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깎으며, 한 사내의 꿈을 추억하며
숲 속에 쓰러진 나무토막들을 깨워 작업실로 불러 들였다. 껍질을 벗기고 상처를 도려내, 한 얼굴을 향하여 깎아나갔다.
내 긴 방황의 막다른 골목마다에서 외마디처럼 부르던 한 사람, 어두운 들판을 서성일 때 불현듯 허기처럼 달려오던 한 얼굴, 내 한 생애가 더듬어 온 한 표정을 나무에 새긴다.
껍질을 벗은 나무의 속살로부터, 멀고 긴 기다림의 숲으로부터 걸어나오는 한 눈빛, 한 온기, 한 마음을 만났다.
나무를 만진다는 건, 나무에 어린 햇빛과 바람과 물의 추억을 더듬는다는 것, 먼 옛날의 에덴동산 시절의 나무의 기억 속을 더듬는 것이기도 하리라. 살아있는 것들이 모두 어울려 서로를 축복하며 생명으로 충일했던 낙원, 그 낙원에 뿌리내리고 있는 생명나무에 대한 추억에 젖는다.
30세까지 목수로서 나무를 다듬던 청년 예수를 생각한다. 나무를 깎고 만지면서 하느님을 묵상하며 지낸 시간들 속에서 그는 나무와 대화를 하며, 나무로부터 어떤 영감을 받았으리라.
나무와의 교감 속에서 생명나무의 꿈을 키우며, 생명나무와 한 몸이 되고자, 생명나무로 부활하고자, 그리하여 깨어지고 산산이 갈라진 생명들이 사랑과 조화로 영원한 생명으로 회복되고자 자신을 한 제물로 나무에 매달려 죽을 것을, 오랜 시간 거듭거듭 기도하며 마음을 다졌을까?
그는 나무로부터 생명의 비밀, 생명의 신비를 깨쳤으리라. 한 알의 씨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2000여 년 전의 한 사내처럼 나도 나무를 만지며, 그 오래된 정원의 풍경을 더듬는다. 나무에 서린 구름 한 조각, 햇빛 한 줌, 바람 자락 들이 내 영혼에 말을 걸며, 생명의 불을 놓는다.
모든 숨쉬는 것들이 성스러움의 추억으로, 재회의 환희로, 처음날의 감격으로, 부둥켜 한 덩어리의 생명으로, 태고적 그 찬란한 기억으로 깨어나는 꿈!
하여
“하늘의 평화, 공중의 평화, 땅의 평화, 물의 평화 초목의 평화, 숲 속 나무들의 평화 모든 신들의 평화, 궁극 실재의 평화 모든 것들의 평화, 평화의 평화 그 평화가 우리에게 이르게 하소서“
김용님 블로그; 연민 http://blog.daum.net/etugen
그렇게 매섭게 추웠던 겨우내 나눈 사랑! 그 사랑의 열매를 이른 이 봄에 거두어 나누는 그의 잔치에 달려갔다. 아직도 봄을 느끼기에는 날선 바람과 죽음을 되새김질하는 사순절의 한가운데에서 그는 겨우내 살아낸 그 죽음과 일찍 죽은 덕에 이미 싹이 되어 올라온 새로운 생명을 나누고 있었다. 생명나무전
두물머리에 꽂힌 십자가에서 새싹이 돋는 것을 보며, 십자가가 바로 생명나무인 것을 새삼스레 확인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해인수녀님의 싯귀에서 유일하게 기억하는 한 대목, "흐르지 않으면 목숨일 수 없나니 ~ " 흘러가버린 목숨을 애처러워 하는 이 계절에 그의 14처 연작은 어머니를 두고 떠나버린 아들과 그 아들을 보내지 못하는 어머니의 통곡으로 사무친다.
유다교의 전통에는 의롭게 살다가 억울하게 죽은 사람은 부활한다는 사상이 있다. 그래서 예수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맞닥뜨린 그의 어머니와 제자들은 그의 억울함을 호소한다. "유다인의 왕"이 그의 죄명이었으니, 죽어 마땅한 대역죄인 이었건만 그를 아끼는 이들은 그의 죽음을 인정할 수 가 없었다.
작가 김용님은 시인이 되어 예수의 죽음에 대하여 우리에게 물음을 던진다:
"나무와의 교감 속에서 생명나무의 꿈을 키우며, 생명나무와 한 몸이 되고자, 생명나무로 부활하고자..., 그리하여 깨어지고 산산이 갈라진 생명들이 사랑과 조화로 영원한 생명으로 회복되고자 자신을 한 제물로 나무에 매달려 죽을 것을, 오랜 시간 거듭거듭 기도하며 마음을 다졌을까?"
그 역시 사랑하는 연인 예수를 그냥 보낼 수 없었음이 분명하다. 사라진 사랑을 찾아 온밤을 헤매는 아가서의 각시가 되어 기어이 사라진 그이를 찾아낸 것이다. 온 겨우내 그의 내면에서 죽은 남자를 찾아낸 이 여인은 자신의 온기를 쏟아부어 죽음을 넘어간 그이를 살려내고야 말았다. 그래서 그가 그린 예수의 십자가는 암흑이 아니라 빛에 둘러싸여있다. 그는 혼자 죽은 것이 아니라 성령의 온화한 힘을 불러내고 땅과 맞닿도록 하늘을 끌어내려 죽음으로 덮힌 세상의 장막을 찢어낸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굴복이 아니라 없던 길을 다 걸어가서 새로운 길이 완성되었음을 알리는 선포가 되었다.
"그러면 그 십자가는?" "새로운 삶의 둥치가 되어 생명나무가 되었지!" "뿌리에는 개미들이 들락거리며 살고, 썩어버린 줄 알았던 가지에서는 황금색 가지가 새로 돋았지!" "붉은 강화의 땅과 푸른 하늘을 이고 살았던 예전의 모습으로 부활한 것이지." "믿기 어려우면 와서 보라고 !!!"
그러기에 생명나무전은 죽음과 생명을 함께 감싸 안은 우주의 큰 평화를 이야기한다. 죽음을 넘어서지 않은 자, 죽음을 이야기할 수 없나니... "태고적 그 찬란한 기억으로 깨어나는 꿈!"을 온 겨우내 꾼 것일까? 생기 가득한 얼굴의 작가는 오는 이들마다 부활의 생기를 나누어준다. 겨우내 사랑을 한 모습일까? 죽은 이를 살려낸 당당함일까? 나무들에게서 전해 받은 생기 덕일까? 한 사내의 꿈을 기억하며 그 사내를 살려내고, 그의 결을 되찾은 이, 마음깊이 품고 있던 그 사내를 살려내 한바탕 달빛아래 춤을 추고 금빛으로 남은 사랑의 흔적을 서슴없이 보여주는 이.
그 사랑에 전염된 것일까,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이 확연하게 다가왔다: 의로움을 지키려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은 이렇게 살아난 부활의 기쁨을 우리에게 전해주리니.......
사랑하는 그의 임은 이렇게 부활하였다: 가시관 위에 다시 일렁이는 푸른 생명의 왕관을 쓰고 금빛 위엄을 갖춘 태고의 사내로.
최우혁 작가 김용님과 알게 된 후 25년이 넘게 교류하는 후배이다. 서강대학교 종교연구소 선임연구원이며, 해마다 새로운 학생들과 만나 신나게 논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