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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Ⅰ. 서 론 ............................................... 1
A. 연구목적............................................. 1
B. 연구방법과 범위 ..................................... 5
C. 용어정의 ............................................ 6
Ⅱ. W.C.C.의 배경과 과정 ................................... 8
A. 에큐메니칼 운동의 기원 .............................. 8
1. 선교연합운동 ..................................... 8
2. 에딘버러 세계선교대회 ........................... 13
B. 국제선교 협의회( I.M.C. ) .......................... 16
1. 예루살렘 선교대회 ............................... 17
2. 마드라스 선교대회 ............................... 20
3. 휫트비 선교대회 ................................. 22
4. 빌링겐 선교대회 ................................. 24
5. 가나 선교대회 ................................... 27
C. 신앙과 직제운동 .................................... 28
D. 생활과 봉사운동 .................................... 31
Ⅲ. 웁살라 총회에서 나이로비 총회까지의 선교신학 .......... 34
A. 웁살라 총회의 선교신학 ............................. 34
B. 방콕 세계대회의 선교신학 ........................... 39
C. 나이로비 총회의 선교신학 ........................... 45
Ⅳ. 복음주의의 입장과 W.C.C. 선교신학에 대한 비판 ......... 50
A. 베를린 선언 ........................................ 51
B. 프랑크푸르트 선언 .................................. 56
C. 로쟌언약 ........................................... 65
D. 서울선언 ........................................... 78
Ⅴ. 결 론 .............................................. 84
참고문헌
Ⅰ. 서 론
A. 연구목적
20세기 기독교 교회에서의 제일 중요한 운동중의 하나는 에큐메니칼 운동 (Ecumenical Movement) 일 것이다. "위대한 세기" 인 19세기에 서구교회는 분열로 말미암아 선교지에 큰 혼란을 주었을 뿐 아니라 선교에 큰 장애가 되었기 때문에 교회연합운동이 선교에서부터 일어났다. 19세기 선교운동은 20세기에 와서 에큐메니칼 운동시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 운동은 정치, 경제, 사회, 종교등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컸다. 우탄트 전유엔 사무총장도 세계교회협의회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를 제 2의 유엔이라고 하면서 이들의 상호협조를 부탁할 정도로 세계적인 기구가 되었다.
그러나 세계교회협의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급진신학과 결합하면서 부터 사회운동으로 전환하게 된 모습을 보여준다. 20세기 세계기독교운동과 선교운동에 큰 역할을 했던 서구교회 지도자들은 전통적 선교개념을 얘기하고 사회구원의 선교신학을 주창하게 되었다.
1928년 예루살렘 (Jerusalem) 에서 모인 국제선교대회에서 이미 대전도의 개념"(Larger Evangelism) 이라는 신 용어로써 "선교는 영혼만을 구원
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 문제도 관심을 두어야한다 " 고 주장하는 이론이 등장하였다. 특별히 신정통주의가 강조하는 "도성인신의 신학"(Incarnational
Theoolgy)은 새 선교개념에 중대한 영향을 주었으며 이 신학의 영향으로 말씀선포 (Proclamation)는 "신자의 현존"(presence) 으로 대치되었다.
1950년에 이르러 "하나님의 선교" (Missio Dei) 가 등장하였다. 하나님의 선교신학은 세계교회협의회의 선교신학에 대한 성격 규정에 큰 영향을 주었다. 즉 선교가 교파를 확장시키고 교회를 장(場)으로 하는데서 이 세상을 선교의 장으로 하는 하나님의 선교 (Missio Dei)로 돌아섰으며, 선교의 주체는 교회가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고 , 선교의 범위는 정치, 사회, 경제, 문화의 세계에 대한 기독교의 참여까지 확장되었다. 그래서 호켄다이크 (Johann Cr.Hokendijk)는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선교의 도식인 "하나님 - 교회 - 세상"에서 "하나님 - 세상 - 교회"의 도식으로 바꾸어 지금까지의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인 신학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개입과 사회개혁에 촛점을 맞추게 되었다.
이와같은 하나님의 선교 신학은 1961년 뉴델리 (New Delhi) 3차 총회에서 꽃이 피고 , 1968년 웁살라(Uppsala) 4차 총회에서 첨예화 되었으며 , 1973년 방콕 (Bangkok) 세계대회에서 교회의 사회참여의 열기가 극치에 달하였다.급기야는 1975년 나이로비 (Nairobi) 대회에 가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구조적 죄악과 사회부정의 압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해방의 복음으로 이해되게 되었다.
이러한 인본주의적인 에큐메니칼 선교신학의 동향에 대해 복음주의자들은 1966년 베를린 (Berlin)에 모여 에큐메니칼 신학을 비판하고 복음주의의 선교신학을 재천명하므로써 성서적 신앙을 확고히 하려고 하였다. 1970년에는 프랑크푸르트 (Frangkfurt)에서 바이어하우스(Peter Beyerhaus)를 위시하여 독일 각지에서 온 15명의 대학교수들이 모여서 바이어하우스가 기초한 에큐메니칼 선교신학의 방향을 비판하는 선언문을 검토하고 다소 수정한 후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다. 이것이 푸랑크푸르트 선언이다. 현대 에큐메니칼 신학의 가장 큰 도전은 1974년에 열린 로쟌 세계복음화 국제대회였다. 그리고 1975년 "서울 선언" 에서 현대 에큐메니칼 선교신학이 기독교복음의 본질과 기독교 선교의 개념을 전적으로 왜곡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지적하고 복음적 선교의 필요성과 시급성을 호소하면서도 복음의 사회적 실현에 대한 타당성과 필연성을 아울러 강조하였다.
여기서 본 필자는 복음은 수직주의 (Verticalism)도 수평주의 (Horizontalism)도 아닌 복음 그 자체일 뿐이며 , 복음은 인간이 만든 "이즘" (Ism) 이 아니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한 사건이라고 볼 때 복음 안에는 수직적인 면도 수평적인 면도 포괄하고 있다고 보아진다. 그런데 에큐메니칼 신학은 수직적인 면을 도외시하고 수평주의만을 외침으로 계시가 결핍되고 있다. 한편 근본주의는 수직적인 면만을 부르짖고 수평적인 면을 세상적이라고 무시함으로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다. 런던 대학 출신의 젊고 유능한 저술가이며 , 저명한 학자인 오스 구니스 (Os Guinness) 는 "제3의 종족" (원제목 - 죽음의 재 : The Dust of Death) 이란 책에서 자유주의자들을 "신학적 패션모델" 이라고 풍자하고 , 근본주의자 (Fundermentalist) 들을 "동키호테" 로 비유하고 있다.
이는 자유주의와 근본주의가 안고있는 문제점을 잘 드러내고 있는 말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본 필자는 복음이 가지고 있는 수직적인 면과 수평적인 면이 이상적으로 결합된 경이적인 광경을 복음주의에서 발견하면서 수평적인 면을 도외시하는 근본주의 (Fundermentalism) 의 오류를 반성하고 , 수직적인 면을 이탈하여 복음을 이데올로기화 시키려는 에큐메니칼 신학을 지양하고 있는 복음주의가 성서적인 선교신학의 표본이라고 사료되었다.
따라서 교회의 사회참여가 첨예화되기 시작한 1968년 웁살라 (Uppsala) 총회기간으로 부터 1973년 방콕(Bangkok) 세계대회와 1975년 나이로비 (Nairobi) 제5차 총회기간 까지의 에큐메니칼 선교신학을 고찰하고 , 이에 맞서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재확인하고 에큐메니칼신학의 오류를 지적한 복음주의의 회의와 선언들 곧 베를린 선언 (1966) , 프랑크푸르트선언 (1970) , 로쟌언약 (1974) , 서울선언 (1975) 을 고찰함으로써 WCC 선교신학의 오류를 비판하고 , 성서적 전통 위에 선 올바른 복음주의적 선교관을 확립하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B. 연구방법과 범위
본 논문의 연구 방법은 W.C.C.선교 신학에 관한 문헌과 복음주의 선교신학에 관한 문헌을 비교 연구함으로써 복음주의 입장에서 W.C.C.선교신학이 안고 있는 신학적 문제점들을 비판하는 문헌 연구를 하고자 한다.
서론에서 문제 제기와 연구의 목적을 간략하게 언급하고 용어에 대한 정의를 할 것이다. 제 2장에서는 W.C.C.의 배경이 되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기원과 국제 선교 협의회 및 생활과 봉사 운동, 신앙과 직제 운동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하려고 한다.
제 3장에서는 교회의 사회 참여가 절정에 달한 W.C.C. 제 4차 총회와 방콕 세계 대회와 제 5차 총회의 선교 신학을 고찰하고 제 4장에서는 제 4차 총회로부터 제 5차 총회의 기간 동안에 이에 맞서서 복음주의의 입장을 재천명한 베를린 선언, 프랑크푸르트 선언, 로쟌 언약, 서울 선언을 살펴본 후 바이어하우스와 죤 스토트 등과 같은 현대 복음주의 신학을 대변하고 있는 국 내외 학자들을 중심으로 W.C.C.의 선교 신학을 비판하고 올바른 복음주의적 선교관을 모색해 보려고 한다.
제 5장에서는 결론으로 전체의 내용을 요약하고 복음주의적 선교관에 관한 필자의 제언으로 끝을 맺으려고 한다.
C. 용어 정의
끝으로 "에큐메니칼" (Ecumenical) 과 "복음주의적" (Evanglical) 이란 단어를 정의하고자 한다. "에큐메니칼" 이란 말은 원래 희랍어의 오이쿠메네 (οικουμενη) 란 단어에서 온 말인데 본래 이 단어의 뜻은 "세계의 전체 거주민" (The Whole Inhabited World) 이란 말로서 신약성경에는 이 단어가 15회 사용되었다. "에큐메니칼" 이란 용어는 교리문제로 인한 교회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모인 교회회의에서 이미 사용되었다. 연합은 교회의 본질에 속하기 때문에 "거룩한 공회를 믿사오며" 라고 고백하는 사도신경에 나타나며, 니케야 신조도 교회의 연합 , 거룩 , 보편성 및 사도성을 말한다. 그러나 전세계적이고도 조직적인 연합운동은 20세기의 선교문제로 부터 시작된다. 곧 이 단어는 자신들을 기독교인이라고 부르는 모든 교회들을 연합하는 운동을 지칭하게 되었으며 , 특히 이 단어는 세계 교회협의회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와 그 산하 기관의 신학 또는 공식적인 견해 및 신학적 경향을 자칭하는 말이 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W.C.C.선교신학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복음주의" 란 그 신앙의 역사적 기원 및 발전을 관련하여 이해할 때 개혁자들의 모토인 "성경만 , 은혜만 , 믿음만 , 하나님께만 영광" 을 내세우며 , 부흥운동에서 중점적으로 강조된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은 구원의 체험과 아울러 , 20세기 후반에 복음주의운동이 뒤늦게 강조하기 시작한 사회봉사의 책임을 강조하는 신앙이라고 할 수 있으며 , 특히 현대 자유주의신학과 비교하여 이해할 飁 하나님의 초월성과 절대주권 , 성경의 영감과 절대권위 , 인간의 전적타락 ,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대속의 죽음 ,은혜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 , 중생과 성화 , 말씀선포와 선교의 사명 , 그리스도의 재림과 최후의 심판 ,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완성등을 주창하는 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Ⅱ. W.C.C 의 배경과 과정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은 1910년의 에딘버러 (Edinburgh) 세계선교대회를 계기로 시작되어 제일차 세계대전 이후에 국제선교협의회 (I.M.C.) , 신앙과 직제운동 (Faith and Order ) , 생활과 봉사운동 ( Life and Work ) 의 중요운동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므로 본 장에서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배경과 그 과정을 고찰하고자 한다.
A. 에큐메니칼 운동의 기원
1. 선교연합운동
기독교 이천년의 역사는 그리스도의 선교명령 에 복종하기 위해 노력한 그리스도 교회의 선교사 (宣敎史)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19세기는 독일의 개신교 자유주의와 유럽과 미국의 자유주의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역사상 그 유례를 쁹아보기 조차 힘들 정도로 복음주의 선교활동이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였다. 라토렛 (Kenneth Scott Latourett ) 교수는 기독교 혹은 타종교에서도 전례가 없이 19세기에 기독교가 가장 널리 전파되었다고 말하며 19세기를 "위대한 세기" ( the Great Century ) 라고 일컬었다. 그 이유는 1815년 부터 1914년에 이르는 99년 동안에 기독교의 가장 광범위한 지리적 확장이 이루어졌고 , 기독교의 내적 생동력이 여지없이 발휘된 시기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19세기에 특별히 개신교의 놀라운 확장을 가져온 전기가 된 것은 윌리암 캐리 (William Carey) 의 선교사업이었다. 1792년에 침례교 선교회 ( The Baptist's Missionary Society ) 의 설립과 일년 뒤에 캐리의 인도선교는 근대 개신교 선교의 출발점이 되었다. 캐리 이전에도 많은 선교사들이 있었지만 개신교의 선교는 캐리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캐리를 개신교 선교의 첫 주자라고 말할 수 있다.
