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428장(통488)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가복음 2장 18~22절
말씀 :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묻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이나 경건한 바리새인들은 모두 금식을 하는데 왜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금식은 슬픔과 애통, 결단을 표현하는 신앙 행위입니다. 신앙의 조상들은 가장 소중한 것을 끊어버리는 금식을 통해 하나님 앞에 서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레미야서를 통해 “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내가 그들을 멸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쏙 빠진 형식뿐인 금식에 대해 질타하는 말씀입니다.
신앙이 형식화되고 오래 반복되면 종교생활과 신앙생활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참된 신앙은 예수님과 동행함의 기쁨을 누리고 이웃에게 신랑 되시는 예수님을 전하는 삶인데 기독교가 종교화되고 복음이 율법화되면 기쁨과 자유, 생명이 없는 무미건조한 상태가 됩니다.
이때 예수님이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혼인집 손님들이 초대를 받아서 신랑과 함께 있을 때 금식할 수 있겠느냐.” 이는 혼인 잔치에 가서 신랑이 함께 있을 때는 기쁨과 축하를 나누는 잔치가 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신랑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땅에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 구원으로 임하신 예수님이 우리의 신랑 되어 주셨기에 우리의 모든 신앙과 삶의 기준은 오직 예수님이 돼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새 포도주는 오직 부드러운 새 부대에 넣어야 새 포도주도 새 부대도 온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새 포도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몸을 찢으시고 당신의 몸을 내어 주심으로 낡은 부대인 유대교가 담지 못하는 새로운 포도주, 즉 생명의 보혈이 돼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주님은 지금 금식을 하냐 안 하냐를 가지고 논쟁하는 편협한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 “내가 생명이다. 내가 포도주다. 내가 신랑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새 부대가 될 때만 새 포도주 되신 예수님을 온전히 모실 수 있습니다. 기존의 관행으로 어떤 변화도 거부하는, 딱딱하게 굳은 낡은 부대가 되면 결국 터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닮을 수 없고 이 시대의 복음을 담을 수 없는 터진 그릇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제 변하지 않는 이 복음, 이 새 포도주를 이 시대에 맞는 새 부대에 잘 담아서 우리의 다음세대에게 잘 전달할 수 있는 우리 가정, 우리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낡고 굳어진 마음들이 새롭게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새 가죽 부대에 새 포도주이신 예수님을 품고 복음을 품어내어 다음세대에게 잘 전달할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17233603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