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14. 큐티
창세기 26:17 ~ 25
우물을 파는 이삭
관찰 :
1) 메워진 우물을 다시 파는 이삭
- 17절. “이삭이 그 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거류하며” => 이삭은 아비멜렉의 간청에 의해서 그랄 지역을 떠나 그랄 골짜기, 좀 척박한 곳으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거류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이삭은 여전히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 18절.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의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파서 복원시켰습니다. 이것도 쉬운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아브라함으로부터 아들 이삭도 우물을 파는 일에 대해서 특별한 노하우가 있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다른 이들이 메우기만 하고 물이 나오게 하는 우물을 파지 못했던 것에 반해서 이삭은 여러 우물들을 복원하고, 새로 파게 되었습니다. 이삭은 아버지가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파서 물이 나오게 하고 그 이름을 원래의 이름으로 부르게 했습니다.
2) 에섹과 싯나와 르호봇
- 19절.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 이삭의 명에 의해서 그랄 골짜기 주변을 파서 물이 끊어지지 않는, 지하수가 계속 솟아나는 샘 근원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런 샘은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샘이었습니다.
- 20절.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 이삭의 목자들이 그랄 목자들에게 그랄 골짜기의 샘 근원인 우물을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싸움”, “다툼”이라는 의미의 “에섹”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 21절.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 이삭은 다른 우물을 팠습니다. 그런데 그 우물에 대해서도 그랄의 목자들이 몰려와서 또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이삭은 이번에도 양보하며 “다투다”는 의미의 “싯나”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 22절.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 이삭은 다른 곳으로 거주하는 장소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우물을 팠습니다. 이제 그랄의 목자들이 이삭이 판 우물에 대해서 빼앗기 위해서 싸우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삭은 이 우물에 대해서 “넓은 장소”라는 의미의 “르호봇”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넓은 장소에서 풍성히 물이 나와서 모두가 함께 쓰기에도 족했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넓은 장소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대기근으로 가나안이 몹시 어려운 상황이 이제 끝나가게 되었습니다. 이삭은 넓은 곳에서 풍족히 나오는 물이 있는 우물을 확보했고, 나누어도 족했습니다. 넓은 장소에서 번성하게 되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 23절.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 이삭은 이제 그랄에서 브엘세바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가나안 지역의 대기근이 끝났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 과정에서 이삭과 함께 하셨고, 엄청난 물질적 축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물질적 축복으로 어렵고 힘든 일도 있었지만, 가나안의 모든 족속들에게 이삭이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대기근의 상황에서도 큰 축복을 누리게 되었음을 증명하게 되었습니다.
- 24절.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 브엘세바에서 이삭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아마도 꿈 속에 현현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맹세를 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아브라함의 하나님만이 아니시고 이삭의 하나님 되심을 보여주시고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하고, 모든 산 자의 하나님이 그 언약을 성취하시게 됩니다.
- 25절.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서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 이삭은 하나님을 만난 감동으로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게 되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이 이삭을 주시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큰 부자가 되어서 더욱 주목받는 상황에서 이삭은 두려움이 없이 사람들 앞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순종적이기는 하지만 약간은 유약한 듯 보이는 이삭이 이제 담대히 여호와 하나님을 공개적으로 제사드리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삭의 종들은 브엘세바에서도 우물을 파서 물 근원을 얻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가르침 :
1) 오늘 본문에서는 우물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수를 공급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이 가나안의 건조한 사막 지역에서 우물을 파는 지혜를 허락하셨습니다. 당시의 기술로 깊은 우물을 파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물 근원이 있는 곳을 찾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때에도 우물을 잘 팠었는데, 이삭의 때에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우물을 파게 됩니다. 그랄의 목자들에게 우물을 빼앗기고 다투고 싸우게 되었지만, 결국 하나님이 넓은 곳에서 모두가 넉넉히 쓸 수 있는 우물을 찾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대기근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웃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내게 하셨습니다.
2) 이삭은 이제 공개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제사드리게 됩니다. 제사장적, 선지자적 삶을 살아냅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이삭의 모습을 봅니다. 그랄 지역에서 그랄 골짜기로, 그리고 브엘세바로 이동하는 모든 여정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모습입니다. 애굽에 가지 않았고, 이제 대기근이 끝나가면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브엘세바까지 이동하게 됩니다. 가나안 땅을 유리 방황하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범을 보이는 삶을 살아냈던 것입니다.
3) 대기근의 상황에서 이렇게 놀라운 물질적 축복을 누린 이는 오직 이삭 뿐이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우물을 파고, 다투어서 빼앗기고, 다시 우물을 파고, 또 분쟁이 일어나 다시 빼앗기고, 결국은 모두가 넉넉히 쓸 수 있는 르호봇의 우물을 파게 되었습니다. 이삭은 빼앗길 것을 알지만 우물을 팠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 우물을 이용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넉넉하시기에 성도들을 통해서 그렇게 나누고 나누다가 모두가 넉넉히 나눌 수 있는 축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넉넉하심은 여전히 동일하십니다.
4)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에 이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가나안 땅을 유리하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나안의 족속들과 더불어 사는 삶, 더불어 살면서 우물을 나눠주는 삶을 살아냈습니다. 우물을 나눠준다는 것은 생명을 나눈다는 것과 다름이 아니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건조한 기후와 척박한 가나안의 땅에서 물의 근원을 이렇게 많이 찾아내고, 게다가 그 물을 나눈다는 것은 생명을 나눈 것과 다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나그네를 섬기는 모범을 보였다면, 이삭은 우물을 이웃과 나누게 되는 모범을 보여줍니다. 물론 어거지로 빼앗기는 모습들이 나오지만, 결국은 르호봇까지 이르게 됩니다.
적용 :
1) 삶에서 소중한 것을 나누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입니다. 이삭은 그 당시에 나누기 가장 어려운 물의 근원을 나누었습니다. 빼앗긴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삭이 이리 저리 장소를 옮겼던 것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 보면, 그것은 나눠준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이렇게 나누는 삶을 살다가 결국은 르호봇의 우물까지 파게 됩니다. 넓은 장소에서 모든 이들이 나누어도 풍족한 물 근원을 찾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철저히 주님의 은혜입니다. 이렇듯 나누고 나누어도 더 나눌 수 있는 넉넉한 인생을 살아낼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삭에게 르호봇의 우물이 터진 것과 같이 김태수의 인생에도 이웃과 나누고 나누어도 여전히 나눌 수 있는 은혜가 넘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2) 이삭은 우물을 파는 것을 통해서 순종의 여정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나눔을 통해서 순종의 여정을 살아내는 이삭입니다. 믿음의 여정은 이렇듯 순종과 나눔이 따르게 됩니다. 주님을 온전히 믿음으로 저의 인생 속에도 순종과 나눔이 가득하게 될 것을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