캐리가 1793년에 인도에 선교사로 들어간 이후 영국 , 스코틀랜드 , 네덜란드 그리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 이르기까지 많은 선교회들이 속출하게 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개신교 선교는 급성장하게 되었으며 이것은 또한 선교지에서 국가적 초교파 대회의 필요성을 낳았다.
최초의 국가적 선교대회가 1854년 뉴욕 (New York) 에서 열렸다. 그 飁 위대한 선교사였던 알렉산더 더프 (Alexander Duff) 는 선교 증진을 위한 협력이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그리고 이 위원회에서 제시된 질문들은 주로 복음전도적 선교의 지속적인 관심사를 반영하고 있는데 복음전도의 효과적인 방법과 해외선교전략 그리고 선교사 모집과 교육 , 파송 , 선교사의 정보교환 등 이었다.
해외선교에 관한 백주년 대회가 1888년 6월 1일 런던 (London) 에서 개최되었는데 , 1576명의 선교사와 140 여 선교단체의 대표들이 참가했다. 이 대회는 대영제국에 끼친 영향이 매우 컸기 때문에 1888년과 1890년 사이에는 선교헌금이 40%나 증가하였다. 이것을 계기로 구스타프 바르넥 (Gustav Warneck) 은 각 나라의 민족선교대회에 의하여 선출된 대표들로 구성되는 상임 국제 위원회를 둘 것을 제안했다. 이 모임의 관심사는 선교정책 , 선교협력 그리고 선교연합이었는데 구스타프 바르넥이 발표한 논문에서는 기독교 연합이어서 그 다양성은 인정하지만 실제적으로 외형적인 연합이 되지 않으며 단순한 표현 뿐이라 하여 일치를 촉구했다.
20세기의 첫번째 특출한 선교대회는 1900년 4월 뉴욕시의 카네기홀에서 개최되었다. 대략 20만명의 사람들이 10일 간의 여러 회의에 참석하였다. 그것은 연합된 서구의 선교적 노력의 위대한 시위처럼 보여졌다. 이 대회는 세계에 대한 관심때문에 초교파적 (Ecumenical) 회의였다고 불리워지게 되었다. 그 까닭은 이 용어가 아직 현재에 의미하는 바 특수한 의미를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에서 열거한 영미 선교국에서 개최된 선교협의회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살펴보면 선교대회마다 영적 분위기가 고조되고 연합과 일치의식이 드러났으며, 분열에 대한 통감을 자아냈지만 앵글로 색슨족의 가부장적 우월의식이 나타났으며, 선교대회마다 개인들의 환상을 피력했을 뿐 효과적이고도 제도적인 정책수립을 하지 못했다. 선교대회마다 앞으로 정기적인 국제선교대회 개최의 필요성을 역설한 점에서 1910년 에딘버러 (Edinburgh) 세계 선교대회와 1921년 국제 선교협의회 (I.M.C.) 조직의 준비적 역할을 했다.
한편 학생선교운동 (Student Christian Movement) 또한 에큐메니칼운동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Y.M.C.A. 가 처음 조직된 곳은 1844년 죠지 윌리암스 (Jeorge Williams) 에 의해 영국 런던에서 였는데 미국에서는 1951년 보스톤에서 처음 조직되었고 그 후 20년 안에 미국 각 대학 내에 40여개의 Y.M.C.A. 가 조직 되었다. 1875년 - 1876년 프린스턴 대학들 가운데서 일어난 부흥의 결과로 범대학 Y.M.C.A. 의 기구가 조직되었는데 (1887년), 예배 ,성경공부 , 개인전도가 강조되었다.
범 신학교 선교연맹 (the Interseminary Missionary Alliance) 은 범대학 Y.M.C.A. 운동에 자극되어 조직된 신학교간의 복음주의적 선교기구인데 프린스턴 신학생 매티어(Robert Mateer) 의 노력으로 1883년 32개 신학교에서 250명의 신학생들이 뉴브런즈위크 (New Brunswick) 에 모여 국내 및 해외선교의 의무를 다짐하며 범 신학교 선교운동을 일으켰다.
미국 Y.M.C.A. 운동에 적극 참여하며 영향을 미치고 있던 무디 (Dwight L. Moody) 가 1873년 영국과 스콧트랜드를 방문하여 그 곳 대학생들 가운데 큰 부흥운동을 일으켰는데 특히 에딘버러 대학생 헨리 드러먼드 (Henry Drummond) 는 무디의 강화로 평생을 학생선교운동에 헌신하게 되었다. 1882년 무디가 스콧트랜드를 다시 방문했을 때는 스터드 (C.T. Studd) 를 비롯한 소위 "캠브리지 7인" 이 학생 선교운동에 헌신하는 결과를 가져왔는데 이들은 영.미 각국을 여행하며 학생 선교운동에 막대한 공헌을 끼쳤다.
1886년 7월 매사추셋츠주 헐몬산 (Mt. Hermon) 에서 무디를 강사로 집회가 열렸는데 이 기간동안 100명이 선교를 위해 헌신하였다. 헐몬산 선교집회 후 로버트 와일더 (Robert Wilder) 등 몇몇 사람이 곳곳의 대학 캠퍼스를 돌아다니며 환상을 불러 일으킨 결과 한해 동안에 2100명이 선교에 헌신했고 이와같은 학생선교 헌신운동으로부터 소위 "학생자발 선교운동"(Student Volunteer Movement) 이 1889년에 정식으로 조직되었는데 죤 모트 (John Mott) 가 초대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이 운동은 죤 모트의 표어인 "세계를 이 세대안에 복음화하자" (the Evangelization of the World in this Generation) 를 내걸고 세계복음화운동에 전력을 다 기울였다.
미국에서 시작된 학생자발 선교운동은 점차 영국 , 독일 , 스칸디나비아에도 같은 운동을 일으키게 하였는데 1895년 8월 각국의 학생선교운동의 대표자들이 스웨덴의 바드스테나 성 (Vadstena Castle) 에 모여 세계적 연합기구를 조직하였고 이를 세계학생선교협회 (World's Student Christian Federation) 라고 불렀다. 초대회장에 프리에스 (Karl Fries) , 초대총무에 죤 모트가 선출되었다.
초기에는 학생자발운동이 무디의 영향아래 복음주의 입장을 취하였지만 1899년 지도자들이 서서히 복음주의 입장을 멀리하게 되었다. 그들은 복음주의적인 신학훈련이 미비하였으므로 당시 성서 및 선교에 대한 사회적 접근방법에 있어서 거의 무방비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학생자발운동이 더이상 복음주의적인 파에 국한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기독교인이라고 믿는 모든 사람들을 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곧이어 이들이 선교운동의 주도권을 잡게 되고 급기야는 1910년 에딘버러 (Edinburgh) 에서 열린 세계선교대회의 성격을 극적으로 바꿔놓고야 말았던 것이다.
2. 에딘버러 세계선교대회
1910년 6월 14일부터 23일까지 에딘버러 대학교의 뉴 칼리지 (New College) 건물에서 159개의 선교단체가 파송한 1200명 이상의 세계선교 관련자들이 참석하여 개최된 에딘버러 세계선교대회는 19세기 선교 및 연합운동의 총결산이요, 20세기 선교 및 연합운동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대회의 목적은 모두 다른 종교 (비 기독교) 들과 얼굴을 맞대고 선교사업과 문제를 같이 연구 , 협의하는 것이었다. 이 대회에서 중요하게 논의되었던 것들은 ①비그리스도교 세계에서의 복음전도 방법 ②선교지교회 문제 ③국민생활을 기독교화하는데 관계되는 교육문제 ④비기독교 종교에 대한 선교적 사명 ⑤선교와 정부와의 관계 ⑥교회연합을 위한 협력과 추진 문제등이었다.
그 중에서 선교와 연합의 필요성을 내세운 것이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범세계적 선교의 사명을 강조하면서 이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는 연합이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내세웠고 국제선교협의회 (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 의 창설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한 에딘버러대회는 신학성격이 포괄적이었으며 자유주의 신학도 포함하고 있었다. 이 회의는 성경진리에 대한 해석을 확대했을 뿐 아니라 성서의 무오성과 절대권위를 부인하게 되었으며 사회봉사문제를 선교의 한 과제로 인정하게 되었다. 특히 기독교에 접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도덕덕 , 사회적 여건을 개선해 주는 것을 선교의 주요과제로 삼았다. 그리고 이를 위해 타종교들과의 접촉을 쁹으려고 시도하는 가운데 복음의 메세지의 변질과 종교혼합주의 (Syncretism) 에 빠질 가능성을 충분히 열어 놓았다. 19세기 서구 선교신학과 비교할 飁 선교신학사상이 변하기 시작했는데 사회의식이 강화되었다는 사실이다. 타 종교에도 진리의 요소가 있고 하나님은 타종교를 기독교를 위한 준비로써 사용하며 이제 선교는 어느 단체나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온 교회의 책임임을 강조하게 되었다. 이 회의의 성명은 비기독교적 제종교에 대하여 선교사가 취해야할 태도는 진정으로 이해하고 동정하여야 하며 선교사는 비기독교적 종교속에 있는 고귀한 요소를 쁹아서 그것을 발판으로 하여 더 높은 차원에 있는 모든 참된 것 , 선한 것을 승인하는 너그러운 태도를 가지고 타종교 속에도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 있음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이 회의는 선교역사에서 19세기 서구 선교와 에큐메니칼 선교를 구분하는 분수령이 되었고 계속위원회 (Continuation Committee) 를 조직하여 1921년에는 국제선교협의회 (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 로 발족하게 되었다.
돌이켜볼 때 1910년 에딘버러 세계선교대회의 역사적 의의는 두가지 상반되는 에큐메니칼적 입장과 반 에큐메니칼적인 요약이 가능하다. 즉 전자의 입장에서 보면 에딘버러 대회가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이 본격화되고 신학체계가 수립된 결과를 가져왔으나 , 복음주의 입장에서 보면 이 대회는 "위대한 세기"의 선교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졌을 뿐 아니라 복음주의 선교신학에도 위협을 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B. 국제선교협의회 ( 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 )
에딘버러 대회의 제 1 분과 위원회 (비기독교 세계의 복음전달) 의 보고서는 범세계적선교의 사명을 강조하면서 , 이 사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는 무엇보다도 협동과 연합이 중요함을 지적했는데 이는 결국 1921년 국제연합선교회의 창설을 가져오게 했다. 에딘버러대회 이후 11년 동안 계속위원회 (Continuation Committee 1910-1913) 와 선교협의 긴급위원회 (Emrgency Committee of Co-operation 1919-1920) 는 죤 모트 (John Mott) 와 죠셉 올담 (Joseph Oldham) 의 지도하에 구미 각국 및 아시아의 몇 국가 안에 선교협력기구들을 조직하게 했고 , 1921년에는 이들 각국의 선교협력기구들이 그들의 대표를 뉴욕주 모홍크 호수 (Lake Mohonk) 에 보내어 국제선교협의회를 창설하게 했다.
17개의 선교단체들이 구성원이 되어 (교회들이 구성원이 되지 않았음) 조직된 국제선교협의회는 1910년 에딘버러 대회와 마찬가지로 모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인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천명했으며 , 세계복음화의 공동작업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세계교회는 유기체적 일체성을 유지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러나 국제선교협의회는 교리적 문제나 교회론적 문제에 대해 어떠한 논의나 결정을 하지 않기로 했고 또한 각국의 선교단체들을 대신해서 어떠한 선교정책을 세우는 행정적 기능을 행사하는 것도 거부하였다. 그러나 1920년대부터 구미 신학자들 간에 성경의 영감과 무오성에 관한 교리적 논쟁이 일어나면서 교리적 갈등은 선교연합운동에 심각한 문제로 등장하게 되었지만 옥스포드 회의에서 에딘버러 회의의 결의를 재천명하고 교리적 문제에 저촉되지 않는 사업에 힘쓰기로 하였다.
1. 예루살렘 선교대회 ( 1928 )
1928년 부활절에 예루살렘의 감람산 위에서 세계 50여개국에서 231명의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선교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에서 다룬 중요 의제는 ①비기독교 사상과 생활과의 관계에서의 기독교 메세지 ②피선교교회와 선교교회 (The Younger and Older Church) ③종교교육 ④선교와 농촌문제 ⑤선교와 산업 ⑥선교와 인류분쟁 ⑦세계적 선교협력이라는 주제였다.
이 회의의 특징은 첫볁로 서구의 백인만이 아니라 유색인종인 피선교교회 지도자들의 발언이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즉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신생교회들의 지각과 주체성의 확립을 위한 이 움직임은 금후의 선교정책에 일대변혁을 필요로하는 것이었다. 또한 피선교교회와 선교교회와의 관계는 피고용주와 고용주와의 관계이어서는 안되며 서로의 경험, 고충, 소망등을 나누는 하나의 커다란 기독교협회가 생겨나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졌다.
둘째로 이 대회는 국제선교협의회가 종교혼합주의 (Syncretism) 로 기우는 것을 볼 수 있다. 윌리암 템플 (William Temple) 은 말하기를, "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을 밝히는 빛이 완전히 빛나므로 그가 알려지지 않았거나 거절당하는 곳에서도 그 동일한 빛이 빛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기뻐한다. 우리는 비기독교인 또는 비기독교 제도 속의 고상한 특질을 그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어느곳에서나 그에 대한 증언을 남겨 두셨다는 증거로서 환영한다." 라고 하였다.
