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전해준 말>
너도 견디고 있구나
어차피 우리도 이 세상에 세 들어 살고 있으므로
고통은 말하자면 월세 같은 것인데
사실은 이 세상에 기회주의자들이 더 많이 괴로워하지
사색이 많으니까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
- 황지우, <겨울 산>
----------------------------------------------------------
지난 월요일 감리교 내 대안목회를 함께 고민하는 젊은 목회자 그룹인 ‘도반’이 저희 교회를 찾아주었습니다. 각 지역에서 나름대로 건강한 목회를 지향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분들이어서인지 다녀가신 후 내내 좋은 기운이 제 마음에 머물렀습니다. 어려운 시절에 정직하게, 신실하게 목회하고 있는 목사님, 전도사님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될까 싶어 따뜻한 추어탕을 대접해드렸습니다. 다들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니 흐믓했습니다. 식사 후 교회로 돌아와 거룩한 독서를 통한 묵상기도회 시간을 갖고 의성서문교회 목회 이야기를 형식없이 편안하게 나누었습니다. 목회 이야기는 곧 사는 이야기인지라 2018년 개척 이후 지금까지의 교회에서 지역에서 일구어 온 이야기들을 있는 그대로 나누었습니다. 그간 좋은 일만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삶은 희노애락이 뒤섞인 놀이터 아니던가요?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지금의 의성서문교회를 있게 한 것이겠지요. 아직 도상에 있는 어설프기 짝이 없는 교회이지만 교우들 덕분에 자랑스레 이야기할만한 것들이 있어 내심 뿌듯했습니다.
사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저 직접 부딪히며 몸으로 배우고 익혀나가게 되는 과정의 축적인 것이지요. 그래서 힘들다고 그냥 주저앉아버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견디기 힘든 순간이 불쑥불쑥 우리에게 찾아오곤 합니다. 어쩌면 삶의 진보는 잘 견뎌낸 이의 몫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 번 주어진 인생인데 무의미로 그치게 된다면 얼마나 허망할까요? 우린 잘 견뎌내야 합니다.
황지우 시인은 겨울 산을 걷다가 이 매섭고 혹독한 추위를 산은 말없이 “견디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산에는 무수한 생명이 서로 기대어 살아갑니다. 겨울 산은 휑해 보여도 생명의 박동은 숨죽여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시인은 우리의 생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 세 들어 살고 있는” 것이라 합니다. 세 들어 사는 삶에 고통이라는 것은 일종의 “월세 같은 것”이라네요. 월세를 반드시 지불해야만 그곳에서 살 권리가 주어집니다. 고통은 그런 것이랍니다.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고통 없이는 삶이 불가능하다는 말이기도 하겠지요. 그래서 삶은 견뎌내는 자의 몫입니다. ‘기회주의자’와 ‘사색’이란 말이 잘 어울리지는 않지만, 사색을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것’으로 생각해보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그렇게 머리를 굴리며 살아가게 되면 삶이 복잡해지고 괴로워지기 마련입니다. 마지막 연이 이 시의 결론입니다.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 이 단순한 문장은 기회주의자의 복잡스러운 삶과 대비됩니다. 진리는 단순한 법입니다. 고통이라는 월세를 내야만 하지만 집은 언제나 마음 편히 다리 뻗고 쉴 수 있는 곳이지요. 전쟁 같은 세상에 시달리다가도 쉼과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집이 있어 인생은 그나마 살만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겨울 산은 추위와 헐벗음에 맞서 치열하고 혹독하게 살아야 하는 전쟁터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도 뭇 생명이 기대어 쉴 수 있는 안식처이기도 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혹독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부디 잘 견뎌내기를.. 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기를... <2021.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