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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마음
꽃다운 청춘
1969.10.25
한국 전본부교회
여러분의 모습은 외적으로 보면 초라해 보이지만 하늘 왕국에 있어서는 귀공자로 태어난 아들입니다. 자신이 아무리 병신일망정 천지의 심정이 자기에게서 기원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표준입니다. 어떤 부모가 아들이 열이 있고 사랑이 백 개라면 `너는 큰 아들이니까 50개 주고 너는 작은 아들이니까 20개 주마. 그 다음 동생은 10개, 이러면서 너는 맨 나중이니 하나 가져라' 한다면 동생이 좋아하겠어요? 안 좋아합니다. 아마 어머니 아버지를 칼로 찔러 죽이고 도망갈 것입니다. (웃음) 그럴 거예요. 그러나 열 아들이 있으면 그 열 아들을 대하는 부모의 마음은 전부다 똑같이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26-164)
자신을 알자
1992.08.24
한국 잠실올림픽 주경기장
최고품을 사 주고 싶어도 형편이 안 되기 때문에 사지 못하는 부모의 괴로운 심정을 아들딸들은 모르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사람들은 그런 심정을 알지요? 그리고 부모는 3등품을 살 때 '다음에 올 때는 더 좋은 것을 사 주겠다. '고 다짐을 하게 됩니다. 그러한 부모의 심정권에 우리는 등을 돌릴 수 없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예. 」그러한 생활의 본류를 생각하는 부모가 참부모고, 그러한 희생적인 부부의 관계를 맺는 부부가 참부부고, 그러한 형제가 참형제이고, 그러한 자녀가 참자녀라고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235-30)
인류의 새로운 장래
1975.05.06
한국 대전 충무체육관
아내와 남편이 애기를 낳았을 때 그 애기가 자기보다도 잘나기를 바래요, 못나기를 바래요? 부모 되는 그 어떠한 사람을 막론하고 자기 자식이 자기 보다도 잘나기를 바라는 것이 본성의 욕구인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78-105)
인류의 새로운 장래
1975.04.14
한국 서울 장충체육관
어떤 부모가 태어나길 자식을 위해 태어나, 살기를 자식을 위해서 살다가, 죽기를 자식을 위해서 죽은 부모가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부모는 아들에게 있어서 참된 사랑의 부모요. 참된 이상의 부모요. 참된 행복의 부모이며, 참된 평화의 주체적인 부모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부정할수 없는 것입니다. (77-265)
(2) 하나님의 마음
하늘편에 서자
1968.06.09
한국 전본부교회
자식을 낳아 길러 본 부모들은 알 것입니다. 애지중지한 그 아들딸을 통하여 복을 받고 싶고 행복도 느끼고 싶을 것입니다. 또한 기뻐하고 복받을 수 있는 기준이 있으면 그 아들딸에게 영원히 남겨주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한 소망의 마음을 가지고 그 아들딸이 되기를 타락한 인간도 바라고 있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그 아들딸이 고이 자라, 만국으로부터 높임을 받고 만세에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상처를 입을까 보호하고 애달픈 심정으로 초조해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타락한 부모의 마음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품 안에서 젖을 먹여 키우는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 자식이 똥 싸고 오줌을 싸서 냄새가 나더라도 사랑으로 그 환경을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타락한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사랑의 주체 되시는 하나님께서 본연의 심정을 통하여 아담과 해와를 사랑하고 싶었던 그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겠습니까?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들이 애기를 품고 키울 때에 잠자리에서도 노래를 불러주고 혼잣말로 얘기도 해주며 잘되기를 바라는 그 마음은, 부모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못나고 부족한 자식이라도 그 자식에게 결함이 있으면 부모의 마음은 그 가슴에 몽땅 젖도록 최고의 고통을 겪는 것이요, 이것이 풀어지면 그 고통에 비례한 만큼 기쁨이 동반되는 것입니다. 타락한 부모의 마음도 그러한데 하나님의 마음이야 어떠하시겠습니까? (20-209)
이상세계의 주역이 되자
1992.07.03
한국 국제연수원
여자들, 임신했을 때의 마음이 어때요? 자기 생각이 아닙니다. 자기 마음대로 못 해요. 아기가 크면 크는 대로 거기에 보조를 맞춰야 하는 거예요. 그와 마찬가지로 천지 창조하던 하나님도 아들딸이 크면 크는 대로 보조를 맞추어 커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커 나오는 것입니다. 이게 자기 아들딸이 커 나오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커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임신할 때는 전부 다 커 나올 수 있는 부모의 자격을 거쳐 가지고 모든 정성을 다 퍼붓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에미 애비가 정성을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전부 다 그러는 것입니다. 아들딸이 20세가 될 때까지 전부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그런 생활입니다. 