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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먹을것이 너무 많어서 외례 아이들이고 어른이고 비만체질이 될까봐
다이어트를 합네 어쩌네 야단 법석을 떨지만 60년대 초반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나같은
늙은이들은 풀빵에 대한 아련한 향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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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이해가 안 갈찌 모르는데 예전에는 비만형을 사장타잎 이라고 부러워?한 시절도 있었다.
그만큼 먹을 것이 부족하다보니 영양실조와 빈혈환자들이 많었던 시절에는 가장 대중적인 "먹거리"였다.
국화빵이나 붕어빵을 파는곳은 버스정류장 근처에 많었다. 빵틀에서 뿜어져 나오는 뽀얀 김과 고소한 냄새에
취해 퇴근길에"따끈하게 구운 국화빵"이나 "붕어빵"한봉지를 사 갖고 오면서 흐뭇홰 하던 家長들이 많었다.
당시에 간식꺼리라고 해 봤자... 그저 고구마나 찐감자정도였고 간혹 부모님께 삥땅한 푼돈이 생기면 풀빵이나
"젠쟈이"나 국물이 퍼 먹을 수 있는 "오뎅"라도 사 먹을 수 있으면 있는집 아들축에 속했을 정도다.
헌데... "배고프던 시절"에 먹던 "음식"과 "간식꺼리"가 언젠가부터 "웰빙음식"이라고 호들갑을 떠는데...
누가 뭐라거나 나는 여전히 고구마 삶은거나 감자 찐 것과 보리밥과 감자밥,콩나물밥은 싫다.
코흘릴때 배를 굶주리던 시절이 떠 올라 오기가 돋아서라도 지금도 "싫고" 앞으로도 "싫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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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당시에 잘 못 먹었던 "풀빵종류"는... 恨이 맺혀 지금도 잘 먹는다. 그러고 보면... 나는 역시...
두메산골 촌놈출신임을 숨기지 못한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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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풀빵의 효시는 "국화빵/菊花"이 아닌가 싶다.
국화빵의 모양은 막부시대 일본의 紋帳에서 비롯된 "모양"이 아닐까 싶지만 자료를 찾지 못했다.
단지 일본의 "빵"자료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귀절로 보아 "막부시대"때 비롯된"문장"이 아닌가 싶다.
(アズキ餡を入れた菊形の焼き菓子)"국화모양으로 구워낸 과자/빵"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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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문양을 빵틀로 만들어서 조선에 들어온 "가께우동'과 "오뎅/어묵", "젠쟈이/단팥죽"등은
일제 강점기를 거쳐 광복이 된 이후까지도 "別食"으로 남어서 아직까지도 버티고 있는 "먹거리-인데
호칭이 달라졌을 뿐이다. 그에 비하면 "찐빵"과 "만두"는 호사스러운 먹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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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쟈이"는 단팥죽으로, "오뎅"은 어묵으로 남었고, 찐빤의 "앙꼬"는 찐빵속으로 남었지만 原流는
일제 강점기때다. 그 이전까지 일반 서민들이 먹었던 간식이래봤자 감자,고구마,옥수수,찐쌀등이었는데
일본인들이 들여온 "別食"은 당시에는 말 그대로 "別食"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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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때 일본인들이 들여온 "빵"은 종전의 우리가 가지고 있던 각종 떡종류와 "엿"정도에 비해 훨씬
더 달짝지끈했고, 자르르 기름끼가 도는 모양이 여간 신기롭지 않었다고 한다.
한동안 "떡"과 "엿"은 설 자리가 없어서 존재유무 파악도 어렵드니 떡과 엿은 또 다른 "먹거리"로 자리잡었고 "엿치기"까지 다시 살어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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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장수 마음대로---라는 우스개도 엿장수들의 "가위질"에서 나온 우스개인데 우리나라 엿장수는 거의 다 '품바복장-을
하고 있는에 이전의 엿장수는 지게에 엿판을 지고 다니면서 온갖 고물이나 곡식등과 바꿨는데 현금이 귀한 시절이라
그렇게 해서라도 주전부리를 취할 수 있는것도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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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엿장수의 "대표인물"은 지금도 생존해 있는 "윤팔도"氏 일게다. 서울의 어느 합창단에서 바리톤으로 있던
큰 아들이 아버지의 가업을 잇겠다면서 성악을 그만두고 "신식 엿장수"로 아버지 代를 잇고 있는데 그 아들의 아들,
즉 윤팔도氏의 손주도 타악기 전공을 하면서 "엿장수 가업"가업을 이어가겠다고 하니... 비단 윤팔도氏의 아들과 손주뿐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代물림"하는 "업종"들이 늘어나 "가문의 일"을 이거가면서 "전통"과 "정통"을 잇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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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모양의 빵틀로 구어내는 것에서 발달된 "붕어빵"을 일본에서는 "타이야끼/たい燒き"라고 부르는데
타이야끼를 제일 처음 만든 사람은 "浪花家"라는 가게를 연 "칸베/神戶 淸次郞"라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2012년 9월 현재 초대 "칸베"의 손자가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데 올해 63세라고 하니 붕어빵의 역사는
19세기 말까지 거슬러 올라가 근 100여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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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타이야끼"가 우리나라 붕어빵의 원형이자 기원이라고 여기는데 지금의 붕어빵과 형태도 비슷하고,
재료도 같으며, 만드는 방법도 같은데 "타이야끼"에서 발전된 "타코야끼"가 언젠가부터 우리나라 거리에도
"타코야끼/문어빵"이 등장했는데 "타코야끼"도 알고보면 일본 사람들이 먹는 "풀빵" 종류다.
