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그리스인 조르바’의 카잔차키스 사후 51년 전집 30권 첫선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30권) 열린책들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인이다
이 글은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1957)의 묘비명이다. 크레타섬의 도시 이라클리온의 ‘메갈로 카스트로(큰 성)’ 꼭대기에 가면 작가의 무덤이 있다. 호쾌하고 농탕한 자유인의 초상을 그린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로 유명한 그는 그리스 영토 중 유일하게 터키의 지배를 받았던 크레타 출생으로 스페인 내전과 제2차 세계대전, 러시아혁명, 중국혁명을 목격하고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했으며 유럽과 아시아 각지를 여행했다. 베르그송과 니체에 심취했다가 불교에 귀의했다. 그리고 수많은 소설과 희곡, 서사시, 여행기, 자서전, 편지를 남겼다.
카잔차키스 사후 51년, 저작권 시효(사후 50년) 만료와 함께 그의 전집이 나왔다. 생전의 카잔차키스와 공동 작업을 했던 키먼 프라이어의 영역본을 비롯, 영어 중역으로 9년간 12명의 번역자가 참여했으며 원고지 5만장 분량이다. 표지화와 저자 초상화는 화가 이혜승씨가 그렸다. 카잔차키스가 많이 알려지지 않은 국내사정을 감안할 때 대담한 기획이다.
카잔차키스는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의 나라인 그리스의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거장이다. 어린 시절 터키 지배하에서 기독교인 박해사건과 독립전쟁을 겪었으며 아테네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뒤 1908년 파리로 유학을 떠나 베르그송의 강의를 듣고 니체를 공부했다. 이런 출신 배경과 학업으로부터 그는 종교적 도그마에 대한 회의, 자유를 향한 내적 투쟁을 정신세계의 중요한 부분으로 취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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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종교와 사상을 섭렵하고, 여행과 글쓰기로 삶을 채웠으며, 정주하지 않는 유목민으로 살았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초상. 그림 | 이혜승·화가 |
20대 중반부터 그는 유럽과 아시아 지역을 두루 다녔고 이때 쓴 글을 신문과 잡지에 연재했다가 나중에 여행기로 출간했다. 1917년(34세) 펠로폰네소스에서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이자 실존인물인 기오르고스 조르바와 함께 탄광사업을 했고, 1919년(36세) 베니젤로스 총리를 도와 공공복지부 장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1922년(39세) 베를린에서 그리스가 터키와의 전쟁에서 참패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민족주의를 버리고 공산주의적 행동주의와 불교적 체념을 조화시키려 시도한다. 이후 특파원 자격으로 세계 여행을 계속했으며 1920년대 후반에는 러시아를 3번이나 방문했다. 1945년(62세) 잠시 그리스 사회당을 이끌었으며 1957년 백혈병으로 타계했다.
그는 아테네대학 재학 중 소설 ‘뱀과 백합’, 희곡 ‘동이 트면’을 발표했는데 ‘동이 트면’이 1924년 아테네에서 공연되면서 약관에 일약 유명인사가 됐다.
그러나 30대에는 스페인 지중해 러시아 등 여행기가 주를 이루며 ‘돌의 정원’(1936년), ‘오디세이아’(1938년) 등 본격적인 소설이 나온 건 40대에 들어서면서부터다. 그후 희곡 ‘붓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수난’ ‘미할리스 대장’ ‘최후의 유혹’ 등의 대작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중 크레타를 무대로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 사이의 투쟁을 그린 ‘미할리스 대장’과 예수의 인간적 고뇌를 그렸으며 마틴 스코시지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던 ‘최후의 유혹’은 1953년 신성모독으로 그리스정교회의 금서가 되기도 했다. 1980년대 이후 국내에서도 ‘그리스인 조르바’ ‘오디세이아’ ‘미할리스 대장’ ‘최후의 유혹’ 등 8종의 책이 번역됐으나 ‘…조르바’를 빼고는 대부분 절판됐다.
카잔차키스는 “죽음을 어떻게 이길 것인가, 사물의 본질은 무엇인가, 인간은 왜 지상에 왔는가라는 문제와 씨름한 작가이자 사상가”(번역자 이종인씨), “신을 통해 구원을 받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을 구원해야 한다고 주장한 자유인”(번역자 이윤기씨)이다. 호메로스와 베르그송, 니체, 조르바를 ‘내 영혼에 깊은 골을 남긴 사람’으로 꼽았던 카잔차키스는 여행과 꿈을 통해, 저항과 자유를 통해 물질·육체·속(俗)의 세계에서 정신·영혼·성(聖)의 세계로의 초월을 도모했다.
그의 작품세계는 인생과 사상의 궤적을 따라 작은 씨앗들이 발아하면서 꽃을 피우는 식으로 펼쳐진다. 이종인씨의 설명에 따르면 이번 전집의 첫 권 ‘향연’에 들어있는 초기 단편 ‘신을 구하는 자’는 중국·일본 여행을 통해 영감을 얻은 뒤 쓴 장편 ‘돌의 정원’의 전편에 분산돼 있고, 이는 다시 3만3333행으로 이뤄진 대서사시 ‘오디세이아’의 주제로 이어진다. 고전 ‘오딧세이’에서 귀를 틀어막고 몸을 돛대에 묶은 채 세이렌의 노래를 듣는 오디세우스의 에피소드를 따온 ‘오디세이아’는 죽음을 이겨내고 물질을 정신으로 변화시켜 마침내 영혼이 자유롭게 된 텅빈 공허를 노래한 역작이다. 카잔차키스 자신이 ‘신을 구하는 자’와 ‘오디세이아’를 최고의 걸작으로 꼽기도 했다.
이윤기씨는 역자의 글에서 “1981년 ‘희랍인 조르바’를 처음 번역했을 당시 카잔차스키라고 잘못 부르는 사람이 많았다”면서 “작가 이름이 헷갈리면 ‘가장 첫 키스’를 빠르게 발음하라”는 우스갯 충고를 한다.
또 영국 평론가 콜린 윌슨은 1951년과 1956년 두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로 지명됐다가 낙마한 사실을 놓고 “카잔차키스가 카잔초프스키(러시아인)이었다면 수상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각권 1만800원
[책과 삶]영혼의 자유를 노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