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우표 없는 편지 원문보기 글쓴이: 청풍명월
『데미안』
학창 시절 이후 처음 만나보는 것 같은 ‘헤르만 헤세(1877∼1962)’는 20세기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로 전 세계인으로부터 사랑을 받는다. 그는 194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이 책은 〈문예출판사〉가 1975년, 그러니까 50년 전에 초판을 발행했고 20년 전인 2004년 2판으로 나온 것이다. 물론 2023년 헤세 탄생 140주년을 기념해 다른 출판사에서 새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학교 다닐 때 한 번 읽어 본 것 같기는 한데, 영 기억나지 않아서 다시 읽어볼 요량으로 이 책을 빌렸다.
소설의 배경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독일은 수억 마르크 전쟁배상금을 연합국에게 지불해야 했고, 악의 축으로 규정되어 국민은 물론 독일 청년들은 마음이 피폐해졌고 방황스러웠다. 그런 정신적 황무지 속에서 독일 젊은이들에게 마음의 양식이 되고, 삶의 지주가 되게 한 것이 이 책 『데미안』이었다. 「청소년기에 접어든 ‘싱클레어’는 선과 악 사이에서 방황한다. 그는 사춘기의 욕정까지 부정하지 않는 신을 동경하기도 하나, 고등학교 시절 방종한 생활로 퇴학 일보 직전까지 몰린다. 방황 속에서 ‘베아트라제’라는 여성을 사모함으로써 스스로 자각하고, 베아트라제는 나의 친구인 데미안이기도, 자신이기도, 무의식중에 구하는 어머니 상이기도 하다. 깨어있는 인간으로 자신을 구하고, 진정한 운명을 찾아 살아가는 것만이 자신의 의무임을 깨닫고는 세속을 초월한 고독에서 벗어나 초등학교 시절 친구였던 데미안을 찾음으로써, 그를 악의 세계로부터 자신을 구해준 그가 자신의 분신임을 깨닫고, 자기를 인도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임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 소설의 줄거리다.
“수업이 없는 어느 오후…, 내가 막 열 살이 넘었을 때였다. ― 나는 이웃에 사는 두 아이와 빈들빈들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때 우리보다 더 큰 아이 하나가 우리 쪽으로 왔다. 열세 살쯤 되는, 힘이 세고 거친 그 아이는 양복집 아들로 초등학생이었다. 이름이 ‘프란츠 크로머’로 그는 나를 잘 알고 있었는데 나는 그를 두려워했다. 그래서 그때 그와 마주치자 나는 불쾌했다. (…) 그의 지휘하에 우리는 다리 옆으로 해서 강변으로 내려가서는 첫 번째 교각 아래 몸을 숨겼다. 우리는 프란츠 크로머가 시키는 대로 그 지대를 샅샅이 뒤져 우리가 찾아낸 것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러면 그는 그것을 주머니에 집어넣거나 또는 물속에 내팽개치거나 했다.”
나는 나를 괴롭히는 친구를 만나게 되면서 방황하는 아이가 된다. 그가 우리 집 앞에서 휘바람을 불면 나는 바로 나가야 했고,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주어야 했다. 결국 나는 어머니 방에 있는 돼지저금통을 몰래 가지고 나와 안에 든 것을 모두 그에게 갖다주어야 했다. 요즘 말로 학폭에다 갈취까지 당한 것이다. 부모님에게 사실을 알리고 용서를 빌 생각도 해봤으나, 실천하지는 못했다. 자주 꿈에 그가 나타났고 나를 괴롭혔다. 세상은 언제나 악과 선, 미와 추, 정의와 불의, 아와 타아가 있고, 그것을 구분하는 것이 삶의 전부 또는 일부인지 모른다.
다행히도 나 싱클레어는 우리 반에 새로 전학 온 ‘레미안’으로 인해 프란츠 크로머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막스 레미안은 우리 도시로 이사 온 미망인의 아들로 그는 우리 소년들 사이에서는 늘 어른처럼 혹은 신사처럼 행동하는 아이였다. 그는 아이들 싸움에는 가담하지 않았지만, 선생님의 터무니 없는 말에는 늘 맞섰다. 늠름하고 단호한 음성만은 아이들의 마음을 끌었다. 나는 그 아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변장한 왕자 같은 옷차림을 하고, 행동도 그렇게 했다.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의 집이 나와 같은 방향에 있었으므로 우리는 같은 길을 걸을 때가 많았다. 그는 어느 날 하굣길에 내게 접근했다.
“같이 가도 되겠니?”
그는 낮에 있었던 수업 이야기를 하며 많은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근성으로 이야기를 들었지만, 가끔씩 반응을 보이자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그런데 내 이야기가 재미있니?”
