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젊은 시인들:
어둠은 짠맛 외 1편
설현민
그는 잔뜩 취해 게딱지에 소주를 부었다
죽음 너머에 대해 이토록 사랑스러운 재현 방식을 경험한 일이 있는가
아주 조금씩 묽어지는 삶의 정수가 보이느냐 말일세
그는 빠르게 고개를 젖혀 입속에 술을 털어 넣었다
내장과 밥알 술과 맛간장이 정확히 반쯤 식탁 위로 흘러내렸다
그는 숙련된 동작으로 티슈를 뽑아 입을 닦았다
그와 나 사이에 번져가는 비릿한 세계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
이 주도에 담긴 인류애를 정확히 구사하는 사람이 더는 없네
그의 얼굴은 식탁에 들러붙은 기름때처럼 번들거렸다
인류의 역사란 해골에 조잡한 해부학적 모자를 씌우는 작업이지 기회가 된다면 억압된 개연성의 거주민을 꼭 한 번 만나보게 그들이 매일 밤 하루의 자투리로 기워낸 모자는 아름답거든
실제로 그의 모자는 크고 대단해서 그가 국사발을 들이킬 때면 종종 어두운 국물이 챙에 스며들었다
영혼의 윤곽마저 넓힐 수 있을 걸세 게다가 아주 저렴하지 주머니 속에서 손을 꺼내는 시늉만으로도 충분할테니
그의 왼쪽과 오른쪽에 손이 하나씩 달려 있었다
쪽쪽 빨아먹고 난 집게발을 하나씩 벌렸다 오므리고 있었다
꽃게는 이토록 향기로운 수식을 어떻게 지속할 수 있는가
게는 옆으로부터 영원히 쫓기고
떨어뜨린 다리 한 짝의 살수율까지도 우리는 아름답게 기록했지
그는 왼쪽과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 집게발을 하나씩 집어 넣었다
…가 시체를 숨기는데 온갖 방법을 동원한 것은 뼈를 마주하는 순간 깨닫기 때문이라네 최초최후의 유일한 가면에 대해 하나의 가면은 그들의 투쟁과 거리가 먼 것이었지 머리가 커지는 방향으로 진화한 것도 그와 관련이 깊지 가면이란 자고로 눈과 귀가 멀어야하며 코와 입도 멀어야하지 정말이지 아주 먼 곳에 있다네 모자…그래 그들의 모자만이 말할 것 같으면 진정 삶의 예술이지 자네는 말이지 정말 어떻게 한 잔 더 하겠나? 술이나 한 병 더 시키지
안주는 이 어둠의 조형물이면 충분하네
그는 김 두어 장을 게장 국물에 듬뿍 적셔 삼켰다
비틀거리며 소주를 연거푸 들이켠 그는 거대한 모자를 벗어 그 속으로 얼굴을 집어넣었다
나는 그의 등을 쓸어주었다
그의 등살이 놀랍도록 물컹거렸다
미안하지만 이 고통과 죄책을 게워 내야만 했네
모자를 식탁 밑으로 깊숙이 밀어넣은
그가 맨밥을 크게 한 숟갈 집어삼켰다
리빙데드
자정을 넘긴 밤이다 관광호텔이다
하얀 이불은 빳빳하고 락스 냄새가 난다
나는 이곳을 알고 있었다
텔레비전을 켰다
영화 채널에서
오래전에 죽은 사람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숙취에 찌든 주인공은 배고픈 소설가
그는 배가 너무 고파서 주어진 시련을 견딜 수 없다
주인공은 어제 먹고 남은 김치찌개에 맹물을 넣는다
“대도시의 문제는 젊은이는 늙은이가 될 때까지 늙은이는 젊은이가 될 때까지 취한다는 것이다”
젊은 소설가는 늙은 소설가의 문장을 인용한다
이 영화는 그가 죽고 난 후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작품이 흥행하는 바람에 배우는 작품 속에서 영원히
살아 있다가 배고프다가 죽는다
불 위에서 김치찌개가 끓기 시작한다
물을 부어도 김치찌개는 빨갛다
“죽음은 물컹해진 건더기”
주인공은 소설보다 유명한 평론을 중얼거리며 찌개를 뒤적거린다
불꽃이 힘없이 흔들린다
그는 버너에서 부탄가스를 꺼내 정성껏 흔든다
다시 냄비가 끓는다
끓어 넘친다
“그리고 부루스타, 언제 어디서나 변치 않는 열정”
그러려던 건 아니었는데
나는 그 대사를 기억하고 있었다
배고픈 소설가는
먹지도 않은 찌개 국물이 자꾸 줄어드는 것을 본다
“나를 흉내 내는 귀신이란 @#$^&*((^%#@”
자막을 반쯤 읽다 말았다
그는 벌건 양념이 묻은 숟가락을 입속에 넣는다
다시 깨끗하게 빛나는 숟가락으로 냄비의 국물을 떠먹는다
아주 조금 속을 달랜 주인공은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 죽는다
“찌개는 먹고 남긴 다음 날 진해진다”
그의 유언은 어디선가 들어본 말이다
텔레비전을 껐다
영화는 곧 끝이 날 것이다
고전 명작에 대해서는 도무지 모르겠지만
사실 그가 몰래 살아남아서
노후를 즐기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 있다
“노인이 된 그는 노인 분장을 한 배우와 묘하게 닮아 있었다”
나는 사실 다 알고 있다
나는 다 봤다
오래전부터
끔찍하게
----애지 2024년 봄호에서
2021 영남일보 문학상을 통해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동대학원 석박사통합과정 재학 중
-2021 영남일보 문학상 시 부문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