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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기도하고 찬미한 바울과 실라
(사도행전16:19-26)
바울이 점치는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낸 것이 원인이 되어 또 다시 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여인의 주인은 그 귀신들린 여인을 하나의 이익의 도구로 삼아 돈을 벌어 왔기 때문에 귀신이 내 쫓김으로 다시는 점을 칠 수 없게 되자 바울과 실라를 당장에 붙잡아 관원들에게 끌어간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는 모함으로 당국에 고발한 것입니다. 그 여인의 주인에게 충동받은 일단의 무리들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 일행을 송사 할 때 상관들이 바울과 실라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쳤습니다. 그들은 많은 매를 친 후, 바울과 실라를 옥에 집어넣어 그 발에 쇠사슬로 착고를 단단히 채운 것입니다.
1. 역경 속에서 기도하고 찬미한 바울과 실라
깊은 옥에 갇혀 있는 바울과 실라는 매를 많이 맞아 그들의 몸은 찢기고 터져 온 몸에 선혈이 난자했습니다. 이전에는 바울 자신이 그리스도인들을 옥게 가두고 핍박한 장본인이었으나 이제는 자신이 그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복음을 위한 고난에 감사했습니다. 바울이 얻어맞은 상처에서 나는 아픔은 말할 수 없이 컸을 것입니다. 그들의 발이 쇠사슬에 매어 착고에 채였으니 신체적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그런데 그런 가운데서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했으며 옥중에서 찬미를 불렀습니다.
밤중쯤 된 시간은 깊은 시간입니다. 바울이나 실라에게는 매우 피곤한 그런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자리에 누어 잠잔 것이 아니라 일어나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미한 것입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은 초대 교회 성도들은 주의 이름을 위해 받는 고난 중에서도 크나큰 기쁨을 나타냈습니다. 그들의 이런 기쁨은 주님의 말씀에 큰 격려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해 받는 그의 고난에 대해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 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 . .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 고백했습니다(행11:23-27). 바울은 옥중에서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찬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 130 \ 16:19-26
게 되며 그리스도인의 마음속에 새 힘을 부어 줍니다.
2. 기적이 일어난 옥중
깊은 옥중에는 바울과 실라 뿐 아니라 다른 중죄를 지은 죄수들도 있었습니다. 바울과 실라의 기도와 찬미는 이들에게도 들렸습니다. 이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진실하고 절박한 기도에는 응답이 따릅니다.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고 했습니다(시145:18). 진실한 기도는 언제나 인생의 위기에서 나옵니다. 주의 이름을 위하여 어려움을 당했을 때, 그 사람에게서 주님께 대한 진실한 사랑이 나타납니다. 바울과 실라는 주의 복음을 위하여 그토록 모진 매를 맞으며 고난을 당하고 있었건만 원망이나 괴로움의 하소연은 없고 기도와 찬미로 감사했던 것입니다.
(2) 감사하는 기도에 하나님의 응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하셨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어려움 속에서 염려나 괴로움에서가 아니라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뢴 기도였으며 감격스러운 찬미였습니다. 그들의 이런 기도와 찬미의 향이 하나님의 보좌에까지 올라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그들의 기도와 찬미는 깊은 옥중이라도 능히 그 옥을 부술 수 있는 능력을 나타냈습니다. 옥은 그들의 이런 기도와 찬미를 감당할 수 없어 큰 지진을 일으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졌습니다.
지진은 옥문을 부수뜨리고 그들의 발목에 단단히 채인 쇠사슬이 끊겨져 죄수들의 몸이 자유한 몸이 되었습니다.
결론 : 우리의 인생 길에는 바울이 맞은 캄캄한 밤이 올 때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의 밤이 우리의 죄악으로 인한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어떤 인생의 밤을 만난다고 해도 슬퍼하거나 원망하거나 후회하는 부질없는 태도를 가지지 말고 신앙적인 새 힘을 얻어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한다면 그 사람의 생애는 새롭게 되며 놀라운 축복의 문이 열릴 것입니다.
(66) 주 예수를 믿으라
(사도행전16:25-40)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의 깊은 옥에 갇혀 그들의 발이 착고에 든든히 채워졌지만 그들은 그런 중에도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사도들은 복음을 위해 어려움을 당할 때 그 어려움을 고역으로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1. 기도와 찬미에서 나온 기적
바울과 실라의 기도와 찬미는 옥중에 놀라운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졌다’고 했습니다.
