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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탈리즘의 실체
* 밸푸어(A. J. Balfour) : 영국의 정치가이자 철학자.
* 크로머(E. B. Cromer) : 이집트와 인도에서 활동한 영국의 식민지 행정관.
- 출전: 에드워드 W. 사이드,『오리엔탈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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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머는 동양인이란 영국 식민지에서 그가 통치한 인적 자원일 뿐이라고 항상 생각했음을 숨기고자 하지 않는다.
“나는 오로지 외교관이고 행정관에 불과하므로, 그러한 사람에게 적합한 연구란 역시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되, 그것은 ‘인간을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라는 견지에서 하는 연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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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양인의 일반적인 행동방식이나 대화방식, 사고방식이 어떻든 유럽인의 그것과는 정반대라는 사실에 주목하여 스스로 만족하고 있다.”
크로머의 서술에는 확실히 스스로의 관찰에 근거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여기저기에서 정통 오리엔탈리즘의 권위자들(특히 에르네스트 르낭과 콘스탄틴 드 볼네)을 인용했다. 동양인이 이렇다 저렇다 하고 이유를 설명하면서 그는 이러한 권위에 완전히 복종했다.
크로머는 동양인에 관한 어떤 지식도 그의 견해를 보증해준다고 확실히 믿었다. 반대심문에 따른 이집트인에 관한 묘사로부터 판단하면, 그의 견해는 동양인은 무조건 유죄라고 보는 것이었다. 동양인이 동양인이라고 하는 점이야말로 바로 범죄였다. 그러한 동어반복이 유럽인의 윤리나 정신의 균형에도 의지하지 않고 쓰일 수 있었다고 하는 것은, 그러한 동어 반복이 얼마나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는가를 명확하게 보여 준다. 그리하여 동양적 행동의 규범으로 인정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모두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졌다. 결국 크로머는 이집트에서 제출한 최후의 연차 보고서에서 이집트 민족주의란 ‘완전히 신기한 관념’이며, ‘재래종이라기보다도 도리어 외래종 식물’이라고 단언했다.
크로머나 밸푸어가 그 저술에서나 정책 표명 때마다 참조한 공인된 지식의 저장고, 곧 정통 오리엔탈리즘의 코드를 경시함은 잘못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오리엔탈리즘을 단순히 식민지 지배를 합리화하는 수단이라고 단정해버리면, 오리엔탈리즘이 식민지 지배라는 사실을 추인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에 앞서서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한 것이라는 차원을 간과하게 된다. 인간은 언제나 세계를 실재 또는 상상 속의 특질에 의해 서로 구별되는 몇 가지의 지역으로 분할하여 왔다. 벨푸어나 크로머가 그 정도의 자기만족으로 받아들인 경계선, 곧 동양과 서양을 나누는 절대적인 경계선은 수년 아니 몇 세기에 걸친 오랜 세월을 통하여 형성되어 왔다. 물론 발견을 위한 항해가 수없이 시도되었다. 전쟁과 무역을 통한 접촉도 있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18세기 중엽 이후 동양과 서양의 관계를 규정하는 두 가지 중요한 계기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하나는 유럽에서 동양에 관한 체계적인 지식이 증대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지식은 식민지 침략에 의하여, 낯선 것과 색다른 것에 대한 폭넓은 관심에 의하여 강화되었으며, 또한 민족학, 비교해부학, 문헌학, 역사학과 같은 새로이 발전하는 학문들에 의해 활용되었다. 나아가 이러한 체계적인 지식에는 소설가, 시인, 번역가, 재능 있는 여행가들이 저술한 방대한 양의 문헌이 덧붙여졌다.
