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한 번씩은 로또를 사곤 한다. 일부러 사러 나가지는 않지만,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길, 기분이 아주 좋은 날. 마침 돼지 꿈까지 꾼 날. 이런 날이라면 나에게도 로또 맞을 확률이 조금은 높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걸고, 사보지만 한 번도 맞아 본 적은 없다.그런데 오늘, 이슬비가 내리는 길을 걷다가 진짜 로또 맞은 애를 만난 거다. 이름하여 ‘끈끈이대나물 싹.'
보도 위를 걷다 문득 수목 보호판 틈새를 스쳐 지나갔다. 무심코 내려다본 그 순간, 낙엽들 사이로 작은 연둣빛 싹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서 자랄 줄 몰랐던, 거기서 자라고 있을 줄 몰랐던 끈끈이대나물이 조용히 올라오고 있었다. 녀석은 좁은 틈새를 벗어나 둥근 원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주변의 좁은 틈새엔 쑥인지 쑥부쟁이인지 내 상식으로는 알 수 없는 여린 싹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비 오던 날, 흙탕물 고인 골목길에서 놀다가 친구들과 물웅덩이를 건너는 놀이를 했던 기억이 난다. 신발이 젖을까 봐 조심하면서도, 한 발 한 발 뛰어넘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런데 웅덩이 가장자리에서 조그마한 들꽃 하나가 비를 맞으며 떨고 있었다. 작은 몸집에 비까지 내려 물방울이 가득 맺혀 있어 마치 무거운 짐을 진 듯 보였다. 나는 그 풀을 밟지 않으려고 일부러 웅덩이를 더 크게 뛰어넘었고, 친구들은 그런 나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봤다. '풀도 숨을 쉬고 있을 텐데, 내가 괜히 밟으면 아플 것 같아서...' 라고 말하자, 친구들은 피식 웃었고, 친구 하나는 '야, 너 참 별난 애다'라며 어깨를 툭 쳤다. 유별나게 어린 시절에도 들꽃을 좋아했었다.
골목길마다 이름 모를 풀들이 솟아나던 때, 작은 돌 틈에서도 자라나는 잡초들을 보며 신기해하던 나다. 친구들과 숨바꼭질을 하다가 돌로 만든 축대 틈에서 겨우겨우 자리를 잡고 피어난 민들레를 본 적이 있었다. 손가락으로 톡 건드리면 날아갈 것만 같았던 그 여린 존재를 괜히 지켜주고 싶었다. 오늘 마주한 끈끈이대나물 싹을 바라보며 그때의 기억이 스쳤다. 그들을 보는 순간, 내 발걸음은 저절로 멈추었고, 가만히 그 여린 싹들을 들여다보았다. ‘여기서도 자라네...’
처음엔 어이없기도 하고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세상은 넓고 땅은 많은데, 굳이 저 좁은 틈을 뚫고 나올 필요가 있었을까? 저 작은 생명이 뿌리를 내린 곳이 하필이면 저기라니. 그런데 저 중에서도 끈끈이대나물은 훨씬 더 넓은 곳에 자리를 잡았으니 대박이다.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게 진짜 로또가 아닐까?’ 싶었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면서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얘, 너 로또 맞았구나!" "난 말이야, 평생 만원짜리 하나 로또 맞은 적이 없는데..." 부러움 반, 질투 반, 끈끈이대나물 싹에게 말을 걸었다. "그게, 아무나 로또 맞는 게 아니에요. 전생에 나라를 구할 만큼 착한 일을 해야 한다구요." 끈끈이대나물 싹이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자랑스럽게 날 올려다본다.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럼 난 전생에 나라를 구하진 않았어도, 적어도 풀 한 포기도 함부로 뽑지 않고 살았으니 너를 만날 운명 정도는 있었겠지?"
로또 당첨이란 게 원래 확률 낮은 일이 아닌가. 수많은 사람들이 도전하지만 손에 쥐는 건 한 줌뿐이다. 그런데도 희망을 걸고, 기다린다. 그런데 이 녀석은? 햇빛 한 줌 들 틈 없는 보호판 아래에서, 낙엽더미를 뚫고 스스로를 당첨시켰다. 자신의 운을, 자신의 자리에서 만들었다.
나는 다시 끈끈이대나물 싹을 바라보았다.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조용히 흔들리는 쑥과 함께. 이건 누가 준 행운이 아니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아마도 오늘, 진짜 로또에 당첨된 건 내가 아닐까 싶다. 작은 싹 하나가 내게 건넨 행운의 메시지를 마음에 담으며, 내일은 또 어떤 로또가 내 앞에 나타날지 기대해 본다. |
첫댓글 선생님 재밌게 잘 보고 가요 선생님 매일 매일 행운 만땅 하세요 그리고 행복하세요
그래요 님도 늘 잘 지내시기를....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의 눈에 비치는 모든것이 당연히 아름다운 세상만이 존재 하겠지요
행운을 만나 간직함을 나는 부러워 합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노력하며 살자구요.
아름다운 마음에 감사합니다 항상 고마워 할 줄 알고 감사 할 줄 알면 풍요로운 삶이지요 멋진 삶이네요
그냥
그렇게 살고 싶어
노력 중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