이 때 피곤한 나머지 잠을 자다가 이 같은 지진에 잠을 깬 빌립보 감옥의 한 간수는 이 같은 광경에 너무나도 놀라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그는 옥의 모든 문이 열려진 것을 보고는 죄수들이 모두 도망친 줄로 알고 문책 받을 일에 겁을 먹어 자결하려고 결심했습니다. 이 때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간수에게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고 안심시켜 주었습니다.
그러면 바울 일행은 이런 기회를 타서 옥에서 도망가지 아니한 것입니까? 그 이유는 그들의 기도와 하나님께 대한 찬미로 인하여 큰 지진이 일어나 옥터가 움직이고 모든 옥문이 열리며 죄수들의 매인 것이 벗어지기는 했지만 이 같은 일이 이 옥을 탈출하라는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이 옥에서 나왔던 다른 경우를 보면 주의 사자가 옥에 나타나 사도들을 친히 이끌어 냈던 것이나 이곳에서는 그런 인도하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간수는 바울의 말을 듣고 심히 놀랐습니다. 옥문이 열려져 있었는데도 죄수들이 도망치지 아니한 사실이 그에게는 도저히 믿어질 수 없었습니다. 그는 곧 등불을 달라고 하며 등을 가지고 어두운 깊은 옥으로 달음질쳤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 바울과 실라와 함께 다른 죄수들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모습을 보고서야 안도할 수 있었습니다.
2.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이 간수는 잠깐 졸았을 뿐 바울과 실라의 기도와 하나님께 대한 찬미를 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무엇 때문에 이곳에 들어왔는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바울과 실라에 의해 옥중에서 이처럼 놀라운 기적이 일어 132 \ 16:25-40
났으니 이 간수는 너무나도 당황하고 놀란 나머지 바울과 실라를 마치 하나님처럼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들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바울과 실라를 향하여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고 물었습니다. 이 빌립보 감옥의 간수가 생각하고 있는 구원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절박한 상태에서 외친 그의 태도로 미루어 자기 인생에 있어서 가장 귀중한 생명에 관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이 같은 물음은 모든 인류의 입에서 나와야 할 말입니다. 인류가 에덴에서 보금자리를 잃고 영생을 잃어버린 후, 이것을 회복하는 일을 탐구해 왔습니다. 여기서 각종 종교가 생겨났습니다. 철학이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한번 잃어버린 낙원과 생명은 어디서도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인류에게 이 구원을 주시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 그리고 그의 죽으심과 그의 부활로 이 일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같은 물음의 해답을 엉뚱한 곳에서 찾다가 허무하게 그의 생애를 마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간수야말로 꼭 물어야 할 사람들에게 이 물음을 던진 것입니다.
(2) 이 간수는 원래가 하나님께 잃은 양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기이하시고 놀라우신 구원의 섭리를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 간수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인 것입니다. 이 간수는 보잘 것 없는 간수였지만 예수님께는 잃어버린 당신의 양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잃은 당신의 양을 찾으시려고 바울과 실라를 빌립보 감옥의 깊은 옥에까지 보내시어 그를 찾으신 것입니다.
