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에서본내모습@ [사도세자]
세자가 뒤주 밑에 갇히더니 애석하게도 그만 서거할 수 밖에없네! 본래 조울증이 발생 내시까지 죽여서 모친 영빈 이씨 습관에 따라...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사망]* 1762년 7월 12일, 261년 전 오늘,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사망하였습니다.
영조의 외아들이자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8일 만에 죽었습니다. 아무리 사도세자가 미치광이 었다지만, 자식을 죽인 아비의 매정함이나, 이를 방관할 수밖에 없었던 친모 (영빈 이씨)와 아내 (혜경궁 홍씨)의 심정을 우리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어릴 때 신동으로 사랑받던 사도세자는 부모와 떨어져 엄격한 궁궐의 교육을 강요받으면서 오히려 성격이 비뚤어지고 조을증을 얻게 됩니다. 그 증상은 사치와 향락으로 이어지고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사도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영조가 (대통령 권력대행과 유사한) 대리청정을 하면서 세자와 영조의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세자의 비행들을 알고 광분한 영조는 마침내 아들에게 자결을 명하게 됩니다. 이에 세자가 자결하려고 하였지만 주위 신하들이 만류하자, 이에 격분한 영조는 신하들과 세손 (정조)을 강제로 끌어내고, 세자를 폐서인 한 후 쌀 담는 뒤주 속에 가두어 버립니다. 그 후 세자에게 물 한 모금도 주지 못하게 하여 한 여름 뒤주 속에 가둬진 세자는 결국 8일 만에 갈증과 굶주림 속에 생을 마감합니다. 이 당시 영조는 아들만 죽인 게 아니라 아들의 측근들마저 처형해 버리니 이것을 '임오화변'이라고 합니다. 사도세자의 죽음은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 외에도 노론과 서론의 권력다툼도 한몫했습니다. 노론들의 거센 방해를 이겨내고 왕이 된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는 매 년 오늘 통곡했습니다. 효자로 소문난 정조는 그의 아버지의 묘를 지금의 화성시 융릉에 모시고 자기는 그 옆 건릉에 묻히게 됩니다. 그리고 정자각을 능의 바로 정면이 아닌 한쪽 옆으로 비켜 세웁니다. "뒤주 속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앞을 막아서야 죽은 뒤에도 얼마나 답답하시겠느냐"라는 정조의 말에 신하들도 통곡했습니다.
능 뒤편에서 바라본 隆陵의 전경. 정자각이 오른편에 비켜 세워져 있다. |
첫댓글
저도 화성에 두어 번 가봤는데..
참으로 슬픈 역사의 한 장면이지요..
잘 다녀갑니다..*)*
참 아픈 역사 입니다 사도 세자의 우매 함도 죽임을 당함도 정치적인 게 깔려 있으니..
영조의 탁월한 정치감이 빛을 발한 게 아닐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