그런 전통을 남기는 부부가 있다고 할때는 어떻게 되느냐? 사랑의 상대는 자기보다 크기를 바라기 때문에 천배 만 배 크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나는 오늘날 이렇게 살지만 우리 아들딸은 억천만세에 부자가 되기를 다 바라지요? 일등 출세한 사람이 되어서 역사에 왕자의 기록을 남기고 싶은 마음을 가진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이거예요. 그게 어디서 온 것 같아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 대해서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과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것이 똑같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하나님이 멀어요, 가까워요? (232-143)
하나님과 우리 인간
1972.05.14
한국 통일동산(구리시 교문동)
하나님이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여 걸작품으로 지은 것이 무엇이냐? 아담 해와입니다. 인간은 그 창조의 능력도 갖고 싶다 하는 욕망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들딸이기 때문에 이것 까지도…. 사랑하는 아들딸에게는 자기에게 없는 것까지도 보태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기 때문에. 하나님도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의 능력까지 사랑하는 아들딸한테 주고 싶겠어요, 안 주고 싶겠어요? 틀림없이 주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창조물 중에 최고의 창조물이 무엇이냐? 인간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존재로 아담 해와를 지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도 아담 해와를 지은 것과 마찬가지의 창조의 능력을 부여한 것입니다. (56-149)
원리적 입장으로 본 현실적 임무
1975.12.29
한국 중앙수련원
옛날에 내가 부산에 순회를 갔었다구요. 선생님이 온다고 하니 젊은 사람들은 전부 달려와 가지고, 키가 큰 녀석들이…. 그런데 저 뒤에 팔십 난 할머니가 있었다구요. 나이 80난 할머니가 따라와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아이구 나도 젊어서 선생님을 만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한탄하는 걸 내가 봤다구요. 식구들은 그 저녁에 선생님이 이야기도 해주고 그럴 줄 알았거든요. 그렇지만 얘기를 안 해줬다구요. 그 할머니 하나를 데리고 밤을 새웠다구요. 전부 다 화제가…. 그런 마음, 그게 하나님의 마음이다 이거예요. 여러분의 마음이 그래야 된다구요. (81-326)
통일교회는 탕감교회다
1966.07.31
한국 전본부교회
얼마전 신문에 일가족 자살 사건에 관해서 보도가 됐는데 그러한 일을 남의 일로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애기를 낳아 키워본 사람들은 더욱 실감있게 생각했겠지만, 사랑하는 자식들이 며칠을 굶어 배가 고파서 밥을 달라고 할 때 그 부모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어떻게 할 수 없으니 자살했을 것입니다.
복귀의 사명을 짊어진 자신이 그러한 안타까운 부모의 입장에 섰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또한 하나님도 이러한 딱한 입장에 처했을 때가 얼마나 많았으며, 복귀노정에서 수많은 백성들이 죽음의 자리에 나가는 것을 보고도 손을 못 대고 참고 나가야 하는, 이러한 억울한 입장에 처했을 때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16-315)
제물의 완성
1971.09.05
한국 전본부교회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을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그것은 내가 잘 알아요. 그러나 내가 생애를 바쳐서 믿어 왔지만, 어떤 때에는 칼이 있다면 그 칼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항의하고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사지에 들어가면 하나님은 모른다고 하십니다. '너를 모른다'고 합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모른다고 하는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기가 막히겠느냐는 것입니다.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손발을 가만히 묶어 두는 것이 아니라 움직여서 천번 만번 도와주고 싶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했다가는 통일교회 문이라는 사람이 갈 수 있는 운명적인 길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런 자리에서 제삼자의 입장에 서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48-120)
복귀의 산정
1969.07.27
한국 전본부교회
하나님은 우리 자신을 두고 볼 때, 못났다고 해서 못난 자리에 두고 싶어하시지 않습니다. 자식은 못났지만 부모의 마음은 언제나 더 높은 자리에 세우고 싶어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어서는 친구라든가 혹은 스승이 제자를 보게 될 때, 못났으면 못난 것으로써 걸맞는 자리에 세우고 싶어할는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보다 높은 입장에, 귀한 자리에 세우고 싶어하십니다.
