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닭볶음탕과 휴대폰>/구연식
주말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아내와 드라이브하는 날이다. 오늘의 행선지는 가람 이병기 선생 생가와 황진이와 소세양의 러브스토리가 서려있는 소세양신도비를 둘러보기로 했다. 점심은 오랜만에 지방분이 적고 단백질 성분이 많다는 닭볶음탕을 먹기로 했다. 닭볶음탕은 토종닭 1마리가 기본이어서 보통의 경우는 어른 3명이 먹으면 알맞다. 그래서 아내와 같이 갈 때는 먹고 남아서 포장해서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섣달그믐 때는 눈이 펑펑 내려야 보리는 눈 이불로 덮어줘서 뿌리는 들뜨지 않아 착근이 잘되고, 잎은 무성하게 자라서 보리 풍년과 눈의 강수량으로 내년의 풍년을 기대하기도 한다. 그런데 눈은커녕 비가 내리고 있다. 그것도 찔끔찔끔 내려 자동차 유리창만 먼지에 얼룩져 모두 다 싫은 비이다. 오늘 점심은 익산 왕궁저수지 옆에 있는 ‘사은 가든’에서 닭볶음탕을 먹기로 했다. 의도적으로 닭 가슴살을 중심으로 오랜만에 단백질 보충으로 점심을 마쳤다.
그런데 닭살 찌꺼기가 어금니 사이에 많이도 끼어서 입안 전체가 뻑뻑하고 답답하여 다음 행동보다 잇 발 사이 찌꺼기 제거가 급해진다. 식당 밖으로 나와서 이쑤시개로 여러 번 시도해 봐도 어금니 사이에 낀 찌꺼기는 물속 바위 사이에 숨어있는 작은 갑각류처럼 건드릴수록 더 깊이 안쪽으로 숨어들어 제거할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이동하면서 해결하기로 했다.
자동차를 운전하기 위하여 외투를 벗으려니 휴대폰이 외투 주머니에 있다. 휴대폰을 꺼내어 잠깐 자동차 지붕 위에 올려놓고 외투를 벗어 가지런히 개어서 뒤 자석에 넣고 출발했다. 식당에서 가람 이병기 선생 생가까지는 약 8㎞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다. 가는 길은 왕궁저수지 수변도로로 작은 소로 길이고 교통량도 적어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이다. 저수지 가에는 얼음이 그대로인데 조금 안쪽에는 얼지 않아서 겨울 철새들이 파도에 몸을 맡겼는지, 제자리에서 물 갈퀴질을 하는지 일렁이는 물결 위에 그대로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서 인위적 같은데 자연적이어서 눈을 떼지 못했다.
경치가 아름다워 갓길로 시속 30~40㎞로 여유 있게 가다가 쉬다가 하면서 이따금 이쑤시개는 어금니 미련에서 떨치지 못하며 가고 있다. 그런데 조금 수상한 자동차 한 대가 계속 뒤를 따라붙는 느낌이 든다. 백미러와 룸미러를 번갈아 보니 비상 깜빡이를 키고 따라오고 있다. 혹시 자기네 자동차에 문제가 생겨 다른 자동차 접근을 예방하는 것 같기도 했다. 자동차를 옆으로 빼주고 앞으로 가라는 신호를 해도 이제는 내차 옆에 바짝 붙더니 차창을 내리고 시비조로 무어라고 한다. 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 식당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무슨 잘못이 있었는가? 여러 가지를 거슬러 생각해봐도 그런 것은 없는 것 같다. 상대방 운전자를 보니 4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 혼자인데 얼굴은 평범해 보여 만약 싸운다 해도 해볼 만한 상대라 안심은 된다.
나는 아무 대꾸도 안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국도 1호선 진입로 100여 m 앞에서 내차 앞에 주차하면서 큰소리로 “핸드폰! 핸드폰!” 하는 것이다. 아차! 그때서야 식당 주차장에서 외투 호주머니 휴대폰을 차 지붕에 올려놓고 지금까지 10여 분 정도 달려온 것을 알았다. 자동차에 내려 고맙다고 인사를 했더니 고개만 끄덕하더니 정신 차리고 안전 운전하라는 뜻인지 마후라에서 성낸 연기를 내뿜으면서 쌩하고 사라진다. 참으로 고마운 젊은이다. 고마운 젊은이가 못 봤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휴대폰 값이 문제가 아니라 나의 지인들의 전화번호와 기타자료들 그리고 신용카드 등은 박살이 나서 비싼 닭볶음탕을 두고두고 후회할 텐데 좋은 은인을 만나서 전화위복의 기회로 여겨 나의 헛된 점을 반성하게 한다. 세상에는 도둑맞은 사람이 더 죄가 크다는 말이 있다. 세상사람 모두 다 내 물건 가져간 도둑놈으로 보는 잘못된 선입견이 빚은 죄를 범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도둑맞으려면 개도 안 짖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개가 짖어줘서 도둑을 막았다. 어금니 사이에 낀 닭고기 찌꺼기가 신경 쓰여 운전을 빨리 못하게 했고, 왕궁저수지 수변도로 아름다움이 유혹하여 천천히 운행했고 통행량이 뜸한 소로 길이였다. 뭐니 뭐니 해도 좋은 사람이 뒤에 따라오면서 휴대폰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기한테 좋으면 무엇이든지 아름답게 보이는 모양이다. 그렇게 좋은 은인을 적으로 알고 싸움할 자세를 생각했다니 양심에 부끄러워 내 자신에게 고해성사라도 해야겠다.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 본다. 그것도 모르고 많은 차량이 쌩쌩 달리는 국도 1호선에 진입하여 안전속도 8~90km로 달렸을 것이다. 이때 휴대폰은 바람에 날려 아스팔트 길에 내동냉이 쳐 게딱지 부서지듯 박살이 나서 속수무책이었을 것이고, 나의 실수로 빚어진 결과에 망연자실하여 후회만 남았을 것이다. 주인 잘못 만나서 토끼 용궁 갔다 온 휴대폰을 어루만지면서 휴대폰을 달래본다. 옆자리 아내를 바라보니 마음은 나를 보는 것 같은데, 어이가 없다는 듯 시선은 먼 하늘을 보고 있다. 참으로 값비싼 닭볶음탕을 먹고 또 다른 삶의 교훈을 얻었다. 오늘의 액땜은 이것인 것 같은데 또 다른 것들이 들고 일어날까봐 나머지 일정은 다음에 미루기로 하고 조심조심 집으로 돌아왔다. (2022.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