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말씀답게
데살로니가전서 2:13 2023/08/27 성령강림 후 제13주
2: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평안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자녀들과 이웃들에게
늘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민족이 가진 전통 중에 ‘풍류’라는 것이 있습니다.
‘놀되, 풍치가 있고 멋스럽게 노는 것’을 우리가 ‘풍류’라고 말합니다.
시를 지으면서 놀고, 그림을 그리면서 놀고, 악기를 연주하면서 놀고, 노래를 부르면서 노는 것이지요. 영화 ‘서편제’(임권택, 송화, 동호)의 마지막 장면이 이것을 아주 잘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를 거쳐 오면서 우리 민족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놀이 문화, 그리고 누구나 누릴 수 있는 ‘풍류’가 사라졌습니다.
그 대신 그 빈자리에 ‘퇴폐와 향락’이라는 저급 문화와
‘프로(컬렉션)’라는 고급문화로 양분되게 됩니다.
그 어디에서도 서민들의 놀이 문화였던 ‘풍류’를 찾아 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라는 세례명을 가진 김구 선생님이 대한민국의 건국을 앞두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내가 남의 침략을 받아 가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우리 생활을 풍족하게 할 만큼의 넉넉함과 남의 침략을 막을 수 있을 만큼의 힘이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풍류를 바탕으로 한)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인류가 현재 불행한 근본적인 이유는 도덕적 양심이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마음만 가지게 되면 현재의 물질적 풍요로움으로 20억 인구가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이 정신을 길러 내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그러니 시를 지으면서 놀고, 그림을 그리면서 놀고, 악기를 연주하면서 놀고, 노래를 배우면서 품위 있게 노는,
풍류의 힘, 문화의 힘을 기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자, 여기서 질문 들어갑니다.
풍류를 즐겼던 우리 조상들은 겨울에 내리는 비를 무엇이라고 불렀을까요?
‘술비’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햇곡식으로 지은 술, 그 술 한 잔을 마시기에 좋은 비라는 뜻입니다.
풍류가 있지요.
그럼 봄비는 무엇이라고 불렀을까요?
‘일비’라고 불렀습니다.
일하면서 맞아도 신나는 비라는 뜻입니다.
하나 더 질문을 드려볼까요?
지금처럼 장마철에 내리는 여름비는 무엇이라고 불렀을까요?
‘잠비’라고 불렀습니다.
한 숨 쉬어가자는 뜻입니다.
일종의 여름 휴가지요.
어때요?
잘 쉬셨습니까?
오늘우리가 살펴보고자하는 교회는 유럽에 두 번째로 세워진 교회 ‘데살로니가 교회’입니다. 늘 말씀드렸듯이,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데살로니가 교회는 좋은 기억을 간직하게 하는 참 좋은 교회였습니다.
늘 미소를 머금게 하는 교회였지요.
왜냐하면 이방인의 전도자 사도 바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늘 아낌없는 도움을 주었던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편지들과 달리,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돋보이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바울의 칭찬이었습니다.
어떤 칭찬이었는지, 다시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살전1:1 바울과 실루아노(실라)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1:2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1:3 ①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②사랑의 수고와 ③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여기에 보면 교회공동체를 건강하게 떠받치는 세 개의 기둥이 나옵니다.
믿음의 기둥
사랑의 기둥
소망의 기둥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기둥이 균형을 이룰 뿐만 아니라 아주 든든하게 세워진 교회가 있었는데 바로 데살로니가교회였다는 것입니다.
①믿음의 기둥입니다.
믿음으로 이룬 일, 그 일들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②사랑의 기둥입니다.
사랑으로 애쓴 일,
이 역시 하나님 앞에서 칭찬 받아 마땅했다는 것입니다.
③소망의 기둥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으로 견딘 일,
이 역시 모든 교회에 칭찬 받아 마땅했다는 것입니다.
엄청난 칭찬이지요.
그래서 7절입니다.
살전1: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그리스 북쪽 마케도니아)와 아가야(그리스 남쪽 아카이아)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한 마디로 데살로니가 교회는
모든 교회의 본이 되는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이룬 일, 사랑으로 애쓴 일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으로 견딘 일에 있어,
본보기가 되는 아주 모범적인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어디서 이런 힘은 얻게 된 것일까요?