동양과 유럽의 관계에 나타난 또 다른 양상은 유럽이 지배자의 지위라고는 말할 수 없어도 언제나 강자의 지위를 차지했다고 하는 점이다. 이것을 완곡하게 표현할 방법은 없다. 밸푸어가 동양 여러 문명의 ‘위대함’을 인정한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강자와 약자의 관계를 위장하거나 완화하여 표현할 수는 있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정치적, 문화적 차원에서 나아가 종교적 차원에서조차 양자의 본질적 관계가 어디까지나 대립하는 강자와 약자의 관계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관계는 여러 가지 용어로 표현되었다. 밸푸어와 크로머가 그런 용어들을 사용한 전형적인 예다. 예컨대 동양인은 비합리적이고, 저열하고, 유치하고, ‘비정상적’이다. 그리고 유럽인은 합리적이고, 도덕적이며, 성숙하고, ‘정상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강자와 약자의 관계는, 동양인은 이질적이긴 하나 명확하게 조직된 그 자신의 세계에 살고 있으며, 그 세계는 독자적인 민족적, 문화적, 인식론적 경계를 가지고 있고, 또 내적 정합성의 여러 원리들을 갖추었다는 사실을 도처에서 강조함으로써 생명을 얻고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런데 동양 세계의 이해가능성과 정체성은 스스로의 노력의 결과로서가 아니라, 서양이 동양을 규정하기 위하여 사용한 일련의 복잡하고 교묘한 조작을 통해서 주어진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논의해 온 문화적 관계의 두 가지 특성은 하나로 연결된다. 곧 동양에 대한 지식은 힘을 배경으로 하여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동양, 동양인, 동양 세계를 ‘날조한다’는 것이다. 밸푸어와 크로머의 용어에 따르면, 동양인들은 (법정에서와 같이) 판단의 대상으로 묘사되며, (교육과정에서처럼) 연구와 서술의 대상으로 묘사되며, (학교나 감옥에서처럼) 훈육의 대상으로 묘사되고, 또 (동물도감에서처럼) 도해의 대상으로 묘사된다. 요컨대 동양인은 이런 모든 경우들에서 지배적인 틀에 의하여 ‘재단되며’ ‘표상되는’ 존재이다. 그렇다면 이 틀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가?
문화의 힘에 관하여 논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 책의 목적 중 하나는 오리엔탈리즘을 문화적인 힘을 행사하는 하나의 형태로 설명하고 분석하고 고찰하고자 하는 점에 있다. 달리 말하자면 나는 문화적인 힘이라고 하는 매우 애매하고 중요한 개념에 대해서, 상당량의 자료를 분석하기 전에 일반적인 결론을 빨리 끌어내는 위험을 회피하고 싶다. 그러나 19세기와 20세기에 관한 한, 동양과 동양에 속하는 모든 것이 비록 서양에 열등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서양의 연구에 의해 교정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가정되었다는 것만큼은 인정할 수 있다. 따라서 동양은 마치 교실, 형사법원, 감옥, 도감과 같은 틀에 의해 규정된 존재로 비쳐졌다. 곧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적인 사물을 조사, 연구, 판결, 훈련과 규율, 통제의 대상으로 삼아 교실, 법정, 감옥, 도감 속에 배치하는 동양에 관한 지식이었다.
20세기 초에 밸푸어와 크로머 같은 사람들이 그러한 것을 그러한 형태로 말할 수 있었던 것은, 19세기보다 더욱 거슬러 올라가는 초기 오리엔탈리즘의 전통이 이미 그들을 위하여 어휘, 이미지, 수사법, 형상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리엔탈리즘은 유럽, 곧 서양이 지구 위의 지극히 광대한 부분을 문자 그대로 지배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일정한 인식에 의해 강화되었고, 동시에 그 인식을 강화하도록 작용했다. 오리엔탈리즘이 제도의 측면과 내용의 측면에서 급속하게 진전된 시대는 유럽이 엄청나게 팽창하던 시기와 완전히 일치한다. 곧 1815년부터 1914년까지 유럽이 직접 지배한 식민지 영토는 지구 표면의 거의 35퍼센트에서 85퍼센트까지 확대되었다. 모든 대륙이 영향을 받았으나, 특히 그 영향이 현저했던 곳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였다. 영국과 프랑스는 양대 제국으로서 한편으로는 동맹국으로서 동반자였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적대적인 경쟁 상대였다. 지중해 동쪽 해안으로부터 인도차이나, 말레이반도에 이르는 동양의 여러 지역에서 영국과 프랑스 양 제국의 식민지 영토 및 제국 세력 범위는 서로 인접하고 종종 중복되며 자주 충돌하였다. 그러나 영국인과 프랑스인이 서로 마주했을 뿐만 아니라, 문제의 ‘동양’과 함께 맞부딪쳐 최대의 긴장감, 친근감, 혐오감을 갖게 된 곳은 중동, 즉 이슬람이 문화적, 인종적 특징의 규정 요인이라고 단정된 아랍 중동 지역이었다. 솔즈베리 경이 1818년에 얘기했듯이 19세기의 대부분을 통하여 영국과 프랑스 양국인에게 공통된 동양관은 복잡한 문제투성이였다. 곧, “여러분이 심각한 이해관계를 갖는 어떤 나라에 대해, 신뢰하는 동맹국이 간섭하는 경우, 가능한 대응 방책은 다음 세 가지입니다. 그 나라를 포기하든가, 독점하든가 또는 분할하는 것입니다. 포기한다면 인도로 가는 영국의 길을 프랑스가 차단할 것입니다. 독점한다면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분할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나누어 먹었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가 나누어 먹은 것은 토지, 이윤, 지배만이 아니었다. 내가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부르는 일종의 지적 권력도 나누어 먹었다. 어떤 의미에서 오리엔탈리즘은 공유하는 정보의 도서관이나 문서고였다. 그리고 그것은 합의에 의해 보관되는 곳이기도 했다. 이 문서고를 하나로 통합시킨 것은 하나의 관념 체계였고, 그것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유효성이 증명된 하나의 가치체계였다. 이러한 관념 체계는 동양인의 행동을 설명하는 것으로서, 동양인에게 하나의 심리적 경향, 하나의 계보, 하나의 분위기를 공급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이러한 관념 체계로 인하여 유럽인은 동양인을 규칙적인 특징을 갖는 하나의 형상으로 취급하고 간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속성을 갖는 관념 체계의 단위와 같이, 오리엔탈리즘의 여러 관념은 소위 서양인, 유럽인, 서구인만이 아니라 동양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요컨대, 오리엔탈리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단순히 실증적인 주의 주장으로 보기보다는 강제와 제한의 집합으로 보는 쪽이 옳다.