기존의 풀빵에 "앙꼬"넣던것 대신에 "문어쪼가리"를 넣어서 굽는 "타코야끼"에 뿌려먹는 소오스가
마요네스와 물에 희석한 일본간장인데 약간 시큼한듯 맛이 일본사람들은 물론 우리나라 젊은이들 입맛에도
맞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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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코야끼"가 어떤 경로로 통하여 우리나라 길거리 음식으로 된 연유는 미뤄짐작건데 일본여행을
다녀온 젊은이들의 "타코야끼의 맛"에 대한 여행담?이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간 것이 아닌가 싶다.
요즘은 일본풍 손수레에 일본글자로 휘장을 두른 "가게"도 눈에 많이 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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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타코야끼"뿐 아니라 세계 어느나라 음식이든 먹고싶은 음식중 왠만한 것은 다 먹어볼 수 있으리만큼
대한민국도 세계적인 "음식 시장"의 마킷사이즈가 있기 때문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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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붕어빵과 같은 방식으로 붕어모양이나 잉어모양의 빵틀에 구워 만드는 국화빵이나 오방떡,
국화빵도 일본에서 온 것이라 생각된다. 물고기를 형상화한 특이한 생김새의 붕어빵을 먹는 재미, 어렴풋이
느껴지는 향수 등 붕어빵에 대한 정서는 한국과 일본이 비슷한 것 같은데 일본 사람들의
생선을 좋아하는 취향이 우리나라와 맞어떨어졌고 물고기와 똑같은 모양, 재미난 생김새,
밥 한공기와 맞먹는 풍부한 칼로리, 고소하면서 달콤하고, 바삭바삭하면서도 말랑말랑한
특유의 맛과 조직이 꾸준한 인기의 비결이 아닐까 싶지만... 그런 "풀빵"이... 60년대 중고등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겐... 마음대로 먹을 수 없었던 "간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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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을 먹는 순서(부분)에 대한 재밋는 풀이가 있는데 머리부터 먹는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꼬리부터 먹는사람은 어떤 성격이고등등 믿거나 말거나한 "썰/說"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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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 반죽"에 "팥앙금/앙꼬"을 넣고 달구어진 "빵틀"에 구어내면 되는 간단한 요리법이지만
구어내는 -틀-의 종류에 따라 "국화빵-이니 "붕어빵"라고 하지만 요즘은 "잉어빵-이라고도 하고
어떤집은 "참붕어빵"이니 -버들붕어빵-이니 저마다 재밋는 이름을 붙이는데 우리나라의 "풀빵"가격중...
가장 비싼 "풀빵"은 대전에서 판다는 "대형 붕어빵"이 아닌가 싶은데 크기가 보통 붕어빵의 30배정도이고
그에 따라 가격도 비싼데... 젊은이들이 재맛다고 여겨서 제법 잘 팔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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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도 비싼 "붕어빵"이 있는데 삼청동 올라가는 길목 소격동 화랑골목에 있는 어느 길거리 빵집에서는
"황금붕어빵?"이라는 이름을 붙혀두고 개당 1,500원에 팔고 있는데 크기는 일반 붕어빵의 10배정도?되는데
지인이 소격동 화랑에서 전시회 중일때 한번 사 먹어보았는데...내 입에는... 가격 대비... 별로였고...
외례 보통의 "붕어빵"이 주는 고소함과 쫀득한 맛이 입에 더 맞는듯 한 것으로 보아... 촌놈기질은 어쩔수 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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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면, 붕어빵을 구어내는 "빵틀"은 누가 먼저 발명했을까? 주물공장? 아님 앞에 말한 일본의 "칸베/神戶 淸次郞"가
설계?를 하여서 주물공장에 주문을 하였을까? 일본사람들도 잘 모르는데 더 이상 알어볼 자료도 없는지라 누가
먼저 만들었는지 그런말을 할러는 것이 아니라 60년대 중고등시절을 보낸 "이바구-에 촛점을 맞추는지라
별 중요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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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말하다만 "국화빵"은 일본의 "문장"에서 왔다. 사무라이 시절부터 가문을 상징하는 "문장"을
만들었는데 어떤 집은 한문을 변형시킨 칼 모양도 있고, 어떤 가문은 배/船모양도 있었는데 가장 많은 "형태"가
"국화꽃 모양"이었고 실제 일본 사무라이들의 상징이었던 "국화꽃"임을 대입하면... 이 역시 일제 강점기때
우리나라에 들어온 일본문물임은 분명한데 광복이 되면서 일본사람들이 물러간뒤 그들이 남기고 간 "국화빵틀"이
고물상을 통해 팔리기 시작하고 몇몇주물 공장에서 "국화빵틀"을 찍어낵 시작하였다가
점차 크기가 커지기 시작하여서 "붕어"가 되고 "잉어-가 되드니 얼마전에는 진짜 어른들 손톱보다 조금 더 큰
"애기붕어빵"도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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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붕어빵"은 일종의 먹거리 역활도 하였다면 요즘의 "붕어빵"은 "트랜드?化"된 젊은이들의 "장난질用"이
아닌가 싶다. 60년대의 학생들은 "붕어빵-이라도 배불리 먹을 수 있으면 제법 잘 사는 집 아이들이거나...
