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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병천카페 [성령전인치유목회] 원문보기 글쓴이: 이병천목사
예수님의 고난, 무엇을 위함인가?
150329(종려주일오전)
사53:3-6
https://youtu.be/v-yGdfssW7o (동영상 링크)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안에 가장 힘들어 할 때가 어떤 때냐하면, 자기의 자존감을 인정받지 못할 때,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의 가치를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할 때, 굉장히 마음 상하거든요. 사람들이 소리지르죠, 삿대질 하면서... "야 너 내가 누구인줄 알어? 내가 누구인줄 알어?" 하면서 삿대질을 하고 마음의 불편함을 확 드러내죠! 자기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할 때 오는 마음의 아픔과 상처와 고통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류 역사상 그 고통을 가장 크게 당한 분이 계시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본래 하나님이십니다. 온 우주만물의 창조주이신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제2위로서 천국에서 천군천사들의 호위를 받으시며 영원무궁토록 존귀와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 그 의로우신 예수님께서 죄인들로부터 무시와 침뱉음과 주먹질과 채찍질을 당하시고 발가벗겨지신 채로 마지막 십자가에 매달리시기까지 모진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체이신 그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복종하사 십자가에 죽어주셨습니다(빌2:5-8).
그렇기에 모든 교회들은 이 주간을 예수님의 고난주간으로 지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주간을 맞이하는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예수님의 고난, 무엇을 위함인가?”란 제목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 그렇게까지 하실 이유가 무엇이었겠습니까?
성경 이사야 53:3-6에 말씀합니다.
(사 53:3-6)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님의 고난은 죄인 된 우리를 모든 죄악의 저주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함이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셨던 모진 고난들은 사실상 죄인 된 우리 모두가 마땅히 담당해야만 할 죄의 대가들이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바로 그와 같은 예수님의 대속의 고난을 깊이 살펴보며 예수님께서 당하셨던 그 고난의 자리가 본래 저와 여러분의 자리였음을 기억하고, 우리를 구속하시려고 그 모진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며, 남은 생애 죄악을 멀리하는 복된 생애가 되시기를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보통 예수님의 고난이라고 말하면 얼른 십자가의 고난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상 십자가의 고난은 예수님의 최후의 고난이요, 전체 고난의 완성일 뿐, 십자가의 고난이외에도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고난을 더 당하셔야만 했었습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고난은 겟세마네의 동산의 고난이었습니다.
이 고난은 예수님의 사역 초기 40주야를 금식하시고 마귀의 시험을 당하신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은 아주 극심한 고난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귀의 강한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큰 고통이었고 예수님께서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셨는가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히 5: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마귀는 십자가를 앞에 놓고 고민하며 기도하시는 예수님께 찾아와서, 이제라도 네가 메시아임을 포기하고 타협하여 자신의 생명을 구하라고 유혹했습니다.
