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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특집] <지브라 크로싱><페르소나> - 권서연 ♣ 월간 《문예마루》 제9호(2026. 7)
지브라 크로싱* 외 1편 권서연 푸른 슬레이트 소리에 나는 허기진 얼룩말처럼 입을 크게 벌리기로 했어 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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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라 크로싱* 외 1편
권서연
푸른 슬레이트 소리에
나는 허기진 얼룩말처럼 입을 크게 벌리기로 했어
선 밖으로 밀려난 남자는
밀물과 썰물의 소음에 긁혀 외줄로 출렁거리고
굴절된 얼음의 문장
냉동 관절의 갈기를 화려하게 흔들던 여자는
컷아웃,
힐에 밀려 넘어졌지
도가머리 청년들이 빨려 들어간
그럴듯한 코인 맨홀의 유혹
키 작은 태양이 돌아서자
가방 멘 중년의 어깨가 미끄러지며 흘러내렸어
달그림자까지 그러모아
도시의 폐지를 쌓는 늙은 수레의 여자처럼
내 앙상한 뼈대가 오롯이 드러나는 밤
눈 부릅뜬 채
새파랗게 증발하는 신호등을 쫓던 발바닥마다 물집이 차오르고
온종일 모래 이빨에 찔린 사람들은
갈라진 금 위에서 비상구를 찾았어
밤의 라인을 따라 죽었던 별들이
되살아나는 시간
누가 부르고 싶었던 노래였을까
내 입에서 얼룩말 한 마리 튀어나와
뚜벅뚜벅 보폭을 키우며
아이들이 자라는 흰 숲으로 가고
피부에 새겨 둔 뭉개진 화살표엔
새순처럼 돋아나는 발자국이 다시 선명하게 찍히기 시작했어
딸깍,
슬레이트** 의 공명음이 들려왔어
*Zebra Crossing, 횡단보도
** 영화나 드라마에서 녹음의 시작을 알리는 시청각적 신호
페르소나
내 안엔 잠들지 않는 짐승 하나 산다
밤의 길항으로
문을 찢으려는 날것의 발톱
표정 없는 옷을 출근하듯 입고
안부를 덧칠하고
안녕의 눈빛을 골라 쓴다
숨처럼 표피처럼 들러붙은 일체
해일이 너의 뜰을 덮치지 않으려 쌓아 올린
말숙한 방파제는
젖은 눈물을 말린 지독한 예의
너의 숲을 지키기 위해
나를 정중히 개긴 체온 같은 가면
허울 속에 익어가는 붉은 밀어
식은 거울 앞에서
겹겹이 잠가둔 알록달록 단추를 풀어헤칠 때
설핏 스치는
거울 속 가느다란 실핏줄
무른 갈퀴에 허우대는 나를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