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햇살이 눈부신 날이다.
이제 막 움트기 시작하는 대지의 푸르름이
한창 피어오르던 날들의 풋풋함을 떠올리게 한다.
꽃 몽우리가 막 피어오르기 시작할 무렵
나는 콩깍지가 씌었다는 표현에 딱 걸맞는
가슴앓이를 한 적이 있다.
그것이 콩깍지 였다는 것을 그로부터 약 5 년이 지난 후
콩깍지가 벗겨졌을 때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이북에서 피난 나오신 뒤 아버지께서는
처음 엄마의 친척 오빠 추천을 받아 서울 시청에 다니셨었다고 한다.
그 뒤 구청 발령을 받으면서 자존심 상한다고 그만 두셨고
그 뒤로 잡지사 영업등 언론인이라는 뭉뜽그림의 직업으로 당신 용돈 정도만 조달해 쓰셨기에
우리 집 생활전선의 책임은 늘 이북 여자의 강인함을 보여주신 엄마의 몫이었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왔으나 가정 형편 상 대학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물론 그 당시 대학은 가지 않았지만 뒤늦게라도 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과를 졸업했고
내년에 문화교양학과 편입을 목표로 잡고 있으며 앞으로도 얼마든지 과를 선택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있으니
학업에 대한 열등의식이나 아쉬움은 갖고있지 않다.
고 3 2학기 때 발이 넓으셨던 아버지 추천으로
원광유람선 사장이신 류복수 씨가 운영하던 원광산업으로 취업을 나갔었다.
그리고 졸업을 앞 뒀을 때 그 류복수 씨가 인천 국민당 국회의원으로 출마한다고 해서
당사무실 근무를 시작했고 졸업 후 역시 선거 날까지 그 사무실에서 일을 했었다.
일이란게
선거운동하러 오시는 분들께 커피를 타 드리는 등 간단한 심부름 정도 였지만
나 외에도 네 명이나 더 있었으니 꽤 분주했던 사무실이었던 것 같다.
그곳에서 나는 짝사랑 때보다 더욱 더 가슴설레던
멋진 분을 만났었다.
이 이야기는 내 인생의 잊지못할 한편의 에피소드 이다.
당시 내가 문국장님을 만난 건 여고를 갓 졸업할 때였으니
열아홉 살 이었었나 보다.
선거운동 하러 오는 사람들도 엄청 많았으니 여자분들도 상당히 들랑거렸는데
그분들이 사무국장님 보러 온다는 말도 들릴 정도로 인기가 높은 분이었다.
하긴 그 어린 나이에 보기에도 영화배우보다 더 멋져 보였었으니
한창 농익은 여인들이 생각할 때 얼마나 두근거렸겠는가...
손님이 오시면 국장님실 커피는 내가 담당이었다.
커피를 가지고 들어가면 그 사람들 앞에서 꼭 하시던 말씀이 있다.
"우리 유양이 사무실 꽃이예요."
그 말에 얼마나 가슴이 뛰던지 나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발그래 져서
콩닥거리며 문들 닫고 나오곤 했다.
그 뒤로 매일아침 내가 한 일은 목욕탕을 거쳐 출근하는 일이었다.
그저 진짜 꽃이 된 양 목욕을 갓 마치고 나온 발그레한 얼굴을 보여드리고 싶었었다.
세상물정 아무 것도 모르고 사랑이란 단지 가슴 설레던 초등학교 짝사랑에 그쳤던 나를
당시 47세 되신 국장님께서
그 멋진 체구와 영화배우 같은 인물로 호탕하게 웃으시며 흔들어 놓으셨던 것이다.
선거가 끝나고 당시 민정당 맹은재씨한테 패배를 했다.
다음날 선거 사무실에 나가보니 국장님께서 위원장님께 다음 선거를 대비해
유양과 함께 지키겠다고 얘기했단다.
그러나...
그 뒤로 아무리 사무실을 나가봐도 국장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애태우며 수시로 갔으나 매번 허탕치고 돌아오기를 몇 번.
엄마한테 배운 화투 오간 중 갑오띠기를 열심히 하며
이것이 딱 떨어지면 국장님을 만나는 날이라고 최면을 걸며
오로지 거기에만 매달려 있었다.
꿈이었던가...
어느날 나가보니 문국장님이 계셨다.
아, 얼마나 오매불망 기다리던 만남의 순간이었던가...
국장님께서 내 취직자리 알아봐 주신다고 부천으로 가자고 하신다.