못난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대해 염려를 적게 해 주신다고 생각할는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은 못난 사람에 대해서 더 큰 염려를 하신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24-160)
父母の心
至誠感天・家和万事成
皆さんの姿を外的に見て、みすぼらしく見えたとしても、天の王国においては、貴公子として生まれた息子です。たとえ体が不自由だとしても、父母にとっては、その人が心情の起源になっているのです。その人が標準です。ある父母に十人の息子がいて、愛が百個あるとしましょう。「お前は大きいから五十個あげ、お前は小さいから二十個あげよう。その次は十個あげよう」、このようにして末の弟に一個だけあげたとすれば、その弟は喜ぶでしょうか。喜びません。父母の心は、息子が十人いても、すべて同じように貴く思うのです。(26―164、1969・10・25)
最高の物を買ってあげたくても、事情が許さなくて買うことができない父母のつらい心情を、息子、娘は分かりません。統一教会の人たちは、そのような心情が分かるでしょう? そして、父母は三級品を買うとき、「次に買うときは、もっと良い物を買ってあげよう」と誓います。そのような父母の心情圏に、私たちは背を向けることはできません。そのように生活する父母が真の父母であり、そのような犠牲的な夫婦の関係を結ぶ夫婦が真の夫婦であり、そのような兄弟が真の兄弟であり、そのような子女が真の子女だというのです。(235―30、1992・8・24)
夫と妻が赤ん坊を生んだとき、その赤ん坊が自分よりも優れていることを願いますか、劣っていることを願いますか。父母になった人は誰でも、自分の子女が自分よりも優れていることを願うのが本性の要求だ、ということを否定できません。(78―105、1975・5・6)
父母は、子女たちが自分のために生きてくれるよりも、もっと兄弟同士でために生きてくれることを願うのです。これが本当の父母の願いであることを私たちは知っています。ですから、真なる兄弟は、自分を中心として自分のために生きろというところにあるのではなく、自ら「ために生きよう」とする兄弟間に、真なる兄弟と愛の兄弟と幸福な兄弟と平和な兄弟が設定されるということを、私たちは否定できません。(77―265、1975・4・14)
(二) 神様の心
父母は、大切にかわいがってきたその息子、娘を通して福を受けたいと思い、幸福を感じたいと思います。また、喜び、福を受けることができる基準があれば、その息子、娘に永遠に残してあげたいと思うのです。堕落した人間も、そのような希望の心をもって息子、娘を思います。夜も昼も、息子、娘が美しく育ち、万国から尊敬され、万世にわたって称賛されるその息子、娘が、傷つかないかと保護し、切ない心情で心配するのが父母の心です。堕落した父母の心も、そうだというのです。
胸の中でお乳を飲ませて育てる母親の切なる心、子女がうんちをし、おしっこをして臭いがしても、愛でその環境を忘れられるのが父母の心です。堕落した父母が子女を思う心もそうだとすれば、ましてや愛の主体であられる神様が、本然の心情を通じてアダムとエバを愛したかったその心は、どれほど切なるものだったでしょうか。一度考えてみてください。
皆さんが赤ん坊を抱いて育てるときに、寝床でも歌を歌ってあげ、独り言で話もしてあげ、すくすくと育つことを願うその心は、父母なら誰もがもっているでしょう。いくら愚かで不足な子女でも、その子女に足らないところがあれば、父母の心は、胸いっぱいに最高の苦痛を経るのであり、それが解決すれば、その苦痛に反比例して喜びが同伴するのです。堕落した父母の心もそうならば、神様の心はどうでしょうか。(20―209、1968・6・9)
女性の皆さん、妊娠したときの心は、どうですか。自分の思いはありません。自分の思いどおりにはできないのです。赤ん坊が成長すれば成長した分だけ、そこに歩調を合わせ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れと同じように、天地を創造された神様も、息子、娘が成長すれば成長した分だけ、そこに歩調を合わせて成長していくのです。そうしてこそ、神様が成長していくというのです。自分の息子、娘が成長していくのではありません。神様の息子、娘が成長していくのです。それで、妊娠したときは、父母も成長しながら父母の資格を経て、すべての精誠を尽くすのです。
そのときから父母は、精誠を投入しては忘れ、投入しては忘れます。息子、娘が二十歳になるまで、投入しては忘れる、そのような生活です。そのような伝統を残す夫婦がいるとすれば、どのようになりますか。愛の相対に対して自分よりも立派であることを願うので、千倍、万倍立派であることを願うというのです。それが父母の心です。それはどこから来たと思いますか。神様から来たのです。私たち人間に対して願う神様の心と、父母が子女に対して願う心は、同じだというのです。このように考えるとき、神様は、どれほど近い存在でしょうか。(232―143、1992・7・3)
