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좌선의(坐禪儀)
제15장 마치는 말
故 古人云, 若無定力, 甘伏死門.
掩目空歸, 宛然流浪.
幸諸禪友, 三復斯文, 自利利他, 同成正覺.
그러므로 고덕이 이르셨느니라.
“만약 선정력이 없다면 죽음의 문턱에 맥없이 끌려가느니라.”
한번 눈 감으면 헛되이 돌아가 그대로 (생사윤회의) 물결에 떠밀리게 되느니라.
바라건데,
우리불자 여러분 그리고 이글을 읽는 연자들이여,
이 글을 두 세번 반복해 읽고 자리리타하여 동성정각하시길.
《강설》
자리리타는 나도 이롭고 남도 이롭다는 대승 보살의 정신이다.
동성정각은 모두가 한날한시에 성불한다는 뜻이다.
※ 다음은 참고할만한 내용이다.
선방 입중5법(入衆五法)
대중 처소(處所)에서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규칙
첫째, 하심(下心). 스스로는 마음을 낮춘다.
둘째, 자비심(慈悲心). 다른 이는 자비심으로 대한다.
셋째, 공경심(恭敬心). 상석에 대하여는 경의를 표한다.
넷째, 지차제(知次第). 대중생활에서 자기 순서를 알아 지킨다.
다섯째, 불설여사(不說餘事). 화두 공부 외에는 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우바리 존자 게송
수구섭의 신막범(守口攝意 身莫犯)
여시행자 능득도(如是行者 能得道)
입은 굳게 다물고 뜻은 거두며 몸으로는 허물을 짓지 않나니,
이러한 행자는 도를 잘 깨달을 것인저.
아란야 수행 5과
수행에서는 원심력과 구심력을 타서 지혜롭게 옛사람이 간 길을 따라가면 좋다.
그렇지 않은 억지 공부는 피곤해서 몸에 병이 생기기 쉽다.
1, 2, 3, 4, 5를 살펴본다.
1, 진정(眞正) 견해
공부인이 참되고 바른 견해가 없다면 죽은 사람이며,
만약 진정 견해를 갖춘 범부 중생이라면 불조의 안목과 같다.
2, 부처님과 달마 대사의 가풍
6년을 묵언하신 석가모니 부처님과 9년을 좌선하신 달마 대사의 이 가풍은
큰 의심으로 크게 깨닫는다.
3, 삼귀의
무형(無形)의 부처님께 귀의하여 귀의불 양족존
무욕(無慾)의 가르침에 귀의하여 귀의법 이욕존
무쟁(無諍)의 대승가에 귀의하여 귀의승 중중존
4, 성훈(聖訓) 4조(條)
첫째, 이웃에게 불손하고 부처님께 예배하거늘, 무슨 공경을 그렇게 하겠는고?
둘째, 내 마음과 천지가 다 알거늘, 무슨 꾸밈말을 그렇게 하겠는고?
셋째, 부지런하고 검소하면 복이 절로 모이거늘, 무슨 행복과 불행을 그렇게 말하겠는고?
넷째, 생사윤회를 끊는 반야 지혜에는 모양과 이름이 없거늘,
무슨 번다한 말을 그렇게 하겠는고?
5, 아란야 5계
첫째, 손에는 일을 줄일 것이며,
둘째, 몸에는 소유를 줄일 것이며,
셋째, 입에는 말을 줄일 것이며,
넷째, 대화에는 시비를 줄일 것이며,
다섯째, 위에는 밥을 줄일 것이니라.
順治皇帝 出家詩(순치황제 출가시)
1
天下叢林 飯似山(천하총림 반사산)
鉢盂到處 任君餐(발우도처 임군찬)
黃金白璧 非爲貴(황금백벽 비위귀)
惟有袈裟 被最難(유유가사 피최난)
천하 총림(叢林) 공양은 산만큼 쌓여
곳곳마다 발우로 내줄 줄이야!
황금 백옥 이것이 귀하지 않네
가사를 얻어 입기가 무엇보다 어렵네.
2
朕乃大地 山河主(짐내대지 산하주)
憂國憂民 事轉煩(우국우민 사전번)
百年三萬 六千日(백년삼만 육천일)
不及僧家 半日閒(불급승가 반일한)
짐은 산하 대지의 주인공이나
국사 걱정 때문에 번거로움 뿐!
길어봐야 백년의 삼만 육천일
그래도 한가한 절집 반나절에 비할까.
3
悔恨當初 一念差(회한당초 일념차)
黃袍換却 紫袈裟(황포환각 자가사)
我本西方 一衲子(아본서방 일납자)
緣何流落 帝王家(연하류락 제왕가)
애당초의 한 생각 후회스럽네
가사 대신 곤룡포(袞龍袍) 바꿔입다니!
나는 전생 인도의 납자였는데
무엇을 연연하여서 제왕가(帝王家)에 났는가.
