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가요록을 기초해 조선시대 온실을 복원한 사진으로 한지와 짚단을 사용한 모습이 보인다>
우리문화가꾸기회의 L씨는 5년 전 청계천 고서점에서 ‘산가요록’(山家要錄)이라는 헌 책을 구입했다.
우연히 그 속에서 동절양채(冬節養菜)와 온돌을 뜻하는 단어를 발견하고 그 진위를 연구하였다.
2001년 10월 안덕균(본초학)·한복려(궁중음식)·김영진(농업사)·김용원(원예조경) 등 각계의 권위자들에게 자문한 결과 L씨가 구입한 헌 책은 ‘산가요록’ 원본이었다.
獨 하이델베르크 온실보다 170년 앞서
기록에 의한 온실의 역사는 다음과 같다.
1. 한조 시대에 부추(연변 등지에서 조선족은 부추를 염라고 부름)를 온실에서 재배.
2. 1세기께 긴 웅덩이나 도랑을 파고 운모판으로 덮어 오이나 채소를 재배. 또한 폼페이에서는 유리 종류를 이용해 햇볕을 실내로 받아들이고 석조 계단에 식물을 심은 화분을 놓은 후 벽을 통과하는 원시적 온풍난방 시스템을 도입했다는 기록도 있음.
3. 기원 290년 로마 시대에 알렉산드리아 지방에서 도입된 장미꽃을 겨울에 피우기 위해 투명한 운모와 활석을 이용한 창문을 만들고 가열할 수 있는 온실 건설.
4. 8세기께 당(唐) 현종 시대(712∼756)에 화실(火室)에서 오이를 조숙 재배.
5. 1545년 이탈리아 북동부 파두아의 식물원에서 발바로가 유리가 없이 벽돌과 돌만으로 만든 온실에 화로를 통해 내부의 온도를 높임.
6. 1562년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 세실이 런던의 자택에 온실 설치하고 오렌지 재배.
7. 1619년 독일의 하이델베르크에서 온실에 난로 설치.
8. 1691년 그린하우스의 시조로 불리는 J. 이블린이 온실 외벽에 설치한 난로의 연관(煙管) 표면을 통해 더워진 공기를 실내로 유입시켜 온도를 높이는 온풍난방법 개발.
9. 1724년 영국에서 유리 지붕을 설치한 현대적 온실 등장.
10. 18세기 네덜란드에서 넓은 면적의 유리를 사용한 본격적인 그린하우스 도입.
11. 1788년 온수를 이용한 가온 방식(Hot water heating system)이 프랑스에서 등장.
12. 1802년 공기를 덥히는 방식(Hot air system)이 영국에서 실내 식물 보호를 위해 이용됨.
온실의 역사를 볼 때 온실에서 식물을 재배한 기록은 2,000년 전인 한나라나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현대적 관점에서의 온실은 일반적으로 하이델베르크의 온실을 세계 최초로 인정하므로 세종조의 온실은 독일보다 170여 년, 영국의 온실 난방 방법보다는 무려 240여 년이나 앞선다.
겨울철에 채소 재배해 궁중에 공급 우리 민족은 쌀 위주의 식생활에 채소를 즐겨 먹었다. 겨울철에도 채소를 먹기 위해서는 새로운 영농 기법이 필요한데 방법은 단순하다. 겨울철에도 채소가 자랄 수 있는 온실을 만드는 것이다. ‘산가요록’에 적힌 동절양채에 대한 원문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제일 먼저 임의의 크기로 온실을 짓되 3면을 막고(蔽) 종이를 발라 기름칠을 한다(塗紙油之). 남쪽면도 살창을 달고 종이를 발라 기름칠을 한다. 구들을 놓되 연기가 나지 않게 잘 처리하고 온돌 위에 한 자 반 높이의 흙을 쌓고 봄채소를 심는다.
건조한 저녁에는 바람이 들어오지 않게 하되, 날씨가 아주 추우면 반드시 두꺼운 날개(飛介: 오늘날의 멍석과 같은 농사용 도구)를 덮어 주고 날씨가 풀리면 즉시 철거한다. 날마다 물을 뿌려 주어 방 안에 항상 이슬이 맺혀 흙이 마르지 않게 한다. 담 밖에 솥을 걸고 둥글고 긴 통을 만들어 그 솥과 연결시켜 저녁으로 불을 때 솥의 수증기로 방을 훈훈하게 해 주어야 한다.’
이 기록을 통해 겨울철에 꽃과 채소를 재배해 궁중에 진상했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들에 대한 의문점이 모두 해소되었으며, 온실의 모형도 유추할 수 있게 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우리 민족이 갖고 있던 선진 제지 기술인 한지와 온돌을 십분 활용했고 습기를 조절할 수 있도록 가마솥으로 물을 끓여 수증기를 공급했다. 거의 550년 전에 현대 온실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과학적 방법을 사용했다는 점에 전문가들은 놀랐다. 이 점에서 세종조의 온실을 세계 최초의 과학영농 온실이라고 해도 결코 무리가 없다고 할 수 있다.
통기성, 습도조절, 채광성 3박자 갖춰 우리 선조들도 이런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산가요록’에 의거해 온돌을 설치하면 실내공기가 따뜻해지는 효과는 있으나 습도가 너무 낮아지는 결점이 생긴다. 이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온실 뒤에 가마솥을 걸고 수증기를 공급해 습도를 조절하도록 한 것이다.
특히 한지의 사용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일반적으로 온실의 경우 외기온과 내부의 온도 차이 때문에 채광부분에 결로 현상이 생긴다.
결로 현상은 작물이 변색되는 원인이 되고, 특히 결로된 이슬이 식물에 떨어지면 차가운 온도 때문에 상처가 생기므로 병원균이 침투하는 등 식물 생장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근래에는 온실에 결로가 생기지 않도록 결로 방지 페인트를 칠하기도 한다.
복원한 온실의 경우 창호 부분에서 결로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온실을 만들 때 창호지의 3대 특성, 즉 통기성과 채광성 그리고 습도 조절 능력을 유효적절하게 이용했던 것이다. 선조들의 슬기를 다시금 엿볼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산가요록’에 기록된 온실이 세계 최초의 과학영농 온실로 부각될 수 있는 이유는 온실이 갖추어야 할 3대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한국의 특징적 난방 방법인 온돌을 사용해 겨울철 난방을 도모했고, 둘째는 한지에 기름을 발라 채광을 통해 실내온도를 높이고 습도 조절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창호지만으로 습도를 조절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므로 가마솥을 걸고 물을 끌여 수증기를 실내로 유입해 온도와 습도를 동시에 올려 주는 복합적인 온실이 되도록 한 것이다.
세계 최초의 과학영농 온실이 기록된 ‘산가요록’은 현재 국보 지정을 추진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