빌립보 감옥의 한 간수의 간절한 물음에 바울의 입에서 위대한 해답이 나왔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바울의 이 대답은 그 후 2천년간 내려오면서 많은 사람들의 구원 문제에 결정적인 대답을 주었던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두어 가지 교훈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했다’고 했습니다. 온전한 구원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따라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다른 한가지는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네 집이란 그들의 가족을 말합니다. 이것은 그 집에 한 사람이라도 복음을 받으면 그로 인하여 그 가족들에게 복음이 전달되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확산된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결론 : 빌립보 감옥의 간수 집에는 이제 큰 기쁨이 생겼습니다.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울처럼 언제 어디서나 주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133 \ 17:1-9
(자유 민주주의 외침= 간증=한국이 곧 공산국가(주사파) 될 수 있다. 주의 성령께서 문재양이가 정책 실패로 푸른집 2층에서 울고 있는 것을 그림 한장으로 보여주셨다. 푸른집에서 울고 있고 그 앞에 유리 진열장 속에 홧도그(정치와 정책)가 진열되어있는 것을 보여주셨다. 사단의 정책인 공산주의 사회주의 주사파로 뼈속까지 잠재 의식화된 사단의 정책(정치와정책)이 실패로 가져온 결과에 대한 후회하는 것을 보여주셨다. 즉 영적으로 사단에 잡혀있어 영혼이 불쌍하다는 것이다. 그도 구원 받어야할 존재임을 가르쳐준다. 좌파 문빠들이 불법으로 공수처와 연동제 비례 선거법을 팩스트랙으로 통과한 것이 증거이다. 좌파 국회의원 200석을 확보 헌법을 고쳐 사회주의 (공산주의 주사파)국가를 만들려고 한다는 것이다. 앉은뱅이 같은 대형교회여! 급하고 급하다. 빨리 일어나라. 주님께서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즉 진리(말씀)앞에 선자에게 자유 (승리)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한기총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와 같이 진리를 위해서 싸워야 한다. 루터는 종교개혁 진리를 위해서 교황청과 싸워 진리(예수)로 승리했다. (찬양을 부르면 싸우자 “내 주는 강한성이요” 찬송384장)(2019년 6월 중순경)
(간증: 주님의 성령께서는 2019.8.15.일 광화문광장에서 대한민국 건국 71기념행사에 대한 주님의 은혜의 표시로 그림(환상)한장을 보여 주셨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주님의 믿음의 용사들의 부르짖는 강력한 기도로 하늘에서 아름다운 집 한체가 내려와 안착하는 것을 보여 주셨다. 즉 대한민국 제2의 건축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셨고, 주님의 강한 능력과 믿음의 용사들의 강한 믿음으로 시온산 정상 개선문에 입성하는 것을 보여 주셨다. 멀지 않아 푸른집(청화대)을 점령 하고 있는 공산주의자 주사파 사단의 세력을 몰아내고 주님의 은혜와 믿음의 용사들(개혁자) 용기로 개선문으로 입성하여 제2의 복음과진리의 나라(대한민국)를 건국하여 땅 끝까지 복음에 증인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신다는 것을 성전(성령기도원)에서 꿈에 그림 한장으로 보여주셨다.(2019.8.17.새벽 김에스겔 목사)
(간증:한국의 최대의 세습교회 담임목사에 대한 정체성을 보여주셨다. 김정일같이 흰말을 탄 자 루시엘같이 자기 우상화된자로 교만의 마귀로 보여주셨다, 성령께서 회개하지 아니 하면 사랑의 징계로 그 아들을 친다는 것입니다, 그 아비 때문에 징계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의(욕심)를 불순종한다는 것입니다. 즉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 것을 가르쳐줍니다.(고전1;18)(2019.8,6)
(간증)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주님의 믿음의 용사들의 부르짖는 강력한 기도로 하늘에서 아름다운 집 한체가 내려와 안착하는 것을 보여 주셨다. 즉 대한민국 제2의 건축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셨고, 주님의 강한 능력과 믿음의 용사들의 강한 믿음으로 시온산 정상 개선문에 입성하는 것을 보여 주셨다
(간증)2019.10.3.일 광화문광장(이승만 광장)에서 애국집회에 충격(빰을 맞음)을 받아 사단 마귀를 뒤발(발 꿈치)을 무는(사단이 겁을 주기위해서 전광훈목사에게 난란 선동죄로..고소) 것을 그림 한장으로 보여주셨다.주께서 한국을 통해서 믿음으로 무장시켜 마지막때 성령의 늦은비 역사의 주인공을 만들기 위해 계시록10장과 11장에 나오는 두 증인 사역를 시작하기 위해 금강석과 정금을 만들기 위해서 주시는 강한 훈련인 것 가르쳐주셨다(2019.10.3.)
(간증) 한기총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의 주체로 청와대옆 광야교회에서 여리고성 함락 집회로 많은 목사님 (여호수아)들과 성도들이 함성과 부르짖는 능력의 기도를 하니까. 여리고 성이 무너진것같이 성안에 들어있는 주사파마귀들이 겁을 먹고 떨고 있는 그림을 주님의 성령께서 그림한장을 보여주셨다.즉 흰옷을 입은 마귀 할멈이 겁을 먹고 서서 오줌을 싸는 것을 보여주셨다.성령의 능력 기름부음(감람유 짜는기도) 많은 능력의 주의 종들의 함성과 기도능력으로 큰 산이 무너지는 그림을 한 장 보여주셨다.(슥 4:6-7.14) 2019.11.17. 성령기도원 김에스겔 목사.