“메시아가 되는 것보다는 네 생명을 구원하는 것이 좋지 않으냐? 십자가에 매달리는 것보다는 ‘내가 메시아가 아니라.’고 선언하고 십자가의 고통으로부터 구원을 받는 것이 좋지 않으냐?”라는 속삭임으로 한편으로는 지금이라도 십자가를 피할 수 있다고 하는 달콤한 유혹으로, 또 한편으로는 십자가를 지게 될 경우의 어마어마한 고통에 대한 경고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귀는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십자가를 피하게 하려는 유혹을 시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상황에서 엄청난 정신적 억압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마귀는 말했을 것입니다. “보라, 헬라인들이 초청하러 왔으니 함께 피신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요 12:20-21) 『[20]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21] 그들이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헬라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헬라로 초청하기를 원했습니다. 마귀가 말했을 것입니다.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네가 이 유대 땅에 있어서 처형을 당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헬라로 가서 그곳에서 가르치는 것이 좋지 않으냐?” 마귀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어찌하든지 십자가를 짊어지지 말도록 유혹을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요12:23-25)는 말씀으로 마귀의 유혹에 일침을 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반드시 짊어지셔야만 할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파탄에 이르게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가장 사랑하는 자 가룟 유다에게 배신당하는 그 심령의 고통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그의 사랑하는 제자 가룟 유다가 그를 배신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마음 속에 가장 큰 고통과 절망을 가져오는 것들 중에 하나가, 가장 믿고 사랑했던 사람으로부터의 배신입니다. 먹이고 입히고 돌봐 주고 온갖 정성을 다해 주었는데 그 사람이 돌아서서 발로 차고 배신할 때에 그 배신을 당하는 사람의 고통과 쓰라림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 중에 가룟 유다를 가장 믿고 사랑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 돈주머니까지 맡기셨던 것입니다. 믿고 신뢰하지 않는 사람에게 어떻게 돈주머니를 맡기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룟 유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종의 몸값인 은전 30을 받고 팔아 넘겼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실을 미리 알고 계셨지만 그를 끝까지 사랑하고 믿어주셨기에 그에게 권면하며 경고하시기를
(막 14:21)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이상과 같은 권면과 경고로 그의 가장 사랑하는 제자 가룟 유다에게 끝까지 기회를 주셨지만, 결국 유다에게 배신을 당하여 죽음에 넘겨지실 때 그 마음의 고통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뿐 아닙니다. 겟세마네 동산에게 그가 기도할 때 온 세상 죄악의 잔을 다 마시는 고통과 싸워야만 했습니다. 당신이 짓지 않는 모든 죄, 추악한 죄, 더러운 죄가 가득 들은 그 저주의 잔을 마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책임져야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온 세상 죄악의 잔을 마시기 싫으셨기에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셔서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
(마 26:39,42) 『[39]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42]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
주님은 사실 온 세상 죄악의 잔을 다 마시고 그 심판을 받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임으로 본능적으로 죄에 대해서 무시무시한 저항감을 느끼셨던 것입니다. 너무나 추악하고 더러운 그 죄악의 잔을 주님께서 마셔야만 우리가 구원의 반열에 설 수 있기에, 하나님께서 그 죄악의 잔을 주님께 마시라 하셨고, 주님께서는 그 고통의 잔을 기꺼이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온 인류의 죄를 대신 마시고 대신 짊어지고 심판을 받으시기로 결단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입니까? 주님께서 이것을 수용하기 위해서 기도하실 때에 얼마나 애쓰고 힘을 썼든지 이마에 땅 방울이 핏방울로 변했습니다.
(히 5: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몸부림을 치면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 이 힘을 하나님이 허락하소서하고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발가벗겨진 상태로 십자가에 못 박히는 육체적인 그리고 정신적인 수치와 고통에 대한 공포도 휘몰아쳐왔습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지만은 완전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이면 그 누구를 불구하고 곧 다가올 십자가에 형틀에 못 박혀서 죽는 그 고통에 대해서 공포와 불안과 수치와 곤욕을 느끼지 아니할 수가 없었습니다.
(막 14:34-37) 『[34]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35]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37]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주님이 얼마나 몸서리치게 이 죄악의 잔을 마시는 것이 두려웠던지 아버지 하나님께 눈물로 호소했습니다마는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어 주지 않으셨습니다. 인류를 위해서 네가 잔을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무도 함께 기도해 주지 않는 극한의 외로움을 느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극한의 고난에 처했을 때 제자들조차도 함께 기도해 주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수용하기 위한 기도는 참으로 맹렬한 싸움이었습니다. 형언할 수 없는 정신적인 고통과 불안과 초조와 공포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땀방울은 핏방울이 되었으며 그곳에서 예수님은 종국에 가서 모든 것을 극복하고 마음에 평화를 얻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십자가를 걸머질 수 있는 영적, 정신적인 마음을 얻게 된 것입니다.
