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5일(월)
* 시작 기도
주님...
부활주일 이후 첫날을 맞이합니다.
이 하루도 나의 정욕과 욕심은 십자가에 못 박고 오직 우리 주님이 장사되신 그 무덤을 나의 성전 삼아 주님과 연합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성전된 나의 몸은 주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전임을 기억하여 오늘 하루도 주의 전으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하소서.
내 안에 생각을 혼잡하게 하는 온갖 상념들은 주의 보혈로 씻어 정하게 하사 주님의 정결한 신부로 세워주소서.
밝아오는 이 아침 세상을 비추듯, 주의 성령으로 말씀의 빛을 비추사 조명하여 주옵소서.
새 영과 새 마음을 주사 오직 주님으로 가득한 영으로 삼아주소서.
세상의 어떤 미혹도 넉넉히 이겨낼 수 있도록 나를 주의 품에 품어주소서.
오늘 하루도 비록 남들은 하찮게 여길지라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영적 하루살이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출 1:1-14
제목 :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다.
1. 야곱과 함께 각각 자기 가족을 데리고 애굽에 이른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2.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3. 잇사갈과 스불론과 베냐민과
4. 단과 납달리와 갓과 아셀이요
5. 야곱의 허리에서 나온 사람이 모두 70이요 요셉은 애굽에 있었더라.
6.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의 사람은 다 죽었고
7.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상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9. 그가 그 백성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10.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고
11.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12.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13.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을 엄하게 시켜
14.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일이 모두 엄하였더라.
* 나의 묵상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그의 아버지를 초청하였다.
아버지와 함께 애굽으로 간 아들들은 요셉을 뺀 열한 명이었으며 그들의 이름은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스불론, 베냐민, 단, 납달리, 갓, 아셀이었다.
애굽에 도착한 야곱의 후손은 모두 70명이었으며 여기에 요셉의 가족은 포함되지 않았는데, 이는 요셉의 가족은 이미 애굽에 있기 때문이다.
한편 요셉과 그의 아버지를 비롯하여 가나안에서 야곱과 함께 애굽으로 왔던 그의 자손들은 다 죽었으나 그 이후에 계속 이어지는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그 수가 점점 불어나 강하여지고 애굽 온 땅에 가득하였다.
이 때는 요셉과 함께 했던 바로는 죽고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바로가 세워져 애굽을 다스리던 때였다.
그 새로운 바로가 말하기를 지금 이스라엘 백성이 우리 애굽 사람보다 많고 강하다.
이제 우리 애굽 사람들이 지혜로워질 필요가 있다.
자칫하면 그들이 우리보다 많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면 그들이 우리의 적과 합하여 우리를 대적하고 여기서 나갈 수도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 위에 감독들을 세우고 그들의 짐을 더욱 무겁게 하여 그들을 괴롭게 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나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인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라고 명령하였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사람들로부터 학대를 받으면 받을수록 더 번성해지고 그 힘이 막강해지므로 애굽 사람들이 이로 인하여 근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일을 더 엄하고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였다.
흙을 이기는 일과 벽돌을 굽는 일 그리고 농사를 짓는 여러 일들을 시켰는데 아주 혹독하게 일을 시켰다.
요셉이 아버지 야곱과 그의 형제들을 초청할 때는 그 숫자가 70명에 불과하였으나 그들이 번성하여 400년 후, 출애굽을 하여 광야에서 그 숫자를 셀 때는 20세 이상의 남자만 60만 명이나 되었다.
(민 1:45-46)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그 조상의 가문을 따라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이스라엘 자손이 다 계수되었으니 계수된 자의 총계는 603,550명이었더라.
물론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노예로 살던 때는 이만한 숫자는 되지 못하였지만 야곱에게 약속하셨던 하나님께서는 비록 야곱이 죽고 이 땅에서 사라졌을지라도 여전히 그의 자손들과 함께 하셨다.
(창 46:3-4)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이 약속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셨을 뿐 아니라 그 애굽에서 번성한 야곱의 후손들과도 함께 하셨다.
그들이 비록 애굽의 종노릇을 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종노릇을 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고 게다가 애굽의 바로가 그들을 심하게 학대를 하였지만 그들은 학대를 당하면 당할수록 더욱 번성하였고 또한 강하여졌다.
이로 인하여 바로를 비롯한 애굽 사람들의 근심이 날로 커져만 갔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을 더욱 혹독하게 시켰는데 건축을 위하여 흙을 이기는 일이나 벽돌을 굽는 일 그리고 농사 일 등 여러 가지 일을 아주 심하게 시키곤 하였다.
