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 부경의 차주 출전등록이 이뤄졌다.
10개 경주의 등록현황을 보니 한 주 앞으로 다가온 레이팅체계 전면 도입이 비로소 실감된다.
레이팅시스템은 쉽게 말하면 경주마의 능력을 점수로 환산해 서열을 매겨두는 것으로,
비슷한 레이팅 분포대에 있는 말들끼리 편성함으로써 경쟁을 유도하고 박진감과 재미를 높인다는 취지다.
또한 일종의 국제규격으로써 상위 파트국과 우리의 경주마 및 경주의 질을 직간접 비교하는 자료로 활용된다.
비록 세계경마연맹의 공인 레이팅은 아니지만
「아시아챌린지컵」과 같은 국제대회를 통해 우리의 수준이 어디까지 올랐는지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간 경주편성을 지탱해 온 밑바탕은 군체계였다.
경주마 가용규모에 따라 6군과 5군 체계를 오가기는 했어도 군(群, 등급)의 개념은 항상 있어왔다.
군체계는 승군점수를 미리 계산할 수 있고 가용자원 변동이 크지 않아 편성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상위군으로 갈수록 정체되는 경주마의 비율이 늘어 반복되는 편성이 이어지고 있고,
또한 동일 군내에서도 격차가 커 박진감을 떨어뜨리는 문제가 지적돼 왔다.
용이할지는 몰라도 효율성은 없는 체계였던 것이다.
각 경주마의 능력치를 점수로 환산해 서열을 매긴 후 군편성이 아닌,
거리별 연령별 성별로 조건을 던져주고 그에 적합한 경주마들이 뛰어들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 레이팅체계다.
마방 관계자들은 상대와 부담중량의 대략적 윤곽을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있고,
우수마를 과중량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는 점 등이 레이팅체계의 장점이다.
시행을 앞두고 몇 가지 의문점이 있다.
전체적인 부담중량을 결정하는 기준마의 존재, 즉 ‘기준마의 기준’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제도의 취지를 살릴 수 있을 정도로 경주마 풀(pool)이 확보될 것인지도 현재로선 미지수다.
부족한 자원 때문에 도착 차와 기록, 박진감 등 군 체계와 차별화되지 않는 편성이 속출한다면
레이팅제 도입의 의미가 없을 것이다.
출마등록을 통해 열흘 전에 사실상의 편성이 이뤄지는 만큼 공정성 확보 여부도 장담할 수 없다.
사전에 대비할 수 있다는 제도적 장점이 악용될 소지는 없는지 꼼꼼히 살펴야 할 것이다.
강군과 이를 위한 장기간의 승부회피는 사실 걱정할 필요가 없다.
강군 자체에 보수적인 기준을 적용할 예정이고
승군과 강군을 거듭할 정도의 능력이라면 큰 영향력을 끼치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는 등급 간 상금 격차를 넓혀 하위등급에서 높은 중량으로 우승하는 것보다는
상위등급에서 낮은 중량으로 순위권이라도 진입하는 것이 낫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할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일률적 가감 기준으로 인해 경주마의 성장을 저해할 가능성은 없는지 여부다.
마사회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마신 차, 기록 등에 의해 레이팅 가감이 표준 적용된다면
전 능력을 발휘하려는 우수마들이 많지 않을 것이다.
능력 발현으로 인한 부담중량 피해가 돌아가지 않도록
우수마의 발굴을 독려하는 방향으로 레이팅이 적용될 필요가 있다.
현 시점에서 가장 큰 의문이자 우려는 핸디캐퍼와 그들이 내놓는 레이팅에 대한 관계자들의 신뢰도다.
관계자들은 우선, 부담중량과 연동된다는 점에서 레이팅체계에 예민하게 반응하고있지만
이 시스템의 진짜 역할은 원활하고 효율적인 경주편성에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레이팅체계는 부담중량 부여방식이라기보다 편성체계인 것이다.
따라서 개별적인 레이팅이 얼마고 그에 따른 부담중량의 타당성을 논하기보다는
편성의 질이 어떤가를 중점적으로 살피고 평가해야 한다.
레이팅은 대략적 우열을 알려주는 가이드라인이지 실제 우승마와 입상마를 가리키는 지표가 아니다.
정해진 선수 풀 내에서 활용도를 극대화하고 용이하게 하기 위한 장치일 뿐
그 이상 확대해석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레이팅이 옳은지 그른지는 누구도 정확히 판단할 수 없다.
매 케이스마다 소모적 논쟁을 벌여 신뢰를 떨어뜨리고 제도 시행의 취지를 퇴색시키는 일이 없길 바란다.
경마전문가가 본격적으로 육성되고 활용된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기대가 크다.
우리 경주마 약 3500여 두를 정확히 평가하고 서열화 할 수 있는 전문가집단은 진작에 있었어야 했다.
첫 시도이고 신뢰도가 크지 않은 만큼 시행 초기 난항을 겪을 수 있겠지만
흥미로운 편성과 결과를 통해 핸디캐퍼들이 현장의 신뢰를 얻고 진정한 전문가로 올라서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