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지아 카즈베기 산마을 스테판츠민다
카즈베기 산마을 스테판츠민다Stepantsminda에 도착했다. 국경마을로 러시아 국경에서 약 10Km 떨어져 있다. 카즈베기는 트빌리시에서부터 달려온 구소련 군사도로의 끝자락에 위치한 작은 도시다. 군사도로는 조지아와 러시아를 가로지르는 코카서스Causcasus산맥 중앙을 관통하는 도로다. 트빌리시에서 블라디카프스까지 연결되는 213Km 구간의 도로다. 우리 부부도 지금 군사도로를 타고 이곳 카즈베기 산마을에 도착했다.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Tbilisi에서 북쪽으로 테렉 계곡을 따라 157km 정도 거리다. 조지아 북동쪽의 므츠헤타다 미티아네티주에 있다. 카즈베기에서는 행정 중심지로 테르기Thergi 강변에 있다. 이 마을은 해발 1700m의 고지대에 위치해 있다. 어느 곳에서 보아도 코카서스 산맥의 줄기가 마을을 감싸안고, 카즈베기 산이 우람하게 솟구쳐 있다. 만년 설봉의 육중한 카즈베기 산 앞에는 해발 2200m의 고지에 14세기에 지은 츠민다 사메바 교회가 오롯하다. 카즈베기 산은 얼음을 머리에 이고 있는 산이란 뜻이다. 아담하고 소박한 도심에는 고운 주택과 소규모의 상가들이 있다. 목조 장식으로 산마을의 향수를 그윽하게 머금고 있다. 시가지 조그만 광장에 알렉산더 카즈베기(1848~1893년)라는 사람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알렉산더 카즈베기는 스테판츠민다, 구소련 시절의 카즈베기 마을인 이곳에서 태어났다. 그는 러시아에서 공부했고 트빌리시에서 작가활동을 했다. 외국 작품을 조지아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알렉산더 카즈베기는 19세기 조지아의 대문호다. 그의 소설 '부친 살해'의 주인공 코바는 임꺽정 같은 의적이다. 훔친 재물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지만 코바의 행동은 잔인하다. 스탈린은 소년시절 이 소설을 읽고 코바에게 몰두했다. 스탈린은 볼셰비키 혁명 시절 코바라는 이름으로 지하활동을 했고, 일생 동안 자신을 코바라고 자칭했다. 카즈베기 역사 박물관에 알렉산더 카즈베기에 대한 자료가 있다. 구소련의 통치 때 그의 이름을 따서 이곳 마을을 카즈베기Kazbegi로 바꿔 불렀다. 그러다가 2006년에 본래의 지명을 되찾아 조지아 정교의 수도사였던 스테판의 이름을 따서 스테판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카즈베기 마을과 스테판츠민다 마을은 같은 곳이다. 이곳 마을 사람들은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 생활한다. 러시아 시인 푸쉬킨도 이 마을에서 3년 정도 살았다. 카즈베기 산마을은 해발 1700m에 위치한 소도시로 카즈베기 산 등정의 시작점이며 전문 산악인이나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의 베이스캠프다. 카즈베기에서 출발하여 해발 2200m의 츠민다 사메바 교회를 거쳐, 고산목장과 해발 4500m의 고원을 지나, 해발 5047m의 카즈베기 산 정상에 오른다. 구소련 시절인 1988년 카즈베기 마을, 지금은 스테판츠민다로 불리는 이곳 마을에서 산정 교회까지 쉽게 오르도록 케이블카를 설치하였으나 조지아인들의 반대로 바로 철거되었다. 오늘날 츠민다 사메바 교회는 조지아 정교회의 관할로 조지아인들의 중요한 성지다. 츠민다 사메바 교회가 있는 게르게티는 외국인에게는 조지아의 상징적인 관광명소다. 우리 부부가 여기에 온 것도 카즈베기 마을의 츠민다 사메바 교회에 가기 위해서다. 스테판츠민다 마을에서 사메바 교회로 가는 강변에는 노란꽃이 곱다. 테르기 강 다리를 건너 산마을을 지나간다. 산자락을 타고 마을을 이루고 산다. 마을 곳곳에 가스관이 높고 낮게 연결되어 있다. 동네에는 아이들이 종종 보인다. 방목하는 가축도 있다. 카즈베기 산마을의 고즈넉한 정경이 애련한 잔상으로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