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에서 ‘사람으로 산다는 것’을 검색했더니 같은 제목으로 된 책이 여럿 있었다. 저자만 각각 다른데 파스칼, 자오스린, 샤무엘 스마일스, ‘헤닝 만켈’등이다. 그중에 헤닝 만켈이 쓴 이 책을 선택한 데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헤닝 만켈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태어났으며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기야 스웨덴도, 스톨홀름도 나는 아직 가보지 못한 오지와도 같다. 헤닝 만켈은 어린 시절 판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이곳저곳을 다녔고, 16살 때 학교를 자퇴하고 화물선 노무자로 일하면서 이래저래 세상을 배운 후, 스톡홀름으로 돌아와 극장에서 무대 담당 스태프로 일하다가 희극을 쓰기 시작했다. 1973년 첫 소설 〈바위 발파공〉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했다. 작가로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면서 아프리카로 건너갔고, 거기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모잠비크에서는 극단을 운영하기도 했으며, 아프리카에서 산 것을 계기로 아프리카의 고통을 세상에 알리는데 몰두하기도 했다. 암으로 2015년 67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저작 〈발란더 형사 시리즈〉가 전세계에서 수천만 부 이상 팔리면서 거장이라는 명성을 얻었고, 순도 높은 순문학과 청소년 소설들이 40여 개 언어로 번역되기도 했다. 2014년 암 진단을 받은 후, 이 책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출간되자마자 유럽에서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책은 부제가 「삶의 끝에서 헤닝 만켈이 던진 마지막 질문」이라고 하였고, 60여 가지 자신의 경험을 적고 있다. 그의 아름답고 솔직한 문장들에서 내가 배울 것이 무엇인지 더듬어 보기로 한다.
책은 처음에 이렇게 시작한다. “삶의 한 가운데 있는 두 사람의 모습, 둘의 표정은 진지하면서도 몽환적이다. 여자는 매우 아름답지만 수줍어 보인다. 남자 역시 부끄러워하는 표정이다. 두 사람은 자신의 삶을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서기 79년에 화산이 폭발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시간이 이들 부부에게는 없었을 것이다. 둘은 삶의 한가운데에서 죽었다. 화산재와 이글거리는 용암에 묻혀.”
서기 79년, 인도 폼베이에서는 화산폭발이 일어났고 많은 사람이 죽어 땅에 묻혔다. 그중에서 제빵사인 테렌티우스와 그의 이름 모를 아내에게 이 글을 바친다고 하였는데, 화산재에 묻혀 있던 어느 집에서 발견된 초상화에 그들이 그려져 있었고, 그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는 것인지, 초상화를 보면서 느꺘을 감정을 손에 잡힐 듯이 삼삼하게 묘사하고 있다 싶다.
첫 장에서부터 저자는 자신의 삶과 죽음 그리고 타인의 죽음을 말한다. 여간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읽기도 힘들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한다. “진단은 아주 분명했다. 상태는 심각했다. 불치 상태인 듯했다. 나는 허탈한 얼굴로 물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 마지막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냐고. 의사가 대답했다.‘옛날 같으면 그랬겠죠. 하지만 요즘엔 여러 치료 방법이 있습니다.’검사결과를 들으러 소피아 병원에 갔을 때, 아내 에바가 나와 동행했다. 결과를 들은 후 밖에서 택시를 기다릴 때 우리는 서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 예순다섯 살이고 암에 걸렸다. 내 생각을 읽기라고 한 듯 에바가 내 팔을 힘주어 잡았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6월 18일 오늘, 내가 에바를 만나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흐른 시간은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하다. 나는 죽음이라는 마침표도, 완쾌라는 마침표도, 찍을 수 없다. 나는 과정속에 있다. 최종적인 결론은 없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겪었고 경험했다. 이 이야기는 끝이 없다. 진행 중이니까. 이 책은 그런 이야기다. 내 삶, 과거의 내 삶과 현재의 내 삶.”