책값을 삥땅하거나 이런저런 핑계를 들어대어서 몇푼 삥땅쳐서 먹을 수 있었던 나름의 "별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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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줄을 넘긴 사람들은 "양과자/생과자"라 불렀던 "빵"을 먹는 사람들 보다는 "술빵"을 더 자주먹는 "별식"이였고
그 마저도 자주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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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궁상맞은 소릴 할려고 "풀빵 이바구"를 끄집어 내느냐?고 눈 흘긴다면 예전에는 "없는사람들"이 먹던 음식들이
언젠가부터는 "웰빙음식"이니 뭐니라며 "고급음식?"으로 여겨서 "건강食"으로 여기나도들 하지만...
나에게 "풀빵"이란 그냥 "풀빵"일 뿐이고... 건강에 좋다며 너도나도 몰려가 먹는 "보리비빔밥"...도 나에겐 그저...
입안에서 보리밥알이 맹글뱅들 도는... '먹기싫었던 보리밥"일 뿐인데... 우리 할멈은... "감자밥"이니 "콩나물밥"이니를...
"건강음식-이니 "고혈압"에 좋느니 "당뇨"에 좋으니라며 가끔씩... "보리밥"이나 "콩 나물밥"을 밥상에 올리는데...
"먹기싫다"소리를 못하고... 꾸역꾸역 입에 넣어서... 입안에서 밥알을 뱅글뱅글 돌리는 "꼴"을 들키기라도 하는 날에는...
영낙없이 떨어지는 "소리"가 있으니... 그놈의 "입맛은 살었네?"라는 힐난인데... 어쩔땐 차라리 "풀빵"이 더 건강식? 아닌가
싶을때가 있어서 주저리주저리 자판을 두들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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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야 "빵"이라는 말 자체가 '우리말"이 아닐찐데... 주는대로 먹잖고 늙어가면서 뭔 입맛타령이냐?는
할멈의 힐난이 과히 틀린말은 아닐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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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천 역 건너편 언덕의 인천 챠이나 타운에 가면 화덕에 구워내는 "만두"가 있는데... 다음 주말에는 할멈과 함께
오랫만에 "챠이나 타운"으로 나들이 나가서... 화덕에 굽는 즉석 만두"를 進上할꺼나... 그곳에 가면 지금은 거의 사라진
통참깨를 솔솔 뿌린 "공갈빵"도 있는데 그 역시 즉석에서 굽는 것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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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할멈에게 더 이상 "입맛은 살어가지고"라는 소리를 듣지 않을려면...
알랑방귀를 뀌어서라도 더 이상... 가재미 눈도 마주치잖고 그나마 하루 세끼 얻어먹을듯 싶다.
언제부터 "할멈"의 눈치를 살피고 사는데... 이실직고 하자면...젊었을때 앞뒤 물색없이... "버럭질"로 "네로 황제 흉내"낸
罪가 많은지라... 네 罪를 네가 알렸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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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그런가? 다른 사람들도... 나잇살 먹으면서 "마나님 눈치"를 살피고 사는지... 먹거리 이바구를 두드리는 것도
어찌보면... 눈치없이 "입맛"에 맞는 "것"을 주문할 수도 없는지라... 언필칭 "대리만족"이라도 하는 꼴이 아닐까 싶어서...
자판 두드리는 것도 "할멈 눈치"를 볼때가 많다. "가짜식욕"을 잘 다루면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고도 하지만...
늙어가면서 "가짜식욕"은 커녕... "진짜 식욕"이 댕길때가 많어서... 이래저래... "입맛은 살어서"라는 소릴 면키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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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보니 에휴~~~ 소리가 저절로 나올 수 밖에?
에휴~~~~~~
첫댓글 국화빵 집 옆에는 반드시 아스케키집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강남 뒷골목에는
붕어빵에서 잉어빵으로 발전하고서 다시 고래빵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우리 어릴때는 가장 인기품목은 설탕을 녹여서 각종 모양을 만드는 녹여먹기가
가장 신기했지요
설탕을 녹여서 공작새의그 섬세하고 화려한 깃털을 하나하나 만들어 세워놓은
그 설탕 녹여서 만드는 좌판 앞을 어찌 그냥 지나가리오
아령모양을 찍은 설탕녹인 판을 바늘끝으로 굵어서 잘 떼면 참새모양하나 주고 도중에 부러트리면 꽝이고
에휴 나는 하나도 성공 못했지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