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사자들
원제 ; Avalanche Express
1979년 미국영화
감독 : 마크 롭슨
출연 : 리 마빈, 로버트 쇼, 린다 에반스
맥시밀리안 셀, 홀스트 부크홀츠, 조 나마스
마이크 코너스, 데이비드 헤스
1970년대 후반 동서 냉전시대, 모스크바에서 고위층 회의가 열립니다. 무슨 '윈터플랜' 이라는 작전명에 대한 회의인데 이게 무슨 유럽을 대상으로 한 세균전인것 같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책임자는 부닌(맥시밀리안 셀) 이라는 똑똑한 인물이고, 보안 책임자는 마렌코프(로버트 쇼)라는 공산당 고위층입니다. 회의가 열린 이유는 이 프로젝트가 안젤로 라는 스파이에 의해서 새어나갔기 때문입니다. 마렌코프는 부닌에게 유럽에 가서 안젤로를 제거하라는 제안을 합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후반까지는 영화를 매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암흑기같은 시대였습니다. 한국영화는 여배우 벗기기에 의존한 에로영화 일색이었고, 외국영화는 홍콩영화나 유럽 에로물 제외하고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의 년간 개봉편수가 10여편 남짓한 시기였으니까요. 워낙 개봉되는 외화수가 적었으니(1년 20편 조금 넘었죠) 아무거나 걸면 기본 관객이 들었기 때문에 굳이 비싼 영화 무리하게 수입할 필요 없었지요. 그래서 유명한 할리우드 영화 보기가 참 힘든 시기였는데 그런 와중에 간혹 유명배우들이 즐비하게 등장하는 영화들이 개봉되곤 했습니다. '파비안느' '지옥의 사자들' 그레이트 볼카노' '라스트 찬스' 같은 영화들이 그랬지요. 하지만 이런 호화캐스트는 허우대일뿐, 전성기가 지난 유명 스타들을 모아서 만든 허접한 영화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지옥의 사자들' 역시 영화 자체는 별것 없습니다. 내용은 냉전 시대를 바탕으로 한 첩보 오락물이지만 영화의 수준은 뭔가 50-60년대 영화들보다 올드한 느낌이고, 지금 보면 철지난 동서 냉전 소재라서 진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래도 건질게 있는 것은 대략 두가지 쯤. 하나는 거대한 산사태 장면이 그럴싸하고(물론 현대 CG영화와 비교할 건 못되지만 이런 아날로그 시대를 감안하면 그럴듯 합니다.) 두 번째는 리 마빈, 로버트 쇼, 맥시밀리안 셀, 홀스트 부크홀츠 등 60-70년대를 풍미한 유명 스타들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영화는 진부해도 배우들의 포스야 어디 가겠습니까?
주요 내용은 미국으로 망명하려는 소련의 고위층 스파이를 열차에 태우고 안전하게 이동시키려는 CIA측과 이를 필사적으로 저지하려는 소련 공산당측과의 치열한 대결입니다. 얼마든지 재미있게 만들 수 있는 소재입니다. 급행 열차가 등장하는 영화중 재미난 작품들이 어디 한둘이던가요. 그런데 아무리 좋은 감독이나 배우들도 다 자기 시대가 있기 마련입니다. '챔피언' '여섯번째의 행복' '페이톤 플레이스' '탈주특급' 등 많은 상업영화를 만든 마크 롭슨 감독이 연출했지만 이미 자기 시대가 지나간 이후였고, 1974년 '대지진' 이후 4년만에 복귀한 작품인지라 연출 감각도 떨어진 느낌입니다. 리 마빈, 로버트 쇼, 맥시밀리안 셀, 홀스트 부크홀츠 모두 자기 시대를 지나가는 흘러간 배우가 되는 시기였고. 그래서 흥미진진해야 할 소재가 진부하고 시간도 1시간 30분이 안됩니다.