죽음을 앞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죽음을 회상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까? 묘한 생각이 들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나는 에리에달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겨울이 길고 매섭게 추운 곳이다. 내가 여덟아홉 살쯤 실제로 내 나이 또래 여자아이가 샨드세른 호수의 살얼음판이 깨지면서 물에 빠졌다. 그 아이를 꺼낼 때 나는 그 자리에 있었다. 사고 소식은 아주 빠르게 스베그 전체에 퍼졌고, 많은 사람들이 현장으로 달려왔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여자아이의 부모는 얼음이 덮인 호숫가에 서 있었고, 온통 하얀 얼음판에 까만 얼음구멍이 도드라져 보였다. 자율소방대 대원들의 갈고리가 달린 막대기에 그 아이가 걸려들었을 때 아이 부모가 보여준 모습은 우리가 영화나 책에서 본 것과는 달랐다. 그들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입을 꾹 닫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울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담임선생님도, 목사님도, 그리고 그 아이와 많이 친했던 친구들도 흐느꼈다. 익사한 그 아이는 물속에 오래 있지 않았지만 완전히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그 아이를 눈밭에 누이자 아이가 입고 있던 양모로 된 옷은 쪼개질 듯 바스락댔다. 얼굴은 분이라도 바른 듯 아주 창백했다. 아이의 금발은 노란 고드름처럼 빨간 모자 아래로 삐져나와 있었다.”
“나는 예순여섯 살이고 암에 걸렸다. 곧 화학요법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화학요법이 성공할지는 나도, 나를 담당하는 의사들도 모른다. 치료가 효과가 없으면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는 감히 생각할 엄두도 안 났다. 그럴 땐 내가 예순여섯 살이든, 스베그 병원에 누워 처음으로 진지하게 죽음과 맞닥뜨렸던 어린아이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생각해 본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아주 공평한 것이다. 그것은 점칠 수도 없고, 돈으로 살수도 물론 없다. 어떻게 맞이하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불안해서 울면서 맞이하든, 웃으면서 맞이하든 죽음은 똑같다고 하는 생각한다.
지중해 한가운데에 몰타라는 작은 섬나라 있다. 한국의 0.16배에 불과한 아주 작은 나라다. 여기에 ‘하가르 킴’이라는 신전이 있는데, 이집트 쿠푸왕 피라미드보다 최소한 1천 년 전의 건물이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6천 년 전쯤에 세워졌다. 암반 위에 세워져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이 신전의 이름은 ‘세워진 돌’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아마도 시칠리아 사람들이 배를 타고 이주해와서 세웠을 것으로 보인다고 하는데, 신석기 시대에 이런 건축물이 세워졌다는 것이 경이롭기도 하다.
[몰타 하가르 킴 신전]
그들은 이 섬에 와서 누구를 혹은 무엇을 숭배하기 위해 신전을 세웠을 것이지만, 신들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입을 다물고 있고, 거대한 기념물로만 남아 있다. 신전은 결코 완성된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곳을 더 아름답고 거대하게 만들려는 작업은 계속되었을 것이다. 다만 종교 활동을 위한 것으로 지은 것이 아니었을까 짐작되기만 한다. 돌을 다듬고 운반하고 들어 올리고 조립하는 일을 통해서 표현되는 말 없는 어떤 제식이 있지 않았을까 짐작만 할 뿐이다.
‘유리겔라’라고 이스라엘 출신 마술사가 있었다. 1970년대 초 우리나라에도 와서 텔레비전에 출연한 것을 기억한다. 그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 방송국에 출연했다. 엄지와 검지로 들고 있던 숟가락을 그의 말대로 ‘정신력으로’구부리는 초능력을 보여주었고, 다른 밀폐된 방 안의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그림의 내용을 설명하기도 했다. 당시에도 그가 약아빠진 야바위꾼인지, 정말로 초능력자인지 논란이 많았다. 그가 노르웨이 NRK 방송에 출연했을 때 저자는 방송국에서 일했는데, 걸려오는 전화를 받느라고 진빰을 뺐다고 한다. 사람들이 흥분해 전화통이 불이 났다고 한다. 사람들은 자기 집 벽시계가 멈추었다고 항의하기도 하고, 어떤 노인은 아내가 발이 걸려 넘어져서 팔이 부러졌다고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유리겔라는 사기꾼이라고 하고는 유리겔라는 수년 동안 공개적으로 사기꾼이라고 부른 사람들을 고소하느라 바빴다고 한다. 사실 쓸모없는 치료법인 줄 알면서 암 환자에게 약을 파는 사람들도 유리겔라와 다를 바 없다. 야바위꾼에게 넘어가는 사람들의 절망적인 상태를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래서 그런 속임수에 넘어가는 사람들을 막아야 하는지 저자도 잘 모르겠다고 한다. 암은 이제 인간이 정복할 날이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언젠가 완전히 극복할 날이 올지 모른다. 그때는 아마도 나도, 당신도 죽었을지 모르겠다.