(간증) 2019,12.1자 주일날 사랑제일 교회의 전광훈목사 주체로 광화문(이승만광장)집회에 대하여 주님의 성령께서 마가 다락방 성령강림같이 성령의 복음 핵 미사일로 보여 주셨다. 즉 주님께서 전광훈목사와 광야교회로 통해서 제2의 종교개혁 마지막 늦은비 성령의역사를 시작할것이다는 것을 그림 한장을 보여주셨다.(2019.12.2.대구 성령수도원 김에스겔 목사.)
(간증): 몇년(2006년)전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성전에서 주님께 원망으로 애절하게 기도하였다. 꿈에 주님께서 찾아왔어“고난이 유익이다”(약할 때 강하다)말씀을 들려주시며 복음 성가중“주님 예수 나의동산”복음성가와 찬송가202장을 들려주셨고, 환난으로 통해 주님을 만나게 됨을 감사해라고 하셨다. 주님께서 꿈에 에스겔 책을 보여주셨는데 나의 영이 에스겔서를 알게 하셨고. 에스겔 선지자 사명 파숫군 사명(영의 파숫꾼으로 복음을 지켜라고 말씀 해 주셨다,롬16:17-26.빌3:17-20.계시록3:20.)을 주셨다. 그리고 15년 사역에 대하여 칭찬으로 그림 한장을 보여주셨다. 즉 11톤 화물차량에 포도송이 열매가 반차가(마지막에 완차) 실어져 쌓혀 있는 것을 보여주셨다. 좁은 문 좁은 길로 끝까지 주신 사명 (에스겔 사명. 빚진자의사명)을 잘 감당하라고 힘을 주셨다. (눅22;42-43.고전 9:18-27.요한1서 2:15-17) 성령교회 김 종표 목사.아멘)
(간증:2018.7.중순경 주님께서 세상의 영웅과 호걸들과 바벨탑신앙(대형교회의 인본주의 신앙)의사람들을비유적으로 "흰 쟁반위에 담긴 똥 (배설물)등거리로 보여주셨다'.(요일2:15-17.계3:20-22)즉 천성가는 천로역전의 주인공과같이 좁은문, 좁은길 들어 가는것이 천국 가는 길 임을 가르쳐주셨다. 주께서 고린도후서 4장10-11절 말씀이 진리(교리)라고 문자로 꿈에 보여주셨다. (고후4:1-18)성령교회 김목사.2018.11.8.)
(간증: 20년전 사명을 받을 때 주께서 그림 한장으로 환상을 보여주셨다. 즉 넓은 평야같은 곳에 넓은들에 아침에 햇살에 무력 무력자라 나는 벼들을 보여주시면서 저들에게 열매를 맺게 사역해라는 사명을 주셨다. 그 20년 올해 가을에 그 벼들이 노란색을 황금색으로 물들어있는 것을 보여주셨다. 즉 열매 맺게 하는 것을 주님이 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셨다. 그 장소 그 자리에 순종하면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셨다.2018.12.2. 성령교회 기도원 김목사.)
(간증) 25년전에 처음 목사 사명을 받는후에 주님께서 사도 바울과같이 고후12장1절에 나오는 삼층천을 한번보여주셨다. 철야 기도하는데 나의 영이 육에서 빠져 하늘나라 보좌를 잠깐 보여주셨다. 즉 생명수강옆에 열매맺은 과일과 하나님은 보이지않고 하나님의보좌 뒤에 무지개를 보여주셨고 그리고 에스겔서 책을 보여주시면 에스겔 사명을 주셨다.목사인수 받은날 소직이 무릎끊고 있는데 주께서 "약콘같은 고구마"같은것을 주는데 소직이 "이것은여러수십억짜리"라면서받는것을그림한장으로보여주셨다. (계4;2-3.겔1:27-28)김에스겔목사.(2019.11.23.)
