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교리문답 사도신경3
제3조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니다.
성령이 우리를 거룩하게 만든다.
성령은 우리에게 구원을 선물로 주시며 그리스도께 인도한다.
교회는 성령의 도구인 동시에 신자의 어머니다.
그리스도가 선포되지 않는 곳에는 성령도 교회도 없다.
교회는 그리스도인의 공동체 또는 모임이다.
성령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한 지체가 된다.
교회는 용서의 장소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을 한 발 더 내디딥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 있는 죄를 용서하는 사죄 선언, 그리고 모든 복음에 서려 있는 위로의 선포를 통해 일어납니다. 바로 여기에 성례전과 말씀 선포가 무엇인지, 도대체 복음이란 무엇인지, 그리스도인의 직무가 무엇인지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죄 용서가 끊임없이 필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비록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얻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리스도의 교회 공동체 안에 있는 우리는 여전히 목구멍까지 가득한 정욕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결코 무죄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바로 이곳에서 우리의 양심은 죄 용서의 말씀과 표징을 통해 매일 위로받고 회복되어야 합니다. 이 일은 우리가 살아 있는 한 계속되어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죄에 사로잡혀 있지만 성령은 우리를 상하지 않도록 보호하십니다. 왜냐하면 죄 용서의 권세가 있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성령과 함께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신다.’는 것이며 둘째는 ‘우리가 서로를 용서하고 짐을 함께 지며 돕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 용서가 없는 곳이라면 어디나 ‘교회 밖’입니다. 복음이 있다면 죄 용서가 있다는 뜻이고, 복음이 없다면 죄 용서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죄 용서가 없는 곳은 교회가 아닙니다. 그런 곳에는 진정한 거룩함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복음과 죄 용서 없이 자기 행위와 공로로 거룩함을 얻으려는 자가 있다면, 그는 스스로를 교회에서 축출하고 분리시키는 꼴이 됩니다.
성령은 이미 시작된 거룩을 끝내 완성시킨다
거룩한 일들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점차 커집니다. 바로 이곳에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의 육체는 사망 가운데 정결하지 못한 모든 것과 함께 장사될 것이지만, 그 육체는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때에 완전한 거룩에 이를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 중간기에 있습니다. 성령은 말씀을 통해 일하시며, 매일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이 일은 우리의 생명이 더 이상 용서가 필요 없고, 온전하고 순전하여 거룩하게 될 그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그날에 우리는 죄와 죽음과 모든 불행이 제거된 상태로 새로운 생명,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 안에는 순전함과 정의만 가득 차 있을 것입니다. 보십시오. 성령이 하시는 일과 직무는 바로 이것입니다. 그분은 거룩함을 이 땅에서 시작하여 매일 증대시키시는데, 두 가지 방편 곧 그리스도의 교회와 죄 용서를 통해 일하십니다. 우리가 썩어 없어질 때 홀연히 성령은 그분의 일을 완수하실 것인데, 끝내 이 두 가지 방법을 통해 우리를 영원히 보전하실 것입니다.
성화의 사역은 계속 진행 중이다
창조는 이미 주어졌고, 구원도 이미 예약(결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사역은 종말이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진행됩니다. 이 일을 위해 지상의 거룩한 교회를 모으셨고, 교회를 통해 모든 것을 말씀하고 행동하십니다.
성령의 사역이 진행 중에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모으는 그분의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모든 이에게 죄 용서를 나누어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습니다. 성령은 말씀으로 우리를 모으고, 죄 용서의 믿음을 주십니다. 우리를 둘러싼 이 믿음은 더욱 커지고 강해질 것입니다. 마지막 그때에 세상의 모든 불행은 사라지고, 우리는 온전하고 영원한 생명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주시는 신앙 안에서 이 일을 간절히 소망합니다.
* 세 조항의 결론
신조(경)의 세 조항은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보여준다.
우리에게는 지금 매우 짧지만 지극히 풍성한 말씀으로 묘사된 신조(경)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본질과 그분의 뜻과 그분이 하시는 일에 대한 밑그림입니다. 여기에는 우리의 지혜와 생각과 이성을 뛰어넘는 완전한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온 세계 사람들이 ‘육’으로 하나님의 존재유무와 그분이 무엇을 하셨는지, 그리고 그분의 생각과 뜻은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했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신은 이 모든 것이 집약되어 있는 신조를 들고 있습니다.
이 신조의 세 조항에는 하나님께서 열어 보여주신, 아버지의 마음속 깊은 심연과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그분이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우리를 구원(죄와 사망 곧 불행으로부터의 해방)하고 거룩하게 만드는 데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게다가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주셨고 누리게 하셨습니다. 또한 그분의 소유로 삼기 위해 아들과 성령을 주셨습니다. 이미 언급했다시피,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결코 아버지의 긍휼과 은총을 깨닫지도 이르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거울입니다. 이 거울은 아버지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그분이 없다면, 아버지는 진노로 가득하고 끔찍한 심판관으로만 보일 것입니다. 또한 성령이 계시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에 대해 무지할 것입니다.
이 세 조항은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을 구분하는 경계선이다
신조는 이 땅 위에 사는 그리스도인과 그렇지 않은 자들을 구별해 줍니다. 교회 밖에도 신실한 신앙으로 일종의 신을 믿으며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아는 자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들에게 신은 사랑과 선하심이 아니라 영원한 진노와 저주의 신으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주님이신 그리스도가 없으며, 성령을 통한 은사의 조명을 은총으로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은 모든 인간에 주어졌으나, 신조는 그렇지 않다
이제 여기서 당신이 발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신조의 가르침은 십계명과 다르다는 점입니다. 십계명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가르칩니다. 그러나 신조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고, 무엇을 주셨는지를 가르칩니다. 십계명은 모든 인간이 날 때부터 가슴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행동’이 빠져 있습니다. 신조는 다릅니다. 제아무리 똑똑한 지혜자도 이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만이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은 그리스도인을 만들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요구를 지키지 못하면 그분은 우리에게 그저 진노와 무자비한 신으로 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조의 가르침은 다릅니다. 은총으로 우리를 순전하게 만들며, 거룩한 길로 인도하며,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
여기 주어진 신조의 깨달음은 모든 하나님의 계명의 본질인 기쁨과 사랑을 얻게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십계명을 지킬 수 있도록 항상 동행하며 그분의 능력을 성령의 선물로 주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모든 피조물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모든 공로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은 그분의 모든 은사를 주십니다.
신조는 성경을 이해하는 열쇠다
신조의 전체 내용을 이해했다면, 이제 성경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스스로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통해 계속해서 더 많은 이해가 쌓이고 자라게 하십시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이것을 설교하고 배우기를 매일 그치지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