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롬 !!
(23.3.29(수) 경항공기 지역 신우회 예배말씀
우리는 예수님의 한 말씀 한 말씀을 잘 새겨들어야 할 것입니다. 제자들과 지나시다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시기 위해 무화과나무에게 분풀이 하듯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의 이콘중에 두 모습을 그린 그림이 있습니다. 자세히 보시기를 바랍니다.
본문말씀 : 마가복음11:20~27 (새번역성경)
이른 아침에 그들이 지나가다가,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 버린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전일 일이 생각나서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랍비님, 저것 좀 보십시오. 선생님이 저주하신 저 무화과나무가 말라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어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번쩍 들려서 바다에 빠져라‘ 하고 말하고, 마음에 의심하지 않고 말한 대로 될 것을 믿으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면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미 그것을 받은 줄로 믿어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너희가 서서 기도할 때에, 어떤 사람과 서로 등진 일이 있으면 용서하여라. 그래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실 것이다. 만일 너희가 용서해 주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지 않으실 것이다.“
말씀선포 : 무화과나무 사건을 재구성하기(Reframing the Case of Fig Tree)
예수님은 어떠신 분이십니까? 21세기 교회는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이신 예수님이 마음이 유하시고 사랑 넘치시는 분이라고 확신합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권세를 지키기 위해 괴팍하고 폭력적이라면 왕 중의 왕이신 예수님은 그 정반대라고 말합니다. 교회는 그 모습이 구세주가 가져야 하는 당연한 덕목이라고 확신합니다.
교회는 이 믿음을 확신하기 위해 때로 강박적으로 사랑많으신 예수님을 마치 분노하시지 않는 정말 순수하신 분으로 만들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성경에서 나타나는 마냥 유하시지만은 않은 예수님의 모습을 적절하게 설명하는 데 있어 큰 어려움을 가집니다. 이와 관련하여 대표적으로 성경에 나오는 장면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사 말라버리게 하신 예수님입니다. 복음서 저자들은 한결같이 예수님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얻으려고 하시다가 열매가 없는 것을 보시고 그 나무를 저주하셨다고 말합니다. 교회는 마치 어린 아이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 떼를 쓰는 것처럼 자중하지 못하고 행동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어려움을 겪습니다. 특히 예수님은 사랑 많으신 분으로서 유하시다고 말하는 성도들은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애써 부정하고 멀리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분명 사랑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모든 사람과 온 창조 세계를 향한 사랑을 가지고 계시지 않으셨다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에서 대속제물로서 모두를 구속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마냥 유하신 분도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분명 하나님이 보시기에 잘못됐다고 여기실 일들에 대해서 분명히 일어나셔서 그것이 잘못됐음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는 타락하여 잘못돼 가는 세상에 분노하셨고 행동하셨습니다.
그럼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던 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철없는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시고 한 나무를 저주하셔서 말라죽게 하신 것 아닙니까? 복음서 저자들은 분명 이 나무가 말라죽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저자들은 베드로가 예수님 말씀대로 그 나무가 말라죽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교회가 주목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왜 예수님과 함께 다녔던 제자들은 이런 일을 이상하다 여기지 않았을까요?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다는 말씀을 전하실 때 제자들이 그 말씀을 이상히 여겼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런데 왜 이 사건에서는 제자들이 이상하다 여겼다고 말하지 않았을까요? 대답은 간단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과 행동을 예수님이 자제력을 잃고 행동하신 섣부른 행동이라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예수님의 그 행동이 마침내 예루살렘 성전에 야웨 하나님의 귀환을 이루는 위대한 해방의 때와 연결된다고 확신했습니다.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기 전, 그는 예루살렘에 입성했습니다. 제자들은 오래 된 포로생활이 끝나고 야웨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돌아오시는 수백 년 전 예언들이 성취되는 순간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또한 제자들은 예수님이 성전 환전상을 내쫓으시고 청결하게 하시는 모습을 보며 기득권만 가지고 야웨 하나님의 귀환에 합당치 않은 이들이 사로잡은 성전이 마침내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기존 기득권을 가지고 있던 유대인들이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 확신했습니다. 제자들은 그 강도의 소굴로서 하나님의 명예가 더럽혀졌던 성전이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기도하는 집이 되도록 일하신다고 확신했습니다. 이런 확신 속에서 제자들은 무화과나무가 저주받았고 말라죽은 사건을 이해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이 순간은 그냥 통상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이 아닌 마침내 유대인들이 바라던 가장 거대한 일이 일어나는 위대한 역사의 순간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이 극적인 때를 통상적인 앎과 생각으로 접근해선 안된다고 확신했습니다. 교회는 무화과나무가 예수님이 가장 필요로 하시는 그 순간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존재로서 저주받아 말라버렸다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기에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믿고 의심하지 않은 상태로 무엇이든 그분께 구하면 그것이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예수님은 그 당시 제자들이 예상치 못했던 한 가지를 덧붙여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백성이 구해야 하는 일은 항상 하나님 백성이 부름받은 소명, 모든 것을 다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과 긴밀하게 연관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을 청결하시면서 성전이 유대인만 기도하는 집이 아닌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한다는 예언자의 말씀을 그대로 선포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유대인만 하나님과 한 가족이 되는 성전이 아닌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단일 백성이 되도록 청결하게 하시는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이 만민을 주님께로 인도하도록 하나님과 이웃을 힘써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하나님의 분노 가운데 심판받을 수밖에 없음을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던 일과 연관시키셔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지금 당장 주님이 부르시는 일에 합당한 반응을 보여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