4
未生之前 誰是我(미생지전 수시아)
我生之後 我是誰(아생지후 아시수)
長大成人 纔是我(장대성인 재시아)
合眼朦朧 又是誰(합안몽룡 우시수)
나기 전의 이 몸은 누구였을까
태어난 뒤 이 몸은 누구이런가
잠깐 사이 자라서 나라 했더니
눈 한번 감은 뒤에는 내가 또한 뉘런가
5
百年世事 三更夢(백년세사 삼경몽)
萬里江山 一局碁(만리강산 일국기)
禹疏九州 湯伐桀(우소구주 탕벌걸)
秦呑六國 漢登基(진탄육국 한등기)
백년 사는 세상사 한밤중 꿈속
만리 강산 다퉈도 한판 바둑판
우(禹) 구주(九州)에 탕왕은 걸(桀)나라 치며
진시황 육국 삼키니 새 터 닦는 한태조(漢太祖).
6
兒孫自有 兒孫福(아손자유 아손복)
不爲兒孫 作馬牛(불위아손 작마우)
古來多少 英雄漢(고래다소 영웅한)
南北東西 臥土泥(남북동서 와토니)
자손들은 제 몫의 복이 있으니
자손들을 위해서 소 말이 되랴?
옛날부터 용장의 영웅들 보게
슬프다, 동서남북에 흙덩이로 누웠네.
7
來時歡喜 去時悲(래시환희 거시비)
空在人間 走一回(공재인간 주일회)
不如不來 亦不去(불여불래 역불거)
也無歡喜 也無悲(야무환희 야무비)
올적에는 기쁘고 간다니 섧네
인간세상 헛되이 한 바퀴 도나?
애초부터 안 오면 갈일도 없고
기쁨이 없어졌으니 슬픔인들 있으랴?
8
每日淸閑 自己知(매일청한 자기지)
紅塵世界 苦相離(흥진세계 고상리)
口中吃的 淸和味(구중흘적 청화미)
身上願被 白衲衣(신상원피 백납의)
무위법의 열반락 저절로 아네
풍진 세상 고통이 떠난 그 자리
먹는 것은 청량한 선열미(禪悅味)러니
옷으로 바라는 바는 솜 누더기 한 벌뿐.
9
四海五湖 爲上客(사해오호 위상객)
逍遙佛殿 任君棲(소요불전 임군서)
莫道出家 容易得(막도출가 용이득)
昔年累代 重根基(석년루대 중근기)
오호(五湖) 사해(四海) 길손객 우주 나그네
불전 승당 수시로 오고감이여!
출가하기 쉽다는 그런 말 마소
숙세(宿世) 선근(善根) 없이는 하기 어렵네.
10
十八年來 不自由(십팔년래 부자유)
山河大戰 幾時休(산하대전 기시휴)
我今撤手 歸山去(아금철수 귀산거)
那管千愁 與萬愁(나관천수 여만수)
지난 세월 18년 부자유했네
전투 중에 몇 차례 쉬어보았는가
내가 이제 손 털고 입산하거니
천만가지 근심이 나를 어쩌랴?
☞ 참고
청나라의 황제 제2대 태종이 타계한 해는 1643년이다.
이때 후계자는 6살 난 어린 아들인데
이 아들이 바로 제3대 세조(世祖)인 순치(順治)황제가 되었다.
1644년에는 청나라가 중국의 주인이 되었다.
7살 난 순치 황제는 북경에 입성하여 자금성에서 다시 즉위식을 올렸다.
이때의 즉위선언문은 만주어, 한어(漢語), 몽골어의 세 가지 언어로 되어있다.
이 이유는 청나라 황제가 세 민족을 통합하는 대 황제인 까닭이다.
또한 불교를 좋아하여 불교경전 읽기를 좋아하고 덕망 높은 스님을 초대하여
불도를 묻곤 하였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선황제 태종의 황후인 순치 황제의 어머니(몽골인)가 숙부 예친왕과 결혼을 한 것이다.
즉 형수와 시동생이, 그것도 황태후와 섭정왕이 재혼을 한 것이다.
이는 몽골이나 만주에서는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으나
중국 사상에 물든 순치 황제로서는 여간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성장하기까지는 이름뿐인 황제였다.
실권은 숙부인 예친왕이 쥐고 있었다.
그 후 제위 18년 동안 중국 천하를 다스리다가 사랑하는 동귀비(董貴妃)가 죽자
옥좌를 버리고 출가하였다.
걸어서 산서성 오대산(五臺山)으로 들어가 일생동안 수도정진하였다.
이때 지은 280자 글이 잘 알려진 순치 황제 출가시이다.
역사 기록에는 출가한 해부터 순치 황제의 자취가 없고
24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 역사의 이야기 하나.
순치 황제의 후궁 중에 동귀비(董貴妃)가 있었다.
그녀는 만주 귀족 가문의 출신, 혹은 한인이라고도 한다.
순치 황제는 동귀비를 사랑하여 그녀가 곁에 없으면 밥도 잘 먹지 않았다.
동귀비가 죽었을 때였다.
황제는 사후나마 그녀를 황후로 봉하려 하기도 하였다.
- 또 다른 전생 이야기.
황제는 전생에 인도 수도승이었다고 한다.
백성들이 임금의 폭정에 시달리자, 그는 선정(禪定) 중에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내가 왕이 된다면 왕도 정치를 해야지.”
이렇게 찰나에 한 생각을 일으킨 데서 중국에 태어나 제왕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 세상에서 부러울 것이 없는 황제 자리를 버리고 출가를 하였다.
지금도 출가한 유적지로는 아담한 삼칸 토굴 선재동(善財洞) 암자가 남아있다.
《了》

* 편저 : 대한불교 조계종 포교원 포교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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