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을 버리며 / 김명기
십 년 넘게 신은 신발을 버린다
부리는 대로 받아내느라
굽은 허리처럼 휘어버린 뒤축과
굵고 깊게 파이고 미어진 상처
비정규적 삶의 몸통을 받치는 동안
재계약하듯 몇 번이나 밑창을 갈고
안감을 덧댔지만 도저히 더는
못 버티겠다고 아가리처럼 벌어진
밑창 사이로 늙은 혓바닥같이
늘어난 양말이 흘러나왔다
바닥이 바닥을 밀며 보낸 세월이 전모가
고스란히 드러났으나 뭉클함보다 앞선
난감함이란 갈 곳 잃고 엉망이 되어
돌아온 수취인 불명의 우편물 같았다
비난할 수 없는 비루함처럼
처참한 것이 어디 있을까
축축한 음지 속을 살아내느라
깊숙이 감추어두었던 지독한
냄새까지 토해내며 어둠 끝에서
불구가 되어버린 내 생의 한 귀퉁이는
이제 불명의 발신자로 세간을 떠돌 테지
신발을 버린다 말끔히 닦아 가혹했음을 감추고
돌아오지 못하게 소인(消印) 없는
봉투에 밀봉한 채 더이상 바닥 같은 것은
만나지 말라고 발을 빼고 버린다
- 시집 『멸망의 밤을 듣는 밤』 (2024.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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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기 시인
1969년 경북 울진 출생, 강원도 태백에서 성장, 관동대 졸업
2005년 《시평》 등단
시집 『북평장날 만난 체게바라』 『종점식당』 『돌아갈 곳 없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멸망의 밤을 듣는 밤』
작가정신 문학상, 고산문학대상, 만해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