세째로 다루어진 중요한 문제는 사회적 관심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점이다. 이 회의에서는 "대전도의 개념" (Larger Evangelism) 이라는 신용어로써 "선교는 영혼만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문제도 관심을 두어야
한다." 는 이론이 등장하면서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을 분리시키는 것은 오류라고 지적하였다.
네째로 하나님 나라의 개념에서 미국과 구라파의 신학이 충돌하였다는 점이다.당시 미국은 사회복음주의 영향과 제1차 세계대전의 피해가 적었으므로 낙관주의적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즉 하나님의 나라가 현 지상에 건설될 것을 믿는 반변에 대륙신학은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하나님 나라를 현재나 미래의 종말론적 경험으로 생각하였다.그리하여 구라파의 신학은 슈바이처와 바르트의 영향으로 기독교의 내면성을 강조하게 되었고 미국은 실용주의 사상이 지배하였다. 이것은 전통적인 전도의 관심을 약화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예루살렘 회의는 "회개의 신학" 에서 "봉사의 신학" 으로 대치되므로 성서적인 선교개념에서 이탈을 선언하는 것이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이 대회는 로쟌 회의 (1927)의 "신앙과 직제" 연구회에서 채택된 것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교회의 메세지는 항상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되어야 하며, 이 복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을 속량하시는 하나님이 주신 기쁜 선물이며 구원은 그리스도의 천국설교와 회개의 촉구와 그의 수난, 부활, 승천의 전생애를 통하여 예수 그리그도가 하나님의 사랑을 계시하신 것이다.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신생을 주시고 그리스도와 인류를 위해 봉사를 명하신다. 그러므로 복음은 철학적 이론이나 신학적 체계이상이며 또 물질생활의 개선책 이상이다. 복음으로서만 사람의 계급과 인종과 증오에서 서 해방되어 국가적으로나 국제적으로 복지와 친선을 얻는다"
2 . 마드라스 선교대회 ( 1938 )
이 회의는 동양에서 다같이 전쟁의 위협이 몰리기 시작한 때에 모였다. 일본이 1931년 만주에 침입하여 중국과 싸웠던 때이고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에 진주한 것은 1934년의 일이었다. 이 세계대회는 당초 중국에서 모이려던 것이었으나 일본과 중국의 전쟁으로 마드라스에서 모인 것이다.
마드라스 회의의 중요 주제는 "교회와 신학" 이었다. 그중에도 "전진하는 기독교 공동체" (On going Christian Community) 인 교회론이 크게 거론되었으며 교회가 선교사업의 중심지임을 상기시켰다. 특히 피선교교회를
강화시켜 그들이 선교에 임하도록 하기 위한 관점에서 교회론이 강조되었다.
이 대회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낸 인물은 크래머 (Hendrik Kraemer) 이다.그는 이 대회의 위촉의원으로 기독교 메세지의 본질과 타종교와의 대화의 문제를 연구하였는데 그 연구결과가 "타기독교 세계안에서의 기독교의 메세지" (The Christian Message in a Non-Christian World) 이다. 그는 이 연구에서 호킹의 "선교 재고론" (Re-thinking Missions) 에 나타난 절충주의를 기독교신앙에 정면으로 반박하였다. 세계종교는 기독교신앙에 아무런 "접촉점" (Point of Contact) 을 제공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며, 타종교와 기독교 계시사이에는 필연적으로 " 불연속성" (Discontinuity) 이 존재함을 강조했다. 크래머는 기독교 계시의 특수성과 초월성을 강조하는 바르트 (Karl Barth) 의 신학을 내세우며 자연신학을 배격했다. 예컨대 마드라스 대회는 예루살렘 대회와 비교할 飁 고전적 선교개념에 접근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대회가 선교신학에 끼친 영향가운데 중요한 것은 화란의 선교 신학자 바빙크 (J.H.Bavinck) 가 그의 저서 "선교학 개론" 에서 "전도의 접촉점으로서 타종교와의 대화" 를 주장하므로서 타종교속에 있는 "하나님의 조용한 역사" (The Silent Work of God) 를 인정했다는 것이다.
1938년 마드라스 대회이후 많은 서유럽의 복음주의자들은 대부분 국제선교협의회에서 탈퇴했고 19세기 복음적 선교에 의해 세워진 역사가 깊지 않은 교회를 통해서 복음주의라는 새로운 형태가 다시 들어왔다. 이런 결과로 1942년 미국에서 복음주의협의회 연합회 (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 와 복음주의 선교협회 (Evangelical Foreign . Mission Association) 가 탄생되었다.
3 . 휫트비 선교대회 ( 1947 )
1947년 7월 캐나다의 온타리오 (Ontario) 부근의 휫트비 (Whitby) 에서 모인 제3차 국제선교대회는 40개국에서 112명의 대표가 참석하였다. 이 회의는 "격동하는 세계, 구속의 말씀, 복종하는 협력자" 라는 주제로 토론하였다. 자립, 자치, 자력전파의 소위 "Three Self Formula" 를 강조하여 선교와 교회의 관계를 정립하였고, 과거 선교사가 피선교지 교회의 지배자로 군림하던 것을 일소하여 동등한 자세에서 "복종하는 동반자" 로 정의하였다.
이 대회는 세계복음화의 긴급한 과업을 다짐하여 "이 세대가 다 지나가기 전에 복음이 세계의 모든 족속에게 전파되어야한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이것이 실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교회의 과업이다." 라고 천명하였는데 여기서 말하는 전도는 "총체적 복음화" (Total Evangelization) 이다. 곧 이를 통해 교회는 진정한 사회혁명 즉 무지, 결핍, 질병, 압박, 죄등과 대항하여 투쟁하는것을 열정적으로 주도해 나가야한다. 이런 종류의 전도의 결과로 하나님 나라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신봉되고 전파되는 인간의 나라보다 훨씬 더 만족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게 된 것" 이라고 주장하므로서 휫트비 대회는 기독교의 사회적 우위성이 전도의 동기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이러한 주장을 펴게된 근저에는 세속화 신학 (Secular Thology) 과 다드 (C.H.Dadd) 의 실현된 종말론과 베일리 (J.B.aillie) 의 복음전파 (Kerygma), 교훈 (Didake), 친교 (Koinonia) 로 구분하는 신학을 적용하고 있으며, 성령과 계시를 분리하여 하나님은 친히 자신을 사상이나 명제로 계시하시지 않고 역사, 사건, 인격 속에서 계시하신다고하여 성서밖의 계시를 주장하고 있다. 그것은 휫트비 대회가 교회밖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쁹고 탈교회화의 일보를 내디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예루살렘 선교대회, 마드리드 선교대회, 휫트비 선교대회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선교 (Missio Dei) 신학의 내용들 (타종교와의 대화, 기독교의 상대화, 성서밖의 계시) 이 발전해 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휫트비 대회는 인간의 영혼과 영원한 운명에 대한 뚜렷한 관 심을 표명하지 않았으므로 예루살렘 대회로 환원하는 입장을 취했다고 말할 수 있다.
4 . 빌링겐 선교대회 ( 1952 )
1952년 7월 5일부터 17일까지 독일 빌링겐 (Willingen) 에서 개최된 제4차 대회는 "교회의 선교적 의무" (The Missionary Obligation of the Church) 와 연합의 필요성을 재확인했고 선교국과 피선교국간의 동역의 필요성을 재강조했다. 그런데 빌링겐 선교대회는 선교의 근거와 내용을 새롭고, 넓게 정의하였다. 선교활동의 본질과 내용을 교회 중심적 관점에서 교회를 세우는 선교사들의 활동에 국한시키지 않고 역사와 세속세계안에 주권적으로 임재하시고 일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활동 (Missio Dei) 에 참여하는 모든 일을 선교라고 보았다. 즉 선교는 바로 "하나님의 선교" 이며 선교는 교회의 본질 자체에 속하는 과업이라고 선언하였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교사상은 빌링겐 회의에서 하루 아침에 도출된것이 아니다. 정확히 말해서 1910년 에딘버러 대회 이후부터 서서히 진행되어 왔다고 보아야 한다. 즉 에딘버러 대회에서는 개인주의적 경건주의가 신랄한 비판을 받으면서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온교회의 책임임을 강조하며 선교전략에 관심을 가져 왔는가하면 예루살렘 대회에서는 사회적 관심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그리고 마드라스 대회는 타종교와의 대화 및 토착화의 문제를 다루므로 오늘날에 와서는 기독교를 상대주의로 보게하는 길을 트게 했으며, 휫트비 대회에서는 세속화 신학이 침투하여 성서밖의 게시를 주장하므로써 현대인에 대한 복음의 적응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선교의 사상적 순례는 1952년 빌링겐 회의에서 그 집약적 개념인 "하나님의 선교" (Missio Dei) 라는 사상을 대두시킴으로 선교신학의 새로운 이정표를 설정하였다.
이 빌링겐 대회 이후에 하나님의 선교를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사람은 독일의 게오르규 f. 휘체돔 (George F. Vicedom) 이었다. 그는 "선교란 더이상 교회의 선교가 될 수 없고 오직 그의 선교 즉 하나님의 선교 로도보았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이 세상에 그 아들을 파송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이 파송안에서 하나님은 항상 일하신다." 라고 본다. 즉 선교의 주체자는 어느 교파나 교회가 아니고 삼위일체 하나님 자신이시고, 선교의 장은 이 세계이고, 선교의 목적은 인간화라는 것이다.
결국 이 하나님의 선교는 오늘날 교회생활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하였으며, 목회나 전도는 물론 사회 사업이나 구제, 인권운동이나 혁명도 선교라고 보게 된 것이다. 이렇게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선교의 본질이 개인의 영혼구원 보다도 대화와 상호이해에 있으며, 교회설립보다는 사회적 경제적 및 정치적 구조악을 제거하여 이땅에 평화를 가져 오는데 있으며,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여 이 땅에 평화 (Shalom) 를 건설하는 것" 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교라는 개념은 본래적으로 하나님의 선교의 주체가 되신것과 과거의 이기주의나 식민주의적인 기독교역사의 오점을 수정하는 훌륭한 개념으로 발전될 수 있다고 긍정적 평가를 내릴 수도 있겠지만 , 다른 한편으로 보면 프라이탁 (W. Freitag) 이 말한대로 오늘의 세계는 과거 7세기에 이슬람이 기독교를 뒤 흔들어 버린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복음에 대한 총체적 저항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 올바른 선교이며,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고 회개케하는 것이 올바른 복음화임을 선언한다. 또 그 복음을 위하여 순교적 증인이 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선교 (Missio Christi)에 참여하는 것이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땅 끝까지 복음을 전달하는 것이 올바른 의미의 하나님의 선교이며 또 이것이 복음주의적인 선교이다.
한편 빌링겐 대회에서는 "실현된 전도" (Realized Evangelism) 가 선포되었는데, 실현된 전도란 그리스도의 "충분하고도 완전한 속죄" (Full and Perfect Atonement) 가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모두를 구원하였다는 사실만 賁닫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 보편 구원론 (Universalism) 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의 구속의 목적에 전세게를 포함하였다는 성서적인 가르침을 곡해하여 그리스도의 죽음은 모든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충분한 것이며 효력을 미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같이 왜곡된 구원관을 통해 영혼의 불멸과 그리스도를 믿지않는 자들의 영원한 형벌을 굳게 믿는 고전적, 성서적인 선교개념과는 한층 더 멀어지게 만들었다.
5 . 가나 선교대회 ( 1958 )
1958년 가나에서 열린 이 대회는 통합의 문제를 우선적으로 논의했다. 일부 회원단체들이 통합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가나대회는 통합을 "원칙적으로 받아 들인다."고 결정했다. 곧 이후 3,4년 동안 양기구의 교회들과 선교단체들은 통합에 대한 찬반의 격론을 계속하게 되는데 결국 1961년 뉴델리(New Delhi)에서 개최된 I.M.C.대회와 W.C.C.총회는 양 기구의 통합을 정식으로 채택하였다.
한 편 가나 선교 대회는 선교를 다음과 같이 정의 하였다.
"선교는 하나님의 활동이며 사람이 신앙으로 회심하거나 사람이 구원
받은 자들의 반열에 입회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생활, 곧
사람의 생활이며 교회가 그 안에서 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
람을 죄에서 구원했기 때문에 교회의 선교는 사람들을 교회의 생활에서
발견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충만함 가운데로 모아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보편 구원론적인 신학사상으로 인하여 가나 대회는 인간이 타고난 죄성과 영원한 파멸에 놓인 사실을 완전히 외면하고 말았다.
I.M.C.와 W.C.C.의 통합으로 양 기구는 피차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선교는 본래의 과업이었던 세계의 복음화 보다는 사회 봉사에 주요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으며 구원의 선포 보다는 대화에, 개종 보다는 진리의 공동 추구에 더 깊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C. 신앙과 직제운동 ( Faith and Order )
1910년 에딘버러(Edinburgh)대회는 선교 단체 대표들로 구성된 대회로서 원래 교리나 교회 정치 문제를 다루지 않기로 하였으나 참다운 협력과 일치를이루기 위하여 신앙과 직제 문제를 다루지 않으면 안될 필연성을 느끼게 되어 1920년 제네바에서 회합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며 구세주가 되심을 믿는다는 니케아 신조를 기초로하여 신앙과 직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운동으로 발전 시켰다. 그래서 이것은 세계 교회의 궁극적 목표이며 이상인 분열된 교회의 재일치에 관한 신학적 연구를 담당하게 되었다.