만약 오리엔탈리즘의 본질이 우월한 서양과 열등한 동양 사이에 뿌리 깊은 구별을 설정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오리엔탈리즘이 그 발전기와 그 후를 통하여 이러한 구별을 더욱 심화시켰고, 심지어 경직시킨 상황 그 자체에 착안해야 한다. 19세기 영국에서는 인도 등의 영국인 행정관이 55세가 되면 정년퇴직하여 직장을 떠난다는 관행이 널리 행해졌는데, 이것이 오리엔탈리즘을 더욱 세련되게 만들었다. 즉 동양인에게는 늙어 쇠약한 서양인을 보는 것이 결코 허용되지 않았다. 그것은 동양인이라는 종족의 눈에 비친 서양인 자신은 건강하고 이성적이며 민첩함을 잃지 않는 젊은 귀족인 것으로 충분한 것이지, 그 밖의 모습을 보일 필요가 전혀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인간의 현실이 순수하게 분할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의 현실을 몇 가지 문화, 역사, 전통, 사회 또는 인종으로부터 분명하게 분할하고, 나아가 그 분할의 결과에 관계없이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그 결과에 관계없이 인간답게 살 수 있다고 한다면 인간을 소위 ‘우리’(서양인)와 ‘그들’(동양인)로 분할하는 것에 나타나는 적대성을 피할 수 있는 길이 있을까?
개괄에 불과한 이러한 구분을 역사나 현실에 적용하는 경우, 사람들 사이를 구분하는 것이 강조될 뿐이고, 좋은 결론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동양인과 서양인이라는 범주를 분석이나 연구, 또는 국가 정책의 전제나 목표로 이용한다면 (밸푸어와 크로머가 그러한 범주를 사용한 경우처럼) 보통 그것으로부터 비롯되는 결과는 동양인은 더욱 동양적으로, 서양인은 더욱 서양적으로 되면서 구별을 극단적으로 양극화하여 상이한 문화, 전통, 사회에 속하는 인간들의 만남을 제약한다. 요컨대 이국적인 것을 취급하는 사고양식으로서의 오리엔탈리즘은 그 근대적인 전개의 시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동양’과 ‘서양’이라는 엄격한 구분 위에 근거한 지식 특유의 지극해 개탄할 만한 경향을 전형적으로 보여 주었다. 그것은 사고를 서양이냐 동양이냐 하는 구분 속에 집어넣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이 서양 오리엔탈리즘의 이론, 실천, 가치관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이상, 동양을 위압하는 서양의 권력이라는 사고방식은 너무도 당연하게 과학적 진리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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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읽기 포인트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Orientalism』은 서양인들이 동양을 볼 때에 선입견을 가지고 본다는 것으로,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며 억압하기 위한 서양의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동양이 서양인의 정체성을 확립해 주는 대상으로, 열등한 동양이 존재하기에 우월한 서양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서양인들은 동양인들이 열등하며 무능하고 게으르다고 생각하며, 자신들보다 두뇌나 신체 면에서 열등하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수많은 문화가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한꺼번에 동양이란 단어로 포함시킨다고 주장했다. 또한 쇠퇴하고 비참한 동양을 식민지화함으로써 동양을 구출해 내었다고 주장해 자신들의 식민지화를 정당화한다고 주장했다.
문> 개인이나 민족, 국가 등 모든 주체는 나름대로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며, 그것을 흔히 그 또는 그들만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의 ‘정체성’을 형성하거나 정의하는 방법에 대해 위의 읽기 자료를 참고하여 설명해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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