당시 부천 역 앞에 있는 항아리 다방에 함께 앉았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꿈만 같았다.
두 번 째 만나는 날 나는 그 당시 꽃샘화장품 경리로 있었기에 거기서
화장품을 원가에 사서 국장님께 선물을 했다.
그날 2층에서 내려왔을 때
국장님께서 하시던 말씀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유양아... 내가 혼자 있어서 양말을 못빨아 신었는데 가서 양말 좀 빨아줄래?"
세상에... 국장님께서 양말도 못빨아신고 계셨다니...
"네, 국장님, 어서 가요. 제가 양말 빨아드릴께요."
난 그 당시 결백증이 있을 정도로 남자가 가까이 오면 깜짝깜짝 놀라던 사람이었다.
그 양말을 빨아달라는 의미가 어떤건지 뒤늦게 알고 나서 안도의 숨까지 쉴 정도였으니..
내가 너무 몰라서 였을까?
양말을 빨아드리겠다던 나를 돌려세우고
"아니다, 저기 가서 식사나 하자"
하시며 지하 레스토랑으로 안내를 하신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그 레스토랑에 꿈속에서 그리던 문국장님과 앉아있는데
'You mean Everthing to me' 노래가 흘러 나온다.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 노래인가. 난 아직도 그 순간이 잊혀지질 않는다.
그러나 그 뒤로
"유양아... 내게 4천만원이 있는데 우리 제주도에 가서 양이나 키우며 살까?"
세상에...
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비록 돈은 없지만 반듯한 집안에서 가정교육을 확실히 받고 밥을 먹으면서도 무릎꿇고 먹던 습관이
베어있는 나였는데...
"국장님, 제가 국장님을 너무 좋아하지만 저에겐 저를 믿어주시는 부모님이 계세요. 이제 만나면 안될 것 같아요."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말이다.
"그래, 유양을 갖고 싶지만 유양한테는 장래가 있는 몸이라..."
그리고 부천역까지 우산을 씌워주시며
"잘 살아라" 하시던 마지막 말씀...
그 뒤로 연락을 끊고 지냈다.
마음정리를 하니 그 설레이던 감정도 추스려지고 나름 바쁜 일상이 되니 차차 잊혀졌던 것이다.
30년이 지난 이야기니 그 당시 4천만원이 지금의 4억 정도 되는 돈일까?
가끔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또 아무 것도 모르던 나를 지켜주셨다는 자체로
진짜 사랑해 주셨었구나 생각하며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 뒤로 약 5년이 지났을 때 였다.
당시 인천교 쪽을 지나는데 앞에서 문국장님이 마주오고 계셨다.
난 스물 다섯이 되도록 결혼도 못했다는게 좀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서
주춤거리며 피하려 했다.
그때 지나치다가 나를 발견하시고
"유양 아냐? 오랜만이네. 잘 지내지?" 하신다.
"네. 안녕하세요." 하고 얼른 지나쳤다.
콩깍지가 벗겨져서인지
세상에...
내가 저 분을 왜그렇게 애태우며 좋아했던 거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면서...
내 한 때의 젊은은
이런 애피소드를 허공에 새기며
연기처럼 흩어져 갔다.
.
첫댓글 애틋한 한편의 단편소설같은글에서 소망이님의 필력을 알수있네요 전공을 국문학을 하셨다니 더욱 실감나는 글입니다
젊은시절의 콩깍지가 아직도 중년의 가슴속에 깊히 남아있었네요
저도 직장시절 신입여직원의 콩깍지에 참으로 곤란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은 결혼하여 40중반의 유부녀가됬지만 가끔 길거리에서보면 서먹하답니다
손한번 잡은적도 없는데 ....그래서 여성의눈에 콩깍지의 미련은 잊질 못하나봅니다 잘보고갑니다
ㅎㅎㅎ 수정도 못하고 지워질까봐 바로 올렸어요. 그냥 편안하게 올려봅니다.
밤도깨비 님, 인생을 살면서 깊이 각인되는 일들이 있어요. 돌아 볼 때 유난히 기억나는 것들, 인생의 간이역이라 생각합니다. ㅎ
황사때문에 운동 못나갔었는데 이제 나갔다 와야 겠어요. ㅎ 행복한 오후 되세요.^^*
얼마나 멋있는 남자였기에~
아버지같은 사람에게 연민을 갖다니~
내용상으로 짐작해보면 양발은 몇번 빨로 갔을것 같은데
소망이님 인격을 믿고 안간것으로 결론을~~~ㅎㅎ
솔직 단백한 글에 박수를 보냅니다~~~
ㅎㅎㅎ 뭘 몰라도 한참 몰랐던 날들입니다. ㅋ
아마도 그 나이차이 생각 못한 건 학창시절 여학생들이 선생님 좋아하는 정도의 마음과 비슷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콩깍지긴 하지만 예전 잘 생겼던 영화배우 남궁원씨보다 잘생기셨다는 주위의 평이 있었습니다.
