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떠날때까지
원제 : Until They Sail
1957년 미국영화
감독 : 로버트 와이즈
출연 : 진 시몬즈, 폴 뉴만, 조안 폰테인
파이퍼 로리, 산드라 디, 찰스 드레이크
옛날에 히트한 노래중 심수봉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는 곡이 있었습니다. 뭔가 애절한 곡조의 노래였는데 묘한 상상을 일으키는 제목 때문인지 한동안 '금지곡'이었습니다. 딱 그 노래가 생각나는 영화가 있는데 바로 1957년 흑백 고전인 '배가 떠날때까지' 입니다.
'사운드 오브 뮤직'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거장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작품으로 그가 두 편의 대작 뮤지컬을 만들기 앞서 연출한 작품입니다. 폴 뉴만, 진 시몬즈, 조안 폰테인, 산드라 디, 파이퍼 로리 등 여러 유명배우들이 등장하고 우리나라에도 개봉되었지만, 이상하게도 1959년 개봉된 이후에 TV방영이나 비디오, DVD출시 등이 안되어 희귀작 반열에 올랐습니다. 이정도 유명 스타들이 등장한 영화치고는 드문 경우지요.
뉴질랜드의 항구가 배경입니다. 1940년대, 2차대전이 한창인 시기입니다. 그 당시 뉴질랜드에 사는 네 자매의 이야기입니다. 노처녀이자 엄격한 성격의 맏언니 앤(조안 폰테인), 남편을 전쟁터로 보낸 둘째 바바라(진 시몬즈), 문란한 세째 델리아(파이퍼 로리), 그리고 아직 14살 철부지인 막내 이블린(산드라 디), 그들 자매가 사는 마을에는 남자들이 모두 군에 입대하고 전쟁터에 나가서 사실상 여자들만 사는 거리 입니다. 치열한 전쟁에 나가서 전사하는 남자들도 많고, 떠난 남자와 기다리는 여자들이 사는 마을인 셈입니다. 네 자매의 아버지도 이미 전사를 했습니다.
네 자매를 연기한 배우들
왼쪽부터 조안 폰테인, 파이퍼 로리, 산드라 디, 진 시몬즈
기약없는 전쟁터로 떠난 남자들을 기다리는 여인들
둘째 델리아는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결혼하는데
그 이유는 마을에 남아있는 남자가 그 한명 뿐이라서 그런 것이다.
진 시몬즈
둘째인 델리아는 마을에 거의 유일하게 남은 남자 샤이너와 결혼하지만 깊이 사랑하는게 아니라 남자가 그 한 명이라서 선택의 여지없이 결혼한 것입니다. 그러다 샤이너도 결국 입대하게 되고, 네 자매는 전쟁 소식에 귀를 기울이며 하염없이 살아갑니다. 그러다 델리아는 미군들이 많은 마을로 떠나는데 그 이유가 다른 남자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델리아를 걱정한 바바라는 그녀가 있는 곳을 찾아가는데 남편에 대한 죄책감도 없이 거리낌없이 미군과 어울려다니는 델리아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델리아는 바바라에게 잭 하딩(폴 뉴만)이라는 장교를 소개시켜주는데 비록 남편이 전쟁터로 기약없이 떠났지만 유부녀이기 때문에 바바라는 잭과 가벼운 인사만 하고 돌아옵니다.
