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생의 눈으로 영화보기
친절한 이웃집 공돌이 스파이더맨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서울공대 상상 예비 공대생을 위한 서울공대 이야기 2019 Autumn vol .29
글 김재원, 전기정보공학부 3
편집 심수정, 재료공학부
3
친근함과 정의로움을 겸비한 소년 히어로,
스파이더맨이 마블 시리즈의 2019년 마지막 영화로 돌아왔습니다!
이 영화가 속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1 0년이 넘는 시간 동안 20편이 넘는 영화를 찍어내며 스토리를 이어온
인기 있는 슈퍼히어로 프랜차이즈인데,
마블 세계관을 지탱하는 가장 큰 특징이 ‘현실성’이기에
이번 영화 곳곳에서도 실제 개발 중인 기술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영화에 나온 공학적인 요소들을 소개하기에 앞서,
이 기사에는 내용상 중요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아직 영화를 보시지 못한 독자 분들은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 우리도 거미처럼 벽에 붙어있을 수 있을까?
스파이더맨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자세 중 하나는 벽에 발과 손을 붙이고 있는 것입니다. 스파이더맨이 아닌 우리도 건물 외벽에 달라붙을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능합니다! 2014년 스탠포드 대학교의 연구진이 개발한 게코 글러브 기술을 이용하면, 끈끈한 접착제 없이도 벽을 오를 수 있습니다. 해당 접착판은 미세한 섬모 수십억 개가 촘촘히 난 게코 도마뱀의 발바닥을 모방했는데요, 서로 다른 전하로 대전되어 있는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정전기력’과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순간적으로 전하가 발생하여 중성 분자들끼리 잡아당기는 힘인 ‘반 데르 발스 힘’이 섬모의 표면과 벽 사이에 작용해서 게코 도마뱀의 작은 발로도 2kg 정도까지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 구조만으로는 무게가 쏠리면 금방 떨어지기 때문에, 접착판을 여러 조각으로 나눈 뒤 하중을 분배하는 힘줄 구조를 추가하여 몸무게 70kg의 대학원생이 140cm2 면적의 접착판으로 유리벽 3.6m를 기어오르는 데 성공했습니다. 더 나아가 섬모 구조를 이용하여 접착력이 강하면서도 탈부착이 쉽고 접착제가 벽에 남지 않는 게코 테이프까지 개발했다고 하네요.
▲ 게코 글러브를 이용해 벽에 오르는 모습
▲ 평창 올림픽에서의 드론 군집 비행 퍼포먼스
▲ OTD 기술을 이용한 3D 홀로그램
● 벌떼처럼 몰려다니는 군용 드론들
영화에서 주인공 피터는 증강현실 기능이 탑재된 선글라스 ‘E.D.I.T.H’(이하 이디스)로 해킹, 감청 등 다양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요, 이 중에서도 가장 핵심이 되었던 것은 인공위성에서 드론을 투하하여 조종하는 기능입니다. 드론, 즉 무인 멀티콥터 기술은 항공 촬영 외에도 일상에서 활용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있는 실용적인 기술입니다. 영화에서처럼 살상을 목적으로 하는 군사용 드론도 오래 전부터 활발히 개발되어 왔는데요, 최근에는 AI 기술의 발달로 폭격, 정찰용뿐만 아니라 타깃의 얼굴을 정확히 인식하고 암살하는 암살용 드론마저 연구되면서 군용 드론은 세계 드론 시장의 70%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작년 여름, 폭탄을 실은 드론이 연설 중인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암살하려다 실패한 사건을 보면, 드론의 살벌한 총소리가 영화 속의 일만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디스의 군용 드론에는 살상 무기 말고도 깜짝 놀랄만한 기능이 더 숨어있습니다. 바로 한치의 오차 없이 무리 지어 비행하는 군집 비행 기술입니다. 아마 평창 올림픽에서 인텔 사가 무려 1,218대의 드론으로 선보인 오륜기 퍼포먼스를 통해 이 기술을 보신 적 있을 텐데요, 언뜻 봐서는 드론을 몇 대 더 조종하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1,218개의 드론 중 단 한 대만이라도 자신의 위치를 잘못 파악한다면 큰 충돌 사고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군집 비행을 하려면 많은 기술이 필요합니다. 드론과 지상국의 원활한 상호작용을 위한 5G 통신 기술에 더불어, 바람의 저항에 맞서 비행체를 컨트롤하기 위한 제어공학, 센서, AI, GPS까지 다양한 분야의 기술이 포함됩니다. 드론 군집 비행의 핵심은 기존의 GPS를 개선한 RTK-GPS 기술입니다. 위성에서 드론에게 보내는 신호가 전리층, 대류권에 의해서 틀어지기 때문에 드론의 개수가 많아질수록 GPS의 오차가 커지는데요, RTKGPS는 미리 위치를 알고 있는 지상의 베이스 지점을 기준으로 물체의 거리와 각도를 계산하여 이러한 오차를 보정합니다.