로버트 쇼가 연기한 마렌코프는 소련의 공산당 요직에 있는 중요한 인물이지만 정작 보안담당이던 그의 정체는 안젤로 라는 이름으로 서방계에 접선을 하는 스파이였습니다. 그는 이 활동을 청산하고 미국으로 정식 망명하려고 하고, 마렌코프의 망명 프로젝트를 지휘하는 CIA 인물이 해리 워그레이브(리 마빈) 입니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만난 해리와 마렌코프는 유럽횡단 급행열차를 타고 함께 이동하고 열차에는 일반 승객 외에도 무장한 요원들이 전면 배치되어 마렌코프 보호작전에 나섭니다. 하지만 이들 조직 내부에도 소련과 접선하는 스파이가 숨어있어 작전은 새어나가고 열차를 습격하는 공산당들의 거센 공격을 받습니다. 대규모 총격전, 거대한 산사태 등, 온갖 역경을 뚫고 마렌코프 호송작전이 이어집니다. 급기아 '윈터플랜' 프로젝트 책임자인 부닌이 직접 나서서 마렌코프 제거작전에 합류하고 부닌이 이 열차에 동료들을 데리고 올라타게 되면서 이야기는 클라이막스로 흐릅니다.
스토리만 보면 매우 재미있어야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렇지 못합니다. '카산스라 크로싱'을 비롯하여 '실버스트릭' '폭주기관차' '언더시즈 2' 등 재미난 열차 액션 영화들이 많았지만 '지옥의 사자들'은 그 틈에 낄 레벨이 솔직히 안됩니다. 제작비도 당시로서는 거액인 1200만 달러나 투입했음에도. 다만 리 마빈, 로버트 쇼 등 개성파 배우들의 카리스마는 영화속에서 내뿜어지고 있습니다. 맥시밀라안 셀은 소련측 인물로 등장하여 마렌코프를 제거하기 위한 임무에 뛰어들고 홀스트 부크홀츠는 영화 후반부에야 등장하는데 CIA측 요원 중 한명입니다.
국내 개봉시에는 나름 준수한 흥행기록을 세웠는데 당시 할리우드 오락 액션 영화가 흥행에 실패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로버트 쇼의 유작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로버트 쇼는 불과 51세의 나이로 1978년 갑작스럽게 쓰러져 심장마비로 요절했는데 아마도 술을 너무 좋아하는 습관 때문에 급사한 것 같습니다. 로버트 쇼 뿐만 아니라 이 영화의 감독인 마크 롭슨 역시 같은 해 사망하여 두 명의 유명 영화인의 유작이 된 비운의 영화가 되었습니다. 78년에 촬영되었지만 1년이나 지난 79년 가을에야 한, 미 양국에서 개봉되었으니 두 사람 모두 이 영화의 개봉을 못 보고 요절한 것입니다. 당시 1-2년 이상 지나서 미국영화가 개봉하는게 보통이었지만 이 영화는 이례적으로 오히려 전미개봉보다 우리나라 개봉이 조금 빨랐습니다.
로버트 쇼는 알랑 들롱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 만큼의 인기배우이거나 미남배우가 아니었음에도 유독 70년대 말년의 작품들이 우리나라에 많이 개봉되었는데 '스팅' 부터 유작 '지옥의 사자들'까지 그 사이에 출연한 11편중 이 두 편을 비롯해서 '죠스' '슈퍼 다이아몬드' '디프' '나바론 2' '디제스타' 까지 7편이나 개봉이 되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가 극심하게 적게 개봉되는 시기에 나름 활발히 개봉이 되었던 배우입니다.
영화는 평범했지만 할리우드 영화사의 한 시대를 나름 풍미한 두 영화인의 유작이라는 점에서 그런대로 의미를 남긴 작품입니다. 개봉후 공중파에서 방영을 한 번 한 이후로 완전한 희귀작이 되었는데 최근 놀랍게도 DVD가 우리나라에서 출시되었습니다. 40-50년대 영화보다 더 희귀한 70년대 개봉작이 이렇게 간혹 돌발출시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영화가 그런 부류였습니다.
ps1 : 레너드 말틴은 이 작품에 빵점인 'BOMB' 점수를 매겼습니다. 별 네개 만점중 별을 줄 가치조차 없는 영화에 매기는 최하점수지요.
ps2 : 늙수그레한 리 마빈이나 로버트 쇼에 비해서 당시 40대 중반이던 홀스트 부크홀츠는 아직 젊은 외모던데 왜 그의 내리막길은 더 빨랐는지 모르겠습니다.
ps3 : 한 명 망명시키려고 그렇게 수많은 요원들이 죽는다는 건 좀......
[출처] 지옥의 사자들(Avalanche Express 79년)두 영화인의 유작|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