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학전공 교수인 강남대학교 이창석 2부 대학장(58)은 요즘 제자들을 만나면 마음이 무겁다. 사회과학부, 사회복지학부, 경제통상학부, 경영학부를 총괄관리하고 있는 그는 국내경기불황으로 사회진출한 제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까닭이다. 올 가을 취업도 벌써부터 걱정이다. 특히 부동산학을 공부해 관련분야에서 일하는 졸업생의 경우 상황이 무척 어렵다는 소리를 자주 들어 가르친 스승으로서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이 학장은 방학중인데도 학교에 나와 학사업무도 챙길 겸 2학기 수업준비, 제자들 취업알선 등에 신경을 쓴다. 경기도 용인시 기흥읍 구갈리 산에 있는 강남대 샬롬관 10층 학장실에서 만난 그는 부동산시장의 실상을 제자들 근황으로 대신했다.
"몇 일전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제자들을 만났더니 부동산시장이 다 죽어 폐업단계에 있다고 하더군요. 건설분야도 예외가 아닙니다. 국내 최초의 4년제 대학 전공학과 출신자들로 실력 있고 자긍심도 높은 똘똘한 아이들이었는데…"
부동산중개업사무소의 경우 사업부진이 아니라 사업장문을 닫을 지경으로 IMF환란 후 최악의 상황을 맞은 것 같다고 했다. 부동산경기불황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지난 5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서도 잘 나타난다. 지난달 건설기업 경기실사지수(CBSI)가 43.6으로 1998년 조사 후 최저를 기록했다. CBSI는 올 들어 4월 74.4였으나 5월 68.5, 6월 59.7로 내리막길이었고 7월엔 50미만으로 뚝 떨어졌다. (이 지수는 건설업체들을 대상으로 매달 조사하며 100이상이면 체감경기가 좋아지는 것을, 그 이하는 악화 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얼마 전 건설교통부가 내놓은 부동산시장 살리기 연착륙방안은 아무 효과 없습니다. 한마디로 실패라고 봅니다. 근본처방 없이 변죽만 울린 꼴이니까요. 섣부른 부양책은 오히려 독이 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투기를 잡으려다 서민들만 잡은 꼴이 됐고요."
연착륙내용이 효과를 보려면 오래 걸리는 데다 규제를 풀어주는 것처럼 돼있으나 곳곳에 덫이 놓여있어 약발이 안 먹힌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500조원에 달하는 시중뭉칫돈의 갈 곳을 터 줘야 하는데도 주택거래신고제, 토지거래허가제, 세금중과 등 융단폭격을 가하니 어느 누가 부동산 쪽에 돈을 풀겠느냐고 반문했다. 정부의 고강도 규제단속으로 부동산시장이 꽁꽁 얼어붙었고 경기선행산업인 건설분야마저 주저앉아버렸다는 분석이다.
"투기가 심했던 서울 강남지역에 한해야 할 규제조치를 전국으로 확대, 문제가 더 불거졌습니다. 게다가 투기를 잡는다며 세금으로 몰고 가려니 잘 되겠습니까. 조세정책이 세금을 걷는 것 외에도 각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조장기능이 있다고는 합니다만…. 부동산문제는 매우 복잡하므로 종합적 시각으로 풀어가야 합니다. 지금처럼 가면 나라경제전체에 위기가 옵니다."
그는 아파트분양원가공개, 부동산실거래가 신고, 종합부동산세 부과까지 이뤄지면 침체 늪에 빠진 건설,부동산시장 회생은 거의 불가능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따라서 부동산시장 살리기 방법은 매우 다양하게 이뤄져야 한다"며 기자의 인터뷰에 대비해 메모해둔 자료 몇 장을 내놓았다. 부동산시장 흐름이 △공급자에서 수요자 중심 △대외개방 △규모확대 추세로 가고 있어 정책도 그런 맥락에서 펼쳐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버주택, 골프장빌리지, 별장형주택 등 수요가 다양해지고 핵가족화, 저금리로 부동산시장환경에도 변화물결이 일고 있어요. 전세위주였던 부동산임대형태가 월세 쪽으로 가고 보통 2년인 임대기간도 선진국처럼 5년으로 느는 추세고…."
소득수준증가로 국민들 의식이 많이 달라져 정부가 과거처럼 일률?단편적으로 부동산정책을 펴선 곤란하다고 주장했다. 선진국사례를 연구,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단다. 자동차처럼 1인당 주거면적이 늘고 주 5일 근무제도입 등 부동산시장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이 급속도로 선진국화돼 가는 점을 감안해야한다는 견해다.
연간소득액과 집값 비율(PIR)에 대한 수치도 예를 들었다. "PIR은 집값이 연간소득의 몇 배냐는 것으로 미국, 영국 등 신진국은 3.5이나 우리는 5.5입니다. 단순수치론 우리가 높지만 따지고 보면 그렇잖아요. 연평균소득과 주택가격이 우리보다 높아 집값이 좀 뛴다고 규제일변도로 가선 곤란합니다."