신앙과 직제에 관한 연구의 필요성을 누구 보다도 심각하게 느낀 사람은 미국 감독 교회에 속한 챨스 브렌트(Charles Brent)감독이었다. 브렌트가 자기 교파안에서 활약한 결과 신앙과 직제에 관한 문제를 토의 하기 위한 세계대회를 개최할 위원회를 임명하기로 결의 하였다. 1920년에 제네바 회합을 가짐으로써 이 운동이 새로와졌는데 계속 위원회(Continuation Committee)에서는 브렌트를 의장으로 임명하였으며 또한 동방정교회가 사실상 그 운동에 가담하였다. 제 1차 신앙과 직제 세계대회가 스위스 로쟌(Losanne)에서 열렸고, 제 2차 대회가 1937년 에딘버러에서 개최되었다.
로쟌 대회에서는 다양한 교리와 질서에 대한 통일을 모색하였다. 이 대회는 교회 연합에 필요한 연합의 정도, 신앙을 표현하기 위한 신조의 필요성, 필요한 신조에 대한 체제화, 신조나 고백문에 대한 적당한 용도등과 같은 문제를 심의 하였다. 결론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교회들간에 존재하는 공통점과 상이점이 무었인가를 알게 되었으며 연합에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하게 하였다.
에딘버러 대회(1937)에서는 교회들간의 더욱 더 깊은 이해가 조성되었으며,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고백하는 자들간에는 연합과 일치가 존재함을 확인하는 "확인성명"을 채택하였다.
"우리는 육체로 오신 하나님말씀이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안에서 하나이다. 우리는 그를 교회의 머리로,그리고 왕중의 왕, 주님의 주님으로 받드는데 있어서 하나이다. 주님에 대한 이 충성이 다른 어떤 충성보다 앞서는 것을 인정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하나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의 외적 형태에 있어서 나뉘어 있다.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뜻을 각기 달리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깊은 이해가 진리에 대한 일치된 이해로 우리를 인도하게 될 것을 믿는다."
1937년의 에딘버러 대회는 오랜 토론 끝에 신앙과 직제 운동과 생활과 봉사 운동을 통합시키기로 합의를 보았는데, 결국 양 기구는 1948년 통합되어 세계 교회 협의회(the World Council of Churches)에 속한 위원회가 되었다.
D. 생활과 봉사운동 ( Life and Work )
에딘버러 대회(1910)의 결과로 생긴 다른 하나는 생활과 봉사운동인데 이것은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정치적 책임과 정의 구현에 책임을 느끼고 조직된 것이어서 처음부터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봉사와 윤리적 책임을 과제로 삼고 있었다.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세계 교회들은 사화적 관심과 국제적 책임을 느끼기 시작했으며 특히 스웨덴의 루터교 주교였던 죄더블롬(Nathan Soderblom)은 기독교 국가들이 관여된 전쟁의 죄악을 통탄하면서 교회는 초 국가적인 화해의 사명을 감당해야할 것을 역설하였다. 그리고 1924년 4월 영국 버밍햄(Bermingham)에서 "기독교 정치, 경제및 시민대회"(Conference on Christian Politics, Economics and Citizenship)가 열려 긴급한 국제 문제에 대한 기독교의 정치, 경제, 사회및 윤리적 책임과 사명에 대해 협의 하였으며 제 1차 생활과 봉사 대회를 준비하였다.
1925년 8월 19일 스톡홀롬(Stockholm)에서 열린 제 1차 생활과 봉사 세계 대회는 "교리는 분열을 가져오나 봉사는 단합시킨다."(Service unites, doctrine divides)라는 슬로건하에서 37개국 600여명의 대표들이 모여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과 연합의 필요성을 천명한 뜻깊은 모임이었다. 이 스톡홀롬 대회는 계속 위원회를 두어 정치, 사회, 윤리 문제를 계속 연구하게 하였는데 1930년에 계속 위원회는 "생활과 봉사 세계 협의회"(Universal Christain Council for Life and Work)라는 영구적인 기구로 발전하게 되며 특히 이 시기에는 전 세계에 걸친 경제공황, 독재적 군국주의및 인본주의적 세계주의가 거세게 일어나 세계 교회는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이 때에 생활과 봉사 세계협의회 총무인 죠셉 올담(Joseph Oldham)의 적극적 활동으로 종교의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을 높이는 일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제 2차 생활과 봉사 세계 협의회는 1937년 7월 옥스포드(Oxford)에서 개최되었는데 40여개국 120여 교회로부터 1,200여 대표들이 참석하였고 "교회가 교회되게 하라"는 구호를 내세우면서 정치, 사회, 경제의 정의 구현을 위한 교호의 사명과 과업을 다짐했다. 옥스포드 대회는 새로운 교회관을 발전시키지 않았지만 에렌스트룀(Ehrenström)이 지적한대로 옥스포드 대회는 고난당하며 투쟁하는 세계에 흩어져 있는 형제들과 일체감을 느끼며 신조나 국가 혹은 인종과 계급에 기반을 둔 우상적 사회에 대항하는 공동전선을 펴야 함을 고백하는 가운데 교회의 보편성을 실감케한 대회였다고 하겠다. 두 번째로 이 대회의 특징은 교회의 독립성을 주장하였는데 교회는 세상의 어떤 반교회적 정부에 의한 간섭을 받을 수 없는 독립된 기구임을 선언했다. 세번째 특징은 사회 정치적 문제는 근본적으로 종교적 문제라고 선언한 점이며 사회 정치적 문제야말로 교회와 신학이 다루어야할 정당하고 필요한 문제라고 강조한 점이다. 그리고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수행함에 있어서 평신도의 책임과 역할을 강조한 것은 주목할만한 점이다.
1937년 옥스포드 대회는 생활과 봉사 운동을 신앙과 직제 운동과 통합시켜 세계 교회 협의회 (World Council of Churches)라는 새 기구를 설립하기로 합의했고 1838년 유트레히트(Utrecht)에서는 국제 선교 협의회와의 협의하에 세계교회 협의회 임시 위원회(Provisional Committee of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를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Ⅲ. 웁살라 총회에서 나이로비 총회
까지의 선교신학적 동향
선교란 엄밀히 말하면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타 문화권 전도 (Crosscultural Evangelism) 를 의미하며 폭넓게는 전도활동과 거기에 부수적으로 일어나는 교회의 모든 봉사활동도 선교로 간주된다.
그러나 W.C.C. 에큐메니칼 운동은 사회정의와 민주화 실현을 위한 교회의 투쟁을 선교로 생각하여 사회구원에 역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에큐메니칼 선교신학의 급진적인 경향은 웁살라 총회이전부터 발아하기 시작하여 웁살라 총회에서 첨예화되고 방콕 세계대회를 거쳐 나이로비 대회에서 절정에 이르러 선교는 급기야 "해방화" 의 개념으로까지 치달았다. 이러한 급진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은 구속의 은혜가 없이도 구원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 놓았으며, 기독교를 사회운동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따라서 본 장에서는 웁살라 총회에서 부터 방콕 세계대회와 나이로비 총회까지의 선교신학적 동향을 살펴봄으로써 에큐메니칼 신학의 사회참여에 관한 본질을 규명하고자 한다.
A . 웁살라 총회의 선교신학
1968년 스웨덴 웁살라 (Uppsala) 에서 세계교회협의회 제4차 총회가 열렸다. 1960년대는 새로운 과학적 발견으로 인한 경이적인 시대였고, 미국의 마틴 루터 킹 (Martin Luther King) 목사와 케네디 (John F. Kennedy) 대통령의 암살, 신막스주의 (Neo - Maxism) , 학생운동 , 월남전쟁으로 격동하는 시기였다. 이러한 시기에 235개 회원교회로부터 704명의 대표들이 참가하여 "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Behold, I make all things new) 하는 주제로 모였다.
웁살라 총회는 여섯 분과로 나누어서 오늘날 교회가 당면한 문제들을 다루게 되었다. 제1분과 : "성령과 교회의 보편성" , 제2분과 : "선교의 갱신" , 제3분과 : "세계경제와 사회 발전" , 제4분과 : "국제관계에 있어서의 정의와 평화" , 제5분과 : "예배" , 제6분과 : "삶의 새로운 스타일" 로 나누어져 있다. 그 중에서 복음과 교회의 정체성 및 교회 일치문제는 주로 제1분과와 제5분과에서 발견되고 교회의 사회참여에 관하여는 나머지 분과 보고서에서 취급되는데 , 이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제2분과인 "선교의 갱신" 이다.
1968년 웁살라에서 모인 제4차 총회를 전후하여 선교의 개념은 가장 급진적인 방향으로 변천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선교의 개념에서 인간화 (Humanization) 의 개념으로 변천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선교 (Missio Dei) 의 형태를 따라 우리도 적절한 형태의 제도를 체택해야 하지만 , 동시에 제도화된 형태를 포기하고 새것으로 대치함이 필요하다..... 우리는 역사의 이
싯점에서 인간화가 메시야적 목표 (the Messianic Goal) 의 의미를 무
엇보다도 잘 전달한다고 믿으므로, 인간화를 선교의 목표로 제기했다. 과거에는 하나님의 구속사업의 목표가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돌이키는것보다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으로 표현될 수 있었을 것이다.그것은 참 하나님에 관한 의문이 근본적인 의문이었다. 그래서 교회 는 이 의문에 응답하여 하나님을 가리켜 주었다. 교회는 선교의 목표 가 기독교화 (Christianization) 즉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를 통해 사 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것이라고 이해하였다. 오늘날에는 참 사람 에 관한 의문이 근본적인 의문이다.그러므로 선교적 회중(Missionary Congregation)은 그리스도안에서의 인간화 (the Humanity in Christ) 을 선교의 목표로 가리켜 주어야 한다."
웁살라에서의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것으로 보고 있으나, 하나님의 활동은 구속사가 아닌 일반 역사 속에서 특히 혁명운동, 민권운동, 교육개혁운동 가운데서 가장 뚜렷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 결국 선교는 이 세상사를 위한 교회의 모든 활동으로 보게 되었다.하나님은 이미 온 세상을 그리스도가 완성한 구속사업 안에서 자기와 화해 시켰다고 보며, 그러므로 복음을 비기독교인들에게 전파한다는 것을 선교활동이라고 보는 것은 아주 그릇된 셍각이라고 주장한다. 선교의 궁극목적은 대화를 통한 세로운 인간화 , 성숙한 인간화의 운동에 있다고 본다. 성서는 선교의 목적을 개종 (Conversion) 또는 회개 (Repentance) 라 부르고 있지만 이는 새 인간화 , 성숙한 인간화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곧 "선교의 갱신" 이라는 주제를 다룬 제 2분과 보고서에서 고전적 , 성서적 선교개념이 거의 소멸해 버리고 바이어하우스의 말처럼 "전혀 새로운 선교이해" (⧍ Completely New Undersyanding of Mission) 가 나타났다.
웁살라 총회가 주장하는 선교하는 교회에 대한 개념은 곧 "타자를 위한 교회" (Church for Others) 라는 것이다.
"선교하는 교회는 모든 곳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한 교회이다. 복음을
들은 사람이나 듣지 못한 사람들 , 알지 못하면서도 타자를 위해 봉사
하는 사람들 , 나아가서는 교회를 거부했지만 여전히 새로운 인간이 되
고자 하는 사람들 , 이들 모두를 위한 교회이다. 교회는 타자를 위한
교회이기 때문에 남자나 여자나 그들이 어디에 살든지간에 모두 선교
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선교를 위한 지역과 그 상황은 얼마든지
다양할 수가 있다. 인간의 욕구가 있는 곳이든 , 인구가 늘어나는 문제
이든 , 긴장이든 , 운동세력이 있는 곳이든 , 제도적 문제점이 있는 곳
이든 , 결정의 우선 순위를 결정해야하는 문제이든 , 어디든지 선교의
대상이다."
이처럼 웁살라에서는 모든 것이 다 선교라고 주장했다. 건강과 사회봉사 , 청소년을 위한 활동 , 정치적 관심을 가지고 모인 집단과의 관계 안에서의 일이나 폭력을 건걸적으로 사용하는 것 , 인권옹호 등이 다 선교라는 것이다.
제2분과 보고서는 선교를 사회정의를 위한 투쟁으로 해석하였다. 이를 위해 혁명운동은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추구로 평가되었다. 더 나아가 정의로운 질서를 수립하기 위해 필요한 혁명이 없이는 새로운 인간성은 실현될 수 없다고 하였다. "기독교 공동체는 혁명의 타당성을 진단하여 혁명을 지원해야 하는가에 대한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그래서 글래서 (Arther Glasser)는 이 대회의 선교신학을 평가하기를 사회 정치적 행동주의는 불건전한 신학이라고 했으며 , 죤 스토트 (John Stott) 는 이 대회를 가리켜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시던 예수님의 눈물이 없는" 대회라고 비난했다. 따라서 웁살라 총회는 영적인 빈곤과 기아를 외면한 채 육적인 기아와 빈곤에 대한 대책에만 관심을 기울였으며, 웁살라 총회는 요컨대 교회를 정치신학으로 몰고갔다고 볼 수 있다.
