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면 보이는 것을
신학기 학교를 옮겨 한 주가 지난다. 예전 근무지로 오갈 때는 내 얼굴이 잘 노출되지 않은 동선이었다. 일부 구간 차도 곁 보도를 걷긴 했으나 창원천변을 따라 걸어서였다. 자동차를 몰아 질주해 가는 운전자들도 걸어 다니는 나를 유심히 관찰해 볼 겨를이 없을 것이다. 내가 사는 동네 기준으로 북쪽으로 다녔는데 이제는 방향이 남쪽으로 바뀌었다. 차도 곁 인도를 따라 걷는다.
근무지를 옮긴 인사 발표가 있고 난 후 나는 옮겨가는 학교 가는 길을 사전 답사해 보았다. 출퇴근 길 절반은 산기슭을 따라 걸어가려고 마음먹었는데 사정이 여의치 못해 그럴 수 없었다. 학교 뒷산 울타리 작은 쪽문에 열쇠를 채워 놓아서였다. 열쇠 열기가 여의치 못해 나는 학교까지 교육단지 차도 곁으로 난 인도 따라 걸어가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창원 폴리텍 캠퍼스는 거쳐 간다.
집 앞 버스정류소에서 학교 앞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면 학교 근처까지 십 분이 채 안 걸린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들도 그 정류소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도 보였다. 나는 버스를 타질 않고 반송중 사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트리비앙아파트 곁을 지난다. 공단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통근버스를 기다리고 있기도 했다. 수영장 맞은편에서 창원스포츠파크로 간다.
창원 폴리텍 대학 후문까지 이르도록 자동차를 몰아가는 운전자들에게 보도를 걸어가는 내 모습이 저절로 드러났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은 보도를 걸어 다니는 사람은 아주 드물었다. 어쩌다 누비자를 타고 지나는 학생을 보았다. 폴리텍 대학에서 숲속 거님 길을 따라 걷지 못하고 대학 캠퍼스를 관통해 걷는다. 얼마간 되는 이 구간이 내 출근길에 유일하게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다.
오 분 남짓 캠퍼스를 걸어 창원기공과 맞붙은 차도의 인도를 따라 걷는다. 이때는 상남동 대방동 일대 아파트 사는 학생들이 공단으로 출근하는 부모들의 차를 타고 교육단지 학교로 등교하는 때였다. 자동차는 혼잡해 속도를 제대로 내지 못해 천천히 갔다. 어떤 경우는 체증이 심해 걸어가는 나보다 운행 속도가 더딘 경우도 있었다. 초등학교나 중학교는 아직 등교 시각
이 아니었다.
교육단지 기계공업고등학교는 일부 학생들이 기숙사 생활을 하기에 집에서 통학하는 학생은 적었다. 그 사이 있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교직원들이나 학생들이 등교하는 낌새가 없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와 이웃한 재단이 같은 사립 남녀 고등학교 교문 앞에는 학생들을 태워온 통학 승합차와 부모들의 승용차로 도로가 꽉 막혔다. 도서관에서 충혼탑으로 가는 방향이 더 많이 밀렸다.
나는 출근길에 겨우내 쓰는 모직 헌팅 모자를 쓰고 가죽장갑을 끼고 다닌다. 모자를 쓸 수밖에 없는 것은 아직 이침이면 바깥 공기가 차기 때문에 이마가 시려서이다. 손도 시려서 장갑을 끼지 않을 수 없다. 내가 학교 앞까지 사십여 분 걸려 걸어가면서 같은 방향이나 맞은편에서 걷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학교 교문 가까이 갔을 때 승합차나 승용차에서 내린 학생들이 그득하였다.
교육단지 부근엔 아파트나 단독주택이 없어 산책객이나 보행자는 아무도 없었다. 등굣길 학생을 태워온 차량만 차도에 넘쳐났다. 그러니 유독 나만이 보도를 성큼성큼 걸어가니 쉽게 눈에 뛸 것이다. 모르긴 해도 같은 학교 근무하는 동료들과 내가 집이 어디인지 모르지만 걸어서 학교까지 가는 모습을 차창 밖으로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차도는 신경 쓰지 않고 앞만 보고 걷는다.
학교 교문 앞에 이르면 인성교육부 동료가 차량들을 통제하면서 학생들의 통학로를 확보하느라 무척 수고 많았다. 교사가 수업 말고도 제가 맡은 업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모습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곁에는 아직 얼굴이 낯선 학교 지킴이님도 학생들의 안전한 등교를 도와주었다. 아침에 집에서 학교까지 걸으니 오십 분 가량 걸렸다. 퇴근길은 걷기도 하고 시내버스를 타기도 한다. 201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