누가복음 22장 43절에서 44절에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얼마나 힘쓰고 애써서 간절히 기도하셨겠습니까? 주님께서 그 체력으로 감당할 수 없으니깐 하늘에서 천사들이 와서 그를 도와주고 힘을 더해주었습니다. 어마어마한 싸움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이후의 전쟁은 이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까지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겨 놓으신 전쟁을 계속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 우리 주님께서 당하신 고난은 대제사장 가야바의 뜰에서 고난당하신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이 가룟 유다에게 배신당하시고, 로마의 군인들과 유대인의 하속들에게 잡혀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끌려가셨습니다. 그곳에서 대제사장과 그의 추종자들에게 이루 말로는 다할 수 없는 큰 모욕을 당하셨습니다. 그들은 거짓 증인을 채택해 놓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거짓으로 모함하고 욕을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은 죄를 추궁당할 때는 항복하지만은 거짓으로 모욕당할 때는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대제사장과 그의 추종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온갖 뜬소문과 온갖 거짓말을 다 지어서 모욕하고 죄를 덮어씌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대제사장과 온 공회가 예수님을 죽이려고 거짓 증거를 찾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와서,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마26:61)는 말로 비아냥거리며 공격합니다. 대제사장이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고 추궁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이에 대제사장이 옷을 찢으며 가로되 “그가 신성모독하는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신성모독하는 말을 들었도다 너희 생각은 어떠하냐?”,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주님을 향하여 “그는 사형에 해당하니라.”는 말을 하며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조롱하기를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지한 사람들에게 주먹질과 손바닥 뺨질로 구타를 당하고 수염을 잡아당김을 당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얻어맞으셨든지 눈이 다 부어 코와 얼굴이 하나가 되셨습니다. 피투성이가 되셨습니다.
그러한 정황 속에서 주님의 수제자 베드로의 배반이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끌려갔을 때 가야바의 하인들과 불을 쬐다가 한 여종이었던 계집아이가 와서 너도 갈릴리 예수와 함께 있었다고 하니깐 네가 하는 말을 전혀 모르겠다. 시치미를 뗐습니다. 그 다음에 한 사람이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다고 하니깐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종인 그 계집아이가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고 하니깐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고 했습니다. 피투성이가 된 예수님께서 얼굴을 돌이켜서 베드로를 쳐다보셨습니다. 주님을 부인하는 베드로와 침 뱉음과 주먹질을 당하고 심지어는 하인들로부터도 뺨질을 당하사 피투성이가 되고 퉁퉁 부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 마주치실 때 닭이 세 번째 울었습니다. 베드로는 밖으로 뛰어 나가서 가슴을 치며 통곡하고 몸부림치고 울었습니다. ‘내가 왜 우리 주님을 배반하였는가?’ 그러나 자기 힘으로 그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이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그가 가장 고통스럽고 괴로울 때에 그가 의지하던 수제자가 그를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고, 마지막에는 저주까지 하며 맹세하기를,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할 때의 그 고독은 이루 말로는 다 할 수가 없으셨을 것입니다. 주님은 그곳에서 너무나 큰 마음의 타격과 고통을 입으신 것입니다.
세 번째 주님의 고통은 빌라도의 뜰에서였었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의 우유부단함에 너무나 마음의 실망이 컸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 없이 유대인의 시기로 고소당하고 있는 것을 알고 수차 예수님을 도우려고 했으나 군중의 압력과 정치적인 입장의 안정 때문에 정의를 짓밟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가는 길인 것입니다. 세상은 정치적인 타협, 군중들에게 호응하기 위해서 정의의 길이 확연하게 보임에도 불구하고 정의를 짓밟아 버리고 정의를 던져 버릴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세상의 법정에서 그는 빌라도에게 배신을 당했으며 군중들에게도 배신을 당하셨습니다.
(요 19:12-13) 『[12]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13]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돌을 깐 뜰(히브리 말로 가바다)에 있는 재판석에 앉아 있더라』고 했습니다.