그러는 사이에도 나와 크로머의 문제는 계속 불가피한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설사 그가 며칠 고이 놓아 둔다 하더라도 사실상 나는 그에게 결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아직 열한 살도 채 안 된 아이가 그렇게 탈선할 수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았을 것이고, 어른들은 아이에게 그러한 사상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심지어 아이들에게는 경험조차 없다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나는 평생 동안에서 그때처럼 그렇게 심각한 체험을 하고, 그때처럼 그렇게 고민한 적이 없었다.
다행히 데미안으로 인해 크로머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은 나 자신의 힘과 노력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어른처럼 행동하는 레미안 덕분이었다. 그로부터 반년쯤 뒤에 산책 나갔을 때 나는 아버지에게 많은 사람들이 데미안처럼, 아벨보다 카인을 좋은 사람이라고 설명하는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아버지는 매우 놀라면서 그것은 전혀 새로울 게 없다고 설명해주셨다. 그것은 원시종교 때부터 ‘카인파’라고 불렀다는 것이고, 그런 미치광이 교의는 우리의 믿음을 파괴하려는 악마의 유혹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시면서 만일 사람들이 카인의 올바름을 믿고, 아벨의 부정을 믿는다면 신이 잘못 생각하신 것이고 따라서 성서의 신은 올바르고 유일한 신이 아니라 그릇된 신이라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카인파는 이미 먼 옛날에 인간 세계에서 사라져 없어졌다. 아버지는 단연코 카인을 찬양하는 그런 생각은 버려야 한다는 것을 내게 경고했던 것이다. 여기까지가 1.‘두 개의 세계’ 2 ‘카인’에 나오는 이야기다.
3. 도둑. 4. 베아트라제. 5.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6. 야곱의 싸움. 7. 에바 부인. 8. 종말의 발단 …, 이것들이 책의 제목들인데 제목으로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어느 날 아침 역시 그러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갑자기 나는 그 그림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다정스럽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의 이름이라도 부르는 것 같았다. 어머니만큼 나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옛날부터 언제나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그림 얼굴 앞에 가 서서 아주 가까이에서 그것을 바라보았다. 초록빛이 감돌고 크게 뜬, 내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그 눈을 들여다보았다. 오른쪽 눈이 다른 쪽보다 약간 올라가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오른쪽 눈이 찡긋하고 움직였다. 가볍게, 그러나 분명히 움직였다. 경련으로 나는 그림의 인물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데미안의 얼굴이었던 것이다.”
막스 데미안에 대한 내 동경심은 또다시 강렬해졌다. 나는 그의 소식을 몇 년 동안 전혀 듣지 못했다. 방학 동안에 그를 만난 적이 한 번 있었을 뿐이다. 나는 다른 도시의 학교로 진학하였고, 방황 속에서 친구들과 술집을 드나들기도 하고 여자에 대해서도 눈뜨기 시작한 것이 그 무렵이다. 어느 날 공원에서 만났던, 내 마음속의 ‘베아트라제’를 나는 그림으로 그렸고, 그 여자의 얼굴에서 나는 데미안을 본 것이다. 그리고 방학 중에 나는 피곤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고향 읍내를 지나고 있을 때, 그를 만났고, 그는 주의 깊게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싱클레어, 너 많이 컸구나.”
그는 전혀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여전히 똑같이 나이 들어 보였고 똑같이 젊어 보였다. 우리는 산책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술집에 가자고 하자, 그는 선선히 따라왔다. 나는 포도주 한 병을 주문해 술을 따르고 그의 잔에 부딪히고는 잔을 단숨에 비웠다.
“술집에 자주 오는 모양이구나.”
그가 나에게 물었다.
“응 물론.”나는 덤덤하게 대꾸했다. “달리 무슨 할 일이 있겠어? 이게 그래도 제일 재미있는 일이잖아.”
(…)
그가 말했다.
“언제나 그 모양으로 연신 술잔을 꺾어대는 것이 과연 잘하는 일일까? 밤마다 단골집 술상을 보고 앉아 있는 파우스트를 상상할 수 있겠어?”
나는 술을 마시며 적의에 찬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래. 누구나 다 파우스트는 아니니까 말이지.”
나는 짤막하게, 그러나 냉담하게 말했다.
“그렇지. 누구나 제멋에 사니까! 툭 까놓고 말해서 나는 예언자나 그 비슷한 것이 되려고 그러는 것은 전혀 아니란 말야.”
데미안을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는 알아들었다는 듯이 나를 보았다.
그가 먼저 가야 한다면서 일어섰다. 나는 혼자 남아서 남은 술을 모두 마셔버렸다. 술값을 데미안이 치른 것을 알았을 때 나는 한층 화가 났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창에 걸려 있는, 이제는 아주 퇴색된 그림에 시선을 던졌다. 아직도 두 눈만은 불타고 있었다. 그것은 데미안의 눈초리였다. 아니면 나의 내부에 들어 있는 눈초리이든가.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그 눈초리였다.