당시 함께 근무하던 네 명은 무섭다고 어려워 했었는데 저한테는 정말 따뜻하게 대해주셨었어요.
그래서 더 그런 설렘이 있었나 봅니다. ㅎ
야초님이 글잘쓴다고 하시더니
국문학 공부에 역쉬 멋진필력입니다
짝사랑도 해보고
콩깍지도 씌워보고
그저 부러울따름입니다
맞선이나보고 밋밋하게 결혼한 저는
질투납니다 아~~~부러버랑
졌소입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그저 단순하게 써내려 간 글에 과찬의 말씀 주시니 송구스럽네요. ㅎ
저는 주로 시만 써 왔기에 이런 글은 많이 부족해요.
그냥 편안하게 읽어주시니 마음 편히 올렸습니다.
정아 님. 따뜻하신 마음 감사드립니다.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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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아주 호탕하셨던 분이시죠. 지금도 그 이미지는 생생하네요. ㅎ
무엇보다 진심으로 아껴주셨었다는 생각에 지금도 웃으며 회상할 수 있는 것 같아요. ㅎ
즐겁게 읽어주셨다니 감사드립니다. 다시 읽어보니 너무 단순하게 써 내려간 글인데요. ㅎㅎ
동반자 님. 행복한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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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드 님, 표현이 정말 멋지십니다.
오키드 님 저녁 연기 피어오르 듯 표현해 주신 덕분에
마음이 한해지며 더윽 따뜻해 지네요.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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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감사합니다. 풍파를 헤쳐나가는 동안 글 접근이 안되어 시도 못썼었습니다. ㅎ
삶이 이야기방에서 댓글로 워밍업 하다가 점차 시도를 해보고 있습니다. ㅎ
이제 틈틈이 써 보고자 합니다. ㅎ 야초 님. 보약같은 말씀 참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날 되세요.^^*
괴로움도 추억이 되면 그리워지는 법 이라고 합니다.
없었던 것 보다는 있었던 것이 훨씬 좋은 추억이네요.
그너저나 조마조마하게 읽었습니다. ㅎㅎㅎ
ㅎㅎㅎ 조마조마 하셨나요? 정말 뭘 몰라도 한참 몰랐던 젊은날의
정신적 사랑만을 꿈 꿔왔던 아슬아슬함이었습니다.^^*
꽁깍지 낀 사랑은 도둑같이 옵니다
그걸 어찌 막겠습니까?
조물주가 그리 만든 것을
아름다운 추억이네요
술붕어 님. 그땐 제가 술을 마실 줄을 몰랐었네요. 지금은 붕어처럼 뻐끔뻐끔 잘 마십니다. ㅎㅎㅎ 행복한 날 되세요.^^*
콩깍지 끼다..
아주 반듯한 심성을 가지신 소망이님
같으셔요..
You mean everything to me 를
흥얼거리며 다방에서 설레었을 그감정
느끼며 참으로 잔잔하게 읽어 내려가며
공감할수 있었던 사연이시네요..
콩까지 벗겨졌을때의 그느낌도 공감이
되네요..잘 느끼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영지니 님. 감사합니다. 지금도 'You mean everything to me' 노래만 나오면 그날의 레스토랑 안의 정경이 떠오르네요.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의...
추억이란 당시 자신의 심정이 고스란히 남아있어서 돌아볼 때 더욱 실감나는 것 같아요.ㅎ
행복한 나날 맞으시다 토욜 청계산에서 뵈었으면 합니다. ㅎ 좋은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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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홀 님.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올린 평범한 글에 과찬의 말씀을 주시니 송구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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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늘 북적북적 했던 것같아요.ㅎ 예전이나 요즘이나
여자들은 오로지 마음 아닐까요? ㅎ 진심이 느껴져야 마음이 열리는 것 같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콩깍지를 낀 동안 세상은 천국이죠.
아~~~
콩깍지 그리워라 !!
ㅎㅎ 아직 콩깍지에 낄 수 있는 시간 충분합니다. ㅎ 그런데 조심하셔야 될거예요. 늦게 찾아오는콩깍지가 무섭다는풍문이...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