며칠 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만 해도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서 예수님이 타시는 나귀위에 얹어주고 길에 깔고 종려나무가지를 꺾어서 나귀 밑에 깔아주며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고서 열광하며 환영하던 그 군중들이 순식간에 변하여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하는 변화무쌍한 인심을 보고 주님은 얼마나 큰 타격을 받으셨겠습니까? 얼만 전까지 주님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고 먹여주고 살려주고 어루만져준 그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라고 환영하며 박수를 치던 그 군중들이 이제는 180도로 뒤돌아서서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하니 주님께서 그런 인간들에 대한 환멸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요 19:14-15) 『[14]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15]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눅 23:23) 『그들이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
(마 27:25)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여러분, 그들은 이 말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말인지 몰랐습니다. 그때부터 시작해서 그들의 죄악은 그들의 자손에게 돌아갔습니다. 주후 70년에 로마의 타이투스대장이 예루살렘 성을 공격해서 100만여 명의 사람이 피를 흘리고 죽고 이스라엘 나라는 망하고 풍비박산(風飛雹散)이 되었습니다. 그 후에 2천년동안 유대민족들은 나라 없는 민족으로 온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 가는 곳마다 멸시와 천대와 핍박을 받았으며 2차 세계대전 때에는 히틀러에 의해서 600만 명이 대학살을 당했습니다.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의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여러분, 무엇을 알고 그렇게 말했나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그 핏 값을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고 했는데 그대로 되었지 않습니까?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빌라도 총독의 병사들에 의해서 무참하고도 혹독한 고문을 당하셨습니다.
(막 15:15)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당시에 예수님을 때린 채찍은 다섯 가지로 갈라진 가죽 끈으로 그 끝에는 납으로 만든 날카로운 쇠갈고리가 달려있었습니다. 때릴 때마다 가죽 끈이 온 몸에 휘어 감기며 그 끝의 날카로운 쇠갈고리가 몸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그 모습에 대하여 “밭 가는 자들이 내 등을 갈아 그 고랑을 길게 지었도다.”(시129:3)라는 말로 예언을 하였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예수께서 서른 아홉 차례 매를 맞으셨습니다. 그의 온 몸과 가슴은 깊게 파인 밭고랑과 같이 파헤쳐졌고, 그 상처를 타고 검붉은 피가 하늘로 솟구치며 땅으로 줄기줄기 흘러내린 것입니다.
(마 27:27-30) 『[27]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28]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29]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30]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여러분, 그 모욕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 손으로 하늘과 땅을 지으셨으며 우주와 만물을 만드신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이십니다. 그가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는데 이 땅의 백성들이 그 땅을 지은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처참한 모욕을 가합니다. 아마 천사들이 하늘에서 통곡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총독의 병영에서 갈기갈기 찢기도록 얻어맞으셨는데 성경은 말씀하기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병 고침을) 받았도다.”(사53:5)라고 말씀합니다. 그는 우리의 모든 질병과 연약함을 대속하기 위해서 채찍에 맞은 것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 고난은 십자가의 고난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골고다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을 때, 그 육체적 고통이란 이루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고난이요 고통이었습니다.
시편 22편 14절에서 18절에는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예언해서 말하기를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이 육체적 고통이란 이루 말로는 다 형언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마음에 고통스러웠던지 마음이 촛밀같이 녹았습니다. 그리스도의 고통은 십자가에서 극한 상황이었습니다. 잠도 못 주무시고 드시지 못하시고 수차의 재판과 고문으로 매질과 채찍질을 당하시고 십자가 길에 무거운 횡목을 지시고 몇 번이나 쓰러지시고 그리고 골고다에 이르러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고대 파사에서 사용함으로 로마 제국에 도입되어 주후 4세기까지 가장 잔인하고 치욕적인 사형법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대개 노예나 외국인 반역자, 그러한 자들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손목과 발목에 약 20cm의 대못을 박아두면 몸무게에 못 이겨 살이 찢어집니다. 그 과정에서 손발의 신경이 다 끊어지는 그런 끝없는 육체적인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늘어져 있으니깐 가슴에 근육이 땡겨져서 호흡을 할 수가 없습니다. 호흡을 할 수 없으니 온 몸에 산소가 부족함으로 몸 전체가 경련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손과 발에서 흐르는 출혈로 말미암아 서서히 죽어 가는 것입니다. 그 고통은 인간이 당할 수 있는 최극악의 고통인 것입니다.