(간증) 2019,12.1자 주일날 사랑제일 교회 전광훈목사 주체로 광화문(이승만광장)집회에 대하여 주님의 성령께서 마가 다락방 성령강림같이 복음의 핵 미사일로 보여 주셨다. 즉 주님께서 전광훈목사와 광야교회로 통해서 제2의 종교개혁 마지막 늦은비 성령의역사를 시작할것이다는 것을 그림 한장을 보여주셨다.(2019.12.2.대구 성령수도원 김에스겔 목사.)
(67) 성경에 철저한 신앙
(사도행전17:1-9)
바울과 실라는 비록 빌립보에서 감옥에 갇히고 옷을 찢기고 벗긴 채 매로 얻어맞는 고난을 당했지만 루디아의 집에 교회를 세우게 되었고 빌립보 감옥의 한 간수와 그의 가정을 구원하는 놀라운 복음의 수확을 거둔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 그들의 선교지로 보여 주신 마게도냐 지방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는 중, 데살로니가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1. 성경을 가지고 강론한 바울
바울은 안식일에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는 일을 자기의 규례로 삼았습니다. 복음은 유대인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먼저 전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유대인들은 그들의 조상으로부터 메시야 사상이 내려 왔으며, 메시야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민족이었기 때문에 메시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에는 이방인들보다는 생소하지가 않으며 복음을 쉽게 깨달을 수 있게 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이 전하는 예수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공감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가는 곳마다 정작 환영해야 할 유대인들로부터는 배척을 받고 유대교로 귀화한 이방인, 곧 헬라인이나 여인들의 환영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이처럼 많은 무리들에게 효과 있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따르게 한 일에 대하여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바울이 효과적인 전도로 많은 열매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처럼 성경적인 철저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성경을 가지고 강론한 요지는 무엇이었습니까?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했다고 했습니다.
(1) 성경은 철두철미하게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책입니다. 예수님은 성경에 대하여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5:39).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도 하셨습니다. 이런 그의 말씀은 그가 능히 모든 성경의 주인공이란 사실을 증거해 주는 것입니다.
(2) 성경의 중심 사상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그의 부활에 있습니다. ‘그리스도 134 \ 17:1-9
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했다고 하는 말씀에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성경에서 영생을 풀 수 있는 비밀이 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비밀은 이미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뱀에게 저주하신 말씀 가운데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장차 메시야로 등장하실 여자의 후손에 대하여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네 씨’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큰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라’는 말씀에서 네 씨라고 하신 아브라함의 자손이 육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여자의 후손으로 태어나실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자의 후손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또 다윗의 혈통에서 태어나실 일에 대하여 그의 이름이 임마누엘로 불려질 것이며 그 징조로써 그가 처녀의 몸에서 잉태될 것임을 예언하셨습니다(사7:14).
(3) 구약은 오실 메시야의 예언이요 신약은 오신 메시야에 대한 증거로써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메시야의 사명을 이루실 하나님의 아들이 누구이신 가에 대하여 증거한 구약의 예언을 예수께서 온전히 이루심으로 인류의 메시야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증명되었으니 이를 증거하여 생명을 얻는 역사를 이루기 위해 신약 성경이 기록된 것입니다.
2. 성경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보고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신 계시로 ‘자연 계시’와 ‘특별 계시’가 있습니다. 우주 만물에는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 자연 계시가 충만하지만 그 계시의 지식으로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생명을 얻는 축복에까지는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자연 계시 속에는 생명과 영생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성경에만이 여자의 후손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부활하시어 우리의 구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아니고서는 인류에게 참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계시를 어디서나 찾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이야말로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게시인 것입니다.
결론 : 바울은 이 성경의 뜻을 풀어 증명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이 주신 예언의 뜻을 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구원 받아야 할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죄로 죽게 된 인간의 비참한 처지를 성경에서 발견하여 올바른 사죄의 길과 영생의 길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설교의 특색은 바로 이 점에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풀어 예수가 성경에서 증거해 주시는 메시야이심을 증명한 것입니다. 그 결과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들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랐다고 했습니다.
135 \ 17:10-15
(68) 배뢰아 성도들의 모범
(사도행전17:10-15)
데살로니가에서 어려움을 겪은 바울과 실라는 밤에 형제들의 권면에 따라 베뢰아로 가게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 베뢰아까지는 100여 킬로의 거리가 있었지만 바울과 실라는 오직 복음을 전하려는 뜨거운 심정으로 그 곳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곳에서 디모데와 합류하여 선교 팀을 보강했습니다. 베뢰아에서도 안식일에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게 되었는데 이곳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과는 달리 복음을 받아 드린 사실에 대하여 언급해 주고 있습니다.