이제 나의 학교 시절은 끝났다. 나는 방학 여행을 해야 했다. 그것은 아버지가 생각해 냈으며, 그 후에 나는 대학에 가야 했다. 무슨 학부로 갈 것인지도 나는 알지 못했다. 한 학기 동안은 철학 공부가 허용되었다. 다른 어떤 학과였을지라도 나는 만족했을지 모른다. 그 시절 심정을 나는 한 장의 종이에 썼다.
“지도자가 나를 버렸다. 나는 완전한 어둠 속에 서 있다. 나 혼자선 한 발자국도 걸어 나갈 수가 없다. 오, 나를 도와다오!”그것을 나는 데미안에게 보내려고 했다. 그러나 그만두었다. 그렇게 하려고 할 때마다 바보 같고, 무의미한 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짤막한 기도문을 외워 때때로 혼자 마음속으로 되뇌어보았다. 그것은 어느 때나 나를 따라다녔다. 나는 기도가 무엇인가를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방학 중에 나는 한 번, 몇 해 전 데미안이 그의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집에 가보았다. 늙은 부인이 정원을 산책하고 있었는데, 나는 부인에게 말을 걸었고 그녀가 그 집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나는 데미안의 가족에 대해 물었다. 부인은 그들을 잘 기억했으나, 그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거기서 나는 데미안의 어머니가 자기 아들을 닮은, 큰 키에 거의 남자 같은 여자. 아름답고 매력적이며, 아름답고 접근하기 힘들며, 데몬(악령)인 동시에 어머니이며, 운명인 동시에 애인인 그 여자였다는 것을 알아냈다. 내 꿈속에서 자주 나타난 그 모습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느 날 저녁 늦게 나는 가을바람을 맞으며 시내를 걷고 있었다. 음식점에서는 대학생들이 부르는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활짝 열린 창문을 통해 담배 연기가 뭉게뭉게 솟아 나왔다. 나는 거리 모퉁이에 서서 귀를 기울였다. 두 군데의 술집에서 정확하게 훈련된 청춘의 쾌활함이 밤을 향해 울리고 있었다. 어디를 가도 집단이 있고, 어디를 가도 모임이 있고, 어디를 가도 운명의 발산과 따스한 군중들 속으로의 도피가 있었다. 군중들 속에서 나는 데미안을 보았다. 길 한 가운데에서 저만치 걸어오는 그를 기다렸다.
“데미안!”하고 나는 그를 불렀다.
“여기 있었군. 싱클레어! 너를 기다리고 있었지.”
“내가 이곳에 있는 줄 알고 있었어?”
“확실히는 알지 못했지만, 그렇게 되리라고 희망하고 있었지. 이렇게 마주친 건 오늘 저녁이 처음이지만 말이야. 저녁 내내 우리를 뒤쫓아왔지?”
“그럼 난 줄 금방 알아차렸군?”
“물론이지. 넌 확실히 변하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표지를 달고 있으니까.”
“표지라니? 무슨 표지?”내가 물었다.
“아직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옛날 우리는 그것을 카인의 표지라 불렀지. 그것은 우리의 표지야. 너는 언제나 그것을 지니고 있었거든. 그래서 친구가 된 거고,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더 뚜렷해졌는걸.”
“나는 몰랐어. 아니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언젠가 네 초상을 그린 적이 있었어. 데미안! 그런데 나는 그것이 나와도 닮았다는 데 놀랐거든. 그것이 바로 표지였을까?”
“그것이 표지였지. 네가 여기에 와서 좋구나! 우리 어머니도 기뻐하실 거야.”
여름 학기 동안 나는 집 안에 있는 대신 거의 언제나 시냇가의 정원에 있었다. 데미안은 말을 가지고 있어서 매일같이 끈질기게 그것을 탔다. 나는 종종 그의 어머니하고만 있었다. 때때로 나는 내 생활의 평화로움이 의아스러웠다. 그러나 내게는 고독과 광분이 필요했다. 어느 날이든 나는 아름다운 사랑의 영상에서 눈을 뜨고, 단지 고독과 투쟁만이 있을 뿐 아무런 평화도, 공존도 없는 그러한 다른 사람들의 차가운 세계에서 다시금 혼자 서 있게 되리라는 것을 느꼈다. 여름의 몇 주일은 황급히 그리고 쉽사리 지나갔다.
저녁에 나는 에바 부인 집으로 갔다. 우리는 정원의 정자 아래서 저녁을 먹었다. 내가 유일한 손님이었다. 전쟁에 관해서는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다. 내가 떠나기 직전에 에바 부인은 내게 말했다.
