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덫...
참 많이도 들어 본 단어다.
영화 제목도 있고, 드라마 제목도 있고
그 드라마가 인기리 방영되어서
다시 제작되기도 했던 그런 단어다.
그러나, "불혹의 덫" 이란 단어는
그다지 흔히 들어 볼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내가 느끼기엔
웬지 불경스럽게도 느껴지는 그런 단어다.
나는 알았다.
"청춘의 덫"보다 더 무서운게 "불혹의 덫"이란 사실을...
내가 깊이 깊이 겪어보고서야 알았다.
얼마전 아니, 한 1여여년전부터이던가?
하여튼... 의욕을 잃기 시작했다.
몸도 예전같지가 않았다.
아침 5시 50분쯤이면 어김없이 떠지던 눈이
7시가 되어도 일어나기가 싫었다.
마음의 온도계의 눈금은 땅속 깊이 깊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뭔가 잘못되어감을 느꼈지만
'딱'히 할 일이 없었다.
회사에서도 내게 주어진 일 외엔 관심이 가질 않았다.
집안에서도 기본적인 가사일 외엔
그다지 하고 싶은게 없었다.
예전엔 쓸고 닦고 기름치고 나면
행복하고 뿌듯하던 일마져도 그다지 의미가 없어졌다.
김치를 담글때면
남편이 맛있게 먹는 모습이 떠오르면
절로 흥이 나고 행복하게 담았다.
그러나, 그 김치 담기도 귀찮아졌다.
하물며 어쩔땐 아이들마져도 귀찮아지기도 했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특별한 불만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작년 어느때...
나는 날마다 남편과 헤어지자고 '땡깡'을 부렸다.
누가 들어도 억지에 억지를 뒤집어 씌운
그런 이유들을 대가면서 말이다.
억지란것을 나 스스로도 잘 알았지만
그런데도 남편과 헤어지고 아이들에게서 벗어나
멀리 떠나고만 싶어졌다.
어릴때부터 가고 싶었던 그 곳으로
돈의 여유를 만들어서라도 유학을 떠나고 싶었다.
그렇다고 공부에 대한 집착이나
무슨 큰 미련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다만... 꿈같은 것을 이루고 싶은 정신적인 사치였다.
운동을 꽤나 즐겼던 나는
수영도 싫어졌고
그 외 다른 운동들도 '의미없음'으로
나를 가로 막았다.
친구도 만나기가 싫어졌다.
노후를 서로 바라보면서 같이 늙어갈 것만 같았던
그런 친구 두어명마져도 '의미없음'으로 느껴졌다.
평상시... 날 아주 잘 알고 있던 그 친구는
예전의 친구모습이 아님을 느끼면서부터는
날마다 전화를 해 댔고
날마다 문자 메세지도 보내오기도 했지만
그것마져도 그다지 큰 감사함으로 다가오질 않았다.
몸이 아프고 쑤시고
맨날 누울자리만 찾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면
차라리 내가 아니고 싶었졌다.
내마음의 온도계의 눈금은
자꾸만... 자꾸만... 내려갔다.
아무리 발악을 해도
전혀... 올라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요즈음은 그렇다.
뭔가를 시작했다.
어학에 아주 아둔한 나지만
뭔가에 시도를 했다.
그 뭔가가 내 현실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지라도
이대로... 주져앉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내차의 뒷좌석에 테니스 라켓을 싣고 다닌지가
벌써... 여러달째다.
아마... 이번 장마가 끝나면
아무리 더위가 기승을 부려도 다시... 시작을 할 것만 같다.
이번엔...
길고 길게만 느껴졌던 거의 2년동안
아래로 아랠로 내려만 가던 나의 내부온도계의 눈금을
이젠... 그만 끌어 올리고야 말겠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현실 감각이 다시 찾아와 준 것은...
神께 감사하게도
늘... 보듬어 줬던 남편과
엄마의 투정이
진실이 아니란 것을 진즉 알았다고 했던 아들과
곁에서 나의 편이 되어 주었던 딸과
날마다 내게 전화를 해대고
어쩌다가는 남편에게까지 전화를 해 준 친구와
지금은 이세상에서 함께 할 수 없지만
너무 멀리 떨어져 살아서
날마다 지네 형부에게 전화로 밖에
힘이 되어주지 못함을 미안해 했다던
내동생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이젠...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만 같다.
너무도 무서운 불혹의 덫에 치어 본 나는 알았다.
"청춘의 덫"보다도 더 무서운게 "볼혹의 덫"이란 사실을...
- 기 차 여 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