1.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은 베뢰아 사람들
베뢰아 사람들의 칭찬이 여러 가지로 기록되어 있는데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신사적이라고 했습니다. 신사적이란 말은 유게네스(εὐϒενἠς)로 마음이 고상하고 진실하며 인격적으로 교양이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복음을 받는 태도는 여러 가지입니다. 그런데 베뢰아 사람들이 복음을 받는 태도는 간절했다고 했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라고 했습니다. 간절이란 말은 지성스럽고 절실하다는 말입니다. 헬라어에 나온 이 말의 뜻을 보면 ‘열심’ 또는 ‘앞을 향한 돌진’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1)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을 때 하나님이 그의 마음 문을 열어 주십니다. 복음은 마음 문이 열려진 사람들에게만 들어갑니다. 세상 지식은 우리의 두뇌 속에 들어가지만 하나님의 지식은 마음에 들어가기 때문에 마음 문이 열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루디아의 경우에서도 ‘주께서 그 마음을 열었다’고 했습니다.
마음 문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강퍅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 문은 결코 열리지 않습니다.
(2)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깨닫지 못한 말씀은 심겨지지 않은 씨앗과 같습니다. 아무런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3)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믿음을 주십니다. 믿음을 갖는 시간은 오래지 않습니다. 간절함으로 말씀을 받아 드릴 때 그 말씀이 그 136 \ 17:10-15
에게 믿음을 심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건성으로 듣는 사람에게서 진실한 믿음을 찾을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마음에서 역사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2. 날마다 성경을 상고한 베뢰아 사람들
베뢰아 사람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복음을 받아 드렸을 뿐 아니라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상고란 말은 아나크리크(ἀνακρἰκω)로 이 말의 뜻은 신중하고도 정확한 조사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들 베뢰아 사람들은 바울로부터 들은 복음이 과연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고 했습니다. 즉 그들은 들은 말씀을 성경에 비취어 신중하고도 정확한 조사를 하여 확인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베뢰아 사람들이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는 말은 바울이 그들에게 전한 메시야에 대한 바울의 증거로 베뢰아 사람들은 이 증거를 토대로 성경에 비취어 연구한 것입니다.
성경을 상고하는 일은 곧 성경을 연구하는 바른 길입니다. ‘여호와의 행사가 크시니 이를 즐거워하는 자가 다 연구하는 도다’고 하신 말씀은 성경을 상고한다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어떤 문제가 제기되어 그것을 알고자 할 때 이것이 그런가 하여 성경을 자세히 상고한다면 그 문제에 대한 성경적인 해답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제대로 상고하는 일은 이단의 미혹에 빠지지 않는 가장 바른 길입니다. 이단의 특징은 성경 전체에서 문제의 해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좁은 성경 구절에서 문제의 단안을 내리기 때문에 위험하기 그지없는 것입니다.
성경을 상고하는 일은 날마다 계속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계속적인 연구를 말합니다. 우리들이 성령을 읽을 때 그 짝을 찾아 가면서 상고해 나간다면 우리의 성경 지식은 놀랍도록 성장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계속적인 성경의 상고, 계속적인 기도, 계속적인 말씀에 대한 순종이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 :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성경을 상고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인생의 참된 기쁨과 소망이 거기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는 우리가 알아야 할 신령한 모든 것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말씀을 연구하면 할수록 그리스도를 깨닫게 되며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그를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베뢰아 사람들의 이 같은 모범적인 자세를 본 받는 성도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69) 아덴 사람의 종교심
(사도행전17:16-34)
베뢰아에서 복음을 전한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이곳에까지 찾아와 심한 소동을 버림으로 이에 위험을 느낀 베뢰아의 제자들이 바울을 인도하여 아덴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아덴이란 도시는 헬라 반도 중동부, 앗티카 지방에 위치한 도시로 그 기원의 역사는 매우 오래인 것입니다. 이곳에 있는 역사적 유물에 의하면 주전 4,5세기경에 이룩한 조각, 문학, 예수, 수사학은 이미 세계 최고에 이르렀던 터였습니다. 이 도시는 소크라데스, 플라톤의 출생지요 아리스도텔리스, 에피쿠루스, 제논의 제 2의 고향으로 알려진 바와 같이 세계적 철학 인의 산실이기도 한 것입니다.