B . 방콕 세계 대회의 선교신학
1972년 12월 29일부터 1973년 1월 9일까지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 W.C.C. 세계선교 위원회 (C.W.M.E.) 주최로 제2차 회의가 열렸는데 그 대회의 명칭은 "오늘의 구원에 관한 세계대회" (World Conference on Salvation Today) 였다.이 모임에서는 구원에 관한 현대적 의미를 새롭게 검토하고 또 근본적으로 토의하기 시작했다. 현대신학과 교회론 및 선교론의 전환은 구원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필요로 하게 만들었다.
1961년 뉴델리에서 IMC 와 WCC 가 합할 飁 CWME 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를 온세계에 촉진하여 모든 사람이 그를 믿고 구원얻게 하는 일" 이었다. 따라서 여기서 밝혀진 선교의 목적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 세계에 선포하여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일" 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기독교회는 이 구원의 내용이 무엇이냐 하는데 대해서는 아무 의문이 없었다. "구원이 무엇이냐?" 에 대하여 물을 필요도 없이 모든 이방인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구원의 소식을 전파하기에 힘썼다. 그런데 1963년 멕시코에서 CWME 대회가 열렸을 때 "세속세계에 사는 인간에 대한 증거" (Witness to men in the secular world)의 분과에서 "오늘날 세속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제공하시는 구원의 형식과 내용은 어떤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리고 이 문제를 다음번 CWME 대회에서 다루어지도록 건의하였던 것이다. 토마스 비져 (Thomas Wieser) 가 그동안에 이 문제에 대해 연구를 촉진하도록 임명을 받았다.
이상으로 뉴델리 이래로 멕시코 대회를 거쳐 이번 방콕 대회에 이르기 까지 "오늘의 구원" 이란 말은 다름아닌 선교의 목적인 구원이 오늘에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분명히 하자는 것이다. 즉 전통적 의미에 있어서 인간구원이 오늘의 역사적 처지에 비추어 볼 飁 어떤 의미를 가지는 가를 밝히고 선교의 새로운 의미를 추구하려는 것이다.
1970년 9월에 토마스 비져는 그 때까지 진행된 "오늘의 구원" 연구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고 있다. 그는 이 주제의 근본의미를 "복음의 메세지를 세속적 인간의 처지에 적합하게 표현하는 일과 또한 타신앙과의 대화에 관련시켜 표시하는 일" 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이 주제 안에서는 복음 의 변치 않는 내용과 그 복음이 적용되는 상황 사이에 언제나 긴장이 존재한다고 말하면서 "오늘의 구원" 의 근본의의를 밝히는 일부터 시작하여 이에 개입되는 여러가지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로 해방신학이 "오늘의 구원" 에 대한 신학적 준비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우주적 그리스도 (Cosmic Christ) 의 기초 위에서 전 창조는 구원을 받았거나 받고 있는 우주적 과정 (Cosmic Process) 에 있다. 전역사는 하나님의 왕국과 마귀들의 세력들 사이의 싸움터이다. 화육신학 (Incarnation Theology) 에 근거하여 구속 안에서의 하나님의 역사 (Work)는 창조와 반대되는 것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창조의 종결과 완성" 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런 근거에 의해 사회의 인간화는 복음전도로서 신학적으로 정당화되었다.
둘째로 피조물의 최후의 종말론적 구속과 회복에 대한 필요성이 전혀 없게 되므로 교회 지도력을 통한 현재의 선교는 결코 세속적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적어도 구원을 개인과 하나님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적인 문제로 해석하는 경건주의적 구원개념에서 탈피해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우리는 성서적인 선교개념이 거세 당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세볁로 하나님은 교회 밖에서 역사하시며 , 교회의 역할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의 온전한 발전에 공헌하는 모든 세속적 운동을 확인하고 책임질 것으로 되었다.
네째로 비져는 말하기를 "하나님은 해방운동에 함께 하시므로 그리스도인들이 반대해서는 안된다" 고 하였다. 하나님은 정치적 구주들 (Saviors) 을 보내서 식민주의에서 백성들을 구하신다. 이 이상과 같이 우리는 "오늘의 구원" 을 주제로 한 방콕대회의 신학적 준비가 해방신학의 영향을 받은 정치신학이며 , 탈교회화와 교회 밖의 구원을 부르짖고 있으며,그리스도의 구속적 은총과 재림을 부인하고 선교를 세속화하여 사회운동으로 전락시킨 것을 볼 수 있다.
한편 W.C.C. 통제 위원회 (Control Committee) 의 의장인 M.M. 토마스와 1967년부터 1972년까지 세계선교 및 전도원회 위원장으로 있었던 필립 포터 (Philip Potter) 의 견해를 통해 방콕대회의 신학적 성격을 간파할 수 있다. M.M.토마스는 " 오늘의 구원 " 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1. 육체적 건강과 젊은이를 위한 육체형태의 미
2. 물리적 풍부의 개발
3. 침략으로 부터의 안전과 백성들 사이의 국경의 평화
4. 사람들 사이의 사회정의
그러므로 기독교선교는 고전적인 구원이 아니라 사회적 , 문화적 , 혁명과 관련이 있는 구원에 관심을 가진다. 그는 더 급진적으로 말하기를 "교회는 타종교들과 분리된 종교 공동체가 될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 속에 문화창조 운동 및 사회해방운동의 새로운 분파가 되어야 한다." 고 말했다.
필립 포터는 선교가 수행되는 세상의 상황을 분석하면서 세가지 역설을 지적하였다. 즉 세계가 기술에 의해 통합되었지만 정치 , 경제 , 인종이라는 인간적인 요소에 의해 절망적인 상태로 분열되어 있다는 사실 ② 힘의 불균형 ③ 선교적인 상황이다. 그는 이러한 상황을 돌아보며 20억의 인류 혹은 다른 나라에 복음을 전파하는 것에 대한 토론이 "전혀 무의미하다" 고 서슴없이 선언하였다.
방콕 세계대회는 이 시대에 말해야 할 구원의 wjd의를 말해주는 세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이들 단어는 내적 , 정신적 구원과 , 외적 , 현세적 구원 둘다 묘사하는데 쓰이는데 그것은 해방 (Liberation) , 인간화 (Humanization) , 자기됨 (Identity) 이라는 개념이다.
첫째 해방으로서의 구원이다. 해방은 가난한 사람들이 내린 구원의 정의이다. 그것은 힘없는 사람들의 외침이고 압박받는 사람들의 기도이다. 이방을 향한 외침은 전세계적이며 , 좀더 충만한 구원을 갈망하고 있다. 그 외침은 개인적인 해방과 사회적인 해방을 갈망하고 있다.
둘째로 인간화로서의 구원이다. 죄는 우리의 인간성을 약화시키고 , 위축시키고 , 악화시킨다. 그런데 그 죄는 하나님꼐 반항하는 자기생각에 골몰하는 것이며 인간관계의 파괴적이고 인간자아에 대한 거부이다.그러므로 인간성의 회복이 구원이다. 구원된다는 것은 사랑 속에 있으며, 사람의 의한 착취와 모든 형태의 정치 , 사회, 경제 , 인종적 억압에 대항하여 싸우는 투쟁에 헌신하는데 있다.
세째 , 자기됨으로서의 구원이다. 구원된다는 것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이다. 구원이란 개인주의를 포기하고 공동체 안에서 완성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람이 홀로 살수 없는 것처럼 홀로 구원 될 수 없다. 이 대회는 구원사업을 네가지 사회적 차원에서 쁹았다.
① 인간에 대한 인간의 착취에 항거하여 경제적 정의를 세우기 위한 투쟁 안에서 구원사업은 행해진다.
② 동족에 대한 정치적 압제에 항거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세우기 위한 투쟁 안에서 구원사업은 행해진다.
③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 결속시키는 운동장 안에서 구원사업은 행해진다.
④ 인간의 삶에서 절망에 항거하는 희망의 투쟁 안에서 구원사업은 행해진다.
방콕대회의 마지막날 카스트로 (Emil Castro) 박사는 대회의 결과를 요약하면서 "우리는 지금 하나의 선교시대의 마지막 석양에 서 있으며 , 동시에 세계선교의 새로운 여명에 서 있다." 즉 선언하므로써 복음주의의 선교시대는 이미 지나갔고 , 세속적 사회주의적 범 세계 종교적 " 선교 " 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포했다. 이러한 방콕대회가 취한 선교신학의 내용에 대하여 바이어하우스 박사는 핵심을 찔러 비판하였다. "이와같은 새로운 선교개념은 소극적인 의미에는 선교사와 선교자금을 서방에서 제3세계로 보내는 것을 중단하는 것을 의미하고, 적극적인 의미에서는 타종교 신봉자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함께 일하는 것을 의미하며 , 그래서 구원이라는 개념을 모택동의 문화 혁명의 관점에서 그리고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에서 일어나고 있는 친공적 해방운동에 적극협조하는 일과 관련하여 새롭게 평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지금에 와서 다른 예수 , 다른 영 , 다른 복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고후 11:14) 그 이유는 현 에큐메니칼 운동이 현대 신학의 영향을 받아 선교의 유일한 기반이 되는 성서를 떠나 현대인들과의 대화에 치중하므로 오늘날 비기독교적인 이념과 타종교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사단적 세력의 영향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라고 비판했다.
c . 나이로비 총회의 선교신학
제 5차 총회는 "예수 그리스도는 해방되고 연합하게 한다." (Jesus Christ Frees and Unites) 는 주제아래 1975년 아프리카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286개 교파의 747명의 대표들이 모였다. 이 총회는 적도 이남에서 열린 최초의 총회였고 , 여성과 젊은이와 평신도에게 대표할당제가 실시된 최초의 총회였다.
나이로비 총회를 지배한 주제는 "해방" 이었는데 각 분과의 연구보고서들은 한결같이 교회는 사회 , 경제 , 경제적 해방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적 및 경제적 제도가 변혁되기 전에는 교육이 개혁될 수 없다.
불의의 구조와 해방을 위한 투쟁은 오늘날 교회에 큰 도전을 주고 있
다. 사회정의와 인간들의 해방을 위한 오늘의 투쟁에 있어서 교회가
어떤역할을 수행해야하는가에 대해 교회는 항상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지배를 받아야 한다.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저의와 해방을 위한 투
쟁에 참여함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가 힘이 없
을 지라도 투쟁을 계속함으로 공의가 물같이 흐르는 날의 도래를 촉진
는 것이다."
나이로비 총회는 구원과 복음과 선교에 관한 성경적 교리를 해방이라는 말로 재정의 하였고 , 로버트 M. 브라운 (Robert Mc Brown) 은 예수 그리스도를 해방자로 묘사하고 있다.
"해방" 이란 개념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제시는 제5분과의 "비정의의 구조와 해방을 위한 투쟁" 에서 세가지로 나타내고 있다. 첫째는 인권을 위한 투쟁이다. 기독교인들이 인권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충만한 인간성에 관계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것에 대한 신학적인 근거로서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이며, 창조와 성육신 안에서 모든 인간은 함께 한 가족이고 , 예수의 삶과 행위는 인간에게 방향과 의미를 준다"고 제시하였다. 둘째로 여성차별에 대해서는 암스텔담 회의에서 "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교회는 하나님과 그의 뜻을 영화롭게 하는 책임적 인간으로서 창조된 남성과 여성으로 이루어졌다." 는 귀절을 재 인용하면서 이 사실이 이론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너무 무시되고 있음을 비판했다. 세째로 인종차별의 문제는 암스텔담 이후 에반스톤 , 웁살라 , 나이로비까지 계속 거론되어온 주제로 이 문제는 교회가 선교적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의무를 갖는다고 하였다.
한편 나이로비 총회의 신학적 동향은 세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로 "구조악 제거를 통한 사회구원과 인간회복" 이다. W.C.C.총무인
필립 포터는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친교" 라는 개회 강연을 통해 구조악 제거를 통한 "사회구원" 을 주장했고 , "인간회복"을 강조했다. 그는 인간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문제들을 분석하면서 인간환경의 오염문제 , 기아와 기근의 문제 , 인종차별의 문제 , 세계 인구 팽창의 문제 , 전쟁무기 증가의 문제에 대한 사회 구조악의 문제와 아울러 무관심 , 탐욕 , 두려움 , 권력욕 등 "인간성 상실"의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시종 "사회정의 구현"과 "인간 존엄성의 회복"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는데 , 그 해결책은 상호 신뢰와 친교를 통해서만 이루어질수 있다고 강조하였으며 , 이같은 친교나 영적인 교섭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로 이루어진다." 고 하므로써 수직적이고 영적인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사회 심리학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의 이기적인 존재를 십자가에 못박음"을 의미하며 , 그리스도의 부활은 "불가능한 것이 현존"하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와같은 믿음은 한걸음 더 나아가서
"교회와 사회의 ....... 구조의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한다" 고 지적하며 십자가와 부활신앙에 대한 심리학적 및 행동주의적 해석을 했다. 크리스챤 휴머니즘을 기반으로 하고 사회적 행동주의를 표방하는 이와같은 "친교"는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 를 통하여 그 폭을 넓힐 수 있으며 , 사람들 사이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정의와 평화 속에서 하나의 인간가족을 이루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즉 포터의 개회강연은 시종일관 구조악 제거를 통한 사회구현 및 인간회복, 대화를 통한 인간가족의 형성 및 지상의 평화왕국의 건설을 표방하며, 이를 위해 함께 투쟁할 것을 호소하고있다.