도시근로자가 한해 번 돈을 쓰지 않고 모두 저축한다고 보면 25평형 아파트를 사는데 약 5년 5개월이 걸린다는 부동산관련기관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며 문제를 푸는 정책당국자의 다양한 시각을 주문했다.
이 학장은 건설,부동산문제를 푸는데 필요한 통계와 지수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제대로 된 통계가 뒷받침돼야 문제해결이 쉽습니다. 그러나 부처마다 수치가 다르고 통계싸움까지 하니 한심합니다. 정확한 통계가 나와야 실상을 알고 치유하기도 쉬운 건데…"
그는 지난해 11월 하순에 있었던 행정자치부와 건설교통부 사이에 벌어졌던 주택보급률에 대한 통계싸움을 예로 들었다. 행자부는 국내 가구 중 49.7%만 자기집이 있고 주택보급률은 80%대라고 했으나 건교부는 58%가 집을 갖고 있고 주택보급률은 100%라고 맞받았다.
"행자부 통계가 옳은 것 같아요. 이는 부동산정책 마련 때 밑바탕이 되는 것으로 정확해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는 외국과 달리 공식적인 부동산지수가 없어요. 기껏해야 통계연보수준에 머물고 있으니까요. 통계가 명확해야 투기단속을 제대로 할 수 있고 부동산시장질서도 바로 잡을 수 있습니다."
이 학장은 "부동산문제는 시장원리로 풀어가야 한다"며 3년 후면 집값이 치솟을 것으로 봤다. 부동산시장이 죽고 건설회사들이 집을 짓지 않으면 수요 공급원리에 따라 값이 뛸 게 뻔하다는 예견이다.
"강력한 부동산규제와 정책실패는 고무풍선이론을 불러옵니다. 집, 땅, 상가, 빌딩 등이 실과 바늘처럼 맞물려 있어 한쪽을 누르면 다른 곳으로 돈이 몰리고 결국 또 다른 투기가 생긴다는 얘깁니다. 따라서 정부는 이를 감안, 부동산정책을 저소득층 위주의 공공부문과 중산층 이상의 민간부문으로 나눠 기능과 역할분배가 조화롭게 이뤄지도록 유도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그는 1936년 10월 국민들에게 믿음을 줘 땅값안정에 성공한 독일의 지가정지령 교훈과 경제학자 사무엘슨 & 힉스(Samuelson & Hicks)의 ?용수철이론?을 들려줬다. 신뢰를 주는 부동산정책으로 국민들이 믿고 따를 수 있도록 하되 용수철처럼 너무 강하게 누르면 반발이 커진다는 점을 늘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조세저항이 일고 있는 재산세문제가 좋은 예입니다. 조화와 형평, 공정을 꾀하고 급조된 탁상공론보다는 살아있는 현실정책을 단계적으로 적용, 부동산시장을 살려야 합니다."
그는 투자할 곳을 잃은 사람들의 돈이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등 외국으로 빠져나가고 있다면서 정부의 발빠른 조치를 기대했다.
기자는 부동산시장 살리기와 곁들여 논란이 되고 있는 신행정수도이전에 대한 견해도 물어봤다. 답은 간단했다. 문제가 많아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공약으로 성급하게 이뤄지는 느낌이란다. 국책사업의 우선순위, 국가경쟁력, 안보상황, 한반도통일 등을 복합적으로 따져봐야 한다는 의견이다.
"캐나다 등 선진외국은 이전을 해도 기존 수도에서 500~1000km 떨어진 곳에 하는 데 우리는 좁은 땅에 너무 가까운 것 같습니다. 특히 남북통일도 대비해야 하는데…. 국민들의 의견을 들어 공개적이면서도 신중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기업도시건립은 지방균형발전과 국토효율화 차원에서도 좋다고 봅니다."
1946년 경북 영일군 지행면에서 한약업을 하는 부친의 둘째아들로 태어난 그는 서경대(전 국제대), 건국대 대학원(부동산학 석사 및 도시공학 석사)을 나와 일본 국립고베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2년부터 강남대에 몸담아오면서 한국부동산학회장,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위원, 대한공인중개사협회 고문, 대한권리분석사협회 고문으로도 뛰고 있다. 부동산개론, 부동산감정평가론, 감정평가와 보상법론, 부동산복지의 논리, 부동산컨설팅, 부동산학원론 등 10여권의 저서를 갖고 있다.
진주출신 부인(최순진)과의 사이에 대학생인 두 아들을 두고 있다. 등산과 헬스클럽운동으로 건강을 다지는 그는 30여 년 동안 서울 서초동집 부근 골목을 매일 30분씩 청소하며 '실천하는 봉사'에 앞장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