1. 아덴에 등장한 바울의 활동
바울이 아덴에서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리는 중, 아덴 성중에 다녀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덴이란 도시는 바울이 다녀 본 어느 도시보다 더 전 도시 곳곳에 우상이 세워져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 당시 아덴에는 그 모든 조각, 예술품, 문화적 유산 물들이 다 허탄한 우상으로 장식된 것들이어서 바울의 마음에 분함을 갖게 했습니다.
(1) 바울은 아덴의 형편에 따라 복음을 전하는 일에 양면 작전을 세웠습니다. 그는 회당에서는 유대인들과 경건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또 시장에 나가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했습니다. 바울은 마음에 분한 그의 의로운 감정을 우상을 섬기는 아덴 시민들과의 토론을 통해서 전달했던 것입니다.
(2) 바울이 상대한 아덴의 철학자는 에베구레오와 스도이고 학파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에베구레오 학파는 네피쿠스 학파로 이 철학파는 인생의 최고의 목적으로 쾌락을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신관은 신의 존재는 인정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 신이 인간 생활에 전혀 관여치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인 스도이고 학파는 스토아 학파로 키프로스의 제논이 이 학파의 주창자였습니다. 이들은 범신론자들로 신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하나의 정신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들과 신의 존재나 우상에 대한 이론적인 논쟁을 전개한 것입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전해 준 이야기는 그들의 철학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예수와 또 그 몸의 부활하심을 전하였으므로 그들은 이상히 여기며 이상한 신들을 전하는 사람 인가고 의아한 눈초리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이론이 능히 그들 138 \ 17:16-34
의 주장을 이겼으므로 바울에게 ‘말장이’라는 딱지를 부쳐 준 것입니다.
2. 아레오바고에서의 바울의 논증
아덴의 이들 철학자들은 바울이 전하는 이상한 철학적인 이론을 듣고 한편 의아해 하면서 다른 한편 그가 전하는 철학 사상에 대하여 더 상세한 내용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붙잡아 아레오바고란 곳으로 데려갔습니다. 아레오바고란 아덴 사람들의 권위 있는 법정을 의미합니다. 이 법정은 패판권도 행사되었지만 새로운 학설에 대한 일연의 발표장으로도 활용되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전하는 새로운 교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알고자 하노라고 말하면서 바울을 이 법정에 세운 것입니다. 바울의 이 아레오바고에서의 논증을 아레모바고의 연설이라고 말합니다.
(1) 바울은 아덴 사람들에게 종교심이 많다고 치켜세워 주었습니다.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고 했습니다. 바울의 복음은 이처럼 아덴 사람들의 신관에서부터 그 맥을 풀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아덴 시내를 두루 다니면서 한 신단을 보게 되었는데 그 단에 새긴 것을 보니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씌어진 곳도 있었으므로 그들이 알지 못하고 있는 참 하나님에 대한 증거를 이 알지 못하고도 그들이 섬기는 이 신의 경우와 연결시켜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한 것입니다.
(2) 참 신이신 하나님의 거처는 손으로 지은 전이 아니요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분도 아니심을 증거했습니다. ‘하나님은 높고 거룩한 곳에 계시며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신다’고 하셨습니다(사57:15). 바울이 그들에게 전한 하나님의 증거는 ①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신 하나님 ② 이 인류로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신 하나님 ③ 거주의 한계를 정하신 하나님이심을 증거하고 하나님이 이렇게 하심은 사람들로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이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심이 아니라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3) 그리고 바울은 그들에게 하나님이 이제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을 찾을 만한 분명한 증거를 주셨다고 말했습니다.
결론 : 아레오바고에서의 바울의 유명한 연설은 끝났습니다. 바울은 세계의 철학의 도시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철학적으로 논증한 것입니다. 바울이 전한 이 같은 사실에 대해 그들은 기롱도 하고 배척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열어 주신 사람들은 그와 친하여 믿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바울의 선교 방법을 배워 효과 있게 복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139 \ 1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