“얼마나 아프셨나?” [조용기 작사, 김성혜 작곡]
1. 얼마나 아프셨나? 못 박힌 그 손과 발, 죄 없이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
하늘도 모든 땅도 초목들도 다 울고, 해조차 힘을 잃고 온 누리 비치잖네.
(후렴) 아아! 끝없어라! 주의 사랑 언제나! 아아! 영원토록 구원의 강물 넘치네!
2. 나의 죄 너희의 죄 우리의 모든 죄를, 모두 다 사하시려 십자가 달리신 주,
얼굴과 손과 발에 흐르는 그 귀한 피, 골고다 언덕위에 피로 붉게 적셨네.
(후렴) 아아! 끝없어라! 주의 사랑 언제나! 아아! 영원토록 구원의 강물 넘치네!
그러나 그 모든 것들보다 더 무서운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에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버림을 당하는 두려움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일체이셨습니다. 그는 그 영광의 광채시오 본체의 형상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세상 죄를 다 걸머지셨을 때는 하나님께서도 그 얼굴을 돌려버리고 말았습니다. 창세 이후로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계셨던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버리신 것입니다.
(마 27:43-44) 『[43]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44]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막 15:33-34) 『[33] 제육시(정오12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오후3시)까지 계속하더니 [34] 제구시(오후3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여러분,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았으니 그 영혼은 가장 어둡고 캄캄한 지옥의 불길에 휩싸인 것입니다.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기에 주님께서 이 무시무시한 고통을 당했습니까? 주님께서 요청만 하셨다면 하나님이 열두 군단(6,000명)이 더 되는 천사들을 보내셔서 십자가로부터 내려오게 하실 수 있었습니다(마26:53).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향하신 바로 그 사랑 때문에 그는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제자들과 군중들에게 버림받은 그 서러움을 무슨 말로 다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고통당할 때에 자기를 사랑하는 제자들이라도 곁에 있어 힘을 주면 그 고통을 견뎌 낼 수 있는데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 버리고 도망 칠 때에 그때의 그 외로움과 그 고독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겟세마네동산에서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 하속들이 예수님을 잡아 결박하고 끌어가자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멀리 도망쳐 버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골고다에 가지를 않았습니다.
(막 15:29-32) 『[2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30]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3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32]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원하지 못한다. 예수님이 인류를 구원하셨다는 것을 무의식중에 예수님의 원수들도 인정했습니다. 그가 남은 구원했다, 남을 용서하고 남을 치료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죽은 자를 살리고 배고픈 자를 먹이고 구원했다는 사실을 전에는 늘 부인하던 그들이 이제는 십자가 밑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입술로 고백하고 말았습니다.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 할 수 없도다. 우리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자기를 구원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누가 지불해도 인류 죄악의 대가를 지불해야 될 것인데 죄 지은 사람이 다른 죄 지은 사람을 위해서 대속할 수가 없습니다. 죄 없는 사람이 죄 있는 우리들을 위해서 대속할 수 있기 때문에 유일하게 예수님만이 우리의 대속 제물이 될 수 있으므로 그는 십자가에서 내려 올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주님은 무지한 종교인들과 군중들을 위한 연민의 정으로 더 마음이 고통스러웠습니다.
(눅 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예수 그리스도를 모욕하던 그들이 얼마 후에는 불과 화염으로 타오르는 지옥의 불못에 떨어질 것을 예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잠시 후에 심판을 받아 아우성치며 그때에 몸부림치고 살려달라고 외쳐도 소용없을 그러한 형벌을 받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의 다가오는 운명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향하여 머리를 흔들고 모욕하는 그들에 대한 깊은 연민의 정을 느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 시간으로 제 삼시(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며 제 육시(정오12시)부터 제 구시(오후 3시)까지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이 어두워졌습니다. 십자가상의 주님께서는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외치시고 “내가 목 마르다.” 하시고 “다 이루었다.”고 하시고 “내 영혼을 아버지에게 부탁하나이다.”하고 운명하셨습니다.