● 세상을 속인 3D 홀로그램 기술
영화 초반만 하더라도 스파이더맨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줄 것만 같았던 정체불명의 히어로, 미스테리오. 하지만, 그는 사실 자작극을 통해 가상의 히어로가 되고자 하는 이 영화의 주요한 빌런(악당)이었습니다. 미스테리오는 완벽한 자작극을 위해 다양한 공학 기술을 도입해서 지구상의 모든 사람을 속이는데 성공할 뻔했습니다. 그 중 가장 놀라웠던 것은 초고해상도 3D 홀로그램 기술이었습니다. 어느 방향에서 봐도 입체로 보이는 홀로그램 기술은 SF 영화의 오랜 단골 소재인데요. 그렇다면, 이제는 영화 밖에서도 이러한 홀로그램을 만나볼 수 있을까요?
위의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우선 홀로그램 기술이 무엇인지 알아야겠지요? 홀로그램이란 레이저 광선의 간섭효과를 이용하여, 입체적인 상을 재현하는 기술을 말합니다. 얇은 필름에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홈을 파서 평행한 광선의 굴절 경로를 다르게 하면, 3차원 상을 보는 듯한 착시를 줄 수 있습니다. 빛의 간섭 현상 대신, 반사시킨 광선을 45도 각도로 서로 기울어진 두 투명 스크린에 투영시키는 간단한 방법을 이용한 ‘플로팅 홀로그램’은 엄밀히 말하면 홀로그램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광화문 앞에서 열린 홀로그램 시위나 해외에서 개최한 K-POP 홀로그램 콘서트가 플로팅 홀로그램을 이용한 행사였죠. 따라서 어느 방향에서나 3D로 보이던 미스테리오의 홀로그램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기술의 한계에 실망하기엔 이릅니다. 브리검 영 대학(BYU)의 대니얼 스몰리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이 ‘오픈 트랩 디스플레이(Open
Trap Display; OTD)’라는 기술로 3D 영상 제작에 한 발짝 다가갔으니 말입니다. OTD는 1000분의 1초 단위의 초정밀 광선의 위상을 공간적으로 변조한 뒤, 가변 초점렌즈를 이용해 다초점으로 쏘아주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쏘아진 빛은 이온화된 공기 입자에 가두어져서 유리 등의 스크린이 따로 필요 없습니다. SF 영화에서나 보던 3D 홀로그램 기술을 실생활에서 만나볼 날이 머지않은 것 같네요.
별점 및 총평 ★★★★☆
평소 마블 시리즈에 관심이 없더라도 스토리 자체만으로 즐길 수 있을만한 영화였고, 기존 팬의 입장에서도 신선한 요소가 많은 영화였습니다. 드론과 홀로그램이라는 첨단 기술을 이용하는 모습도 신선했고, 미스테리오가 든든하고 강력한 조력자를 연기하다가 사실은 아무 능력도 없었던 빌런임을 드러낼 때 영화 속 인물들은 물론 기대하던 관객들까지 속여넘기는 모습을 보고, ‘화려한 허상’이라는 인물의 정체성을 잘 표현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항상 지구 정복이라는 목표로 악행을 하다가 히어로의 각성에 쓰러졌던 전형적인 악당의 클리셰 대신 색다른 스토리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미스테리오의 부와 명예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과 전작의 히어로인 토니 스타크의 자기 희생적인 모습을 대비시키는 연출이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토니 스타크도 미스테리오처럼 신체적으로는 특별한 점이 전혀 없지만, 미스테리오가 자신의 뛰어난 공학 기술로 타인을 해치고 명예에 집착했다면 토니는 그 능력으로 신체적인 차이를 극복하고 우주적인 위협에 맞서서 자신의 목숨마저 희생했죠. 두 사람의 대비는 본인이 개발한 기술이 사회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는 이상적인 공학자의 상을 제시하는 것 같았습니다. 미래의 공학자를 꿈꾸는 독자 분들이 이런 포인트를 생각하면서 영화를 보신다면 더 재미있게 즐기실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