“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고 한 달 정도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여러 가지 검사를 거쳤다. 이제 곧 화학요법과 방사능 요법도 시작할 것이다. 꿈에서 나는 내가 태어나기 전 최소한 30년 전인 제1차 세계대전 무렵인 1914년에서 1918년 사이 어딘가로 가 있었다. 나는 질척한 참호 안에 웅크리고 있었는데, 내 주변에는 다른 병사들도 있었다. 다들 입을 꾹 다문 채 말이 없었다. 멀지 않은 곳에 철조망에 걸려 죽은 말 한 마리가 보였다. 철조망을 뛰어넘다가 걸려 넘어져서 죽은 모양으로 뒷다리가 부러져 있었다. 사방은 고요했다.
꿈속에서 나는 뭔가 일어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우리는 참호 속에 기대어 기다린다.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음이다. 안개가 참호 속으로 들어오는데 그것은 회백색이 아니라, 연노랑이었다. 우리는 그 안개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적군임을 너무 늦게 알아차렸다. 독가스를 폐 속으로 들어 마시고 내장을 부식시키는 끔찍한 통증을 느낀 후에야 적군이 우리 몸속에 들어올 만큼 가까이 다가왔다는 사실을 깨닫았다. 그때 꿈에서 깼다. 꿈에서 깼다고 통증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통증은 여전히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어둠 속에서 나는 단순히 목의 통증이 폴랑드르의 참호에 관한 꿈으로 바뀐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잠에서 깨고 보니, 겨자가스가 제1차 세계대전 때만 무분별하게 사용된 무기가 아니라는 사실이 생각났다. 겨자 냄새 때문에 겨자가스라고 불리는 독가스는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가스가 암에 걸렸던 병사들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보였다는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 항암치료에 성공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세포독의 과학적 개발로 이어졌다. 그래서 내가 그런 꿈을 꾼 것이다. 참호는 화학요법의 시작을 기다리는 걸 의미하고, 겨자가스는 내 눈을 멀게 하거나 나를 죽인 것이 아니라, 암의 진행을 억제할 것이다. 세포독은 그렇게 내 몸 안에 있는 공격적 암세포들을 격퇴할 것이다. 하지만 건강한 세포들 역시 피해입을 것이고 수많은 부작용을 경험할 것이다. 그중 머리카락이 빠지는 정도는 가장 덜 심각한 부작용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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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내용들을 여기서는 생략해 따로 붙였다)
이제 마지막 이야기다.
1891년 스웨덴 브르노 시내 도로 하나가 파헤쳐졌다. 더 이상 오수를 감당하지 못하는 하수관을 새로 묻기 위해서였다. 땅을 굴착 하던 중에 해골이 나왔다. 고고학자들이 조사를 했고, 발굴 결과는 2만 5천년 전의 무덤이었다. 그런데 무덤의 부장품이 특이했다. 상아와 사향소 뿔 속에 장난감이 하나 묻혀 있었던 것이다. 생전에 쓰던 물건으로 추정되는 그것은 꼭두각시 인형이었다. 조각품은 깨져 있기는 했으나, 부엉이처럼 목이 돌아간다는 것과 팔에도 구멍이 나 있는 것으로 보아서 움직일 수 있게 만든 것이었다. 그것이 마술의 소품이었는지는 알 수는 없지만, 어린아이 또는 어른이 되었어도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후손들에게 장난감을 남기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기억을 만들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저 망각을 유산으로 남기려 한다. 그러면 마지막에 무엇이 남을까? 기억이 없는 시간? 과연 우리에게 아직 이성을 되찾을 시간이 있을까? 핵 폐기물은 점점 더 가파른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길로 한 발짝 더 내딛는 것일까? 그저 내가, 우리가 믿고 있는 주문을 반복해 외울 수밖에 없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우리에게는, 지구인에게는 여전히 모든 것이 가능하다. 우리는 여전히 꼭두각시 시대에 살고 있다. (아니 꼭두각시는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