이에 성소 휘장이 한 가운데로부터 찢어졌습니다. 보통 때는 성소 휘장은 지성소와 막혀 있어서 사람들은 절대로 지성소에 못 들어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 운명하실 때에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이제는 성전 뜰에서 안까지 훤히 들여다보입니다.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면 그 보배로운 피를 의지해서 아버지의 보좌 앞에 자유로 들어 갈 수 있는 길이 열려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 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고 하나님께로 나가면 그는 하나님 앞에 직행으로 들어 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를 위해서 대속의 고난을 당하신 것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기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가 이미 예언한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4절에서 12절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이사야 52장 13절에서 15절에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전에는 그의 모양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의 모습이 사람들보다 상하였으므로 많은 사람이 그에 대하여 놀랐거니와 그가 나라들을 놀라게 할 것이며 왕들은 그로 말미암아 그들의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그들에게 전파되지 아니한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기 700여년 전에, 이미 하나님의 종 이사야를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사 고난을 당하시는 이유는 우리의 죄악을 대속하기 위함이었음을 선명하게 밝히셨고, 그리스도의 고난의 모습까지도 아주 생생하게 묘사하여 기록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랬다고 했습니다. 너무나 얻어 맞아 얼굴이 이그러지고 온 몬 전체가 상처투성이가 되었으니 사람이 그를 보고 말로 다 할 수 없어, 입을 벌리고 말았습니다. 어하니 벙벙했습니다. 그러나 후에는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며 열왕은 그를 인하여 입을 봉하리라고 했습니다. 훗날에 바로 그 날이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요, 만 인류를 구원하는 구세주로서 일어날 것을 그들은 몰랐던 것입니다. 그분이 그렇게 된 것을 알고 세계가 놀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십자가에 못 박혀 몸이 찢기고 피 흘려 갖가지 고난과 모욕을 당하시고 세상의 버림받은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일으켜 만왕의 왕, 만주의 주 뿐 아니라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은 우리의 구주로 삼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주님의 고난과 괴로움과 버림받음은 여러분과 나의 구원과 기쁨과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오늘날 우리들은 죄의 용서와 의로움과 영광을 받아 즐거워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그로 말미암아 세상을 이기고 마귀를 쫓아내고 성령 충만과 천국을 소유하게 되었으며 그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마음과 몸의 모든 질병을 고침 받고 건강과 생명을 얻게 되었으며 그의 십자가 고난을 통하여서 우리는 저주에서 해방을 얻고 아브라함의 축복에 참여하게 되었으며 그로 말미암아 사망과 음부는 물러가고 부활과 영생과 천국에 이르는 영광을 우리는 값없이 얻게 된 것입니다.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그것이 우리에게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우리로 자랑 할 것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오늘날 남녀노유 빈부귀천 할 것 없이 구원을 받고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함을 얻고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며 그 날에 주님께서 부활의 아침에 우리를 부르실 때에 우리는 사망과 음부를 박차고 일어나서 영원한 영광 속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 진리를 믿고 구원의 반열에 서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주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저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형언할 수 없는 모진 고통을 당하게 하심으로 저희가 당해야 할 저주와 고통을 다 대신하시고 찢기신 몸과 흘리신 피로 저희를 사망과 흑암에서 건져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현세와 내세에 영원히 멸망 받을 저희들을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제물이 되어 주시고 저희를 구원해 주시니 이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저희는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존재요, 빈 손든 존재입니다. 그러나 죄악을 버리고 회개하며 주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겠다고 저희를 초청하시니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예수님 고맙습니다. 예수님 고맙습니다. 예수님 참으로 고맙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저희를 품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희를 안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희에게 영생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아직까지 구원받지 못한 모든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이끌어 올 수 있도록 힘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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