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부터 연꽃 생각이 줄곧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지금은 연꽃이 가장 아름답게 피어날 때... 전북 무안 회산 백련지로 가볼까 부여 궁남지로 가볼까, 전주 덕진공원은...경주는...... 여기저기 마음은 벌써 바쁘다 마음이 먼저 길을 나섰으니 어차피 연꽃을 보고와야 할 모양이다. 마음 급한 김에 먼길을 나서진 못하고 청도 유호연지로 향했다. 몇 년째, 연꽃보고플 땐 잠시 다녀가곤 하는 곳. 홍련이 전부인 그닥 넓지 않은 연못이지만 내마음을 풀어주기엔 넉넉한 곳이다.
**연꽃을 볼 때면 으례 부처님이 떠오르는 건 나만이 아닐 터... 연꽃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우중충한 물과, 티없고 후덕한 느낌의 꽃이 대조를 이루며 연꽃의 아름다움이 더 빛나기 때문이리라.
**연못앞에 있는 군자정. 이전부터 신라지(新羅池)라 불리던 이 연못을 넓혀 유호(柳湖)라 이름짓고 군자정을 지은 사람은 조 선 중종 때의 모헌(慕軒) ‘이육’이다. 다섯 형제 중 넷째인 모헌의 형제들은 점필재(畢齋) 김종직의 제자들로 모두 관직에 나아갔으나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로 인하여 죽거나 유배되고 혹은 모헌처럼 은둔하게 된다. 모헌은 가문의 수난이 시작되자 큰 형이 죽고 둘째형인 망헌이 유배되어 있던 진도를 오가면서 그 지역의 수려한 자연에 마음이 끌렸다. 이런 생각은 모헌으로 하여금 고향 안동을 떠나 산은 높지 않으나 수려하고(山不高而秀麗) 땅은 넓지 않으나 비옥한(地不廣而肥沃) 청도 유호(연못이 있는 곳이 화양 유등리인데 이곳의 옛 이름도 유호임)에 은둔하게 만든다. 유호에 연 밭을 조성하고 함께 군자정을 지은 이때가 1531년이다. 유학자들에서 연꽃은 극한적인 정적(靜的) 풍류의 대상이자 군자의 상징이다. 중국 북송시대 염계(濂溪) 주돈이는 모란을 부귀한 자에 비유하고, 국화는 은사(隱士)에 비유했으며 연꽃은 군자에 비유했다. 비록 몸은 주류에서 쫓겨나 은둔하게 되었으나 연꽃처럼 청정한 군자 적인 삶을 살기로 작정했음을 알 수 있다. 그냥 유교에서 말하는 군자적 삶에 머무르지 않고 도교적 이상향까지 실현하고자 했던 의도와 맞물려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가 짐작해 본다.
**연못을 빙 둘러 맞은편에서 군자정을 보고 찍은 사진.
**군자정 맞은편에는 청담갤러리가 있다. 두 개의 건물로 되어있다
**갤러리 앞마당.
**갤러리 1 층에서 그림을 구경하고 2 층에서는 간단한 음료를 즐기며 연꽃을 감상할 수 있다.
**연꽃을 만나고 청도를 벗어나며 시장기를 느꼈다 그럴싸한 밥집을 찾던 중 고기집에서 엘튼 존의 노래가 흘러나오기에 흥미롭기도 하고 그래서 들린 집인데 대만족....
**음식맛은 도시의 이름난 집 못지 않았고 특히 곁따라 나오는 음식이 정말 맛있었다 (생선인 대구찜. 뚝배기에 담긴 우거지요리. 무엇보다 명이나물)
**작년 여름 울릉도에 갔을 때 울릉도 특산 식품으로 맛보았던 명이나물(산마늘)을 내왔기에 얼마나 반가왔던지! 알맞게 익힌 맛도 일품. 염체불구하고 한 접시 더 청해서 먹다 청도에 또다시 가게 된다면 벽오동에 반드시 들리리라 다짐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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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FlowerArea 원문보기 글쓴이: 수선화
첫댓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렵혀지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불처럼 혼자서 가라." 는 숫타니파타의 경구를 마음에 새기지 않더라도 탐스런 꽃송이와 그 빛깔과 자태만으로도 연꽃은 볼만 하지요. 홍련 뿐인 유호연지가 식상하다면 함양 상림에 새로 조성된 연밭을 한 번 가보시기를... 이름도 듣도 보도 못한 수십 가지의 연꽃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ㅎㅎ
함양 상림 연밭의 연꽃은 키가 너무 커서 꽃구경이 쉽지 않을 거라는 허언(?)을 믿고 청도쪽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님의 말씀 들으니 불현듯 가보고 싶어지네요. 조언, 고맙습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렵혀지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불처럼 혼자서 가라~~~~~ 내가 좋아하는 말중의 하나인데,,,,,,함양상림 한번 가고 싶네요,,,자세한 길 갈켜 주심은 더 이쁠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