대략 영화의 배경과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정말 당시 마을에 남자들이 빠짐없이 다 군대에 가야 했을만큼 뉴질랜드의 1940년대초 2차 대전 당시 상황이 그 정도로 심각했었나 하는 것을 이 영화를 보고 실감하게 됩니다. 뉴질랜드의 그 항구에는 수시로 미군 전함이 정박하러 들어오고 그 짧은 시간, 힘겨운 전쟁에 지친 외로운 병사들과 남자들 구경을 못하고 살아가는 뉴질랜드 여자들의 짧은 연애가 성행합니다. 그 짧은 기간동안 사랑에 빠져 결혼을 약속하기도 하고. 영화에서 폴 뉴만이 연기한 장교의 임무는 이렇게 뉴질랜드 여자와 갑작스러운 결혼을 하려는 병사들에게 과연 이 결혼이 할만한가 판단하기 위해서 신부가 될 여자들을 만나고 파악하는 일종의 '신부 감찰관' 같은 역할입니다. 실제로 그런 역할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각자 특정한 이유로 무척 외로운 상황에서 진실한 사랑보다 갈망에 의해서 만나게 되고 그런식으로 무분별한 외국인 유입이 되는 것을 우려해서 그런 역할을 하는 장교가 있었나 봅니다.
미군배의 정박, 여자들만 사는 마들에서는
그게 희소식인 셈이다.
전쟁터에 간 남편을 기다리지 않고 다른 미군병사와
애정행각을 벌이는 동생 델리아를 우려스럽게
바라보는 바바라
남녀 주인공인 진 시몬즈와 폴 뉴만
둘 다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였다.
30대 초반의 잘 생긴 폴 뉴만
친절한 미군 병사를 맞이하여 비로소
닫혔던 마음을 여는 첫째 언니 앤
폴 뉴만과 진 시몬즈, 한창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두 배우의 네임밸류를 볼 때 당연히 두 배우가 연인관계가 될 거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연기한 잭과 바바라의 재회는 맏언니 앤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앤은 매장에 와서 치근대며 성희롱을 하는 미군 병사를 보고 그에 대한 글을 신문에 투고하게 되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미군장교가 정중히 사과하러 오는데 그러다 앤과 사랑에 빠집니다. 그래서 둘은 결혼을 약속하고 그 장교는 다시 전장으로 떠납니다. 그래서 앤을 조사하러 온게 잭이었고, 그러다 바바라와 재회를 한 것입니다. 바바라와 잭의 관계는 다른 사람들보다 꽤 천천히 진도가 나갑니다. 직무가 직무인 만큼, 그리고 한 편의 결혼실패의 아픔때문에, 잭은 다른 병사들과는 달리 여성들에게 신중한 편이고, 바바라 역시 '명목상의 유부녀'라는 굴레가 행실을 조심스럽게 만듭니다. 물론 관객들은 바바라가 곧 과부가 될 것이라는 것을 대부분 예상을 하겠죠
종합적으로 보면 남자들이 전쟁에 나가서 없는 마을의 여성들이 잠시 그곳에 정박한 미군들과 사귀고 그 병사와 결혼하여 함께 미국에 가는 것을 꿈꾸는 뭐 그런 시대적 설정을 소재로 만들어낸 드라마입니다. 부모 없이 사는 네 자매의 가정을 등장시켜서 네 자매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내용이고 각자 성격과 특성이 다른 네 자매의 운명을 다루고 있습니다. 얼마든지 긴 이야기로 만들어 갈 수 있고, 네 자매 각각을 따로 주인공으로 해도 한 편의 영화가 나올 수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10부작 미니시리즈 분량으로도 충분한 내용이지요. 하지만 이 3년여 간의 이야기를 굉장히 압축하고 간결하게 다루고 있고, 그래서 90분이 조금 넘는 짧은 영화로 완성했습니다. 그 시간동안 네 자매의 갈리는 운명을 모두 다 종결짓고 있지요. 영화가 끝나는 시점은 히로시마 원폭 투하와 일본의 항복, 그래서 전쟁이 완전히 끝나는 지점입니다. 네 자매는 각각 행복한 해피엔딩을 맞을까요? 아니면 애절한 비련의 주인공이 될까요?
