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시마 유코(津島佑子, 1947-2016)라는 일본 소설가가 있습니다. 쓰시마 유코는 『인간실격』, 『사양』 등의 소설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일본문학의 거장,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1909-1948)의 딸입니다. 그녀도 아버지처럼 소설가가 됩니다. 하지만 아버지를 따라 소설가가 된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가 소설가였던 것처럼 마침 그녀도 소설가가 된 것뿐입니다. 1948년 쓰시마 유코가 겨우 두 살이던 해, 아버지 다자이 오사무는 죽고 맙니다. 애인과의 동반자살이었지요. 쓰시마 유코는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은 쓰시마 유코의 삶에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깁니다. 어떻게 갓난아기였던 자신을 놓아두고 자살할 수 있는지, 따져 물을래도 물을 수 없는 막막함이 쓰시마 유코의 삶에는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는 고통이고,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상처였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쓰시마 유코에게 줄곧 아버지 다자이 오사무에 대해 물었습니다. 있을 리 없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에 대해 묻고, 직간접적으로 받은 영향에 대해 물었습니다. ‘쓰시마 유코의 문학적 재능은 아버지로부터 온 것이 틀림없다’고 치켜세웠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말들이 쓰시마 유코에게는 더없이 고통스러웠습니다. 쓰시마 유코는 한참이 지난 후에야 이렇게 고백합니다. “제발 아무도 소설가였던 아버지에 대해 묻지 말았으면 하고 늘 바랐습니다.” 사람들이 쓰시마 유코에게 흥미를 가지는 부분은 쓰시마 유코가 가장 아파했던 부분이었습니다. 가장 아파했던 부분이지만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문제니까 무람없이 물어도 된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사람들은 물을 때 조심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 조심성 없는 질문에 그녀는 평생을 시달립니다. 쓰시마 유코는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가지게 되면 자신의 아버지처럼 무책임하게 자식을 버리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 결심합니다. 이혼은 하게 되었지만 어쨌든 혼자 꿋꿋이 자식을 키워나갑니다. 자식에게 쏟은 정성과 사랑은 각별했지요. 쓰시마 유코는 자신에게 새겨진 상흔을 사랑하는 아들을 통해 조금씩 지워나갔습니다. 그런 행복이 계속될 줄 알았던 어느 날 그녀의 어린 아들은 갑자기 세상을 떠납니다. 급작스런 호흡발작이 원인이었습니다. 아이는 고작 아홉 살이었습니다. 쓰시마 유코의 작품에는 아들을 잃은 슬픔이 짙게 배여 있습니다. 그중 『자카 도프니 . 여름 집』이란 작품에는 자식을 잃은 후 사람들의 손쉬운 위로에 어떻게 마음을 다쳤는지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적확하고 일반적인 표현이라 해도, 나는 아들아이가 죽었다는 말을 입 밖에 내는 사람이 밉다. 화가 나는데 그치지 않고 경멸감이 든다. 안됐다, 가엾다고 하는 사람도 용서할 수가 없다. 기운 좀 차렸나요, 라고 묻는 사람에게도 화가 나고, 지금쯤 천국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을 거예요, 라고 태연하게 말하는 사람은 아예 무시한다. 그렇지만 스스로도 적합한 말을 찾지 못 했다. 아니야, 아니야, 하고 내게 덮쳐오는 말들을 부정할 수밖에 없다.” 『자카 도프니 . 여름 집』(151)*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은 말도 잃습니다. 하지만 그 앞에서 사람들은 위로의 말이라고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지요. 정작 그런 말들이 위로가 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아픈 사람을 더 아프게 합니다. 슬픔을 설명할 ‘적합한 말’을 잃은 사람에게 쏟아놓는 사람들의 손쉬운 위로는 슬픔에 젖은 사람들을 더 슬프게 만듭니다.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만 더 선명해집니다. 소설가 김연수는 애도에 대해 이렇게 씁니다. “어떤 슬픔으로도 그 타자를 애도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타자에 대한 윤리의 기본은 그냥 불편한 채로 견디는 일이다.”(44)**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이 슬픔에 잠겨있는 사람을 위로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어서 빨리 애도를 표시해 내 마음 편하고자 하는 것인지 곰곰 생각해야 합니다. 이어서 김연수는 “애도를 속히 완결지으려는 욕망을 버리고 해석이 불가능해 떨쳐버릴 수 없는 이 모호한 감정을 받아들이는 게 문학의 일”(49)이라고 씁니다. 어찌 문학만의 일이겠습니까.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도 이와 같아서, 모호함을 피하려 하면 온통 잘 못 읽고 맙니다. 특히 슬픔에 잠긴 마음은 언어가 사라진 텍스트라서 읽기가 더 힘들지요. 언어가 사라진 곳에 펼쳐진 드넓은 행간, 그 사이에 켜켜이 쌓인 불편하고 모호한 감정을 함께 견뎌야 합니다. 아픈 사람을 더 아프게 하지 않으려면, 이 불편하고 모호한 순간을 견뎌야 합니다. 어느 순간 불편한 감정은 더 불편해지고, 모호한 감정은 더 모호해져서 오직 먹먹한 침묵만이 안개처럼 가라앉을 때가 있을 터인데, 어쩌면 그 순간을 우리는 이제 겨우 애도의 순간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아주 조심스럽게 말이지요. * 묵시, 쓰시마 유코, 김훈아 역, 문학동네(2013) ** 시절일기, 김연수, 레제(2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