둘째 혼합 종교주의적 입장으로서 제1분과 위원회에서는 혼합종교를 반대했지만, 타종교 안에서의 부분적 계시의 가능성을 인정했으며 타종교와의 대화의 필요성을 인정하였다. 토마스는 소위 "그리스도 중심적 혼합주의
(Christ Centered Synceretism)" 도 내세웠다. 또 한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W.C.C. 프로그램 위원회가 복음화 문제의 대변인으로 선정한 아리아스 (Mortimer Arias) 감독의 발언이다. 그는 "새인간" (the New Man) 을 선포하는 복음 전파가 교회의 급선무임을 역설하면서 "나는 그 새인간을 볼리비아 산간에서 두더지처럼 일하는 노동자에게서 발견했다. 그들은 교회에 속하지도 않았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지도 않았지만, 그리스도의 이름을 말하는 우리들 보다 그리스도를 더 많이 소유하고 있다고 인정해야 할 것이다"라고 W.C.C.특유의 범종교적 인도주의적 선교의 입장을 내세웠다.
세째는 평신도 주체의 대회라는 점이다. 참가대표 중 40%가 평신도였고, 20%가 여성이며, 10%가 30세 이하의 젊은이들 이었다. 이는 평신도가 기독교 지도체제를 움직이는 주체세력으로 등장하게 되었다는 데 있으며, 이제부터는 신학의 이정표가 없이 세계도처에 일어나고 있는 인본주의적 문화조류에 따라 그 방향을 수시로 변경시키면서 표류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나이로비 총회의 선교신학을 평가해 볼 飁 나이로비 총회는 "죄인을 불어 회개시키러 오신" 구세주를 인류에게 전하려는 복음주의적 관심보다는 범종교적 인도주의로 향하는 일과 정치적 사회적 세상사 해결에 그 관심을 다 기울이고 말았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말미암는 구원이 아니라 사회운동의 일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볼 수 있다.
Ⅳ. 복음주의의 입장과 W.C.C.
선교신학의 비판
복음주의(Evangelical)는 종교개혁의 전통과 경건주의 및 영국과 미국에서 일어난 대각성운동에 그 근거를 두면서 에큐메니칼운동의 비성서적이고 세속화 된 신학과 보편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나, 혼돈된 개념과 왜곡된 교리를 바로잡고 성서적인 신앙과 세계선교관을 재정립하며, 사회봉사와 사회적 책임도 아울러 강조하는 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운동은 계속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하여 베를린 선언(1966), 프랑크푸르트 선언(1970), 로쟌언약(1974), 서울선언(1975) 등을 통해 에큐메니칼 운동의 그릇된 흐름에 대하여 경고하고 복음주의적인 입장을 분명히 천명하였다.
이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성령을 통한 개인적인 회심과 거듭남을 주장하고, 성경의 절대성과 신적계시와 영감을 강조하고, 예수께서 모든 민족과 언어권에 복음을 전할 것으로 알고 거듭난 사람들의 삶은 사회생활에 영향을 주고, 에수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을 명시했다. 이들은 이 땅에 천국을 건설하거나 유토피아(Utopia)를 세우려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본장에서는 베를린 선언, 프랑크푸르트 선언, 로쟌 언약, 서울 선언을 중심으로 복음주의 입장을 재 확인하고 아울러 웁살라 총회에서 부터 나이로비 대회에 이르기 까지 W.C.C.선교신학에 대하여 바이어 하우스, 죤 스토트와 같은 복음주의자들의 비판을 중심으로 복음주의 선교관을 정립하고자 한다.
A. 베를린 선언
처음 선교적 열정으로 시작된 에딘버러 대회는 마침내 웁살라에서 지상에 샬롬을 건설하려는 인간화 선교로 바꾸었고, 교회의 사회적 관심을 가진 "생활과 봉사운동" 은 점차 복음적인 입장을 버리고 참여와 투쟁을 통한 사회구원을 부르짖게 되었다.
이러한 극단적인 견해에 대처하기 위하여 복음주의자들의 모임이 있었다. 1966년 가을 베를린에서 여린 "세계 복음 전도대회" (The World Congress of Evangelism) 는 근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주목할 만한 복음주의적 사건들 중의 하나였다. 특히 이 대회는 전통적인 복음전도와 사회문제에 대한 교회의 관심을 나타낸 대회였다. 빌리 그래함은 그의 개회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전도만이 우리들의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혁명세력"이라고 말했으며, 폐회사의 마지막 부분에서도 "우리들의 목표는..... 모든 방법을 통해 이 세대안에 전인류를 복음화하자는 것 외엔 아무것도 없다."고 복음 선포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그러나 복음은 사회적 관련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복음전도는 사회적 책임을지니고 있다. 사람들의 사회적, 심리적,도덕적, 영적 필요들은 복음전도의 불타는 동기가 된다. 그렇지만 만일 교회가 복음을 선포하고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회심케 하는
주된 임무로 돌아간다면 사회적, 도덕적, 심리학적 필요에 대해 더 큰
효과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는 복음전도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므로써 복음주의의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복음화한다는 것은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를 제시하여, 사람들이
그를 통해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고, 그를 자기들의 구세주로 영접하
고, 그를 그의 교회의 사귐안에서 자기들의 왕으로 섬기게 되는 것을
말한다."
베를린 선언의 주제는 "한 인류, 한 복음, 한 임무" (One Race , One Gospel , One Task) 였다.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고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공통적인 필요를 느끼고 있는 인류의 통일성은 "한 인류"로 표현되었다. 여기서는 보편 구원론 (Universalism) 을 반대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구속의 필요성에 있어서 하나이며 예수 그리
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은 구원을 제공받는다. 모든 사람들은 동일한
정죄아래 있으며 동일한 방법으로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은 의롭다
하심을 얻어야 한다 :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 곧 그에게 신뢰를 두는
모든사람의 주(主)이시며, 구세주인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
롭다 하심을 얻는다.... 우리는 인종이나 피부색의 구별 때문에 사람
들이 평등하지 않다는 관념을 거부한다.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으로 우리는 인종차별이 나타나는 그 어떠한 근거도 정죄한다."
이 대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인류" 이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모든 인간의 장벽과 편견을 초월한다는 것을 인식하였다.
하나님의 속성과 인류를 향하신 뜻을 나타내는 성서적 복음 의 유일성은 "한 복음"으로 표현되었다. 이 복음은 그 자체가 성서에 기록된대로 죄인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에 관심을 갖는다.
"성서는 우리가 받았고 그 안에 서 있으며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복음 곧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전 15:3 - 4) 는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아울러 이 복음은 다음을 거부한다.
"..... 그 자체가 신성한 성경의 권위 아래 오기를 거부하는 모든 신
학과 비평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더함으로 그 권위를 약화시키는 모
든 전통주의를 거부한다."
"한 임무" 는 복음전도를 언급한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의 증인들이 되어야 하고, 회심자들은 세례를 받고, 지역교회에서 가르침을 받으며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성령의 능력으로 그는 우리에게 명하사 모든 민족에게 그의 속죄적 죽음과 부활을 통한 구원의 기쁜소식을 선포하고, 그들을 회개와 믿음을 통하여 제자가 되도록 초청하고, 그들에게 세례를 주어서 그의 교회의 사귐으로 받아들이고 또 그들에게 그의 모든 말씀을 가르치도록 하신다."
베를린 선언을 평가해 보면 요컨대 W.C.C.의 수평주의 신학을 강하게 반박하고, 성서적인 복음전도에 의한 구원의 인격적이고 개별적인 성격을 강조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복음으로만 사회적인 변화가 가능함을 역설했다고 할 수 있다.
B. 프랑크 푸르트 선언
웁살라 대회시에 하나님대신 역사의 주체를 인간으로 대치시켰음을 비판하면서 바이어하우스 박사를 위시한 15명의 대학 교수들이 1970년 프랑크푸르트에 모여 바이어하우스 박사가 기초한 에큐메니칼 선교 신학에 대한 방향을 비판하는 선교문을 채택하였으니 이것이 프랑크푸르트 선언이다.
이 선언은 기독교 선교의 일곱가지 근본 명제를 천명하면서 동시에 현대 에큐메니칼 선교 신학의 오류를 7가지로 나열하여 비판하고 있다.
제 1명제 ,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 28:18 - 20)
기독교 선교는 신약에서 사도들과 초대 기독교의 증거에 의하여 보도된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위임령과 그의 구원 행위에서만 발견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시대에 관한 사회 정치적인 분석과 비기독교 세계의 요구에 의하여 선교의 본질과 임무를 결정하는 경향을 반대한다.
제 2명제, "이와 같이 내가 여러 나라의 눈에 내 존대함과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나를 알게 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겔 38:23) "여호와여 이러므로 내가 열방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시 18:49, 롬 15:9)
선교의 최고의 목적은 전 세계에 한분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하며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선포하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의 선교가 하나님이 아닌 인간화에 집중하는 것을 반대한다. 인간화가 선교의 주목적이 아니다.인간화는 어디까지나 기독교적 선포의 간접적인 결과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 행위의 한 소산일 뿐이다.
제 3명제,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느니라"(행 4:12)
우리의 구속주이시며, 참 하나님이시며, 참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성서가 그의 인격적 신비와 그의 구속하시는 사역 안에서 그를 선포한 것과 같이 선교의 기초이며, 내용이며, 권위이다. 따라서 뉴델리 총회 이후 강하게 주장되는 익명의 그리스도인을 비판한다.
제 4명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요 3:16)
선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그의 교회에 의해 말씀안에서 행해진 영원한 구원에 대한 증언과 표현이다. 이러한 구원은 모든 인류를 위하여 유일회적으로 발생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을 모르는 상태에서는 인류의 구원은 없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속에서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이미 중생했고, 이미 그와 화목했다는 보편적 구원의 개념을 반대한다.
제5명제 :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롬 12:2)
선교의 가견적 사명은 모든 사람 가운데서 구원받은 메시야 공동체를 불러내는 것이다. 성령은 복음과 성례를 통하여 새생명을 주며, 그들 속에 실제로 살아계시는 하나님과의 영원한 영적 교제와 이웃과의 교제를 갖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과의 교제의 실체인 교회가 단지 이세상의 일부분이라고 하는 사상을 반대한다. 그것은 교회자체의 붕괴를 야기시킬 것이다.
제6명제 :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때에 그리스도 밖에 있어서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세상에서는 소망이 없고 하나님은 없는 자이더니." (엡 2:11,12)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만 얻을 수 있으므로 타 종교 안에서 구원의 요소를 발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비기독교적 종교의 세계관이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유사하다는 그릇된 교훈을 거부하며, 다른 종교인들 사이에서 대화를 통해 회심이 가능하다는 사상을 거부한다.
제7명제 :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기독교 세계선교는 부활과 재림 사이에 사람 가운데서 하나님의 결정적이고 지속적인 구원사역이다. 모든 사람이 그에 대해 증언을 듣고 그것에 응답했을 때 적그리스도에 의해 인도된 예수의 교회와 세계 사이의 갈등은 절정에 도달한다. 그리스도는 재림하셔서 사단의 권세를 물리치시고 그의 메시야적 왕국을 세우신다. 따라서 우리는 메시야적 구원을 사회적 진보개발 및 변화와 동일시함을 거부한다. 이와같은 생각은 필연적으로 사회적 개발을 위한 노력이나 혁명에의 참여활동을 기독교 선교의 현대적 형태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선교의 최고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 하면서 웁살라 총회의 "인간화" 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한다.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을 주장하며 웁살라의 만인 구원론적 경향을 반대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궁극성이 강조되어 있다.
프랑크푸르트 선언의 기초자인 피터 바이어하우스(Peter Beyer -
haus)는 혁명신학의 인본주의적 선교 개념과 전통적 보수주의적 선교개념의 잘못을 동시에 비판하면서 하나의 선교개념을 제시한다. 바이어하우스 박사는 보수주의적 선교개념을 다음과 같이 비평한다.
첫째로 이 세계를 죄악시하며 세계사를 무의미하게 보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따르는 잘못을 비판한다.
둘째로 자기 교파와 자기 교회만이 참교회라는 태도인데 이 태도는 개신교의 새로운 분열을 야기 시키며 피선교국 교회에 대해 부권적 태도를 초래하곤 한다.
세째로 또 다른 문제는 진리에 대한 복음주의자들의 성서주의요 근본주의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대화의 유익조차 부인하는 것이다.