“싱클레어, 당신이 오늘 나를 불렀지요. 왜 내가 직접 가지 않았는지 알겠지요. 그러나 이걸 잊지 마세요. 당신은 이제 부르는 법을 압니다. 그러니 언제든지 표지를 지닌 누군가를 필요로 할 때는 다시 부르세요!”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정원의 황혼 속을 걸어 나갔다. 잠잠한 나무들 사이를 이 신비에 찬 여인은 당당하게 걸어 나갔다. 그녀의 머리 위에서는 뭇별들이 조그맣게, 그리고 얌전히 빛나고 있었다.
결국 전쟁이 터졌다. 우리가 점령한 농가 앞에서 나는 이른 봄날 밤에 보초를 서고 있었다. 맥 없는 바람이 변덕스럽게 간간이 불어오고, 폴랑드르의 높은 하늘 위를 구름 떼가 흩날려가고 있었다. 구름 뒤 어느 곳에 달이 떠 있는 것 같았다. 그날은 하루종일 왠지 불안했다. 무엇인가 알 수 없는 불안이 내 마음을 어지럽게 했던 것이다. 나는 어두운 전초지에서 이제까지의 내 생활상과 에바 부인과 데미안에 대해 간절히 생각했다. 나는 한 그루 백양나무에 기대어 서서 움직이고 있는 하늘을 응시했다. 바람과 비에 대한 내 피부의 무감각성과 선뜻선뜻 떠오른 내면의 경각심에 의해 지도자가 내 주위에 있음을 나는 느꼈다.
나는 마굿간의 집 더미 위에 누워 있었다. 어두웠다. 누군가가 내 손을 밟았다. 그러나 나의 내심은 계속해서 더 나아가려고 했다. 다시 나는 마차 안에 누웠고, 그 후에는 들것인지, 사다리인지 위에 누워 있었다. 점점 더 강력하게 어느 곳으로인지 가도록 명령을 받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마침내 그곳까지 가야 하는 절박감 위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마침내 목적지에 닿았다. 밤이었다. 사방을 둘러보았다. 내 메트리스 바로 옆에 다른 메트리스가 있고, 그 위에 누군가가 있었다. 그는 몸을 굽혀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마 위에 표지를 달고 있었다. 그것은 막스 데미안이었다. 그는 나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나를 불렀다. “꼬마!” 그리고 나직히 말을 계속했다. “프란츠 크로머를 아직 기억해?”나는 그에게 눈을 깜빡였다.
“꼬마, 싱클레어, 들어봐! 나는 떠나지 않으면 안 돼. 너는 아마 언젠가 나를 다시 필요로 하겠지. 크로머나 또는 그밖의 일에 대해서. 그때 네가 나를 부른다하더라도 나는 이제 말을 타거나, 기차를 타고 갈 수는 없을거야. 그럴 때에는 자기 자신의 내부에 귀를 기울여야 해. 그러면 내가 너의 내부에 있음을 알아차릴 거야. 알겠어? 그리고 한 가지 더 에바 부인이 말했어. 만일 네가 언젠가 좋지 않은 처지에 놓였을 때 그녀가 나에게 보낸 입맞춤을 너에게 해주라고 말이지… 눈을 감아 싱클레어!”
“나는 선선히 눈을 감았다.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조금씩 피가 흐르는 나의 입술 위에 그가 가볍게 입을 맞추는 것을 나는 느꼈다. 그리고 나는 잠이 들었다. 아침에 나는 내 친구이자 지도자인 데미안과 같은 나 자신의 모습을 거기에서 볼 수 있었다.”소설은 이렇게 끝났다.
나 싱클레어가 지도자로 생각한 데미안이 없었다면 나의 어린 시절과 청춘 시절은 오로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만, 산 사실에 비추어 오랜 시간이 걸리고 쉽게 풀리지 않았을 것이다. 데미안은 말하지 않았던가?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마지막에 싱클레어는 이제는 지도자조차 필요 없을 정도로 성장한 자신을 발견한다. 그것은 대전 중 신기한 인연으로 부상 당한 데미안과 야전병원에서 만난 다음, 그리고 데미안이 사망한 다음, 기록한 싱클에어 수기의 마지막 구절에 역력히 나타난다. “붕대를 감는 곳은 아팠다. 그리고 그 이후에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이 아팠다. 그러나 나는 때때로 열쇠를 찾아 나 자신의 내부. 어두운 거울 속에 운명의 상이 졸고 있는 그곳으로 완전히 내려가기만 하면, 단지 그 어두운 거울 위에 몸을 굽히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이젠 완전히 데미안과 같은, 내 친구이자 지도자인 데미안과 같은 나 자신의 모습을 거기서 볼 수 있었다.”싱클레어는 모든 동경과 사랑과 믿음의 상징인 데미안을 외계에서는 잃고 말았지만, 내면을 발견하게 된 지금, 비단 데미안뿐만 아니라 온 세계를 불변인 모습으로 스스로의 내부에서 얻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