교회 위치가 좋아서였을까요?
교회의 지도자인 목사와 장로를 잘 뽑아서였을까요?
아니면 물질을 부담할 수 있는 성도들의 구성원이 좋아서였을까요?
아닙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모든 교회 앞에서 칭찬받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오늘 설교의 제목처럼 말씀을 말씀답게 여기는 믿음의 행동 때문이었습니다.
살전2: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①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②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첫째입니다.
사도들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받을 때에,
사람의 말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는 아멘의 귀’가 데살로니가 교회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설교자로서 바울은 이것이 너무나도 고맙고 감사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의 말을 건네시는 방법은 참 다양합니다.
자연을 통해서도 말씀하시고, 또 어떤 사건을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물론 성경을 통해서도 말씀하시지요.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의 말을 건네시는 방법으로 택한,
아주 쉬운 방법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설교입니다.
사람을 보내 자신 말을 전하는 방법이지요.
그래서 다른 말로 설교를 대언, 또는 예언이라고도 부릅니다.
제가 지금 여기 서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침묵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잘 들려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는 설교자의 책임이겠지요.
설교자의 무지와 불성실이 문제겠지요.
하지만 책임이 꼭 설교자에게만 있는 것 갖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회중들도 문제가 있겠지요. 그래서 헨리 데이빗 소로우라는 분이 <구도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설교를 듣는 회중들에게 이런 권면을 했습니다.
당신의 삶을 신문이 지배하게 하지 마십시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지배당해야할 것은 세상의 잡다한 소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생명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핸드폰 들어다 보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가까이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사도 바울로부터 칭찬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래서 믿음으로 이룬 일, 사랑으로 애쓴 일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으로 견딘 일에 있어,
본보기가 되는 아주 모범적인 교회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사도가 전하는 말, 설교자가 전하는 말을 사람의 말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십시오.
두 번째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좋은 교회, 본보기 교회가 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아멘’의 삶이었습니다.
‘아멘’으로 역사하는 믿음의 행동입니다.
(다시)살전2: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①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②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요한복음 1장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 ‘그리스도 예수’가 되었던 것처럼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멘의 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삶 속에서 그리고 우리 교회 공동체 속에서 하나님 말씀이 믿음의 행동으로 꿈틀 꿈틀 살아 움직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말씀이 꿈틀 꿈틀 살아 움직이는 믿음의 행동, ‘아멘의 몸’이 될 수 있을 까요?
바울이 제시한 해법은 이것이었습니다.
(새)살전5:14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①무질서하게 사는 사람을 훈계하고,(속회를 드리는 이유)
②마음이 약한 사람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사람을 도와주고,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십시오.
5:15 ③아무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도리어 서로에게, 모든 사람에게, 항상 좋은 일을 하려고 애쓰십시오.
5:16 ④항상 기뻐하십시오.
5:17 ⑤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5:18 ⑥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5:19 ⑦성령을 소멸하지 마십시오.
5:20 ⑧예언을 멸시하지 마십시오.
5:21 ⑨모든 것을 분간하고, 좋은 것을 굳게 잡으십시오.
5:22 ⑩갖가지 모양의 악을 멀리 하십시오.
그러면 23절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이 임하게 됩니다.
(새)살전5:23 평화의 하나님께서 친히, 여러분을 완전히 거룩하게 해 주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흠이 없이 완전하게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
5:24 여러분을 부르시는 분은 신실하시니, 이 일을 또한 이루실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우리가 우리의 놀이문화였던 ‘풍류’를 잃어버린 것처럼
데살로니가 교회로부터 넘겨받지 못한 신앙의 전통이 하나 있습니다.
말씀을 말씀답게 하는 ‘아멘의 문화’입니다.
저는 이 ‘아멘 문화’를 회복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받을 때에,
사람의 말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아멘 문화’를 회복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 장정교회가 행하는 모든 일이
믿음으로 이룬 일
사랑으로 애쓴 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으로 견딘 일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