네째로 전통적 보수주의 자들의 최악의 과오는 역사와 사회로부터 구원의 성서적 이해를 말소시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에 대한 선언은 단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회복에만 제한될 수 없으며 그것은 인간의 공동체 생활, 그의 가족, 민족, 계층을 위한 구원이어야 한다. 비록 수직적 영역과 수평적 영역이 분리된다고 할찌라도 그들은 인간의 삶속에서 결코 분리될 수 없다.
그는 또한 몇가지로 W.C.C.의 선교개념을 비평한다. 그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세계사를 하나의 중요한 신학적인 문제로 취급하는 것은 옳은 태도이나 이 세계사가 결국에는 종말적 심판대 안에 서게되고 새롭게 창조될 사실을 간과한 것은 치명적인 과오이다. 따라서 복음주의의 시도가 전체 역사의 구조로부터 유일한 구원사를 고립시켰다면 에큐메니칼은 구원역사를 혁명의 역사로 축소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한다.
둘째, 대화가 중요하지만 비 기독교인과의 대화를 계시의 하나의 새로운 근원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세째로 모든 인간의 개인적 구원의 필요성을 간과하는 태도는 비성서적이다.
네째로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은 중요하나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이 결여될 때 복음 전파가 방해를 받는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남미는 비록 사회정의가 서지 않은 곳이지만 교회가 급격히 자라고 있다.
이러한 전제아래 그는 선교의 개념을 정리한다.
"선교는 소성시키고, 마귀를 쫓아내시며 중생시키시는 산위하나님의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다. 선교의 활동은 그의 아들을 역사속에 보내심으로 시작된다. 선교는 인간의 모든 생활에 도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분을 주님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일이다. 선교의 종국적인 목적은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 그의 가견적인 왕국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심으로 성취된다. 선교는 우선 구속적인 활동과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선포하는데서 일어난다. 선교는 교회의공동체 안에서 영적인 새로운 삶을 충실하게 실현하므로 수행되며, 신자들의 생활속에 성령의 변화시키시는 능력을 부여하고 나아가서 사회구조의 개선을 위한 충실한 노력을 낳게 한다.... 선교의 사명의 중심은 항상 그리스도의 교제를 명하는데 있다. 이 교제는 교회가 책임있게 참여하고 성례를 실현하게 한다.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설립하고 성장시키는 일은 선교의 첫째가는 목표이다. 이세상의 사회구조를 변화시키는 일은 신자가 이 세상을 봉사할 준비를 하는 자세의
결과이다."
그는 선교의 사업을 네가지의 명제로 설명한다.
1. 선교는 하나님을 영화롭게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를 영화롭게하며 세계를 향하신 그의 구원사역을 명시하기 위해 보내졌다. 선교의 본질적인 관심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선교는 세계의 옹호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 하나님의 옹호자로 남아 있어야 한다.
2. 선교는 영원한 구속을 가져온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으로부터 그들의 사도성의 영원하고 세속적인 결과로부터 구원받도록하기 위해 보내심을 입었고 또한 구원을 받았다.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의 주제가 "오늘의 구원"(Salvation Today)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이는 구약의 "샬롬"에 집중되어 있음을 주목하면서 그는 죄인들의 구원을 의미하는 신약의 "Soteria"란 단어의 의미와 하나님과의 화해를 의미하는 "에이레네"란 개념에 대해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3. 선교는 악마를 물리친다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藁는 능력안에서 악한 자들을 물리치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 전쟁에 있어서 진정한 승리는 혁명에 의해서가 아니라 영적인 무기에 의해 이길 수 있다. 그는 고린도 후서 10장 3 - 5절 은 오늘날 인간의 사회 구조가 어떻게 개선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가장 타당한 진술이라고 이야기한다.
4.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는 선교이다. 그리스도의 보편적인 통치의 디딤돌로서 그리스도의 교회는 예수의 재림을 준비하면서 모든 인류들 앞에서 복음에 대한 증인에 부르심을 입었고 보내졌다.
바이어하우스는 세계역사를 삼위일체되신 하나님의 주되심 아래서 종말을 향해 나아가는 것으로 보면서 이 세상을 죄악시 하는 복음주의자들과 이 세상이 종말에 하나님의 심판대에 설 것을 간과하는 에큐메니칼 주의자들을 비판한다. 신앙인은 이 세상에 대해 적극적인자세로 살아야 하지만 이 세상 역시 종말을 향해 가는 그리고 심판대 앞에 서게 될 피조물이란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C . 로쟌 언약
현대 에큐메니칼 신학에 대한 가장 큰 도전은 1974년 스위스 로쟌 (Lausanne)에서 열린 세계 복음화 국제대회 (International Congress on World Evangelization) 였다. 베를린(1966)은 복음적 진리를 재확인한 것이었다면, 로쟌은 신학과 선교전략 그리고 그 실천을 창의적으로 종합하는데 보다 역동적인 대회였다. 이런것이 로쟌언약의 내용과 정신에 잘 나타나 있다. 특히 이 대회는 복음주의 선교신학의 입장에 서서 세상에 대한 교회의 관심이 아주 높아진 대회였다. 물론 로쟌대회가 끝까지 주장한 것은 전도가 사회봉사보다 우선이며, 인간과의 화해가 하나님과의 화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견해이다. 이것을 전제로 로쟌언약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서 복음주의의 본질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이 대회의 신학은 특히 로쟌언약에 자세히 잘 나타나 있다. 로쟌언약은 영원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과 하나님의 목적에 관한 신학적 입장으로 부터 시작된다.
" 우리는 세계의 창조자이시며, 주되신 영원한 한분인 하나님 곧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확인한다. 하나님은 그의 뜻과 목
적에 따라 만물을 통치하신다. 그는 자기를 위하여 세상에서 한백성을
부르시어 다시금 그들을 세상으로 내보내시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그리스도의 몸의 건설과 영광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백성을 증인되
게 하신다.
죤 스토트는 로쟌 언약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본질적으로 언급했다고 한다.
1)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동시에 시간 안에서 역사하신다. 그는 영원 하신 하나님이며, 시간을 초월하신 분이시다.
2) 하나님은 한분이며, 동시에 삼위이시다. 삼위 하나님의 동일성에는 의문이 있을 수 없다.
3) 하나님은 자연과 역사 모두를 지배 한다. 세계의 창조자시며, 주님이신 그분은 또한 자기의 뜻하신 목적에 따라 만물을 통치하신다.
로쟌언약은 두번째 항목에서 성경의 권위와 능력을 명시한다. 이는 에큐메니칼 선교신학에 대한 정면 도전이기도 하다. 로쟌 언약은 성경의 신적 기원을 영감 (Inspiration), 진실성 (Truthfulness), 권위 (Authority) 로 규정짓는다.
"우리는 신구약 성경이 하나님에 의하여 영감되었음과 그 진실성과 권
위를 믿는다."
제3항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보편성" 은 우리에게 오직 한분의 구주와 하나의 복음만이 있음을 강조하므로써 시작된다.
"우리는 전도의 방법은 여러가지나 구주는 오직 한분이시며, 복음도 하
나임을 확인한다."
로쟌 언약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에 관해 어느정도의 지식을 가졌음을 인정하지만 그러한 지식이 구원을 가능케 하지는 못하므로 여하한 형태의 혼합주의나 대화를 단호히 거부한다.
"우리는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일반게시를 통하여 모든 사람이 하나
님에 관한 어느정도의 지식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것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거부한다..... 우리는 여하한 형태의 혼합주의와 그리스도께서 어떤 종교나 어떤 이데올로기를 통해서도 똑같이 말씀하신다는 뜻에서 진행되는 대화는 거부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하신 신인으로서 죄인을 위한 유일한 중보자 이시다."
제4항은 "전도의 본질" 인데 베드로의 초기 설교 (행 2:22 - 39) 와 사도 바울이 고린도 전서 15:1 이하에서 말한 것을 중심으로 삼고 곧 에수의 죽음과 부활을 궁극적으로 잡는다. 또한 복음은 그가 행하셨던 일 뿐만 아니라 그가 지금도 우리를 통치하신다는 것이다.
"전도한다는 것은 기쁜 소식을 널리 퍼뜨리는 것인데 기쁜소식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죽은 자로 부터 다시 살아나시어 통치하시는 주로써 그분은 지금도 회개하고 믿는 자들에게 모든 사죄와 성령의 자유케 하시는 은사를 공급하신다는 것이다."
로쟌 언약은 최근의 신학계에서 빈번히 대두되고 있는 현존, 선포, 설득, 또는 대화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복음전도는 역사적이며 성경적인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선포하는 것이라고 한다.
"전도에 있어서 세계속의 그리스도인의 현존은 불가결한 것이며, 또한 이해하기 위해 주의깊게 귀를 기울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대화도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전도 그 자체는 역사적 성경적 그리스도를 구주요 주로 선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그에게 개인적으로 와서 하나님과 화목함을 얻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봉사란 전도의 결과임이 명시된다.
"전도의 결과는 그리스도께 순종, 그리스도의 교회와의 협력, 세상안에서의 책임있는 봉사를 포함한다."
제5항은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 으로써 제4항과 더불어 로쟌 언약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죤 스토트는 이 항목을 4가지 교리, "(1) 하나님의 대한 교리, (2) 인간에 대한 교리, (3) 구원에 대한 교리, (4) 하나님 나라에 대한 교리" 로 분석한다.
하나님은 모든 인류의 "창조자이시요, 동시에 심판주 " 이시므로 하나님은 교회 뿐 만 아니라 세상에도 관심을 가지신다.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창조자이신 동시에 심판자이심을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사회 어디서나 정의와 화해를 구현하시고 인간을 모든 종류의 압박에서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권면에 참여해야 한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으므로 인간에게는 타고난 존엄의 가치가 있다. 따라서 모든 인간도 존경과 섬김과 사랑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전도와 사회참여를 상반되게 생각해 온 것을 반성한다.
구원의 교리에서 방콕대회의 주제인 "오늘의 구원" 은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자유와 동일시 하므로 부인하며, 구원은 언제나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 책임을 총괄적으로 수행하도록 우리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5문항은 그리스도인들이 각자 헌신을 다짐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제6항은 로쟌언약이 전도 우선주의에 서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교회의 울타리를 트고 넘어서 비기독교 사회에 침투해 들어가야
한다.교회가 희생적으로 해야할 일 가운데는 전도가 최우선이다."
제 8,9항은 세계복음화를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스토트는 이 부분을 로쟌 언약의 핵심이라고 한다.
이미 복음이 전파된 나라에서 외국 선교사와 선교비를 감축하는 일은 토착 교회의 자립심을 기르는 일이나 아직도 미개척된 지역으로 자원을 전환시키기 위해서 때로는 필요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선교사들은 이전보다 더 자유롭게 육대주 전역에 걸쳐 겸손한 봉사의 정신으로 교류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방콕대회에서 제기된 모라토리움 (Moratorium) 에 대해 조심스런 해명을 한다.
"첫째, 그러한 상황은 이미 복음화 될 나라에서 곧 복음전파라는 중요 하고도 선구적인 과업이 완수되었을 때에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그러한 감축은 토착교회의 자립상을 북돋아 주기를 목적하는데서 일어날 수 있다. 선교에 있어서 인원과 선교비를 감축시키는 궁극적인 목적은 전반적인 견지에서 선교사업을 감퇴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를 보다 진흥시키는데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선교사 및 선교비의 감축이란 아직도 복음화되지 않은 지역을 위해 자원을 전환시키자는 것이다..... 선교사들이 이전보다 더 자유롭게 교류되기를 바라고 있다."
제10항은 복음전파시 빈번히 빚어온 문하적 마찰에 대해 문화는 항상 성경을 표준으로 검토되고 비판되어야 한다고 한다.
"복음은 어떤 문화가 다른 문화보다 우월하다고 전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복음은 모든 문화를 그 자체의 진리와 정의를 표준해서 평가하고 모든 문화에 있어서 도덕적 절대성을 주장한다,"
제11항은 제10항과 더불어 복음과 문화를 부연 설명하고 있다.
제12,13항은 교회가 싸워야할 영적 싸움과 갖추어야할 영적 무장을 이야기 한다. 사단은 거짓, 세속적인 것, 그리고 핍박으로 교회를 위협하는데,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가 그의 무기일 수 있으며, 하나님을 높이고 , 사람은 낮추는가 하면, 인간을 높이고, 하나님을 그 보좌에서 끌어내는가로 분별되어야 한다.
제14,15장은 전도에 있어서 두개의 측면을 강조한다.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터전은 성령의 능력이며, 우리의 궁극적 목적은 그리스도의 재림이다.우리는 그리스도의 승천과 재림사이에 중간 시기에 처한 자로 하나님의 선교사업으로 이 시기를 채워야 한다.
스토트는 현대에 유행하는 다양한 선교관들의 극단적인 오류를 공정한 입장에서 분석, 비판하고 보다 균형되고 보다 성서적 복음주의적인 바른 선교관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복음전도만을 내세우는 전통적 선교관과 "샬롬"(Shalom)의 수립을 주장하는 현대 에큐메니칼 선교관의 양극화에 대하여 보다 균형잡히고 보다 성서적인 길 곧 하나님의 백성의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을 상호 연결시키는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위에서 그는 하나님의 선교와 사회혁신을 동일시하는 W.C.C.선교신학에 대하여 4가지로 비판을 시도하였다.