神様が最高の能力を発揮して、傑作品として造ったものとは何でしょうか。アダムとエバです。人間は、その創造の能力ももちたいという欲望をもつようになるのです。神様は、愛する息子、娘なので、これまでも与えようとされます。愛する息子、娘には、自分にないものまでも与えたいと思うのが父母の心だからです。神様も、天地万物を創造された創造の能力まで、愛する息子、娘に与えたいと思うでしょうか、与えたくないと思うでしょうか。間違いなく与えたいと思うのです。ですから、人間にも、アダムとエバを造ったのと同じ創造の能力を賦与されたのです。(56―149、1972・5・14)
昔、私が釜山に巡回に行ったときのことです。先生が来られるというので、若くて背の高い人たちがみな駆け寄ってきました。ところが、その後ろのほうに八十歳くらいのおばあさんがいたのです。八十歳になるおばあさんがついてきて、涙をぽろぽろ流し、「ああ、私も若い時に先生に出会えていれば、どんなに良かっただろうか」と嘆いているのを私は見たのです。食口たちは、その夜に、先生が自分たちに話をしてくれると思っていました。しかし、話をしてあげなかったのです。そのおばあさんと夜を明かして話をしました。それが神様の心です。皆さんの心も、そうでなければなりません。(81―326、1975・12・29)
何日か前、新聞に一家心中の事件が報道されましたが、そのようなことを他人事として考えないでください。赤ん坊を生んで育ててみた人たちは、より実感すると思いますが、愛する子女たちが、何日も飢えておなかがすき、「御飯をくれ」と言うとき、その父母の心はどうだったでしょうか。どうすることもできないので自ら命を断ったのでしょう。
復帰の使命を担った自らが、そのようなつらい父母の立場に立ったなら、どうしますか。神様も、このような苦しい立場に立った時がどれほど多かったでしょうか。復帰の路程で、大勢の民たちが死の場に出ていくのを見ても、手を出すことができず、耐えていかなければならない、このような無念な立場に立った時がどれほど多かったでしょうか。(16―315、1966・7・31)
統一教会の文先生という人を、神様は愛していらっしゃいます。それは、私がよく知っています。しかし、私は、生涯を捧げて信じてきましたが、あるときは、神様に抗議したいと思うときが一度や二度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私が死地に行くと、神様は「知らない」と言われます。「お前を知らない」と言われるのです。しかし、分かってみると、「知らない」と言う父母の心はどれほど苦しいでしょうか。助けてあげられる能力があるのですから、手足をじっと縛っておくのではなく、動いて千回でも万回でも助けてあげたいと思われるでしょう。
しかし、そのようにすれば、統一教会の文という人が行く運命的な道を解決できないために、そのような場で、神様は第三者の立場に立たざるを得なかったというのです。(48―120、1971・9・5)
神様は、私たち自身を見てみるとき、愚かだからといって、低い立場に置きたいとは思われません。子女が愚かでも、父母の心は、いつも高いところに立てたいと思われるのです。
世の中では、友達や、あるいは先生が弟子を見るとき、愚かであれば、愚かなものにふさわしい位置に立てたいと思うかもしれませんが、神様は、より高い位置に、貴い位置に立てたいと思われるのです。
愚かな人は、神様が自分たちに対して少ししか心配していないと考えるかもしれませんが、神様は、愚かな人に対してもっと大きく心配されるということを、皆さんは知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24―160、1969・7・27)
The Heart of Parents
The New Future of Humankind
April 14, 1975
Jangchoong Gymnasium, Seoul, Korea
Nine-city Day of Hope Tour in Korea
Parents who are born for their children, who live for their children and who would die for their children. Such parents are parents of true love and true ideals. They are the parents of true happiness and the subject of true peace for their children. What would true filial children be like? They would be born for their parents and not for themselves, live for their parents and not for themselves, and would give their lives for their parents. (77-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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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