기다리는 여인들의 외로움과 고통
잭과 바바라의 재회
왼쪽부터 진 시몬즈, 조안 폰테인, 폴 뉴만
연인이 되어가는 과정이 매우 신중하고 오래걸린
폴 뉴만과 진 시몬즈
우리나라 6.25 전쟁이 연상되고 공감이 가고 관심이 가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미군병사와 사귀었던 여성들이 제법 있었고, 그 중 결혼하여 미국에 함께 간 경우는 많지 않았고, 대부분 '다시 돌아오겠다'라는 말을 믿고 하염없이 기다렸지만 결국 미혼모가 되어 힘겨운 삶을 살아간 여성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얼굴도 제대로 모르는 미군 아버지와 한국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들도 많았고. 그런 우리나라 상황이 연상이 되어 이 영화에 대한 흥미와 공감이 더 갔습니다.
뛰어난 걸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통속적 재미가 충분한 영화입니다. 오히려 이걸 사회물로서 좀 더 깊이있게 만들었다면 걸작으로는 칭송받았을 지언정 영화는 좀 더 많이 길어지고 지루해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냥 네 자매의 삶에 촛점을 맞추어 통속적으로 간결하게 처리한게 보이는 더 편했습니다. 보편적으로 무난한 상업영화지요. 물론 그 배경에는 폴 뉴만, 진 시몬즈, 조안 폰테인 등 유명 배우들의 출연히 뒷받침 된 이유가 컸지요. 폴 뉴만과 진 시몬즈는 한창 젊은 시절이었고, 조안 폰테인은 다소 나이는 들었지만 품위있는 모습이었고, 산드라 디는 당시 15살의 청소년으로 '피서지에서 생긴 일' '9월이 오면' '슬픔은 그대 가슴에' 시절에 비해서도 훨씬 상큼하고 앳된 모습입니다. 이들 보다는 네임밸류가 떨어지지만 세째 역의 파이퍼 로리는 제법 아름다운 미모로 등장하는데 여기 출연한 네 자매 역할의 여배우중 현재 유일하게 생존중인 인물입니다.(올해 87세), 빅스타는 못 되었을지언정 최근까지도 꾸준히 연기를 하는 장수배우입니다. 폴 뉴만과 주연한 '허슬러' 정도가 알려졌는데 주로 TV에 많이 나와서 우리나라에서 많이 접할 기회는 없었습니다.
왼쪽부터 파이퍼 로리, 진 시몬즈
이 영화에서는 오히려 파이퍼 로리의 미모가
진 시몬즈를 압도한 느낌이다.
배가 떠날때까지, 미군이 잠시의 정박을 끝내고 다시 전장터로 출항할때까지만 만날 수 있는 짧은 연애, 전쟁이 얼마나 사람들의 이성을 피폐하게 만들고 그래서 전쟁은 정말 없어야겠다 라는 생각을 많이 들게 하는 영화입니다. 2차대전시기의 영화를 보면 주로 미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이 배경이지만 이렇게 뉴질랜드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드물었기에 더욱 흥미로웠습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말이 있는데 뉴질랜드가 바로 그꼴 아니었을까 싶네요. 뉴질랜드에서도 그렇게 많은 참전과 희생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았습니다. 부디 21세기는 전쟁없이 오래 흘러가기를 바라게 됩니다.
ps1 : 뉴질랜드 현지 촬영에 정부와 군인들이 적극협조를 해서 MGM 영화사에서 감사를 표시하는 자막이 오프닝에 등장합니다. 세트촬영 시대였지만 직접 현지촬영을 많이 한 영화입니다.
ps2 : 제목은 '네 자매 이야기'로 해도 되고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고 해도 내용에 딱 맞네요. 당시 영화로는 보기 드물에 원제를 그대로 직역해서 개봉제로 사용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ps3 : 조안 폰테인과 산드라 디의 나이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모녀사이처럼 보인다는게 좀 단점이긴 합니다.
ps4 : 소중한 사람의 사망전보를 받고도 다시 의연하게 살아가는 여인들이 모습이 애틋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출처] 배가 떠날때까지(Until They Sail 57년) 네 자매 이야기|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