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과미술관
김창희
아주 가끔씩 인기척을 느낄 때마다
새떼들이 날아올랐다
엉킨 나뭇가지 사이로
조각난 하늘이 몸을 흔들었다
그 추임새에 깃털을 세우던 산비둘기가
구성진 가락으로 몸을 감추었다
오래도록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 시간 속으로
숲속의 길은 가려지기 일쑤였다
오뉴월 햇살이 발갛게 익어 갔다
성숙의 의미를 놓치곤 했던 갈림길이 구구구
낮은 포복자세로 다가왔다
안내판도 없는 오르막길에서
가시 돋친 조각상 하나가 불쑥 가슴을 내밀었다
멈춰서야만 볼 수 있는 거리에 그가 있었다
먹먹해진 가슴으로 허릴 펴보았다
바라보기 좋은 그만치에
산그림자 깊은 적막이
단청에 휘감긴 집 한 채를 안고 있었다
기이한 침묵이 나를 손짓했다
색(色)과 묵(墨)이 오르내린 전시실 계단에서
숨 가쁘게 파랑새를 쫒던 눈먼 나를 만났다
실체는 없고 잔상만 남은
깊은 산속 구름에 휘감긴 새의 깃털을 보았다
숨 멎을 듯 잠깐씩 흘러가는 나는 어느 적막의 후예였던가
인기척이 사라진 전시실 한 복판에서
늦은 걸음을 재촉하던 나는
미술관 문턱 옆 검은 휘장에 가려진 비밀의 방을
지나치지 못했다
거기에선 끊임없이 열린 길의 속도와
수많은 밀실의 창으로 떠밀리는 미러볼 영상이
터널 속으로 반복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차마 발설하기 어려운 심장의 고동소리가
고요와 느림으로 이룩한 적막의 공식이
3평 남짓한 공간 속에서 출렁이고 있었다
옥과미술관 검은 휘장 속에 헝클어지고 있었다
미술관을 문을 나서다 문득 적막의 온도를 재 보았다
오뉴월 한시름이 빛의 속도로 ‘묵언수행 중’
팻말을 내걸었다
* 옥과미술관 : 전남 곡성에 있는 산중 도립미술관
김창희
강원 평창 출생, 동국대 문예대학원 문창과 졸업.
1999년 <시대문학> 시 등단, 시집 <짧게 혹은 길게> 외.
한국시문학상, 숲속시인상 등 수상. 계간 <문학과창작> 편집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