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
그 날도 비가 내렸었다. 가계부를 펴놓고 한 주간 쓴 생활비와 영수증을 맞춰보는데 계산이 맞지 않았다. 남편의 월급 중 삼십만 원만 생활비로 남겨두고는 무조건 저축하고 있던 자린고비 시절이었다. 그런데 어디에 썼는지 알 수 없는 돈이 만 원이나 되었다. 십 원 단위까지 메모하고 영수증까지 꼬박꼬박 챙겨두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 때 친정어머니가 오셨다. 들이치는 비 때문인지 어머니의 한쪽 어깨가 젖어 있었다. 나는 조금 전의 기분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수건으로 젖은 옷을 닦고 계신 어머니께 그 돈 만 원 얘기를 늘어놓았다. 어머니는 그날따라 칼국수만 한 그릇 드시고는 금세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신발을 신기 전에 뭔가 얘기를 할 듯하다가 그만 두는 듯했다.
나는 어머니께 드리려고 차비 이만 원을 바지주머니에 넣고 어머니를 따라 나섰다. 아파트 3층에서 1층까지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 나는 이만 원과 만 원 사이에서 계속 갈등을 느끼고 있었다. 돈 만 원도 잃어버렸는데 그냥 만 원만 드릴까 아니면 이만 원을 다 드릴까 하면서, 결국 나는 어머니의 손에 만 원만 쥐어 드렸다. 우산을 받으며 비바람 속을 걸어가는 어머니의 어깨가 다시 젖어들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동생이 취직을 못해 반 년째 놀고 있던 터라 시집간 딸네 집에 얼마간의 도움을 청하러 오신 길이었음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이 쩨쩨한 딸이 건네준 돈 만 원을 쥐고 빗속을 걸어가던 어머니. 그래서 내 기억 속의 어머니는 지금도 한쪽 어깨가 젖어있는 모습이다. 불어난 냇물을 바라보며 어미의 무덤이 떠내려갈까봐 울어댄다는 청개구리의 울음소리가 내 속에 가득 찬다. 나는 울 자격도 없는 바보 청개구리다.
자식 키워봤자 아무 소용이 없더라는 어르신들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뜨끔하다. 내가 어머니께 한 일련의 행동을 누군가 샅샅이 알고 있을 것 같은 생각에 양쪽 발도 저린다. 자식이란 운동화 씻어주는 공功도 못 갚더라는 얘기도 생각난다. 겪어봐야 아는 게 내 인식의 수준인지, 아이의 사춘기는 나로 하여금 부모의 마음을 되새겨보게 했다. 부모의 속을 썩였던 옛일들이 내 아이를 통해서 그대로 재연되고 있었다. 나를 사람답게 만들어준 것이 바로 부모님의 끝없는 사랑과 이해였음을, 부모란 새끼에게 제 살을 다 파 먹히고 빈 껍질로 둥둥 꺼 있는 논고동과도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볏가리를 밤새 서로의 밭에 옮겨 놓는 것은 의좋은 형제의 얘기일 뿐, 부모는 언제나 볏가리 하나라도 더 자식의 밭에 옮겨주려 애쓰는데 비해, 자식은 그저 잠든 척 하고 있다가 슬며시 거둬들이기만 하는 존재다. 그리고는 더 안 주는가 싶어서 눈알을 이리저리 굴린다. 자식은 부모에게 영원히 채무자이면서도 꼭 갚아야겠다는 생각을 그다지 하지 않는다. 마음에 다소 켕기는 것이 있다 해도 큰 가책 없이 느물느물 부모님들 뵐 수 있을 정도로 대체로 얼굴이 두껍다. 가끔 부모님이 얼마쯤 경제적인 도움이라도 청할라치면, 자식은 더 죽는 시늉을 하며 부모가 제풀에 나가떨어지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나는 이런 저런 불효를 조금씩 수습해 보기도 했다. 매달 한차례 볏가리 한 다발을 어머니의 곳간에 다시 옮겨 놓기로 했다. 그 비 오는 날의 우울한 기억이 보송보송하게 마를 때까지 어머니는 오래오래 내 볏단을 받으셔야 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자식에게서 받는 돈은 자식의 살점 같아서 쓰지 못할 거라 하신다. 아니 될 말이다. 내게 쏟아 부은 돈에 대한 이자는 빼놓고라도 원금의 일부라도 당당히 받으셔야 한다. 어머니의 은혜는 복리로 자꾸만 늘어나는데 나는 매달 푼돈을 디밀고 있으니 어느 세월에 다 갚을 수 있을지.
어느새 일흔을 넘긴 어머니는, 몇 년 전부터 뼈마디 사이에 연골이 다 닳아버려서 생기는 류머티스 관절염을 앓고 계신다. 어머니의 다리가 고단한 삶의 하중荷重을 견디지 못하고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었던 것을 나는 미리 알지 못했다. 강물 위의 다리라면 보수공사를 하든지 재가설再架設이라도 하고, 자동차의 부품이라면 새 것으로 갈아 드릴 수도 없고 쉬이 낫지도 않을 거라고 한다.
해마다 음력 칠월칠석날 새벽이면 가는 곳이 있다. 일년 내내 병마로부터 육신을 지켜부는 영험함을 지녔다는 부적을 얻어와 어머니께 드리기 위해서다. 그리하는 것도 어쩌면 나의 불효를 조금이라도 덜어보려는 것, 그래서 내 마음이 그것만큼이라도 편해지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주사朱沙로 그린 부적의 힘이라도 빌리고 싶다. 어머니 베개 속에 넣어드린 부적이 밤이면 우렁이 각시처럼 빠져 나와, 어머니가 잠들어 있는 동안에 뼈마디에 고인 고름을 싹 걷어내고 뼈를 잘 달래주기기를 빌고 싶다. 하지만 이 모두가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인 것을 어찌하랴.
지난 세월 주저않고 싶을 때도 많았고 장마에 둥둥 떠내려가는 지붕 위에 올라앉아 있는 심정일 때도 많았다. 그럴 떄마다 나를 일으켜 세운 어떤 힘이 있었다. "새들을 봐도 수컷이 없는 둥지의 새끼들은 다른 것들에 비해 약하더라"며 걱정하는 어머니 때문에 삼줄보다 더 질긴 힘으로 버텨야 했다. 어머니가 살아온 모습은 정녕 내게 힘을 주는 부적이었다.
며칠 전 꿈속에서 어머니를 보았다. 고운 한복을 입고 어디 나들이라도 가는 차림이었는데, 놀랍게도 어머니는 사뿐사뿐 걷고 있었다. 기뻐서 얼른 그 다리를 만져보려는데 어느새 어머니는 저만치 가고 있었다. 손을 내밀어 붙잡으려 하면 어새 우리곁을 떠나가는 부모, 내게 그 이치를 가르쳐주려는 꿈이었을가. 가져간 부적보다도, 내가 어머니를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이 어머니에게는 더 큰 힘이 되는 듯했다. 어머니는 정말 환하게 웃으셨다. 어머니의 웃는 얼굴은 내 마음 한가운데 붙이고 싶은 바로 그 부적이다.
- 정성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