이스라엘은 애굽 사람들에 의해 학대를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더 번성할 뿐 아니라 강성하여지기까지 하였다(12절).
이는 그들이 힘이 있거나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겉으로 볼 때 이스라엘은 비참한 노예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런 노예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보호하셨던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때문이다.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국 야곱의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을 통해서 야곱에까지 이어진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신 것이다.
(출 2:24-25)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에게 하신 언약은 다름 아닌 자손과 땅에 대한 약속이었다.
(창 15:5,7)그(아브라함)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자손과 땅의 약속을 맺으실 때 횃불로 나타나셔서 일명 횃불언약을 맺으셨다.
이 언약은 아브라함에게서 끝난 것이 아니라 이삭과 야곱에게도 동일하게 해주셨다.
(창 26:3-4)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이삭)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창 35:11-12) 하나님이 그(야곱)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에게 하신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요셉을 애굽으로 보내셨고 그 요셉을 통하여 아버지와 그의 형제들을 애굽으로 초청하게 하신 것이다.
그렇게 하여 약속하신 한 백성과 그 총회가 야곱을 통하여 세워지게 된 것이다.
이런 하나님의 언약을 통하여 세워진 백성이기에 그들이 사람들 보기에 비참한 노예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눈에는 가장 귀하고 사랑스러운 백성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저 역사적인 관점에서만 보았을 뿐 하나님의 자녀라는 관점, 곧 언약을 통해서 하나님이 세워가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점을 알지 못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잊어버리지 않으시고 그의 아들인 이삭과 손자 야곱에게 그대로 언약을 맺으시며 이를 영원한 언약으로 맺으시고 기억하셨다.
(창 17: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과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시 105:9-10) 이것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고 이삭에게 하신 맹세이며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원한 언약이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세우신 언약 곧 창세전 언약이야 두 말 해 무엇 하겠는가?
창세전 언약이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영원한 언약이다.
(딛 1: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하나님의 창세전 언약은 이처럼 영생이며 이를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이 세상에 육신으로 보내셨다.
아담의 후손으로 마땅히 죽어야 할 우리들이지만 창세전에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여 주시고 이처럼 택함 받은 자들이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그 모든 죄를 속량해 주셨다.
나는 아담의 후손이기도 하지만 내 안에 있는 죄성과 나 스스로 지은 자범죄가 너무도 크기에 나로서는 그 죄를 도무지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나를 창세전에 택해주심에 그저 고개를 숙이며 감사할 따름이다.
나의 영원한 생명 되시는 나의 주님이 계시며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나의 전부가 되시기에 나는 오늘도 그분을 내 심령에 온전히 모셔 들인다.
나는 심히 연약한 자이다.
심한 고통과 고난이 따르면 이를 잘 이겨내지 못하고 쉽게 포기하고 만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세전 언약은 내가 쉽게 포기한다고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지는 일이며 이를 위하여 아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에 장사되셨으며 부활하신 것이다.
나는 복음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였으나 존재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복음이요 또한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셔서 사흘 만에 부활하신 그것이 바로 메시야적 행위로서의 복음임을 알았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는다.
그리고 주님의 그 무덤에 나도 함께 장사되어 오직 주님이 주신 새 생명으로 다시 살아간다.
그것이 복음의 진수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십자가의 자리, 무덤의 자리는 내가 마땅히 져야 할 고난의 자리이며 그 고난을 통하여 나의 영이 더욱 반짝반짝 빛날 것을 믿는다.
(욥 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 묵상 후 기도
주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에 바로에 의해서 학대를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고 강해졌습니다.
이는 곧 우리의 신앙의 모습입니다.
고난 없이는 영광도 없음을 압니다.
십자가 없는 면류관도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진리가 그저 지식에 지나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이제 지식에 머물지 않게 하시고 나의 삶에서 고난을 받을지라도 오히려 영적으로 더욱 깨어 있게 하시고 우리 주님의 십자가를 함께 지고 새 생명으로 우리 주님이 계시는 그 나라에 함께 들어가 영광의 면류관을 쓸줄 믿나이다.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에게 하신 언약도 영원한 언약으로 이루어가신 하나님께서 창세전 언약이야말로 반드시 이루실 것을 믿사오니 오늘도 그 창세전 언약을 믿음으로 받습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나라를 오늘도 영원에 잇대어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