첫째로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또한 역사의 심판자이시다. 모든 혁명적 운동을 하나님의 새롭게 하시는 역사라고 간주하는 것은 유치하다. 사실 혁명이 일어난 후 새로운 현상은 때로 종전보다 더 많은 불의와 압력이 자행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둘째로 "샬롬"의 성서적 범주와 새로운 인간성과 하나님의 왕국은 사회개혁과 동일시될 수 없다. 사실상 구약에서 "샬롬"이 흔히 정치적 및 물질적 복지를 의미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구약의 예언을 신약에 그대로 적용하여 문자적 물질적으로 성취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마치 예수님의 당대인들이 그를 잡아 강제로 왕을 삼으려한 실수와 같다.(요한복음 6장 15절) 신약의 구약예언 이해는 본래 주어진 약속의 범주를 초월하여 예수께서 주신 평화는 보다 풍요하고 깊어서 하나님과의 화해와 교제, 이웃과의 화해와 교제이다. 더우기 그것을 만민에게 부여하지 않고 구속받은 집단에게만 부여하신다. 따라서 "샬롬"은 메시야가 자기 백성에게 부여하시는 축복이다. 새로운 피조물과 인간성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세째로 "선교"란 단어가 하나님이 세계속에서 하시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의미로 쓰일 수는 없다. 오직 "선교"는 그의 구속받은 백성에게 관한 것이며, 그들을 세계속으로 파송하여 일하게 하시는 것과 관계된다.
네째로 W.C.C.선교신학은 사회 개혁에 대한 관심에 몰두한 나머지 복음적 관심의 여지를 거의 혹은 전혀 제공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교회의 최우선권은 복음을 전파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삼는 일이다.
그렇다면 보다 나은 길 곧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을 상호 연결시키는 길은 없는가 ? 그는 선교가 본질상 일차적으로 교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게서 나온 것임을 인식해야 하며 최초의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자기 선지자들과 자기 아들과 성령을 보내셨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아들의 선교가 핵심이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대위임령(Great Commission)을 명하셨다. 이 명령의 핵심은 복음을 전파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여 주님의 제자를 삼는 것이 역점이다. 이러한 대위임령이 우리에게 가장 핵심적으로 전달된 형태는 요한의 것이다. 예수 께서 다락방에서 성부께 기도드릴 때 그의 기도 속에서 기도하신 것이 바로 그 위임령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같이 나도 저희들을 세상에 보내었고"(요 17:18) 그가 부활하신 후에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 : 21)그러므로 교회의 선교는 성자의 선교에서부터 추론되어야 한다. 성자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의 죄를 구속하시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실 목적으로 오신 것이다.(요일 4:9, 10, 14) 그는 친히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셨다. 즉 성자께서는 섬기러 이 땅에 오셨다. 그래서 그는 두개의 양립불가한 구약의 비유, 즉 다니엘의 인자의 비유와 이사야의 고난의 종의 비유를 결합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라."(막 10 : 45) 이제 그 분은 아버지께서 자기를 보내신 것과 같이 우리를 보내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선교는 그의 선교처럼 섬기는 선교가 되어야한다. 복음 전도와 사회 봉사 이 양자는 섬기는 사랑의 진정한 표현에서 찾아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행하는 봉사도 그리스도의 겸손한 봉사처럼 말과 행위를 다 포함하여 기아에 대한 관심 뿐만 아니라 육체와 영혼에 대한 관심, 즉 복음 전파와 사회 활동을 다 포함하는 것이어야 한다.
D . 서울 선언
1975년 8월 28일 부터 9월 1일 까지 서울에서 모였던 아시아 선교협의회 (Asia Missions Assoication) 창립총회를 8월 31일 기독교 선교에 관한 서울 선언 (The Seoul Declaration on Christian Mission) 을 발표했다. 서울 선언은 그 전문에서 지적하고 있는대로 휫튼 선언 , 프랑크푸르트 선언, 백림 선언의 복음주의 입장에 서서 현대 에큐메니칼 선교신학이 기독교 복음의 본질과 기독교 선교개념을 전적으로 왜곡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지적하는 비판적 부분 ("현실에 대한 비판과 각성") 과 복음적 선교의 필요성과 시급성을 호소하는 긍정적 부분 ("선교의 남은 과업들") 으로 되어 있다.
서울 선언은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의 인본주의적 사회참여 위주의 선교신학을 비판하면서 복음의 사회적 실현의 타당성과 필연성을 아울러 강조하고 있다.
"기독교 선교의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과업은 사회의 구조를 변혁시킬
수 있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구원의 능력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선언하
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사회적 정치적 구조악을 제거 개선시키는데 대한 깊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우리는 사회정의와 억압과 착취아래 있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적 자유
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확언한다."
서울선언의 "현실에 대한 비판과 각성" 이란 부분에서는 5가지 선언을 통해 에큐메니칼 신학을 비판하고 , 복음적인 선교관을 가질 것을 촉구하고 있다.
첫째로 "하나님의 선교" 라는 사회적 정치적 운동의 차원에서 대속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도록 위임받은 "그리스도의 선교" 에로 환원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본래 "하나님의 선교" 라는 용어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고전적 교의신학에서 온 것이다.자유주의자들은 이것을 표절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구속적 복음을 전하는 것을 은폐하려고 이용어를 선택하였다. '"하나님의 선교" 에 대한 현대 자유주의적 개념은 우선 죄에 대한 성서적 개념을 버리고 구조악만을 죄로 단정하였고 폭력을 구조변혁의 정당한 수당으로 인정하였다. 따라서 기독교 본질적 과업인 그리스도의 복음의 선언으로 회귀할 것을 선언한다.
둘째로 "오늘의 구원" 이라는 사회적 차원에서 "죄에서 구원" 이라는 근원적 차원으로 선교의 목적을 환원시킬 것을 촉구하였다.
"오늘의 구원 운동은 그리스도의 속죄적 구원의 차원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사회 혁명 운동의 범주에 머물고 있으므로 명백한 탈선 행위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정의와 억압과 착취 아래 있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적 자유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확언한다."
세째로 민중조직을 통한 선교, 또는 해방운동에서 교회 사역을 통한 선교에로 환원해야할 것을 촉구하였다.
"정치적 바탕을 기지고 있는 선교는 복음의 능력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민중의 폭력적 힘을 믿고 있으며 개발 도상국의 사회적 취약점을 들추
어 권력을 전복시키는 일을 선교의 주요 과업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러한 이념적 탈선은 필연적으로 기독교 멧세지를 파괴하고말 것이다.
우리는 기독교 선교가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조직되고 위임된 은
혜의 기관인 그의 교회를 통해서만 전개되어야 한다고 선언한다."
네째로 대화에서부터 선교에로 환언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에큐메니칼의 대화는 일종의 지상천국을 표방하는 세계공동 사회를 실현하기 위함이므로 거부하며,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만이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선언한다."
다섯째로 성경의 권위에 도전하는 어떠한 행위도 기독교 선교라고 인정할 수 없으며 현대 자유주의 선교는 "성경적 기초"로 환원할 것을 주장하였다.
"기독교 선교의 기초는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법칙인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고백적 신앙이다...... 성경의 권위에 도전하는 어떠한
행위도 그것을 우리는 선교라고 인정할 수 없다."
서울 선언은 "선교의 남은 과업들"이란 부분에서 세계 선교의 필요성과 긴급성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아직도 소외된 많은부족들과 감추어진 인간 골짜기들이 있다. 그리고 심지어는 단 하나의 교회도 없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현대 세계속에 선교사의 입국이 허용되지 않는 나라들을 위하여 얼마나 기도하고있는가 ? 우리는 아직도 복음이 미치지 못한 곳에 우리가 미칠 수 있는 방법들을 찾기 위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만큼 민감한 상태에 있는가"
바이어하우스는 서울 선언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이 선언은 지난날의 선교의 장단점을 평가하면서 현실을 매우 분명하
게 분석하고 있으니 오늘날 복음이 어떻게 왜곡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
로 지적하고 있다. 또한 이 선언은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을 복음화
하는 남은 과업을 수행할 것을 강하게 호소한다.... 이선언은 아시아인
들의 소리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서울 선언의 전진 명령과 함께 새
로 조직된 아시아 선교 협의회의 앞길에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하리라는
것을 확신하는 바이다."
Ⅴ. 결 론
지금까지 세계교회 협의회 (W.C.C.)의 배경과 국제 선교 협의회의 선교 대회 및 W.C.C. 제 4차, 5차 총회를 살펴보고 복음주의 협의서에 나타난복음주의 입장과 복음주의 학자들을 중심으로 W.C.C.선교 신학을 비판해 보았다. 이제 끝으로 교회의 선교적 사명과 관련하여 W.C.C.선교 신학을 요약 평가하고 복음주의 입장을 재확인하고자 한다.
W.C.C. 선교신학을 종합하면 성경의 무오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성경의 권위를 예수의 윤리적 교훈에 제한하므로써 실추시킨다. 또한 선교의 목표는 인간화와 해방화로서 죄로부터의 구원이 아니라 사회 구조악으로부터의 해방과 경제분배균등과 정의 실현을 필두로 하고 있다. 사실상 W.C.C.선교신학의 이러한 발상은 보편구원설(Universalism)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교리는 전 인류가 이미 예수의 성육신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았기 때문에 교회의 사명은 회심이나 개종 및 교회 설립 따위는 집어치워야 하며 교회는 세상속으로 들어가 죄악된 사회 구조를 변혁시키는 일에 진력하고 샬롬을 건설하는데 앞장서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성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세상 종말에 가서는 구원받은 자와 구원받지 못하는 자로 나누어질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W.C.C.의 선교신학은 성서의 범위를 이탈한 신학임을 알게된다. 그 뿐 아니라 W.C.C.선교신학은 심지어 세상에 샬롬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유혈혁명을 포함한 모든 혁명에 참여해도 무방하며 선교는 혁명운동이나 비기독교인과의 대화가 접촉점으로 작용하여 발생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선교를 통해서라면 30억 비기독교인들은 비록 고난과 압박에서 해방되어 사회적인 복지를 누릴 수 있다고 해도 여전히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회는 고전적인 선교개념을 고수해야할 것이다. 기독교 선교는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의 구세주가 된다는 사실과 주님을 믿음으로써만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일에 최우선을 두어야할 것이다.
구원문제 이 외에도 W.C.C. 선교신학은 혼합주의적인 경향을 띠고있다. 뉴델리 대회는 타 종교에도 계시가 나타나며 타 종교를 통해서도 그리스도가 말씀하시는데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고 유감을 표명하였다. 우바 민 목사는 W.C.C.의 개회 설교에서 비기독교적인 기성 사상체계의 희생이 없이 적응될 수 있는 "포괄적 신학"을 역설하였는데 이는 기독교가 지금까지 알려진 진리중에 가장 큰 진리이므로 타 종교에도 자리를 내 줄 수 있다는 신학인 것이다. 즉 이처럼 W.C.C. 선교신학은 인본주의적이요 세속적이며 혼합주의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성서적 에큐메니즘(Ecumenism)은 비성서적이기 때문에 참여할 수 없음을 단언한다.
그러나 W.C.C.의 선교신학이 그토록 급진적인 성향을 띠게된데에는 보수주의 신학이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주의는 지금까지 세상과 사회 문제에 도피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교회와 문화와의 관계에서도 분리주의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둘째로 설교에 있어서 상황을 지나치게 외면한 채 본문을 가르침으로 복음의 상관성이 결여되었다. 세째로 보수주의는 협의의 경건 개념을 가르치고 실천한다. 경건이란 개인적 신앙생활 뿐 아니라 저의 구현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선교의 양극화된 입장을 고찰해 왔다. W.C.C.측은 수직적인 면을 무시하고 수평주의만을 고집하며, 보수주의측은 수평적인 것을 무시하고 수직적인 면만을 고집하고 있다. 우리가 신,구약의 전반적인 면에서 볼 때 선교신학은 양극화된 것이 아니라 통합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성서적인 선교신학은 수직적인 면이 우선되고 나서 그 결과로 수평적인 면들이 그 열매로서 드러나게됨을 알 수 있다.우리가 지금까지 살펴 본 바로는 선교의 양극화 현상을 지양하고 통합적인 입장을 추구하는 선교신학은 바로 복음주의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복음주의는 본문(Text)과 상황(Context)에 고루 충실한 가장 이상적인 선교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복음주의는 세상을 본받지 않으면서도(초월적), 세상을 사랑하는(내재적) 역동성이 있는 신학 즉 교회와 복음의 정체성을 견지하면서 사회 참여가 이루어지는 신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제 한국 교회는 복음주의 운동의 활성화를 위해서 영적 각성 운동을 새롭게 일으키고, 윤리 실천 및 봉사 운동을 선양하며 협력 및 연합 운동을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제 한국 교회는 2천년대의 선교 사역을 대비하여 복음주의 입장에 서서 준비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 한국 교회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 영적인 변화와 아울러 생활과 가치관의 변화가 나타나야 하겠다. 또한 개인의 탐욕과 사치, 향락을 극복하고 이웃과 함께 사랑을 나누고 봉사와 희생의 삶을 사는 것을 통해 건전한 사회 참여를 지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조화의 정신을 가지고 협력과 연합 운동을 실천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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