑ 불과 3,800명의 병력으로 6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대첩을 이룬 김시민 장군 동상
↑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건물로 진주관찰부의 정문인 영남포정사 정문(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 제씨쌍충비 라고도 불리는 쌍충사적비(성주목사 제말 장군과 제홍록 장군의 충의를 기린 쌍충각)
↑ 남강에 투신하여 순국한 논개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인 의기사 ↓ 논개 영정
↑ 논개가 순국한 바위인 의암(경상남도 기념물)
↑ 영남 제일의 아름다운 누각인 촉석루
↑ 진주교의 금가락지 모형(논개의 쌍가락지를 생각하게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