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젊은 시인들
새총과 권총 외 1편
이정화
한 개의 이미지가 반복된다
머리에서 피를 흘리는 남자가 바지 뒷춤에 권총을 찔러 넣는 이미지
너는 그 이미지를 몇 번이고 바라본다
한 개의 이미지가 동반된다
한 여자가 울고 있다
너는 두 개의 이미지를 연결한다
여자는 더 이상 삶을 유지할 수 없다는 남자의 말 때문에 울기 시작했다 남자는 방바닥에 수없이 머리를 찧다가 계속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나갈 채비를 한다 서랍장 깊숙이 숨겨둔 권총을 꺼내 바지 뒤춤에 쑤셔 넣는다
사랑했을까? 너는 다시 이미지를 연결한다
남자는 여자가 사는 집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남자의 머리엔 피가 흥건하고 오른손엔 권총이 들고 있다 나를 죽일 건가요? 여자는 그렇게 물으며 울기 시작하고 남자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뒤춤에 권총을 집어넣는다
두려웠을까?
만약 너에게 주어진 이미지가 새총이었다면
남자가 새총을 조준하는 한 개의 이미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는 여자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너는 그 여자가 끝내 웃을 것 같고
결국 울더라도 웃음을 이기지 못해 눈물을 흘리는 것이라고
예감한다
풀숲에서 한 남자가 누워 새총을 조준한다 여자는 남자의 옆에 누워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남자의 골똘함을 구경한다 남자는 목표물인 생수병을 몇 번이고 맞추지 못하고 남자와 여자는 와르르 웃고 만다 결국 실패했어 네 실패는 너무 우스워 여자는 남자는 와락 안아버리고
어느덧 예감은 이미지를 통과하는 형상
한 개의 이미지가 멈추고
새총이 권총을 이기는 결말을 맞게 된다
이어지기
소리치며 일어난 아침. 모두 잠들어 있었고 나는 잘못 뿌려진 씨앗에서 태어난 것 같았네. 꿈속에선 비밀을 숨긴 채 걸었다. 복도의 깊숙한 곳까지. 비밀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피해 멀리. 그 끝엔 시든 나무 한 그루. 난 무엇을 지키고 싶었을까. 얄팍한 잠은 대변하지 못하는. 그곳의 일. 더 먼 곳에서 꿈을 이룬 친구들에게 편지가 도착하고. 나는 소용없는 일들을 찾아 헤맸네. 잠에서 일찍 깬 탓이겠지. 그러나 어디선가 나의 꿈이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책을 읽었다. 책 속에선 밤마다 잠만 자는 사람들의 서글픈 이야기가 태어나고. 잘 못 자란 나무를 가여워했다. 벽에 기대 모든 걸 훔쳐보던 나는 멀리서 우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들키고 싶지 않은 나의 꿈. 안 돼! 라고 일어난 아침에. 내가 멈추고 싶었던 것. 더 이상 꿈꾸지 못하는 사람의 변한 것 없는 일상과 그 다음의 날들…….
---애지 2024년 봄호에서
2023년 문학동네 신인상 시부문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