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건우라는 거장의 이름만 들어도
만날 생각에 설레이고 또 설레었다.
그가 연주한 음악이야
음반을 통해 얼마든지 들을 수 있지만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연주회장에서
가까이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1부 35분
2부 45분 가량을 쉼없이 연주하는
백건우님의 옆모습을 보며
손을 하도 꼭 쥐었다 놨다
어깨를 움츠렸다 폈다
나도함께 연주하는 것처럼 긴장.
그는 건반과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조용조용 사귀기 시작하더니
내편으로 끌어당겼다, 약간 밀쳐냈다
가끔씩은 토라진 연인 달래듯이 감미롭게
때론 격정에 휘둘려 강하게 두둘기다가
물속으로 바람속으로 나를 마구 이끌어가더니 평화로운 곳에 다다르게 했다
연주가 끝나고 나니
평화롭다는 생각이 들어 붕붕 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무대로 걸어나와 피아노 앞에 앉아 의자를 당기고,
턱시도 뒷자락을 의자 뒤로 밀어내고
소매의 단추를 풀러 손목을 편안하게 움직여 보는 행위 하나하나가
음악이었다.
나도 모르게 기립박수를 보내고
끊이지 않는 박수소리에 연주자가 무대로 다시 올랐지만
저렇게 온 몸의 힘들 다 쏟아부었는데 다시
앵콜을 청하기가 죄송스러울 정도였다
쉬임없이 간절히 외치는 앵콜소리에 무대에 다시 나와
연주하는 모습이 다소 지친 것 같아 더 죄송하고...
그의 머리 속에서 쏟아낸 수많은 음표들이 며칠동안 내 머리 속을 지배하겠지
그 날 밤
그 건반위에서 춤을 추던 손가락과 악상기호들이 왔다갔다하며
잠을 설친건 사실이다.


친절하게 싸인해 주는 백건우


팜플렛에 해 달라고 하기가 좀 미안해서
음반 구입했다
검정색 음반에 선명한 은색의 이름 백건우
* 연주회 중 잠깐 혹시나 부인인 배우 윤정희가 와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연주를 보면서 손가락이 삐끗하며 음표를 놓치거나 하지 않을까 조바심을 하며
어딘가에서 보고 있지 않을까하고 잠깐...
그런데 연주회장을 빠져나오다가 반대로 걸어오는 배우 윤정희!
눈썰미 좋은 짠딸이 최근 윤정희가 출연한 영화 <시>에서 본 그 모습이라 알아봤다며
어!!! 하고 외마디소리를 한다
그냥 친한사람 한테 끌려 따라가듯이 나도 모르게 어! 하며 따라가다가
"안녕하세요?" 했더니
뒤돌아보며 "안녕하세요!" 해준다
얼떨결에 손 내밀고 악수까지 청하는 이 용기는 뭐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